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 남긴 했지만, 전해산은 결국 흔들림 없이 정은의 결정을 따랐다.‘연구팀 책임자를 따라가면 밥은 굶지 않는다’, 이미 수차례 입증된 경험이었다.연구팀은 그동안 모아둔 샘플 정리만 해도 필요한 시간은 열흘이 넘었다. 그러니 고작 나흘, 닷새쯤은 문제도 아니었다.‘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흘, 닷새로도 다 못 해치울 거야.’그 모든 원인은 새김, 바람, 이어, 이 로봇들 덕분이었다.말 그대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범 근로자였다.먹지도, 자지도 않고, 원한다면 하루 24시간을 꼬박 채워 일할 수도 있었다.정은과 전해산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하지만 마음속에 의혹과 불안을 품은 이조화에게는 흘러가는 매 순간이 고문처럼 느껴졌다....밤이 깊었다.세면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이조화는 곧장 침대에 걸터앉았다.그녀가 숙소 배정을 받을 때 단 하나 고집한 조건은 ‘조용한 곳’이었다.그래서 이 방은 복도 끝에 있었고, 옆은 잡동사니 창고, 맞은편은 발코니였다.앞뒤 좌우 모두 비어 있는, 고립된 방이었다.세면도구를 내려놓은 뒤 몇 분간 멍하니 앉아 있던 이조화는 곧 일어나, 굳은 표정으로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몇 바퀴를 돌고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가, 곧 다시 일어나서 다시 방을 빙빙 돌았다.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이를 악물었다.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여행용 가방을 꺼내 열었다.안에서 나온 것은... 아직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노트북 한 대였다....한편, 1층 방에서는 정은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반년에 한 번씩 제출하는 문서, 마감일은 바로 내일이었다.입에서 하품이 나오더니, 곧 두 눈에 습기가 가득 차올랐다.책임자라는 자리는 분명 편리했다. 하고 싶은 일을 추진할 힘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끝도 없는 보고서, 요약, 신청서를 써내야 했다.정은은 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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