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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죽기 전엔 못 놔줘: Chapter 1971 - Chapter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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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1화

에리는 최근에야 서주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계속 박민정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만날 핑곗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그러다가 이번에 겨우 기회가 생겨 몇 명의 배우들을 데리고 박민정네 회사로 온 것이다.“민정아, 난 또 네가 날 잊어버린 줄 알았잖아.”박민정은 한껏 불쌍한 표정으로 말하는 에리가 그저 어이없었다.“바빴다고 했잖아.”말을 마치자마자 배우들을 둘러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괜찮겠지?”“걱정하지 마. 부잣집 사모님 연기만 하면 된다며? 이 정도는 껌이지.”“그리고 어차피 나도 따라가니까 좀 어색해 보이면 내가 현장에서 바로 코치해 줄 수도 있고.”말이 코치지, 에리는 이 기회를 틈타 어떻게 해서든지 박민정과 가까워지고 싶었다.“너도 따라오겠다고?”“왜? 그러면 안 돼?”에리는 고개를 떨구고 다시 물었다.“하, 오랜만에 만나니까 내가 어색해?”그러자 박민정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게 아니라 그냥 너도 바빠 보여서.”“괜찮아, 작전 성공하면 나중에 이 은혜 잊지만 말아줘.”이렇게까지 말하니 박민정도 더는 거절하기가 미안했다.하여 어쩔 수 없이 진서연과 에리를 데리고 박민호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박민호는 원래 해외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가지고 있던 돈도 거의 다 소진상태였다.게다가 얻어맞을 때 핸드폰과 신분증도 모두 빼앗겼기에 어쩔 수 없이 지금 작은 마을에 숨어 있어야 했다.저녁쯤 되어서야 그들은 마침 박민호가 일하고 있는 클럽에 도착했다.진서연은 먼저 점장에게 말해서 룸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데 여기서 맞은편 룸이 바로 보여 관찰하기 편했고 모든 연기자가 박민호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호가 드디어 나타났는데 저번에 얻어맞았던 흉터는 거의 아물어가는 듯해 보였고 점장 민경수는 이따 손님을 접대해야 한다면서 그더러 준비하라고 했다.“오늘은 좀 얌전히 마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내쫓아 버릴 테니까.”혹시나 그가 또 사고 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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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2화

그리고 이미 목소리가 다 갈라져 있었다.방금 열 몇 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전부 고음도 많았고 또 연달아 부른 탓에 목소리에 무리가 간 듯했다.그러나 박민호의 애원에도 한수지는 그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지금 장난해? 네가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줄 알아?”박민호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지금 딱 3초 준다!”그녀의 말에 깜짝 놀란 박민호는 결국 무릎 꿇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한잔, 두잔...오늘 컨디션도 안 좋았던 박민호는 지금 온몸이 쑤셨다.이때, 한수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박민호의 얼굴에 돈을 뿌려줬다.이건 박민정이 시킨 게 아니였지만 한수지는 한때 박민호가 자주 하던 행동을 똑같이 보여주면서 그게 어떤 기분인지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소원대로 박민호는 오늘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혔다.“계속해. 그리고 그대로 기어서 나가!”한수지의 말에 박민호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네? 안 나가면 안 될까요?”밖에는 다른 손님들도 많은데 자신의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쯧쯧쯧, 돈도 벌고 싶은데 또 체면도 차리고 싶은 거야? 다시 한번 말해두는데 너 같은 사람한테 오늘처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만 기억해.”말을 마치자마자 문을 열었다.박민호는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거절하려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덩치가 커다란 경호원들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순순히 하라는 대로 할래, 아니면 또 얻어터질래?”한마디로 그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다 잃게 했다.한참 동안 망설이던 박민호는 고개를 수그린 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기어나갔다.역시나 밖에 앉아 있던 수많은 손님들은 이 모습을 보고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박민정도 어느새 무리 속에서 박민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보스, 그만할까요?”진서연이 더는 보기 힘들었는지 박민정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민호는 평생 깨우치지 못하고 저렇게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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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3화

새벽.최민아는 박민호를 부축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손에는 들고 있던 40만 원을 최민아에게 내밀었다.“자.”“제 식비, 생활비니까 받아요.”그러자 최민아가 빠르게 답했다.“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그리고 이 돈은 남겨뒀다가 민호 씨가 써요.”박민호가 다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안 돼요. 이 돈은 꼭 받아주세요. 아니면 계속 저를 쫓아내려고 할거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호는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는데 그는 지금 머리도 어지럽고 무릎도 너무 아팠다.“죽어라 고생했는데 고작 40만 원밖에 못 벌 줄이야.”그러나 최민아는 이것도 많은 축이라고 생각했다.“양주 한 잔에 몇만 원씩 하는데, 이 정도면 많이 번 거예요. 그래도 밖에서 막노동하는 것보다 낫잖아요.”박민호가 어리둥절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뭐가 나아요?”“민호 씨는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지 모르죠? 한 달에 뼈 빠지게 일해도 몇십만 원밖에 못 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최민아는 한숨을 한번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도 여기서 만약 손님들이 주는 팁이 없으면 고작 200만 원 정도밖에 못 받아요.”박민호는 순간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이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다 민아 씨한테 줄게요.”어차피 진심이 아닌 말이란 걸 아는 최민아는 빠르게 거절했다.“그럴 필요 없으니까 일단 악착같이 돈을 모아요. 그래야 나중에 혼자라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제가 지금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진심이에요. 저 진짜로 돈을 많이 벌 겁니다.”예전에 김말숙이나 박민정에게도 돈을 벌면 무조건 그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버릇처럼 말했지만 사실 진심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러나 오늘, 눈앞의 이 여자만큼은 꼭 도와주고 싶었다.“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당신을 구해준 게 헛된 노릇은 아니었네요.”박민호가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두고 봐요. 적어도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테니까.”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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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4화

그러나 최민아는 단칼에 거절했다.“민호 씨가 왜요?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요.”박민호는 아직 상처가 덜 나은 상태였고 오늘 모처럼 쉬는 날이기도 했다.“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요. 그냥 같이 가게 해줘요.”사실 혼자 밖에 나갔다가 혹시나 누가 알아보기라도 할까 무섭기도 했다.최민아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같이 가는 건 괜찮은데 병실 밖에서 기다려요. 우리 부모님과 절대 만나면 안 된다고요.”“네, 그럴게요.”박민호는 빠르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까지 쓴 뒤 자신을 꽁꽁 싸매고 최민아와 함께 집을 나섰다.그리고 두 사람은 만원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박민호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사람도 많은데 그냥 택시 타는 게 낫지 않아요?”“돈 아까워서요.”그녀의 칼같은 대답에 박민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번 달에 많이 벌었잖아요. 이렇게까지 절약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어렸을 때부터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 그녀의 소비 개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최민아는 그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마침내 병원에 도착했고 박민호는 말없이 그녀를 뒤따라갔다.최민아는 제일 먼저 병원비 내러 달려갔는데 이번 달 월급은 아직 받기 전이라 일단 밀린 돈만 겨우 갚을 수 있었다.“내일 월급 받으면 나머지도 꼭 갚을 테니까 오늘에는 일단 밀린 돈부터 결제할게요. 부탁드립니다.”어차피 간호사도 그녀의 사정을 다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내일 그러면 늦지 않게 결제해 주세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최민아는 연신 인사를 건넸다.“이제 부모님 뵈러 가셔도 돼요.”이때, 간호사가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저기... 가족분도 시간 있으면 한번 검사해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이런 병은 거의 가족력일 확률이 높았다.최민아는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그러나 빠르게 뒤돌아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습니다. 저는 너무 건강하거든요. 그리고 매년 회사에서도 정기검진 받는 데 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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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5화

“이미 병원비도 다 냈는데 퇴원해도 그 돈은 돌려받지 못해요.”최민아는 말하다가 문득 두 사람의 희끗희끗한 머리와 점점 야위어가는 몸을 보고 가슴이 아파졌다.사실 그녀의 월급으로 부모님이 치료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데 이렇게 입원해 있으면서 간단하게 약물치료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하여 아까부터 얼굴이 어두웠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왠지 자신은 아무 쓸모도 없어 보였고 그깟 치료비 낼 돈조차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과 한참 동안 수다 떨다가 혹시나 자기의 우울한 기분이 그들에게 들킬까 봐, 서둘러 인사하고 다시 병실에서 나왔다.박민호는 사실 아까 그녀가 안으로 들어간 뒤부터 복도에 서서 세 사람의 대화를 어렴풋이 듣게 되었다.그리고 지금 사회에서 아직도 이토록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박민호는 그녀가 병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요 며칠 동안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재수가 없고 불쌍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민아 씨 상황을 알게 되니 제가 겪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네요.”그러자 최민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잖아요.”박민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민아 씨는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로 제가 오늘 크게 한턱낼게요, 어때요?”“아니에요. 그냥 아무거나 대충 먹어요.”최민아는 이런 생활이 이미 익숙해졌다.그러나 박민호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안 돼요. 저는 오늘 무조건 민아 씨를 데리고 맛있는 걸 먹을래요. 어차피 제가 내는 돈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돈 모아서 가족들한테 보내야 하는거 아니었어요?”최민아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박민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 없어요.”그의 말에 최민아가 한껏 난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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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6화

민경수도 사실 최민아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었다.“민아야, 넌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란 걸 난 알아. 그런데 네 부모님 병은 거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랑 같아.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잣집이라고 해도 가족이 그런 병에 걸렸다면 분명 한순간에 망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포기하고 두 분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편하게 사는 건 어때?”민경수의 말에 최민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도 점장님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그렇게 못 하겠어요.”저 말은 곧 물리치료마저 포기하고 그저 두 사람이 죽기만을 기다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무조건 치료받게 해주고 싶었다.“알겠어. 이따 재무한테 먼저 2000만 원 가져오라고 할게. 그거면 되겠어?”최민아는 듣자마자 너무 감격스러워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충분합니다. 너무 감사해요!”그러자 민경수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고맙긴, 다 같은 직원인데 돕고 살아야지.”“그러면 저는 먼저 일하러 가겠습니다.”그에게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열심히 일하는 게 그를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러자 민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래, 가봐.”“네.”그렇게 최민아는 휴게실에서 나왔다.그녀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박민호가 휴게실로 들어왔는데 민경수는 여전히 씁쓸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정말 열심히 사는 여자아인데 가족 때문에 너무 힘들어 보이네.”그러자 박민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누구요?”“네 친구 민아 말이야. 너도 몰랐어?”순간 최민아는 여태껏 박민호를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그녀의 사정을 아직 모르나 싶어 괜히 괘씸해서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아아, 이미 알고 있습니다.”“그 일이라면 저도 안타깝더라고요.”“그러니까, 사실 민아는 진주 대학에서 나름 장학금까지 받던 우등생이었어. 그런데 부모님 때문에 자퇴하고 지금 여기서 일하는 거야.”민경수는 턱을 괴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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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7화

순간 욱하는 마음에 박민호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문틈 사이로 최민아가 한창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술을 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오빠, 술 한 병 더 시킬까요?”“좋지, 네 사정 봐서 내가 두 병 더 시켜줄게.”“오빠, 고마워요!”최민아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손님이 술 한 병 주문하면 그녀한테도 보너스가 쌓인다.하여 박민호는 잡고 있던 문손잡이에서 다시 손을 뗐다.만약 지금 쳐들어갔다가는 최민아가 지금까지 겨우 참고 서비스해 준 게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되는 건 물론이고 보너스도 날아가게 된다.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최민아가 나오면 돈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어떠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도박 한 번 해봐?”예전에 어떤 사장이 자신에게 신박한 물건이 있는데 값은 얼마 되지 않지만 되팔기만 하면 무조건 세배는 넘게 벌 수 있다고 했다.박민호는 손에 들고 있던 2000만 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지현우한테 달려갔다.“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점장한테 오늘 하루 연차 낸다고 말해줘.”“그래.”...낮에는 클럽에 손님이 거의 없어서 최민아는 마지막 손님을 바래다준 뒤 바로 민경수한테 갔다.이맘때면 재무 쪽에서도 이미 돈을 준비해 뒀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갔는데 오히려 민경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민호더러 돈을 가져다주라고 했는데?”“민호 씨한테요?”최민아도 의아해하던 이때, 마침 지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민호는 한 시간 전에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서 오늘 하루 휴가 낸다고 갔어요.”“휴가?”민경수는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민아야, 이 친구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2000만 원이 어느 집에 개 이름도 아니고.최민아는 처음에 약간 어리둥절해 있다가 점점 불안해지면서 민경수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멍하니 서 있었다.“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왜 몰라? 친한 친구라며?”점장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여태껏 최민아가 박민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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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8화

“너무 죄송한데 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혹시 시간을 조금만 더 미루면 안 될까요?”“얼마나요? 저희는 5시면 퇴근합니다.”“그리고 병원비 같은 경우는 저희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최민아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꽉 쥐었다.“네, 알고 있습니다. 5시 전에는 꼭 가져다드리겠습니다.”“그래요.”전화를 끊고 나서 최민아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민경수를 찾아갔다.그러나 그도 이번에는 도와주기 힘든 입장이었다.“이미 그 돈도 재무한테 사정해서 겨우 허락받은 거야. 더는 어려워.”민경수도 최민아와 같은 월급쟁이일 뿐이다.최민아는 순간 절망감에 빠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민경수는 이번 일이 자신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박민호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돈을 전부 넘겨줬으니 말이다.“민아야, 나한테 지금 400만 원 정도가 있는데 이거라도 일단 가져가. 너도 내 돈은 다 아내가 관리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이 돈도 민경수다 여태껏 몰래 모아둔 비상금이었다.그러나 최민아는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녔기에 한껏 감격스러운 얼굴로 건네받았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괜찮아,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그 돈을 꼭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최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400만 원이 부모님 병원비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최민아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이미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사정을 어느 정도 다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갚지 못할까 봐 누구도 선뜻 빌려주지 않았다.더구나 지금 사회에서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저마다 안타까워하고 그녀를 동정하는 마음은 똑같지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극소수여서 겨우 몇십만 원밖에 빌리지 못했다.최민아가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이때, 웬 양복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그녀 앞으로 다가오더니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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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9화

박민호는 도피 중에 은인과도 같은 최민아라는 여자를 만났지만 소중히 여기지는 못할망정 그녀의 돈을 들고 투자나 하고 있었다.“법에 어긋나는 일은 시키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냥 제가 말한 대로 해주시면 빌려드린 2000만 원은 갚지 않아도 됩니다.”최민아는 한참 동안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다면 뭐든 다 괜찮습니다.”혹시나 자신이 사고가 나면 부모님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걱정되었다.“네.”...박민호는 한 무더기의 물건을 받은 뒤 재빨리 도매업체를 찾아다녔다.그리고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진 지 오래돼서 최민아의 전화를 받지도 못했다.될수록 이른 시일 내에 이 물건들을 되팔아야 하는데 돈을 받는 대로 제일 먼저 최민아의 병원비부터 물어주고 싶었다.그러나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게 도매업체를 찾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이 시각 진주.박민정은 정민기한테서 박민호의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다.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요. 이번에야말로 호되게 당해도 그냥 내버려둬야겠어요.”그가 최민아의 병원비를 가지고 또다시 사업을 시작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더라고요. 제가 최민아 씨를 만나봤는데 사람이 참 괜찮아 보였습니다.”정민기의 말에 박민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퇴근 후에도 아직 사무실에 앉아 있던 박민정은 진서연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보스, 저번에 그 할머니가 또 왔어요.”“누구?”박민정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박민호 씨 외할머니라는 분이요.”김말숙이 왜 또 찾아왔는지 어리둥절해하던 박민정은 빠르게 가방을 정리한 뒤 박씨 가문의 고택으로 달려갔다.김말숙은 두꺼운 옷차림에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나무 기둥을 안고 있었고 진서연은 옆에서 난감한 얼굴로 계속 말을 걸었다.“어르신은 염치도 없어요? 계속 이러시면 진짜로 신고합니다?”“하든지 말든지, 우리 외손녀 찾으러 왔을 뿐인데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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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0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박민정 때문에 김말숙은 순간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랐다.“이 외할머니가 노후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우리 손녀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 말이야.”이 말을 들은 뒤, 사실 제일 놀랐던 사람이 진서연이었다.여태껏 박민정을 손녀 대접도 안 해줬으면서 어떻게 저리도 뻔뻔스럽게 저런 말을 하는지 너무 어이가 없었다.더구나 진짜 외할머니도 아닌데 말이다.그러나 박민정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아주 덤덤하게 답했다.“노후요? 혹시 자녀분들은 이미 다 죽어서 없는 상황인가요?”말속에 뼈가 있었다.순간 김말숙의 얼굴이 확 바뀌더니 빠르게 따져 물었다.“민정아,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네 외삼촌들을 그런 식으로 저주할 수 있어?”“저한테 외삼촌도 있었나요? 저희 엄마는 외동딸이라서 분명히 오빠나 동생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그리고 아들이 살아있으면 이런 부탁은 그쪽에 가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사실 박민정은 왜 김말숙이 오늘 찾아와서 자신을 책임지라고 억지 부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분명 얼마 전, 아들에게 주려던 돈을 박민호에게 빌려준 바람에 지금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쫓겨난 상황일 것이다.김말숙은 워낙에 남자만 중요시하던 사람이라 다른 손녀들도 여태껏 당했던 게 있어서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올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더 있었을까?김말숙은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지금 그럴 처지가 아니란 걸 잘 알기에 꾹 참고 다시 말했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외할머니인데 날 너무 모질게 대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 지금 돌아갈 집도 없는데 이 늙은이가 밖에서 굶어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어?”그런다고 마음 약해질 박민정이 아니었다.“만약 제가 받아주면 앞으로 오갈 데 없는 노인이 다 저만 바라보고 이곳에 찾아오지 않겠어요?”“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쪽은 제 외할머니가 아니에요. 제 진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두 분은 지금 서주에 계시거든요. 한마디로 그쪽은 저한테 남이란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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