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의 모든 챕터: 챕터 1561 - 챕터 1570

1725 챕터

제1561화

달빛은 쓸쓸히 흘러내리고, 도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러나 어느 고급 아파트 한가운데,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도균성이 전화를 붙잡고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지금 올리버의 건물이 완공됐습니다. 소정은 씨도 곧 연구팀을 데리고 그 집으로 들어갈 겁니다.]“알았다.”짧게 대답한 현빈은 더 묻지 않았다.통화를 끊은 뒤, 시선은 여전히 눈앞의 노트북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화면 속은 한 소셜미디어 페이지였다.사진 아홉 장.그리고 큼지막하게 박힌 글귀. 결혼 선물, 새 주인.댓글 창은 축복과 환호로 가득했다.그 계정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다시 확인한 현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양인 특유의 뚜렷한 이목구비, 파란 눈동자, 순박해 보이는 표정.‘풋풋한 강아지상이네... 올리버.’현빈은 단어를 끊어 내뱉듯 읊조렸다.“올리버?”곧 그는 노트북을 닫아 버리고,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잠시 후 연결음이 끊기고, 도균성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대표님, 무슨 지시가 있으십니까?]“섬으로 가는 다음번 배가 언제 출항하지?”[얼마 전까진 연구팀 자재를 실어 나르느라 배가 자주 오갔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소정은 씨가 직접 연락해, 건물은 이미 완공됐고 물자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 달은 섬에 갈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현빈은 대답이 없었다.짧은 정적이 흐르자, 도균성이 분위기를 살피며 말을 바꿨다.[물론, 그건 소정은 씨 측의 필요일 뿐이고... 저희 배는 맥스 군도 쪽 임무가 남아 있습니다. 섬으로 가는 일정은... 아마 보름 뒤쯤 될 것 같습니다.]여전히 침묵.“그럼... 일주일 후로 앞당길까요?”도균성이 조심스레 물었다.현빈은 낮게 끊어 말했다.“사흘 뒤로 정해. 최대한 빨리 준비해.”“알겠습니다.”짧은 대답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깊은 밤, 도시의 불빛 너머로 바람이 스산하게 스며들었다....새 건물에 입주한 첫날 밤, 모두 깊고 달콤한 잠에 빠졌다.올리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이튿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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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2화

하지만, 바로 그 사진 한 장이 학계 안팎에서 적잖은 논란을 불러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목소리가 훨씬 컸다.[만 교수님, 호주 섬에 가신 건 연구 목적 아니었나요? 왜 휴가를 즐기고 계시죠?][이거 공금으로 떠난 여행 아닌가요?][아, 나도 그때 호주 프로젝트 택할걸! 북유럽 와서 매일 패딩 입고 덜덜 떠는 내 신세...][이런 좋은 프로젝트 어디서 구해요? 나도 끼고 싶다!][역시 교수는 좋겠다. 연구비로 섬에서 휴양이라니. 부럽네.][...]처음엔 만춘미 교수도 이러한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사람들이 부러워할수록, 마음은 괜스레 뿌듯해졌다.‘그래, 이게 어디 쉬운 기회냐. 다들 부러워할 만하지!’하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는 법.익명의 누군가가 학교와 정부 쪽 관련 부서에 곧장 만춘미 교수를 연구 윤리 위반으로 신고했다.그날 밤, 학교 측에서 직접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만춘미 교수는 방에서 울며 뛰쳐나왔다.정은을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놀란 교수들이 허겁지겁 몰려들었다.주광빈 교수가 다그쳤다.“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만 교수님, 말을 해야 알죠! 울기만 하면 어쩌라고요?”전해산 교수도 걱정스레 물었다.“혹시 집안에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괜찮으신 거죠?”만춘미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그런 건 아니에요...”그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은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정은은 그 눈빛 속에서 엄청난 ‘억울함’을 읽어냈다.정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미 짐작이 갔다.“혹시 그 SNS 때문입니까?”오후에 정은도 직접 ‘좋아요’를 눌렀던 바로 그 글.만춘미 교수는 대답 대신 폭풍 눈물을 쏟아냈다.이번에는 마치 2배속으로 쏟아지는 듯했다.정은은 직감했다. 자신이 맞았구나.정은이 손을 내밀었다.“핸드폰 주시죠.”“네?”“주시면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만춘미 교수는 망설였다.“이거... 괜찮을까?”정은은 단호히 말했다.“제가 책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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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3화

[그... 학교가 아무 힘도 안 썼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정은의 거침없는 말에 전해산, 주광빈 교수는 물론 곁에 있던 교수들 모두 식은땀을 흘렸다.‘이제 총장이 폭발하겠구나...’이미 다들 전화기 너머에서 호통이 들려올 거라 각오하고 있었다.그런데 송영한의 목소리는 엉뚱하게도 기어들어갔다.[아니, 학교도 나름대로 예산을 지원했잖아. 돈은 쓴 거라고...]‘잠깐, 뭐라고? 이게 진짜 송영한 총장 맞아?’‘혹시 납치라도 당한 거 아냐? 만약 그렇다면...’‘총장님, 기침이라도 한번 해 보세요. 눈만 멀뚱멀뚱 깜빡이는 건 우리에게 안 보인다고요.’‘...’정은 옆에 있는 교수님들이 다 속으로 많이 놀랐다.정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돈 쓰면 그걸로 끝입니까? 돈을 쓴 뒤, 고작 질투하는 사람들 손에 휘둘려 저희를 겨냥하는 총알이 되시는 겁니까?”“연구비를 지원해 주셔서 저희 거주 환경과 연구 여건이 이렇게 개선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너무 좋아 보인다고 우리를 휴양 온 사람 취급하시겠다? 그게 스스로 발등 찍는 일이 아니고 뭐겠습니까?”송영한은 끝내 대꾸하지 못했다.정은은 더 단호해졌다.“누가 신고했든, 다 똑같습니다. 그건 온통 시기와 질투일 뿐입니다. 우리 연구팀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꼴을 못 보는 자들의 짓이죠.”“학교가 할 일은 뭡니까? 철저히 조사해서, 그 사람들이 다른 불순한 의도를 품은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그리고 국가, 나아가 세계 과학기술 발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라면 싹부터 잘라내야죠.”심지어 ‘국가, 나아가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까지 끌어오니, 단숨에 논의가 최고 수위로 격상돼 버렸다.송영한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졌다. 네가 이겼다, 소정은...’...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정은이 스피커폰을 켠 것도 아닌데, 현장이 워낙 고요하다 보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주광빈 교수가 중얼거렸다.“이...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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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4화

정은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아, 만 교수님께서 총장님 전화를 받으시고 억울한 누명을 쓰셔서, 그 충격에 기절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 교수님에 대해 산업재해 처리까지 신청할 생각입니다.”만춘미 교수는 눈을 크게 떴다.‘나? 기절? 산재? 세상에, 이런 횡재가 또 있나?’송영한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끊겼다.[그, 저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역신고 말이지? 알겠어, 알았다. 그럼 여기서 끊자고.]말을 끝내자마자 송영한은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단 1초라도 더 지체했다가는 정은의 입에서 또 무슨 기상천외한 신청이나 요구가 튀어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그는 순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정은은 핸드폰을 만춘미 교수에게 돌려주며, 한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이제 괜찮습니다. 총장님께서 다시 전화를 거실 일은 없을 겁니다. 혹시라도 전화 오면, 교수님은 바로 끊으시거나 아예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만춘미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정은... 너, 총장님한테 그렇게 말해도 돼? 혹시 불이익 같은 건 안 당하겠니?”정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은 절대 지나친 게 아닙니다. 작게 말하면, 그건 존중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한 게 있는 것처럼 보이겠죠.”만춘미 교수는 순간 멍해졌다. 무언가 깊이 곱씹는 듯한 표정이었다.전해산 교수가 씩씩대며 말했다.“도대체 누가 뒤에서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 거야? 사진 몇 장 찍었다고 신고를 해? 기가 막혀서 원...”주광빈 교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낮게 덧붙였다.“바깥에 있는 적은 무섭지 않지. 진짜 문제는 내부에 벌레가 있을 때야. 그땐 정말 막기 어렵거든.”정은의 시선이 교수들 하나하나를 훑었다.차갑고 강한 눈빛이 닿을 때마다 묘한 압박이 감돌았다.“교수님들 모두 들으셨죠. 저는 이미 역신고를 신청했고, 악의적인 신고자는 끝까지 조사해서 찾아낼 겁니다.”“물론, 저는 우리 내부 구성원들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다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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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5화

정은이 실험 구역에서 나왔을 때, 현빈과 도균성 일행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정은아.”햇살을 등에 진 현빈이 서 있었다. 그 뒤로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배경처럼 깔려 있었고, 하얀 구름과 맑은 하늘은 그저 장식에 불과했다.시선이 마주치자, 현빈은 웃으며 다가왔다.“오빠?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왔어요?”“마침 배가 섬에 들어오길래, 겸사겸사 네 얼굴 보러 온 거지.”말은 가볍게 흘러나왔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다.뒤에서 도균성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정은은 현빈을 새로 지은 건물로 안내하며, 기쁜 얼굴로 건물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설명했다.“제가 올리버 씨와 약속했어요. 저희가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서 생활하고, 귀국하면 건물을 올리버 씨께 드리기로요. 일전에 도균성 선생님을 통해 들여온 자재들이 바로 그 일에 쓴 겁니다.”정은이 차분히 말하는 동안, 현빈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졌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오빠 보기엔 어떠세요?” 정은이 조심스레 물었다.현빈은 잠시 정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건물로 옮겼다.“잘했다. 너다운 선택이야.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지.”“네, 올리버 씨도 무척 만족해하셨어요. 들어가 보시죠. 제가 직접 안내할게요.”“좋다.”건물은 분명 올리버가 현장에서 지켜본 결과물이었지만, 곳곳의 설계와 배려는 정은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교수들의 요구를 세심하게 반영해, 생활부터 연구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히 챙긴 흔적이었다.현빈은 숙소를 둘러본 뒤, 연구팀의 현재 작업 구역도 확인했다. 다만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문 앞에서만 바라봤다.“전에 비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구나.”그는 예전에 오미선 교수를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그 당시 연구팀은 눅눅한 단층집에서 먹고 자며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연구를 이어가야 했다.숨 막히는 공간, 눅눅한 공기, 비좁은 환경.그때 현빈은 직접 돈을 내서라도 연구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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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6화

현빈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겸손이 과하십니다.”그 순간,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내려왔다.사람은 아직 보이지도 않았는데, 먼저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오늘은 뭐가 맛있어요?!”현빈이 고개를 들자, 이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한 사람이 쏜살같이 뛰어 내려왔다.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젊은 남자, 올리버였다.속도가 너무 빨라 멈추려다 보니, 그는 반사적으로 정은의 의자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하지만 손은 의자가 아닌 정은의 어깨를 정확히 움켜쥐었다.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정은은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그 힘에 떠밀려 몸이 옆으로 크게 기울었고, 자칫하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현빈이 재빠르게 팔을 뻗어 정은을 붙잡았다.올리버는 그제야 사태를 깨닫고 허둥지둥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원래는 의자를 잡으려던 건데... 이런, 큰일 날 뻔했네요. 괜찮으세요? 제가 좀 볼게요.”손을 뻗으려는 순간, 현빈이 가로막았다.“정은이 건드리지 마세요.”낮고 단단한 목소리에는 묵직한 경고가 실려 있었다.올리버는 손을 멈춘 채 머쓱하게 웃으며, 아이처럼 풀이 죽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정말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정은은 자세를 바로잡고 손을 흔들었다.“괜찮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다 식겠어요.”그 뒤로 식사 자리는 큰 문제 없이 이어졌다.다만 올리버만 유난히 조용했다.식사 후, 누군가는 낮잠을 청했고 누군가는 산책을 나섰다.정은과 현빈은 바닷가까지 걸어 나왔다.“오빠, 섬에 며칠이나 머무를 건가요?”멀리 바다 위에는 배가 정박해 있었고, 도균성과 동료들이 모여 바비큐를 하는지 배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현빈이 문득 되물었다.“너는 내가 얼마나 머물렀으면 좋겠어?”정은은 순간 놀란 눈빛을 보였다.그러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현빈은 먼저 웃어넘겼다.“농담이야. 오늘 저녁에는 떠나야지.”멜버른의 사업은 그가 직접 돌봐야 했고, 정은 역시 오랜 시간 함께하는 걸 편히 여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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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7화

저녁 무렵, 붉은 노을이 바다 수평선 위에 걸려 있었다.정은은 바닷가까지 현빈을 배웅했다.“돌아가. 앞은 길이 험해서 신발이 젖을 거야.”현빈은 걸음을 멈추며, 정은에게 더는 배웅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알았어요.”정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조용히 말했다.“오빠, 조심히 가요.”현빈은 배에 올라섰다. 돌아보니 정은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은 현빈의 가슴을 세차게 울렸다.‘이런 건 불시에 오는 거구나.’‘마치 연인이 이별하며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처럼.’그러나 곧 스스로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이별은 이별이지. 돌아올지는... 장담할 수 없잖아.’갑판에 선 현빈은 이미 감정을 다잡고 있었다. 선두에 서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이제 들어가.”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방향을 틀자, 그제야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가는 길에, 정은은 올리버와 마주쳤다.그는 자신의 작은 말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매일 점심과 저녁 무렵이면 말에 올라 몇 바퀴씩 섬 주변을 달리곤 했다.“헤이, 셀레나 씨! 오빠가 섬을 떠났나요?”올리버는 고삐를 당기며 천천히 멈춰 섰다.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 무례한 녀석이 드디어 갔군요.”“뭐라고 하셨어요?”“아, 아니에요! 그냥... 재밌는 생각이 나서요!”올리버는 채찍을 살짝 들어 보이며 웃었다.“저랑 같이 말을 타고 갈래요? 여기서 꽤 걸어야 하잖아요. 말 타면 금방이에요, 힘도 덜 들고.”정은은 손을 내저었다.“괜찮습니다.”“아, 아쉽군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올리버는 더 권하지 않았다. 대신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럼 셀레나 씨께 선물을 드릴게요!”올리버의 돌발적인 말에 정은은 잠시 따라잡지 못했다.올리버는 신나게 이어갔다.“같이 작은 집을 지어줘서 고마워요. 사실 이건 할아버지가 제 결혼 선물로 주신 건데, 아직 여자친구는 없지만 곧 운명의 여자를 만날 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말이죠.”정은은 속으로 혀를 찼다.‘호주 사람들은 다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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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8화

“올리버 씨!”정은은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아까 제 질문에 대답하세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올리버는 순간 멈칫하더니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그, 그건... 셀레나 씨처럼 예쁜 외국인 여자애한테 받은 거예요.”...리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다음 날 저녁 무렵 동쪽 끝 바람 섬에서 급히 달려왔다.“정은 씨...”그녀는 온몸이 먼지에 절어 있었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과 초조함이 역력했다.“일단 앉으세요. 급할 건 없어요. 제가 올리버를 불러올게요.”정은은 자리를 뜨기 전 리아를 위해 물 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정은이 올리버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컵은 이미 바닥을 보였고, 리아의 호흡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문은 굳게 닫히고,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올리버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리아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올리버를 똑바로 바라봤다.“그 브로치를 외국인 여자애가 줬다고 했죠?”“네.”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외국인 여자애는 처음엔 자기 나라가 H국이라고 했다가, 또 잠깐은 J국이라고 하고... 아! 맞다! 셀레나 씨 나라 말도 할 줄 알았어요!”“그게...”올리버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럼 그 여자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정은은 입술을 꾹 눌렀다.‘그런 건 진짜 중요하지 않은데...’“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넘어가죠.”“아, 네.”리아가 다시 물었다.“그 여자애를 만난 게 언제였습니까?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아마... 3년 전쯤이었을 거예요.”올리버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제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여자애가 제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어요. 의식은 없었고요.”“그래서 물과 음식을 챙겨 줬죠. 그때 그 아이가 PO-X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아서 약도 먹였습니다.”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몸에 상처는 있었습니까?”“네, 있었습니다!”올리버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온몸에 채찍으로 맞은 자국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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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9화

곧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 한 그릇이 리아 앞에 놓였다.정은은 젓가락을 건네며 말했다.“드세요.”“고마워요.”리아는 허겁지겁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래 굶은 사람처럼 면을 후다닥 삼켰다.“뜨거워요, 천천히 드세요.”정은은 저도 모르게 주의를 줬다.곧 피어오르는 김이 리아의 눈썹과 눈가를 희미하게 가렸다.툭-눈물이 한 방울, 국물 속으로 떨어졌다.정은은 못 본 척 자리에서 일어나, 리아가 비운 컵을 집어 들었다.“먼저 드세요. 물 좀 더 갖다드릴게요.”물이 담긴 컵을 들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라면이 식어서 김은 사라지고 없었다.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방금 눈물은 내 착각이었나...’“배부르네요.”리아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정은이 조심스레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으세요?”“사실... 연구센터에서 바람 섬으로 돌아간 뒤, 몇 가지를 알아냈어요. 막연히 의심만 했는데, 증거가 없었죠.”리아는 브로치를 움켜쥐었다.박힌 다이아몬드가 손바닥을 아프게 찔렀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손아귀에 더 힘을 주어 단단히 쥐었다.이제는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혹시 H국 유씨 가문 알아요?”리아가 정은을 바라봤다.“최상위 학벌 귀족이자 연구 명문가예요. 여러 분야에 뛰어난 인재를 배출했죠. 하린이는 본가 사람은 아니었어요. 본가에서 눈여겨본 뒤, 유순구 같은 쓰레기가 돈으로 사들인 겁니다.”정은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이런 이야기까지 나한테...’궁금했지만 더 캐묻진 않았다.그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리아에게는 숨기고 있던 깊은 상처였다.“하린이는 유씨 가문 본가로 들어간 뒤,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기대 이상으로 뭐든 잘했고, 모든 학문에서 두각을 드러냈죠.”“유씨 가문은 하린이의 가치를 알아보고 투자 규모를 점점 키웠습니다.”“그리고 하린이가 열여덟 살이 되자, 본가 자제 몇 명과 함께 해외 비밀 훈련소로 보냈습니다.”“완전히 엄폐된 합숙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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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0화

“왜 웃으시는 거예요?”정은이 고개를 갸웃했다.리아는 불쑥 정은의 손을 붙잡았다.“솔직히 말해서요, 제가 남자였으면 무조건 정은 씨 쫓아다녔을 겁니다.”정은은 눈이 동그래졌다.“조 교수는 도대체 어떻게 정은 씨를 이렇게 멀리 보낸 거죠? 그 사람, 밥은 넘어가고, 잠은 제대로 자는 건가?”정은은 입을 꾹 다물었다.‘또 시작이네...’“다행히 우리 둘 다 남자를 좋아해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제가 진짜 먼저 정은 씨 차지했을지도 몰라요. 믿겨요?”정은도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농담할 기운까지 있으신 거 보니 이제 괜찮아진 것 같네요.”“그럼요! 제가 좀 고집은 있어도 오래 가진 않아요. 한 번 불붙으면 또 금방 식고, 결국엔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옵니다.”“만약 하린이가 아직 살아 있다면, 날마다 제가 구하러 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더더욱 상대방이 눈치채지 않게요.”리아는 이를 악물었다.‘지금은 참아야 해. 반드시...’“그래서 이미 대책을 세우신 거군요?”정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맞아요.”리아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똑바로 바라봤다.“오늘 이렇게 재워줘서 고마워요.”정은은 코끝을 만지작거렸다.“웬일이에요, 이렇게 예의도 갖추시고. 변 선생님답지 않은데...”“에헴! 아직 끝까지 말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미 받아주셨으니, 작은 부탁 하나 더 들어주셔도 되죠?”‘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정은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리아는 능청스럽게 웃었다.“저 섬에서 나가고 싶어요. 배를 좀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최대한 빨리요.”“알아는 볼게요.”정은은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아침, 정은은 도균성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어제 막 들어왔는데, 다음에 출항하려면 최소 사흘은 걸릴 겁니다.]정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렇겠지...’배를 한 번 띄우려면 식수와 식량을 챙기고,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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