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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죽기 전엔 못 놔줘: Chapter 1991 - Chapte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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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1화

매니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이 녀석, 어제 한밤중에 다시 돌아오더니 내게 기회를 달라고 하더라고. 돈을 벌어서 너한테 꼭 갚겠다고 했어.”“솔직히 박민호가 진심인지 나도 반신반의했지. 근데 예상 밖이었어. 정말로 돌아온 거야.”“그러고는 VIP 룸에 들어가 사람들한테 아부를 하기 시작했어. 누가 그러더래. 술 한 병 마시면 이백만 원씩 주겠다고.”“결국 그 독한 술을 열두 병이나 억지로 들이켰어. 버틸 리가 있나.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매니저는 말을 마치곤,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꺼내 최민아에게 건넸다.“이건 박민호가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 꼭 너한테 전해달라고 했어.”“그 손님도 놀랐는지, 큰일 날까 봐 추가로 육백만 원을 더 얹어줬어. 전부 해서 삼천만 원이야. 박민호가 전부 네게 주라고 했고.”“그리고 또, 앞으로 더 많이 벌어서 꼭 갚겠다고 하더라.”매니저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줬다.매니저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며 있었다.매니저는 그가 결코 ‘좋은 사람’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쁜 놈’도 아니라는 걸 느꼈다.최민아는 봉지 안의 묵직한 현금을 바라보며 말없이 숨을 삼켰다.“알겠어요.”정말 뜻밖이었다. 박민호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전혀 몰랐다.애초에 자신이 그를 속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건 정민기가 지시한 일이었다는 것.그때, 수술실의 불이 꺼졌다.최민아는 곧장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마침내 의사가 나왔다.“의사 선생님! 그 사람, 괜찮은가요?”“위장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제때에 도착했습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차분한 의사의 말에 최민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잠시 후, 박민호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그는 천천히 눈을 떴고, 옆에 앉아 있는 최민아의 얼굴이 보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나... 안죽은 거예요?”“진짜 죽을 뻔했어요.”최민아는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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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2화

박민호는 말을 마친 뒤, 조심스럽게 최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아직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예전의 박민호는 말 그대로 망나니처럼 살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그저 그런 친구들이었다. 돈이 있을 때만 붙어있다가, 없으면 언제든 등을 돌리는 그런 사람들뿐이었다.하지만 최민아는 달랐다. 빈털터리가 된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줬고, 따뜻하게 대해줬다.박민호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진짜 친구라는 게 뭔지. 그래서 더더욱,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그 말에 최민아는 한순간 얼어붙은 듯, 대답을 망설였다.그러고는 조용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그건... 나중에 얘기하죠.”그렇게 말한 그녀는 서둘러 병실을 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박민호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몸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마음 어딘가는 묘하게 따뜻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최민아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손에는 죽과 사골국이 담긴 크고 작은 그릇들이 들려 있었다.박민호는 놀란 눈으로 그걸 바라봤다.“이거... 꽤 비쌌겠는데요?”둘 다 늘 아껴가며 살다 보니, 이렇게 값비싼 보양식을 들고 온 게 의아했다.“의사 선생님이 당분간은 유동식 먹으면서 영양도 잘 챙기라 했어요. 많이 먹어둬요.”최민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박민호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되물었다.“그럼 민아 씨는요? 뭐 먹었어요?”“아까 밖에서 만두 두 개 사 먹었어요. 그걸로 충분해요.”역시나, 자기한텐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그녀였다.박민호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어제 3천만 원 벌었잖아요. 그 돈 좀 써요. 왜 또 만두로 끼니를 때워요? 지금 얼굴 반쪽 됐어요.”최민아는 그 말에 눈을 흘기며 말했다.“그건 민호 씨 돈이에요. 난 그중 내 돈 2천만 원만 받을 거예요. 나머지는 안 써요.”그녀는 단호했다. 한번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었다.박민호도 그런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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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3화

“그 사람... 지금도 연락해요?”박민호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최민아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연락 끊긴 지 오래예요. 듣자니까, 벌써 결혼해서 애도 있대요.”표정은 무심해 보였지만, 박민호는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스친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사람처럼...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박민호는 괜히 속이 쓰린 기분이었다.“그 사람... 민아 씨 집안 사정 알고 나서 헤어지자고 한 거예요?”자신도 모르게 쏟아지는 물음에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오늘 왜 그래요? 내 과거 조사하는 거예요?”최민아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박민호는 머쓱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을 한 숟갈 떠먹었다.분명 부드럽고 담백한 맛일 텐데, 어째 입안 가득 쓴맛만 도는 느낌이었다.“별거 아닌 일이에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잖아요.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본인도 먹고살기 버거운 세상에서, 누굴 짊어지고 가고 싶어 하겠어요.”최민아는 차분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이, 박민호의 가슴에 콕 박혔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도 전 아니에요.”단호한 목소리. 그 한마디에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건 민호 씨가 지금까지 남 부럽지 않게 살아왔으니까 그렇죠.”최민아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평범한 집안 출신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그날 자신을 찾아왔던 '정민기'라는 남자부터가 심상치 않았다.그런 인물이 괜히 그런 부탁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고생시켜도 된다고 했지...’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괜히 마음 한편이 복잡해졌다.“지금은 가진 것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없어요. 그래도 난 안 그래요.만약... 내가 민아 씨랑 함께하게 된다면, 절대 혼자 힘들게 안 둘 거예요. 무슨 일이든 같이 버티고 같이 견딜 거예요.”박민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흔들림이 없었다.그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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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4화

병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찰나, 박민호는 최민아를 따라 나가려고 했었다.하지만 속이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눈앞이 핑 돌았다.그는 결국 배를 움켜쥐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서 누웠다.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아까 들었던 민아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돌았다.‘벌써 결혼해서 애도 있대요.’차갑게 내려앉은 말투, 아무렇지 않은 척 웃던 얼굴... 그 모든 것이 귓가를 맴돌며 지독한 이명처럼 맴돌았다.‘그렇게 사납고 드센 여자가...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박민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휘감겨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려 휴대폰을 꺼냈다.뭔가라도 보고 정신을 돌리고 싶었다.하지만...“뭐야 이게...”화면에 뜬 기사를 본 순간, 그는 숨을 삼켰다.그가 봤던 뉴스에는 할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사진까지 찍혀 있었다.그리고 그 모든 일이 지금,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불거진 것임을 깨달았다.“설마... 내가 빼돌린 그 80억 때문이야?”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외할머니가 박민정에게 찾아갔고, 그것이 온라인에 퍼지며 외삼촌들 회사에까지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자신이 빼돌린 80억 원 때문이었다.예전의 박민호라면 가족이 어떻게 되든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박민호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다.80억이라니!박민호는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한 건지 깨닫고도 믿기지 않았다.그리고, 그동안 밖에서 지은 빚만 해도 수십억에 달했다.박민호는 빚을 갚을 생각에 멘붕이 올 지경이었다.“하... 나 진짜 왜 그랬을까.”그는 침대에 누운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빠가 남긴 유산만 잘 지켰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을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허세를 부리며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 했을까...결국 그는 돈도, 명예도 다 잃었고, 남은 거라곤 끝없이 쌓인 빚뿐이었다.제 더 이상 그런 과거의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박민호는 결심했다. 그 누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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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5화

박민호가 집을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나.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말에 김말숙은 멍하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민호는 “누나는 동생을 챙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며 박민정의 물건은 죄다 자기 거라 우겼었다.그랬던 애가 지금은 완전히 딴사람처럼 말하고 있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김말숙의 입꼬리가 떨렸다.“민호야... 너 그 계집애한테 홀린 거니? 박민정, 그 계집애 때문에 이 할미도, 너희 삼촌들도 인터넷에서 욕을 얼마나 먹고 있는 줄 알아? 지금 삼촌들 회사도 흔들리고 있다고!”그러나 박민호는 차분했다.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네, 알고 있어요. 근데 이 일은... 솔직히 할머니가 잘못하신 거예요. 누나한테 그런 식으로 협박하시면 안 됐죠.”“뭐?!”김말숙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누구보다 아끼던 외손자가 자신한테 그렇게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박민호는 계속해서 단호하게 말했다.“이제라도 누나한테 가서 사과하세요. 누나는 원래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진심으로 사과하시면, 누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거예요.”그 말 속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지금처럼 인터넷에서 박민정을 계속 건드리다간 김말숙뿐 아니라, 두 삼촌 사업도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걸, 박민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 누구보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말했다.잠시 침묵하던 김말숙은 마침내 나직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알겠다. 할미가... 사과할게.”그제야 박민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전화를 내려놓은 김말숙의 얼굴은 어두웠다.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사과는커녕 얼굴도 못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라고...’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말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이 나이 먹도록 누구한테 사과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박민정한테 고개를 숙이라고... 생각할수록 씁쓸했다....같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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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6화

두 남자는 로비 구석에 앉아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야, 박민정 완전 로또 맞은 거 아냐? 정씨 가문 외동딸이었다니... 그것도 친딸.”한씨 가문 막내아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그때 조금만 잘했어도, 진짜 아깝다.”옆에 앉아 있던 큰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게.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면 좋겠다.”그는 말끝을 흐리며 뭔가 계산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우리 딸, 지엔 그룹에만 들어가면 말이야... 그냥 인생 역전이지.”지엔 그룹은 스펙 좋은 인재들이 줄을 서는 회사였다.명문대 졸업장은 기본이고, 인맥 없으면 면접까지 가기도 어려웠다.큰아들의 딸은 지방 전문대 출신이었다. 그것도 돈 좀 쓰고 간신히 들어간 학교였다.막내아들도 공감했다.“그러니까. 이력서에 그 이력 한 줄만 있어도 어디 가서 대우받는다고. 다 그 노인네 때문이라니까. 박민정한테 왜 그리 못되게 굴어서 꼴을 그렇게 만든 건지... 눈치도 없고 상황 판단도 못 하고.”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며 점점 더 환상에 빠져들었다.그때, 정윤아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방금 막 외부 미팅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언니에게 보고하러 가던 길이었다.막내아들이 그녀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야, 쟤 박민정 사촌 동생 아냐?”그가 정윤아를 알아본 건, 예전에 윤소현이 한씨 가문에 들렀을 때 데리고 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큰아들도 눈을 좁히며 말했다.“맞네. 걔가 맞는 거 같아.”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고, 그 짧은 눈짓에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읽혔다.“가자. 지금이야.”“그래.”정윤아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느꼈다.고개를 돌리자, 두 중년 남자가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정윤아 씨!”막내아들이 정윤아를 불렀다.정윤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누구세요?”“예전에 윤소현 씨랑 같이 우리 집에 오셨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막내아들이 웃으며 말했다.큰아들도 거들었다.“그때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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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7화

지엔 그룹 최고경영자실.프런트 데스크에선 이미 진서연에게 연락을 넣은 상태였다.박민정이 한씨 가문의 큰아들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올라왔다는 소식에, 진서연은 당장이라도 막으러 나가려 했다.그때, 박민정이 나서서 길을 막았다.“됐어, 서연아. 이미 올라왔는데 지금 가서 막는다고 뭐 달라지겠어?”“알겠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이 활짝 열리고, 정윤아가 상기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언니! 저번에 출장 갔던 거 있죠? 거기 계약 성사됐어요!”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었다.“진짜? 잘했네. 고생했어.”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자연스레 정윤아 뒤를 따라 들어온 두 남자에게로 옮겨졌다.한씨 가문의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민정아, 너 사무실에 있었구나?”큰아들이 머쓱하게 말을 건넸다.“프런트에선 자리에 없다 그러던데...”박민정은 그의 말에는 반응하지 않고, 정윤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윤아야, 진짜 수고했어. 오늘은 좀 쉬어.”정윤아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언니, 다음엔 또 어떤 프로젝트 맡겨줄 거예요? 이런 성과 내니까 진짜 성취감 대박이네요.”그때 마침 진서연이 정윤아 앞으로 걸어 들어왔다.“이번 주에 진행 중인 협상 리스트 정리해 뒀어요.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보실래요?”“좋아요, 바로 갈게요!”정윤아는 활짝 웃으며 진서연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문이 닫히고, 방 안엔 박민정과 한 씨 형제 둘만 남게 됐다.두 사람은 머쓱한 얼굴로 다가오며, 손에 들고 있던 고급 쇼핑백을 내밀었다.“민정아, 이거 해외에서 특별 주문한 디저트야. 큰 건 아니니까 그냥 맛이나 보라고 가져온 거야.”큰아들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막내아들도 덧붙였다.“민정아, 우리가 너무 오래 안 봤지. 앞으로는 좀 자주 보자. 예전처럼 말이야.”박민정은 두 사람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봤다.과거 자신을 어떻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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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8화

박민정의 날 선 한마디에, 두 남자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박민정에게 사 준 것이라곤 사탕 한 알도 없었다. 남보다 더 먼 남이었다. 무슨 ‘키워준 은혜’란 말인가.한씨 가문의 큰아들은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입을 열었다.“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좀 인정머리 없지 않니? 우리가 직접 키우진 않았지만, 우리 여동생이 널 길렀잖아. 그때 걔가 아니었으면 넌 벌써 눈밭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몰라. 네 목숨값, 그건 잊으면 안 되잖아?”예상한 대로였다.박민정은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조용히 앉아, 눈에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제 목숨값은 이미 오래전에 그 사람에게 돌려줬어요. 죄송하지만, 전 예전의 순진한 박민정도, 이미 한씨 가문 사람도 아니에요.”그 말에 담긴 단호함은, 그 어떤 온기 없이 차가웠다.한씨 가문의 큰형은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막내가 팔을 뻗어 그를 말렸다.막내는 상황 파악이 빠른 편이었다. 지금은 박민정을 압박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민정아, 네 말이 맞아. 우리가 널 키운 것도 아니고, 우리가 네 외삼촌이라는 걸 네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해할 자격도 없어. 다만...”그의 말투는 최대한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우리 엄마한텐 내가 단단히 얘기했어. 다시는 너한테 와서 일을 벌이지 않을 거야. 진짜야.”이쯤 말하면 박민정도 더 세게 말하긴 어려웠다.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한 대표님, 제가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요. 저는 한씨 가문에 어떤 피해를 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일방적으로 당했죠. 그래서 지금 업보를 당하고 있는 거고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왜 제 탓으로 돌리시려는 거죠?”그 말에 막내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맞아. 이번 일은 전적으로 우리 어머니 잘못이야. 네가 뭘 잘못했겠어. 그냥... 온라인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말이야. 사람들이 좀 진정할 수 있게만 도와줘. 그거면 돼.”큰형도 분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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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9화

“도대체 어떻게 이 분위기를 잠재워야 하지?”한씨 가문의 큰형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 사람들 상태가 거의 광기 수준이야. 환불은 기본이고, 예전에 샀던 물건까지 다 끄집어내서 악플을 달고 있다니까.”막내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어쩌겠어. 방법은 하나, 공개 사과밖에 없지.”그리고 그날 오후.두 형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온라인에도 사과 영상을 공개했다.“네티즌 여러분,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이런 논란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여론이 악화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박민정 대표님께도 깊이 사과드립니다...”결국 그들은 공식 석상에서 고개를 숙였다.사과 영상이 올라가자, 온라인 여론은 다소 누그러지기 시작했다.[노인네가 사고 치고, 자식들이 뒷수습하네.][그래도 자식들은 제정신이네. 엄마처럼 무대포는 아니잖아.][근데 솔직히, 이렇게 안 커졌으면 사과했을까?][그러니까. 박민정 욕할 땐 입 다물고 있다가, 회사에 불똥 튀니까 갑자기 사과하는 거지.]역시 대중은 날카로웠다.분석이 이어졌고, 그 분석은 정확히 핵심을 찔렀다.사실, 이번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더라면 한씨 가문의 두 형제가 박민정에게 사과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들은 여전히 박민정이 과거의 한수민처럼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그 생각은 첫째 아들의 딸, 한서진도 마찬가지였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거들먹거리며 다니던 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직원들의 뒷말을 들어야 했다.“서진 씨, 예전에 박민정 대표 괴롭혔다고 했잖아요? 진짜예요? 할머니가 한 짓도 다 사실이죠?”한서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아무리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박민정을 어릴 때부터 길러줬어요. 그렇게 어른한테 막 대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그러자 동료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근데 이거 보세요. 서진 씨 아버님이 직접 인터넷에 사과 영상 올리셨어요.”영상 속에서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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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0화

한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 박민정을 따라갔다.생각해보면, 박민정을 직접 본 건 정말 오래전 일이었다. 가장 최근이라 해봤자,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 속 모습이 전부였다.그런데 막상 눈앞에 마주하니, 박민정은 예전이랑 얼굴은 그대로인데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한서진은 그런 박민정을 따라 대형 쇼핑몰 안으로 들어섰다.박민정은 진서연과 함께, 자기 옷은 물론 남편, 엄마, 아이 겨울옷까지 한꺼번에 고르는 중이었다.그때, 진서연이 예쁜 원피스를 발견하곤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보스! 이것 좀 봐요, 이 원피스 너무 예쁘지 않아요? 보스한테 완전 찰떡일 것 같은데요!”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는 순간, 누군가가 먼저 휙 낚아챘다.바로 한서진이었다.그녀는 옷을 들어 살펴보며 무심한 듯 말했다.“예쁘긴 하네.”진서연은 얼굴을 찌푸렸다.“저기요, 이 옷 제가 먼저 본 거거든요?”한서진은 일부러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어머, 그래요? 전 못 봤는데요? 먼저 봤다고 다 자기 건가요? 아직 돈 낸 것도 아니잖아요?”“그쪽, 너무 무례한 거 아니에요?”진서연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박민정이 다가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한서진 씨?”한서진은 그제야 박민정을 알아본 척하며,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머, 너였구나? 민정이.”진서연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보스, 아는 사이세요?”박민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오늘 회사에 왔던 두 한 씨 대표님 중 한 분의 따님이야.”그 말은 곧, 예전에 알던 사람이고 사이도 별로 안 좋다는 뜻이었다.진서연도 금세 눈치를 챘다.‘아, 그래서 굳이 이 옷을...’“민정아, 이 옷 네가 먼저 본 거니?”한서진이 물었다.하지만 박민정이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랬구나~ 그럼 내가 실수했네? 남이 본 걸 먼저 챙기다니, 내가 너무 급했지~”요즘 한서진은 체중이 꽤 늘어난 상태라, 이 원피스는 그녀에게 맞지도 않았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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