“난 예전에는 운명 따위를 믿지 않았지만, 이젠 믿어야 할 것 같아.”곽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난 반평생을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으로 살았는데, 이제 반백 살이 되니까, 아내는 이혼하자고 난리고, 딸과 사이가 멀어지고, 아들까지 잃었으니, 이건 아마 하늘이 내린 벌인 것 같아.”고은서는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곽현수도 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정부를 향해 오라고 손짓했다.“승연이는 요즘 할머니랑 같이 있어. 두 사람 모두 널 좋아하니까, 시간이 되면 자주 연락해.”곽현수가 말을 마치자, 가정부는 휠체어를 밀고 집으로 들어갔다.아직 돌아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고은서는 본가로 향했다.곽승재의 할머니의 몸은 현재 큰 이상이 없었으나, 마음의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다. 할머니는 눈시울이 빨개진 고은서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은서야, 네가 괴롭다는 거 알아. 너도 승연이처럼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니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고은서는 볼을 할머니의 손등에 대고 울먹이며 말했다.“네.”할머니의 집에서 나올 때, 곽승연이 고은서를 바래다주었다.“언니, 저도 이제 다 컸으니까, 엄마와 할머니는 제가 챙길게요. 그러니까 제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세요.”“그렇다고 절 잊으면 안 돼요? 전화도 자주 하고 선물도 보내 주세요.”곽승연은 한 마디 더 보탰다.고은서는 손을 내밀어 곽승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알았어.”F 국으로 가는 항공권은 여재훈이 대신 예매했고, 그곳에서 고은서를 맞이할 사람들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출국일은 3일 뒤였다.다음날, 여재훈은 고씨네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하여, 고은서는 삼촌네 일가족과 유성준을 외할아버지네 집으로 초대했다.고국성은 여재훈의 정체를 듣고 진지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물었고, 여재훈이 배신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서야 허락했다.단은숙은 고은서 친아버지의 신분을 알고 입을 다물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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