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021 - Chapter 1026

1026 Chapters

제1021화

한편, 정은은 자신이 보낸 사진 한 장이 ‘미스터리 대 추리극’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정은이 아는 건 딱 하나였다. 침대가 너무 푹신하고, 자신 위에 올라탄 재석이 너무 무겁다는 것. 정은은 한숨을 쉬며, 다가오는 재석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왜...?” “그날이에요...” 여자의 말투에는 어쩔 수 없음이 묻어 있었고, 거기에 조금의... 아쉬움도 섞여 있었다. 재석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매달 한 번씩 오는 그날...” 재석은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양손으로 침대 양쪽을 짚고 정은에게서 몸을 뗐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없이 방을 나갔다. 재석이 집에 간 줄 알고, 정은은 옷장 앞에 가서 깨끗한 잠옷을 꺼낸 후 샤워를 하려고 했다. 한편, 재석의 몸은 마치 대형 온수기 같아서, 에어컨이 켜져 있어도 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정은은 분명 집에 갔을 거라 생각했던 재석이 침대 끝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화장대 위에는 뭔가 담긴 그릇도 놓여 있었다. “어라?” 정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재석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미리 말 좀 해주지... 흑설탕 생강차는 미리 마셔야 효과가 있대.” 정은은 다가가서 그릇 안을 들여다봤다. 갈색빛이 도는 따뜻한 물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은은한 생강 향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정은이 눈을 깜빡이자, 재석이 웃으며 말했다.“어디서 나긴.” “방금 주방 다녀온 거예요?” “아니 그럼 어디를 다녀왔겠어?” 정은은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집에 간 줄 알았는데...” 재석은 잠깐 멈칫하더니,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네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냐?” 그러면서 그릇을 정은 앞에 내밀었다. “식기 전에 마셔. 식으면 효과 없어.” 정은은 재석이 들고 있는 그릇을 받아 들고,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꿀꺽꿀꺽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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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찰기 있는 단호박죽이랑 생선 만두야.” 아침을 먹고, 정은은 외출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재석이 실험실에 가지 않는 날이라 집에 남기로 했다. “정은아.” “네?” 이미 계단까지 내려가던 정은은 재석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재석은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정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집에 일찍 들어와.” ‘이 사람이 방금, 집에 일찍 오라고 했어.’ 순간, ‘집’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문 하나, 그리고 그 문 뒤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네.” 정은은 돌아서려던 재석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살짝 감싸 안고, 웃으며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한마디 툭 던졌다. “주는 걸 받기만 하면 예의가 아니죠.” 그렇게 말하고, 경쾌하게 돌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재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멀어져가는 정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정은 언니, 안녕하세요!” “응, 안녕.” 정은은 무심히 인사를 건넸다가, 걸음을 멈췄다. 뭔가 뒤늦게 깨달은 듯 민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민지야, 요즘 너 되게 일찍 오네?” “어, 어? 그래요?” “응, 확실히.” 민지는 정은보다 더 일찍 와 있었다. “아무래도 여름이라 그런가 봐요? 겨울처럼 침대에 붙어있고 싶지는 않달까...” 민지가 바로 설명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서준이는?” 정은은 실험실 안을 둘러봤지만 임서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준이는 자기 파트 일 다 끝내서 오늘은 안 온대요.” “어머, 너 혼자 두고? 보기 드문 일이네.” 예전 같으면 서준은 자기 일이 끝나도 꼭 따라 나와 민지랑 같이 야근하곤 했었다. “그게...” 민지의 볼이 서서히 붉어졌다. “집에서 밥 해 준다고... 점심시간에 가져다준대요.” ‘서준이... 은근 디테일하네.’ 정은은 마음속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때, 남진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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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정은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어떻게 왔어요?” 재석은 들고 있던 보온병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밥 배달.” 진일은 속으로 더 어이가 없었다.‘아이고... 다들 밥 받아먹고 좋겠다? 난 뭐냐, 실험실 유령이냐?’ 진일은 입을 꾹 다물고,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됐어, 밥이고 뭐고 실험이 먼저다.” ‘그래, 일하다 보면 배고픔도 잊히겠지. 향기 따위에 흔들리지 말자.’ 진일은 부글부글한 속을 안고 실험대로 향했다. 한편, 재석은 생활공간 쪽 소파에 앉아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차곡차곡 정리된 반찬통들을 하나하나 꺼내 테이블에 예쁘게 세팅했다. 따끈한 반찬 3개와 국 하나. 밥은 맨 아래에 푸짐하게 깔려 있고, 김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은은 그제야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런 거 왜 미리 말 안 했어요?”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실험실 들어오면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는 거 뻔히 알잖아요. 아침에 말하지 그랬어요?” 재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리 말하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정은이 속으로 감동을 확실히 받았다.“그 말투... 왜 갑자기 성을 공략하는 장수 느낌이죠?” 재석은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마음 공략하는 게 성 하나 무너뜨리는 것보다 어렵거든. 근데 자신 있어. 조금씩, 천천히...” “네?” “무너지게 할 거야.” 재석이 자신 있게 말했다.‘이 남자, 오늘 왜 자꾸 이런 멘트를 날리지?’ 정은은 괜히 뜨거워진 귓가를 손으로 톡 건드렸다. ‘다행이다. 서준이랑 민지는 멀찍이 앉았네. 이 대사 들었으면 놀림감 확정이야.’ 정은은 젓가락을 들며 물었다. “당신은요?” “응?” “먹었어요?” 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이건 다 네 거야.” 정은은 잠깐 망설이다 식사를 시작했다. “흠, 이건 양이 너무 많은데요?” 결국 절반도 못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재석은 익숙하게 보온병을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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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으으...” 정은이 식탁에 기대며 흐느적거렸다. “이러다 나, 게으르고 식탐 많은 애로 길러지겠어요.” 재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걱정하지 마. 충분히 키울 능력 있어.” ‘진짜, 이런 대사는 어디서 배우는 거야...’ 정은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둘은 그렇게 밤 10시 가까이 함께 시간을 보냈고, 재석은 마지막으로 흑설탕 생강차까지 끓여서 정은에게 건넨 후 집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아침. 하늘은 불붙은 듯 붉게 물들었고, 새하얀 구름조차 태양 빛에 홍조를 띠었다.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은은 아침 일찍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서 장바구니 세 개를 재석에게 건넸다. “낚싯대는 전 교수님 거, 스카프는 미진 언니, 이어폰은 손 교수님 드리는 거예요... 재석 씨, 잘 기억했죠? 헷갈리면 안 돼요.” 이 물건들은 주말에 둘이 함께 쇼핑하러 갔을 때 산 선물들이었다. 재석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걸... 왜 줘?” 정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지금까지 실험실 사람들한테 선물 한 번도 안 줘본 거예요?” “월급도 주고, 연말엔 보너스도 주는데, 선물까지 줘야 해?”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정은이 설명했다.“월급이랑 보너스는 열심히 일한 수고비예요. 근데 리더나 상사 입장에서는, 가끔 사소한 선물 하나 챙겨주면 사람들이 훨씬 더 기뻐해요.” 재석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보너스보다 더 기뻐한다고?” 정은이 확실히 대답해 줬다.“그럼요! 안 믿기죠? 해 봐요.” 재석은 반신반의하면서 실험실로 향했고, 손에는 여전히 그 선물 가방들이 들려 있었다. ...“진욱아, 이거.” “응? 이게 뭐야?” 전진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이백을 받아서 들었다. 그리고 안을 열어보자 몹시 놀랐다.“헐, 잠깐만... 이거...” Carpenter 사의 SuperCat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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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여름방학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기말고사였다. 이번 학기, 정은은 총 7과목의 전공을 수강 중이었다. 그중 필수 과목이 4개, 선택 과목이 3개. 원래 민지는 선택 과목은 하나만 들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은이 3과목을 신청한 걸 보고, 민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악물고 따라 신청했다. 서준은 조심스레 말렸다. “7과목에 실습수업만 4개야. 좀 무리일 수도 있어.” 하지만 민지는 단호했다. “정은 언니도 저렇게 듣는데, 언니가 하는 걸 내가 못 하겠어? 나도 할 수 있어!” 결국 서준도 민지를 따라 그대로 신청했다. 그리고 증명되었다.충동은 짜릿하지만, 수업은 지옥이라는 사실. 실제로 버거운 건 민지 한 명뿐이었다. 평소 수업이라면 민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제시간에 들어가서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진짜 고통은 기말고사였다. 7개의 전공과목에 4개의 실습까지, 총 11과목이... 전부 다 시험 범위였다. “서준아, 그냥 날 죽여줘...” 민지는 몸을 의자에 내던지듯 뒤로 젖혔고, 얼굴 위엔 책이 한 권 덮였다. ‘응, 책에 눌린 통통한 시체 하나 완성...’ 서준은 민지 얼굴 위의 책을 조심스레 걷어내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좀 아깝지.” 그 한마디에 민지의 심장이 살짝 녹아내렸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안 돼! 나 다시 정신 차릴 거야!” “좋아, 같이 하자.” “근데... 너 몇 과목까지 복습했어?” 서준이 부드럽게 대답했다.“전공은 거의 다 봤어.” “뭐라고?” 민지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7과목 전공을 다 끝냈다고?!” “응.” 민지는 믿고 싶지 않았다.‘아니... 이 사람, 나랑 같은 시간을 썼는데, 왜 난 절망이고 얘는 끝난 거야...’ ...6월 중순. 드디어 기말고사 주간이 시작되었고, 1주일간의 전쟁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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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서준은 더 이상 그 여대생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민지의 손을 꼭 잡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간다며? 장소는 정했어?” “정했지!” 먹는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민지. “Cici 레스토랑 가자! 올해 새로 인기 맛집 리스트에 올랐어! 근데... 좀 멀긴 해.” 그 순간, 그리 크진 않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 둘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먹고 또 먹고, 그냥 돼지네.” 서준의 걸음이 멈췄고, 민지는 재빠르게 서준을 잡았다. “괜찮아. 난 신경 안 써.” 하지만 서준은 단호했다. “난 신경 쓰여.” 그렇게 말하곤 민지의 손을 놓고 돌아섰다. 그 여대생은 예상치 못한 서준의 반응에 잠깐 눈이 반짝였다. “서...” “사과해.” “뭐...?” 서준은 또박또박 말했다. “내 여자 친구한테, 지금 당장 사과해.” 여대생의 입꼬리에 걸린 웃음이 굳어졌고, 곧 황당하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내가? 사과하라고?!” “무례하게 굴었잖아. 그럼 사과해야지.” “내 말이 틀렸나? 사실 아니야? 쟤, 돼지 맞잖아!” ‘참나...’ 서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네 부모님이 너한테 예의도 안 가르쳤구나. 괜찮아, 내가 대신 알려줄게.”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꾹 눌러 보이며 말했다. “방금 거, 전부 녹음했어. 학교 커뮤니티에 올릴 생각인데... 대학원까지 다닌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도덕의 붕괴일까, 인성의 문제일까? 다들 궁금해할 것 같은데.” 여대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돌아서려 했다. “잠, 잠깐만!” 그제야 여대생이 다급히 불러세웠다.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그러고는 억지로라도 입을 열었다. 민지를 향해, 하지만 눈은 절대 안 마주치며... “미안...” 서준은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눈앞에서 삭제해 보였다. “다음에 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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