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041 - Chapter 1050

1066 Chapters

제1041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재석은 몇 번이나 소진헌의 시선과 마주쳤다.소진헌의 그 눈빛 안에는... 뭐랄까?유심히 살펴보는 듯한, 탐색하는 듯한,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진지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예전의 소진헌이 재석을 바라보던 시선과는 확연히 달랐다.재석은 한결같았다. 적어도 겉보기에는.그는 정은에게 반찬을 챙겨주면서도 이미숙과 소진헌에게도 빈틈없이 신경을 썼다.그러다 결국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소진헌은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그가 고개를 숙여 밥을 먹으려는데, 그릇에 깔끔하게 껍질이 벗겨진 새우 두 마리가 놓여 있었다.소진헌은 재석 앞에 작은 산처럼 쌓인 새우 껍질을 보고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내가... 살아생전에 누군가 까준 새우를 먹게 될 줄 몰랐네.’그는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이 스쳐 가자, 소진헌은 순간 얼어붙었다.‘헛, 무슨 소리야!’‘아직 멀었지. 이 정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안 돼!’‘좀 더 두고 봐야지. 그래, 아직 검증이 필요해!’식사가 끝나자, 재석이 자연스럽게 그릇을 치우며 주방으로 향했다.소진헌은 예의상 두어 마디 건넸다.“아, 그냥 둬. 손님이 왜 설거지해?”그러자 재석이 단호하게 말했다.“저 손님 아니에요. 원래 하던 거니까요. 거실에서 편히 쉬세요.”“그럼... 그럴까?”소진헌은 기분 좋게 웃으며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자마자 이미숙이 선물 포장을 뜯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뭐야? 그거?”소진헌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갔다.이미숙은 손바닥만 한 벨벳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붉은빛이 도는 루비 귀걸이가 빛나고 있었다.그 붉은색은 마치 선혈처럼 진했고, 조명 아래서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우와, 진짜 색깔 예쁘다!”소진헌이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다.이미숙은 귀걸이를 손에 들어 올리며 자세히 살폈다. 그럴수록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피젼 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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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2화

“... 뭐, 뭐라는 거야?”그때, 재석이 주방 정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재석은 소진헌의 말을 듣고 천천히 설명했다.“전에 아버님께서 몇 번 말씀하신 적 있었잖아요. 학교에다가 농업 체험 수업을 열자고 건의하셨는데, 학교 측에서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요...”“그래서 아버님께선 직접 학급에 ‘화분 코너'를 만들고, 작은 화분들을 놓으셨잖아요.”“제가 알아보니까, 학교 측 말이 맞긴 하더라고요. 인성고등학교가 도심에 있다 보니 공간이 너무 좁아서 확장이 어려웠어요.”“그런데 올해 초에 아버님께서 원하신 그 301번지 부지에 대한 정비 통보가 내려왔더라고요.”“그중에서 12번지가 학교 후문에 딱 붙어 있는 곳이었어요. 그걸 농업 체험 교육원으로 바꾸면 딱 맞겠다 싶었죠.”소진헌은 놀란 눈으로 재석을 바라보며 말을 조금 더듬거렸다.“너... 너 그걸 어떻게 한 거야?”재석은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자료를 좀 찾아봤어요. 그 땅은 원래 자연 경사지였거든요. 그래서 개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그래서 저는 그대로 학교에 넘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학교가 그 땅을 받으면 개조 예산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원래 모습을 살린 농업 체험 교육원으로 만드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될 테니까요.”“이렇게 되면, 정부도, 학교도, 그리고 인성고 학생들도 모두 이득을 보는 일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삼자 모두 이익을 보는 일인데, 누가 반대하겠어요?”소진헌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이거... 빨간 도장까지 찍혔네...”사실상 계획이 확정됐다는 의미였다.“이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잖아?”재석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올해 초에 제안서를 냈었는데, 그때는 계속 보류 중이었어요. 어제 잠시 알아보니 진행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오늘 오후에 공식 문서가 발표된 거예요.”‘올해 초부터라니...'소진헌은 불만이 많았지만, 재석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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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3화

재석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미 너도 진지하지 않다고 했으니까... 각 잡고 진지하게 알아볼까?”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석은 고개를 숙여 정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는 원래 살짝 장난삼아 뽀뽀만 하려던 거였다.하지만 입술이 닿는 순간, 멈출 수 없게 된 쪽은 오히려 그였다. ‘아, 큰일 났어.'재석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그런데도 그의 선택은 아주 명확했다.그저 그 순간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정은이 숨을 고르며 재석을 살짝 밀었다.“그만... 이제 그만해요...”재석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물러났다. 표정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다.그가 입을 열었다.“다시 한번 물어볼게.”정은은 이해가 안 됐다.“뭐를요...?”재석이 좀 제시했다.“처음에 했던 그 말.”‘처음에 했던 말...?'“어쩜 이렇게 대단하냐고 물은 거요?” 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칭찬 고마워.”‘속았어!!'정은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말한 건 그 두 가지 선물이었어요!”“그래도 칭찬은 칭찬이지. 고마워.”“우리 남자 친구가 나쁜 쪽으로 변했네요.”재석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다 내 여자 친구한테 배운 건데, 어쩌지?”그때, 소진헌의 목소리가 집 안쪽에서 들려왔다.“딸, 사람 하나 배웅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정은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네, 이제 들어가요!”그리고 다시 재석을 바라보았다.“선물, 우리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재석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좋아하셨다니 다행이네. 이제 들어가, 잘 자.”“네.”정은은 아쉬운 듯 뒤돌아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소진헌은 소파에 앉아 중얼거렸다.“정은아, 넌 여자애야. 좀 더 신중해야지, 알겠지? 품위를 지켜야 쉽게 안 당한다고.”그날 밤, 정은은 편안하게 숙면을 했다.재석 역시 아무 꿈도 꾸지 않고 푹 잘 잤다.유독 안방에 있는 소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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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4화

“그러니까... 여보... 내가 일부러 조 교수를 좀 곤란하게 만들었잖아. 딸 집안의 기세와 체면을 확실히 보여줘야지.”“우리 정은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뒤에 얼마나 든든한 부모가 있는지를 똑똑히 알게 해야지. 괜히 우리 딸을 만만하게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면 큰일이니까.” 이미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맞아요. 그래야 조 교수가 함부로 못 하죠.”“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아. ‘딸 시집보낼 땐 고개를 들고, 며느리를 받을 땐 고개를 숙여라’는 말.”“정은이는 이런 거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부모로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해. 아무 기도 없이 넘어가면, 조 교수가 우리 집을 만만하게 볼지도 몰라.” 말을 마친 소진헌은 입이 마른 듯 혀로 입술을 한번 훑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이미숙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여보, 왜 그렇게 봐?”이미숙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처음이라서요... 우리 남편이 이렇게 현명해 보인 거...”“뭐...?”‘그럼 그전엔 뭐였다는 거야? 멍청이? 바보?’‘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이미숙이 장난스레 웃었다.“아니요. 이전의 그 날강도... 아니, 그놈 앞에서도 그런 기세를 부리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소진헌이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강도겸? 그렇게 대단히 잘난척하는 놈 앞에서 내가 무슨 기세를 부려. 기세부리기도 전에 나를 휙 밀어낼 놈인데.”“조 교수는 다르지. 당신도 알잖아. 조 교수가 우리 정은이를 얼마나 신경 쓰고 아끼는지. 그래서 우리한테도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공손하게 군 거야.”“그거야 뭐...”소진헌은 어깨를 쫙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딸을 데려가려면 그만한 고생은 해야지. 그래야 소중함을 알지. 내가 이 문턱은 확실하게 지킬 거야. 쉽게 넘어가게 두지 않을 거라고.”...다음 날 아침.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재석을 보자, 소진헌의 그 호언장담은... 흔들렸다. 아주 조금...재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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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5화

여름방학 기간이지만, 재석은 계속 쉴 수만은 없었다.소진헌과 이미숙을 만나는 데 이틀을 썼다. 그게 한계였다.“내일 S시에 가야 해.”“네?”정은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시원한 잠옷 차림으로, 재석이 만들어준 눈꽃 빙수를 먹고 있었는데, 재석의 말에 손이 멈췄다.“무슨 일로...?”“출장.”“갑자기 왜요?”재석이 대답했다. “세미나가 있어서. 원래는 진욱이가 가기로 했는데, 진욱이 집안에 좀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됐어. 그래서 내가 대신 가게 됐지.”“전 교수님 댁에 무슨 일 있어요?”정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전진욱 앞에서 재석은 일을 쥐어 짜내기로 유명한데, 그런 재석이 진욱의 일을 흔쾌히 대신해 준다니...‘이건 뭔가 큰일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데.’재석은 가볍게 헛기침했다.“사실 별일은 아니고... 진욱이 전 부인, 애가 생겼대.”“뭐라고요?!”정은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꼭 무슨 큰 비밀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이 반짝였다.“전 교수님 이혼하셨어요? 언제요? 전 교수님 전 부인이 애 생긴 게 전 교수님이랑 무슨 상관이에요?”재석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남의 일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데?”“이런 대박 소식은 남의 일이든 뭐든 다 관심 가져야죠! 이런 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요?”‘내가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난 신도, 감정도 없는 사람이 아닌걸.’ 재석은 갓 짜낸 오렌지 주스에 빨대를 꽂아 정은에게 건넸다.“진욱이랑 그분... 아니, 전 부인이랑 아마 재작년에 이혼했을 거야.”“재작년...” 정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네요?”“맞아.”“왜 이혼했대요?”재석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진욱 부부는 딩크족이었어. 결혼할 때부터 아이는 가지지 않기로 약속했지. 그전까지는 서로 만족하면서 잘 지냈어.”“둘만의 시간만 보내니 부담도 없고, 아이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 해, 여자 쪽에서 갑자기 아이를 원한다고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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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6화

재석이 바로 대답했다.“진욱이 핸드폰 배경 화면 아직 안 바꿨더라.”“어? 전 교수님 핸드폰 배경 화면이 전 부인이에요?!”“왜 그렇게 놀라는데?”정은은 작게 중얼거렸다.“나는 또 어떤 연예인인 줄 알았네요. 너무 낯이 익어서... 전 교수님 전 부인 진짜 예쁘셔요. 교수님이랑은... 음... 좀 아깝지 않나요?”재석이 피식 웃었다.“진욱이 전 부인, 영화배우야. 이름은... 서미연.”정은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영화배우? 그것도 서미연?!’‘대박... 이거 진짜 특급 대형 사건 아니야? 이거 터뜨리면 실검 1위는 따 놓은 당상이네!’재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기자들한테 들키는 바람에 진욱이도 알게 된 거야.” ...그날 저녁, 정은은 재석이 내일 출장 간다는 소식을 베란다에서 화초를 가꾸고 있던 소진헌에게 툭 던지듯 전했다.그런데, 소진헌의 반응이 정은보다 더 컸다.“출장?! 내일 간다고? 그렇게 급하게?”“대패삼겹살을 샀는데, 내일 삼겹살 파티하려고 했단 말이야. 조 교수, 왜 갑자기 출장 가는데?”정은은 간단히 설명했다.“원래 가기로 한 사람이 못 가게 돼서, 재석 씨가 대신 가게 됐대요. 그리고 내일 아빠도 엄마와 함께 연수원 가야 하잖아요.”소진헌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기억이 난 듯 말했다.“아... 맞다. 내일 네 엄마랑 같이 가야지...”‘헐... 완전히 까먹었네.’이미숙은 싸늘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표정이 딱 ‘이럴 줄 알았다’였다.‘벌써 며칠이나 지났다고?’그날 저녁, 소진헌은 미리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이런 건 사람이 많아야 먹는 맛이 나는 거야!”이미숙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식사 후, 소진헌은 재석에게 설거지를 시키지 않고,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정은은 바로 말했다.“엄마, 내가 가서 재석 씨를 도와야 할 것 같아요.”그렇게 말하고는 재석을 데리고 그의 집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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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7화

재석은 그 틈을 타 몸을 기울였고, 정은을 가슴과 침대 사이에 단단히 가두었다.두 팔로 그녀의 양옆을 짚은 채, 서로의 시선이 맞닿았다. 어딘가 아슬아슬하고도 묘한 기류가 흘렀다.‘이러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데...’정은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재석은 갑자기 그녀에게서 몸을 떼어내더니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오늘은 봐줄게. 이따가 늦게 들어가면... 설명하기 힘들잖아.”정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차라리 우리 아빠가 쳐들어올까 봐 겁난다고 말하지 그래요?”재석은 고개를 돌려 검은 눈동자로 정은을 바라봤다.“정은아, 너도... 원하고 있는 거 맞지?”정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뭘 원한다는 건데요? 말해 봐요.”“내 여자 친구... 진짜 너무해.”재석이 약간 억울한 듯 말하자, 정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재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근데... 난 그런 네가 좋아.”집으로 돌아가기 전, 재석은 정은을 현관까지 바래다주었다.정은이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재석은 그녀를 다시 확 끌어당겼다.강렬한 입맞춤이 이어진 후, 재석이 아주 다정하게 약속했다.“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왜요?”“우리 매번 끝까지 하지 못한 그 일...”“...”정은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이미숙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과일을 집어 먹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조 교수는 짐 다 챙겼어?”“네.”정은이 가볍게 대답했다.“그렇겠지. 이렇게 오래 걸렸으면 다 챙겼겠네.”이미숙은 신경을 쓰지 않은 듯 말했다.그때, 소진헌이 주방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려던 정은과 마주쳤다.“정은아, 너 왜 이렇게 더워 보여?”“조... 조금요...?”“오늘 반찬 너무 맵게 했나?”“네...?”“우리 딸 입술이 빨갛게 부어 있어. 좀 심한 것 같네.”“아빠... 오늘... 조... 조금 맵긴 했어요.”그렇게 간신히 아버지와의 어색한 대화를 마친 정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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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8화

[내가 그런 사람이야?! 이미 생긴 거면... 낳아야지! 내가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은 모르지만, 배울 수는 있었다고!][미연이는 한 번도 내 생각을 물어보지 않았어. 그냥 자기 멋대로 결정해 버리고, 내 딸의 3년을 통째로 날려버렸다고...]재석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미연 씨... 아직도 원망해?”진욱은 그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뒤,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내가 무슨 자격으로...]“그래, 그거라도 인정하면 돼.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미연 씨랑 다시 시작할 생각이야?”진욱은 마치 기운이 빠진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미연이가 싫대.]“너도 참 고생한다.”[나, 나 이번에 휴직할 거야.]진욱이 갑자기 통화의 목적을 밝혔다.“뭐?”[하늘이랑 미연이... 내가 다 다시 잡을 거야. 이번엔 내가 진짜 잘할 거라고!]“두 달, 그걸로 충분하겠어?”진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석이 그렇게 흔쾌히 말해줄 줄은 상상도 못 한 눈치였다.“두 달 안에 못 잡으면... 난 너 사람 취급 안 해.”진욱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기다려. 내가 꼭 보여줄 테니까.]전화가 끊기고, 재석은 한숨을 쉬었다.‘두 달 동안... 미치도록 바쁘겠네.'...그 시각, 소진헌은 이미숙을 데리고 연수원으로 향했다.연수원 정문 앞에 도착하자, 소진헌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여보, 열심히 공부하고 멋지게 졸업해! 파이팅! 아자 아자!”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미숙은 약간 창피했다.주변 사람들도 그런 소진헌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수원의 고급 과정은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집이 가까운 이미숙은 통학을 선택했다.연수생 중 유일한 통학생인 이미숙. 그녀의 이름은 단연 돋보였다. 입학식 날, 이미숙은 대표로 연설을 맡았고, 장내는 박수갈채로 가득 찼다.소진헌은 이미숙이 연수원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연수원을 나선 뒤, 그는 곧장 장인인 이춘재의 집으로 향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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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9화

봉수진은 반갑게 현빈에게 다가가며 환하게 웃었다.“현빈아!”“얼굴 좀 봐, 볼살 다 빠졌네. 내가 그때 뭐랬어? 다른 사람 보내라고 했잖아. 근데 기어코 네가 간다고 하더니... 그 험한 데를.”봉수진은 타박하면서도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이춘재도 다가와 현빈의 어깨를 두드렸다.“살도 빠지고, 좀 타긴 했지만... 많이 단단해졌네.”현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옆에 서 있는 소진헌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이모부!”“오! 그래, 현빈아!”소진헌도 반갑게 맞으며 현빈을 위아래로 살폈다.정말로 이춘재의 말처럼 얼굴은 까맣게 탔고, 살이 좀 빠진 듯했지만, 눈빛은 훨씬 날카로워졌다.‘마치 칼집에 갇혀 있던 칼날이 드디어 세상에 나온 듯한 느낌이네.’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현빈이 많이 성숙해졌네.”이춘재도 흐뭇한 표정으로 맞장구쳤다.“이제 곧 서른이니 그럴 때도 됐지.”그때 봉수진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아, 맞다! 소 서방, 아까 뭐 중요한 얘기 한다고 하지 않았어? 정은이가 뭐?”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빈의 시선이 확 돌아왔다.소진헌은 재석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정은이가 남자 친...”“아이고! 큰일 났다!”봉수진이 손뼉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내가 끓여 놓은 곰탕이!”소진헌이 코를 킁킁거리자, 탄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왔다.이춘재와 현빈도 급히 주방으로 따라갔다.곰탕은... 이미 운명을 다 한 상태였다.국물은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고, 남은 국물을 떠먹어 보니 탄내가 가득했다. 그래도 오늘은 반찬이 많아서 다른 국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현빈이 물었다.“정은이는 왜 안 왔어요?”소진헌은 다시 한번 설명했다.“논문 쓰느라 바빠서 집에 있어. 몇 날 며칠 바짝 달리고 있더라고.”현빈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외할머니가 이렇게 맛있는 걸 많이 해 놓으셨는데, 정은이가 못 먹다니... 아쉽네요.”그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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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0화

소진헌은 잠시 멈칫했다.“정은이? 잘 지내고 있지.”현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소진헌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타세요, 이모부.”“아니야, 내가 할게.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괜찮습니다.”소진헌은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혀 차에 올랐다.현빈은 문을 닫고 반대쪽 운전석에 올라탔다....차가 도로에 오르자, 현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정은이는 이제 방학 아닌가요?”“맞아, 한 일주일 됐나?”“요즘 실험실에는 안 나가요?”“정은이 팀 자체가 지금 휴식 중이야. 다들 좀 쉬면서 재정비하더라고. 그래야지, 맨날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사람 몸이 남아나겠어? 가끔은 쉬어가며 살아야지.”“맞는 말씀입니다.”현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사실 요즘 우리 그룹에서 리조트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 중인데, 최근에 시범 운영을 시작했거든요.”“어디에 있는데?”“멀지 않아요. 시 외곽에 있어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려요. 숙박도 되고, 레스토랑도 있고, 낚시, 채소 따기, 캠핑 같은 체험도 가능합니다. 시간 되시면 이모랑 정은이랑 같이 한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소진헌은 흥미를 보이며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낚시도 되고, 채소도 딸 수 있다고?”“네.”현빈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큰 낚시터도 있고요, 열 몇 개의 텃밭이 있어서 직접 수확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과수원도 있어서 과일도 딸 수 있어요. 옆에는 호텔도 있는데, 5성급 수준으로 지어서 관광, 휴양, 레저가 한곳에 다 모여 있어요.” “이야, J시에 그런 데가 있었나?”소진헌은 놀란 얼굴로 감탄했다.그때, 현빈이 조수석 앞쪽에 있는 수납함에서 카드를 두 장 꺼내 건넸다.“이게 시범 운영 초대장이에요. 하나는 호텔 거고, 하나는 레저 체험 구역입니다.”“이걸로 몇 명까지 갈 수 있는데?”“마음껏 데려가셔도 돼요.”“그럼 비용은...”소진헌은 순간 멈칫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싸진 않을 텐데... 미숙이한테도 물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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