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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죽기 전엔 못 놔줘: Chapter 2011 - Chapter 2020

2022 Chapters

제2011화

둘째 아들의 말에 김말숙은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지금 밖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데 그녀는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고민 끝에 김말숙은 유주아를 찾아갔다....유주아는 최근에도 부모님이 주선해 준 맞선들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에는 방안에 갇히게 되었다.“생각이 바뀔 때까지 나올 생각하지 마.”“두 분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심홍석 씨랑 전 아내 사이에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 하는데, 대체 뭐가 안 된다는 거야?”최영선이 문 어구에 서서 묻자 유주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답했다.“그 사람은 저랑 맞선봤을 때도 아내랑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요. 얼마나 양심 없는지 사람인지 생각해 보시라고요!”사실 심홍석 같은 사람이 그의 동생 심홍원보다 더 역겹다고 할 수 있었다.“우리도 다 알아봤는데 사람이 너무 괜찮대. 그리고 이혼한 원인도 아내가 아이를 못 낳아서라고 했잖아. 다른 가문도 아니고 심씨 가문인데, 무조건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리고 여태껏 아내랑 이혼하지 않았던 원인이 뭔지 이쯤이면 알 것 같지?”“더구나 현아도 네가 만약 그 집으로 시집가면 절대 억울한 일 당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유주아는 더 이상 듣기 힘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그만해요, 제발! 좋으면 엄마나 그 집에 시집가든지!”유주아는 그저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은데 부모님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최영선이 막 뭐라고 하려는데 도우미가 갑자기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밖에 웬 어르신이 사모님을 만나 뵙겠다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순간 최영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어르신이라고? 누구지?”“박민호 씨의 외할머니라고 하셨는데 확실하게 따질 일이 있다고 하시네요.”최영선은 한참 동안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그제야 박민호가 누구인지 생각났다.얼굴도 반반하고 얼마 전에도 유주아를 쫓아다녔던 남자였는데 아쉽게도 떠도는 소문이 너무 안 좋았던 그 박민호.“그런데 무슨 일로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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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2화

“따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민호가 여태껏 쓴 돈은 모두 돌려주세요. 우리 가문으로 따지면 몇백억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몇백억?최영선은 순간 잘 못 들었나 싶었다.사실 유씨 가문으로 따지면 그다지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에 대한 높은 소비는 그래도 통제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몇백억이 되는 금액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당장 주아 데리고 와.”최영선은 옆에 있던 도우미에게 말했다.“네.”도우미는 빠르게 유주아가 갇혀 있던 방에 들어가서 지금 큰일이 났다고 알렸다.김말숙은 당사자가 온다는 소리에 살짝 긴장되었다.유주아는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자기 엄마랑 웬 할머니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또 그녀에게 맞선 자리를 마련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대뜸 짜증부터 냈다.“엄마, 이번에는 또 어느 가문의 사람을 소개해 주려는 건가요?”“그게 아니라 지금 우리 집에 돈 받으러 오셨대.”“돈?”유주아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무슨 돈이요?”“벌써 잊어버렸나 본데 저는 박민호의 외할머니 되는 사람입니다. 민호가 나한테서 80억이나 빌려 가서는 전부 유주아 씨한테 썼다고 하던데 지금 모르는 척할 건가요?”김말숙이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80억?처음 들어보는 금액에 유주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김말숙에게 되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민호 씨가 저한테 80억 원을 썼다고요?”“유주아 씨한테 일전한 푼도 안 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순간 유주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두 사람이 만났을 때 확실히 박민호가 많이 내긴 했다. 두세 번 밥값을 계산했고 또 같이 연극도 봤기에 합치면 몇천만 원은 되겠지만, 그게 어떻게 80억까지 부풀려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유주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본 최영선은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주아야, 설마 진짜로 네가 80억을 쓴 건 아니지?”“그저 민호 씨랑 밥 먹고 연극을 본 게 다인데 80억이라니요, 말도 안 돼요.”유주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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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3화

최영선은 말을 마치자마자 수표 한 장을 꺼내 금액을 적고 사인했다.그러자 유주아가 다급하게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렇게 많이 줄 필요 없어요. 많아 봤자 2억 원 정도에요. 그저 밥값만 내줬는데 2억도 많이 주는 거라고요!”“됐어!”최영선은 차가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난 지금 창피해 죽을 것 같으니까 넌 조용히 해!”최영선은 김말숙의 관상을 보자마자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절대 한 번으로 끝낼 것 같지 않았다.하여 거금을 들여서라도 딸의 이미지를 지켜주고 싶었다.유주아는 지금 남자 친구도 없는데 혹시나 이 늙은이 말대로 밖에서 함부로 떠들어댔다가는 진짜로 혼삿길이 막혀버릴 수 있다.김말숙은 예상외로 80억 원이 이렇게 쉽게 들어올 줄은 몰라 냉큼 받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최영선이 다시 수표를 거둬들였다.“영수증 하나 써주세요. 그래야 저희 쪽에도 증거가 남을 거잖아요. 그때 가서 또 오늘처럼 돈 내놓으라고 할지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그러자 김말숙은 뻔뻔스럽게 답했다.“당연히 써드릴 수 있죠.”그녀는 빠르게 영수증 하나를 쓴 뒤 황급히 80억짜리 수표를 받고 자리를 떴다.유주아는 싱글벙글해서 돌아가는 김말숙을 보고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엄마, 딱 봐도 사기꾼인데 그 돈을 왜 줘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 할머니는 이런 식으로 민정 언니한테서도 돈을 뜯어냈다고요.”“언제?”“바로 이틀 전의 일이에요. 그때에도 인터넷이 떠들썩했는데 한번 보세요.”유주아의 말대로 최영선은 빠르게 뉴스 기사들을 확인해 보았고 그제야 대략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민정 씨한테 어떻게 저런 할머니가 있을 수 있지?”“피 한 방울도 안 섞였고 진짜 할머니도 아니었어요. 기사에서도 나왔는데 민정 언니를 손녀 취급도 안 했대요.”유주아의 말에 최영선은 한숨을 내쉬었다.“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우리는 그저 그 80억 원으로 두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그리고 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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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4화

“주, 주아야.”진서연이 조심스레 자기 이름을 부르자 유주아는 활짝 웃으며 연신 대답했다.박민정은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됐어. 그만 들어가자.”“네네.”그렇게 세 사람은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매니저는 박민정과 진서연을 한눈에 알아보고 재빨리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클럽 안의 웨이터들은 매니저가 오늘 유독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에 자연스레 그들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그리고 강재민도 어느새 유주아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았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그의 동료가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재민아, 그만 봐. 그렇게 뚫어지게 봐도 네 여자가 못 돼. 너랑 레벨이 너무 차이가 나잖아. 자고로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한댔어.”그의 말을 들은 강재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때, 다른 한 동료가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재민아, 저번에 네가 구해줬던 그 재벌 집 여자분은 나중에 아무 감사의 표시도 없었어? 유씨 가문이면 완전히 대기업이잖아, 너한테 조금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여기서 지금 일할 필요도 없을 텐데.”그러자 설거지하던 강재민이 멈칫하더니 그들에게 답했다.“나한테 감사를 표하긴 했었는데 나도 원래 그런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니어서 다 거절했어.”그의 솔직한 대답에 동료는 입을 삐쭉거렸다.“쳇, 잘난 체하기는. 다 거절했다고? 안 믿어지는데?”강재민은 그를 힐끔 바라보고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대로 하면 되고 남의 시선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사실 유주아를 구해준 뒤, 그녀의 부모님이 강재민을 찾아와서는 거액의 보상을 하겠다고 했었지만 그는 다 거절했다.왠지 돈 때문에 그녀를 구해줬다고 여겨지는 게 싫었다.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재수 없고 고상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는 그저 마음이 편한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강재민이 아무 대답도 없자 그들은 흥미가 뚝 떨어져 각자 할 일을 하러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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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5화

유주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약간 얼굴이 눈에 익었지만 정확하게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그리고 울컥하는 마음에 대뜸 화를 냈다.“지금 저를 무시하는 거예요?”순간 어리둥절해진 강재민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그저 알려드리고 싶어서요.”한껏 예의를 갖추고 답했지만 유주아는 여전히 기분이 언짢았다.“저기요, 저를 얕잡아 보는 것 같은데 저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이에요.”강재민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마저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 유주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박민정과 진서연이 말릴 틈도 없이 단번에 강재민에게 다가가 그를 가로막았다.“혹시 이름이 어떻게 돼요?”유주아가 대뜸 자기 이름을 물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강재민이라고 합니다.”“강재민?”솔직히 엄청 평범한 이름이고 동일 인물도 많다고 생각한 유주아는 한참 동안 고민 끝에 다시 말했다.“강재민 씨, 오늘 일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당신의 하루를 살 테니까 저희랑 술이나 마셔요.”그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박민정과 진서연에게 물었다.“언니, 서연아, 같이 마셔도 괜찮지? 우리끼리 마시면 너무 심심하잖아?”박민정은 강재민의 옷차림을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또 여기는 방성원의 구역이고 나쁜 짓은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연도 별다른 의견은 없었지만 슬쩍 박민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이 웨이터분 얼굴은 참 잘생긴 것 같은데, 왜 저 외모로 이런 곳에서 일할까요?”사실 제우스 안의 웨이터들은 술 배달만 하는 게 아니었다.“나도 몰라.”박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진서연은 다시 두 사람을 실눈 뜨고 바라보았다.“설마 주아가 저 웨이터분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죠?”유주아는 분명 저번 바자회에서도 남자한테는 일절 관심이 없다고 했었는데 오늘에는 왜 이리도 적극적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러나 진서연뿐만 아니라 사실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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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6화

유주아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자리에 앉았다.“됐어요. 눈치도 없네요. 그냥 우리끼리 마셔요.”그때, 꽤 괜찮은 외모의 직원 몇 명이 다가와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유주아 씨, 재민이는 거절했지만... 저희는 괜찮아요. 혹시 저희가 같이 마셔드릴까요?”유주아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들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귀찮다는 듯 손을 툭 내저었다.“싫은데요? 지금은 누구랑도 마시기 싫거든요. 돌아가세요.”직원들은 민망한 기색으로 물러났다.도대체 강재민보다 자기들이 뭐가 부족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휴게실에 돌아온 그들은 잔을 닦고 있던 강재민을 보자마자 험담을 퍼부었다.“진짜 잘난 척 오지네. 겉으론 도도한 척하면서, 속으론 들러붙고 싶어 안달 난 거 아냐?”“쟤도 웃겨. 계산 빠른 거지. 일부러 튕겨서 유주아 눈에 띄려는 거 아니냐고.”“그래봤자 얼마나 가겠어. 유주아도 금방 질릴걸.”“그러다 네가 먼저 울지나 마라.”빈정대는 말들이 이어졌지만, 강재민은 묵묵히 잔을 닦을 뿐이었다.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재미를 못 느낀 그들은 험담을 접고 다른 손님을 찾아 나갔다.그 시각, 유주아도 어쩐지 술이 입에 영 안 붙었다.박민정은 병원에 있는 정수미를 보러 가야 했다. 그래서 그들 일행은 더 오래 있지 못하고 자리를 정리했다.박민정과 진서연이 떠난 뒤, 유주아도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로비 쪽에서 퇴근 중인 강재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술자리에서 거절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자존심이 욱신거렸다.그녀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하이힐을 신은 채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강재민.”달콤하면서도 화가 잔뜩 담긴 목소리에, 강재민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돌아봤다.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유주아가 눈에 불을 켜고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그 또렷한 이목구비는, 특히 화가 날 때면 서릿발 같은 눈 속 매화처럼 도드라지게 예뻤다.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강재민은 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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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7화

“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강재민은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었다.그제야 정신이 든 듯, 유주아는 자신이 너무 나간 걸 깨닫고 황급히 손을 거뒀다.“아, 저기... 신경 쓰지 마요. 그런 뜻 아니었어요.”당황한 얼굴로 얼버무린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그러는 사이, 강재민의 눈빛엔 알 수 없는 열기가 번져갔다.그녀는 그것도 모른 채, 점점 더 수줍게 시선을 피했다.“유주아 씨, 정말... 저 기억 안 나요?”강재민이 갑작스레 물었다.“네?”유주아는 멍하니 되물었다.“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어요?”그녀의 순수한 반응에, 강재민은 헛웃음을 지었다.아무리 봐도 그녀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면, 애초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었을지도.“아니에요. 그냥 내가 착각했나 봐요.”강재민은 짧게 말을 남기곤, 허겁지겁 버스 정류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유주아는 멀어져가는 강재민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분명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하아... 됐어, 됐어. 괜히 또 남자랑 엮이면 골치 아프지.”한 번 크게 상처받고 나면,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이 겁이 나기 마련이다.몇 번이고 다치고 나면, 믿음도, 감정도, 다 닳아버리는 법이니까.유주아는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집에 도착한 뒤에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강재민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분명 어디서 본 얼굴인데...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나지?”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못해, 결국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거실엔 불이 켜져 있었고, 소파에 최영선이 앉아 있었다.“주아야, 아직도 안 잤니?”“잠이 안 와서요. 엄마는요?”“나도. 네 걱정 때문에 말이야. 도대체 이 많은 진주시 남자 중에, 왜 너한텐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니... 너, 박민호라는 애 기억하지?”“당연히 기억하죠.”유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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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8화

박민정은 생각에 잠겼다.정말 박민호가 변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아빠 박형식이 자신을 키운 은혜에 조금은 보답한 셈일 것이다.하지만, 박민호가 끝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번이 마지막 도움이 될 것이다.모든 준비를 마친 박민정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그때,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화면을 들여다보니, 유남준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선명하게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펼쳐졌다.“무슨 일이에요?”박민정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유남준이 대답할 틈도 없이, 영상 화면 옆으로 조그마한 얼굴이 불쑥 끼어들었다.윤우였다.“엄마... 혹시 병원에서 살기로 한 거야?”작은 눈망울엔 걱정이 가득했다.“어? 무슨 소리야. 엄마는 그냥 외할머니 옆에 있으려고 병원에 있는 거야. 외할머니 병만 나으면, 곧 집에 갈 거야.”박민정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지만, 윤우는 더 이상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었다.엄마의 거짓말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나이였다.아들의 말에 박민정의 가슴이 턱 막혔다.사실 요 며칠 사이, 정수미 역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그녀의 병은 이미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상태였다.몇 달, 어쩌면 몇 주일지도 몰랐다.병원이라 해도 집보다 크게 더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막 찾은 가족이었다.이제야 찾은 엄마를, 눈앞에서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말을 잇지 못하는 민정을 대신해, 남준이 나섰다.“이미 의료진 팀을 집으로 모셨어. 병원에서 쓰는 장비도 전부 설치했고. 집에 가셔도 병원과 똑같은 치료가 가능해.”그는 잠시 말을 멈추곤, 부드럽게 덧붙였다.“무엇보다... 집이 훨씬 편하잖아. 당신도, 어머님도 제대로 쉬어야지. 어머님이 윤우도 보고 싶어 하실 거고.”박민정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그가 요즘 너무 바쁘길래, 단순히 회사 일 때문인 줄만 알았다.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너져가는 그녀의 마음을, 조용히 지탱해 주고 있었다.“알겠어요. 내일 엄마 모시고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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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9화

정수미는 방 안 가득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눈에 띄게 기운이 빠져 있었고, 더는 길게 말을 잇기 어려운 듯했다.사람들도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기에 조용히 물러섰고, 박민정은 정수미를 방으로 옮겨 휴식을 취하게 했다.윤우도 뒤따라 방 안으로 들어와, 외할머니 곁에 붙어 앉았다. 활짝 웃으며 재잘거리고 재롱을 피우는 아이 덕분에, 방 안 공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정수미는 그런 윤우를 바라보다 나지막이 웃었다.눈빛은 많이 지쳐 있었지만, 그 속에는 말로 다 못 할 따뜻함과 평온함이 서려 있었다.“민정아...”그녀는 딸을 불렀다.“민정아... 엄만 이 생에 참... 운이 좋은 것 같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민정은 조용히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엄마, 얼른 나아서 우리 손주 넷이랑 같이 놀러 나가야죠. 꼭요.”정수미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 그럼...”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눈을 감았고,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민정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윤우에게 조용히 말했다.“윤우야, 우리 나가자. 외할머니 푹 쉬셔야 해.”“응, 알겠어요.”윤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아래층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북적였다. 마침, 주말이라 다들 시간이 비어, 직접 만두를 빚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유남준은 박민정 옆에서 어설프게 거들고 있었는데, 덕분에 주방은 수시로 웃음이 터졌다.“남준 씨, 얼굴에 밀가루 다 묻었어요.”민정은 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더니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유남준은 약간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괜찮아. 이따 가서 씻을게.”그러고는 다시 반죽에 집중했는데, 물을 너무 넣었다 싶으면 밀가루를 추가하고, 또 너무 되면 물을 넣고...반복되는 시행착오 끝에, 처음 준비한 밀가루 양보다 세 배는 더 많은 반죽이 만들어져 있었다.서다희는 유남준이 반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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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0화

밖에는 매서운 찬 바람이 몰아치고,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며 내려앉았다.하늘을 바라보는 진서연의 눈에는 평소의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맥없이 멍한 기색만 감돌았다.그 곁으로 박민정이 다가와 조용히 불렀다.“서연아.”그제야 진서연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려 민정을 바라보았다.“보스, 왜요? 혹시 만두 다 삶아졌어요?”민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제 막 삶기 시작했지, 그렇게 금방 되겠어?”“아... 그렇군요.”민정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멍하니 있어? 혹시 민기 씨... 보고 싶어서 그래?”요즘 정민기는 뭔가 급한 일이 있다며 본가 쪽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고, 박민정도 굳이 묻지 않았다.한참 말이 없던 진서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왠지 모르겠는데... 민기 씨랑은 끝까지 못 갈 것 같아.”“무슨 소리야?”민정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진서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한 마디 한 마디 북받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민기 씨랑 꽤 오래 만났잖아요. 그런데도...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가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조차 모르겠어요.”박민정은 뭐라 위로해야 할지 잠시 말을 잃었다.그러다 조심스레 말했다.“민기 씨 돌아오면, 꼭 직접 물어봐. 이런 건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아. 사람마다 표현 방식이 다르잖아. 어떤 사람은 진짜 중요한 얘기일수록 더 말 안 하는 경우도 있고.”진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리고 다시 심호흡을 한 뒤,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후우... 보스, 이제 우리 들어가서 만두 마저 삶아요.”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 애썼고, 박민정은 조용히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지금은 어쩌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정민기가 돌아오기 전까지는...집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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