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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061 - Chapter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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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1화

[시연!]전화 너머 유건의 목소리를 불이 난 듯 다급했다. [누굴 부르는 거야? 누가? 왜 널 엄마라고...]“나도 몰라요.” 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순간, 어린 남자아이가 시연의 허벅지를 꽉 끌어안았다. 작은 팔에선 고집과 간절함이 동시에 묻어났다.“엄마!”“나중에 얘기해요. 끊을게요.”[시연!]남자의 초조함을 무시하고, 시연은 과감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가까이서 보니 코 윤곽이 또렷하고, 눈두덩이가 조금 깊었다. 혼혈 티가 아주 진하진 않지만, 눈가가 유독 그랬다.“꼬마야, 잘 봐.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혹시 엄마랑 길이 엇갈린 거야? 여기서 잃어버렸어?”이곳은 강울대병원 본관 1층 로비였다. 만약 여기서 잃어버린 거라면, 안내 데스크로 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엄마!”아이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세게 시연을 끌어안았다.“엄마, 케빈 버리지 마. 케빈 말 잘 들을게.”‘케빈? 이름이 케빈이구나. 그럼 정말 혼혈일 수도 있겠네.’ 시연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말을 건넸다.“케빈.”“응...”“나는 케빈 엄마가 아니야. 아마... 엄마랑 내가 조금 닮았나 봐. 다시 잘 봐봐. 나는...”케빈은 한참을 시연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슬며시 저었다. 곧 눈꺼풀이 축 처지고, 눈가에 물이 맺혔다.“엄마...”‘이건 또 무슨 대형 오해야.’ 시연이 난감하게 눈썹을 모으는 순간.“케빈!”누군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구원의 목소리였다. 시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의외의 얼굴을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레오였다. 숨이 가쁠 만큼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레오? 왜, 여기?’“케빈!” 레오는 가까이 오자마자 쭈그려 앉아 아이를 덥석 안았다.“아빠가 뭐라고 했어. 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랬지. 아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아빠...” 케빈은 훌쩍이며 시연을 가리켰다. “엄마...”“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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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2화

“아... 네...”시연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레오 선생님, 정말 세심한 아버지네요.”‘그런데... 이렇게 좋은 아버지 같아 보이는데...’‘왜 딸이랑은 그렇게 사이가 틀어졌을까?’시연의 머릿속에 대담한 추측이 스쳤다. ‘혹시... 케빈이랑 그날 본 루시는 같은 엄마가 아닐지도?’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레오의 사생활이었다. 시연이 물어볼 일은 아니었다.게다가 케빈이 옆에 있는데, 어린아이 앞에서 어른들의 뒷얘기를 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케빈은 속이 좋지 않은 탓인지, 많이 먹지도 못하고 금세 졸음을 보였다.레오는 아들을 살포시 안아 들고, 룸 구석 소파에 눕혔다. 자기 외투를 벗어 케빈 위에 덮어준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케빈이 엄마를 너무 그리워해서... 실례가 많았지? 대신 사과할게.”“괜찮아요.” 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근데... 케빈 엄마는 어디 계신 거예요?”“나도 몰라.”레오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벌써 꽤 됐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결국 G시까지 오게 됐어.”“아내분이 G시 분이에요?”“응.”레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 온 건... 정말 아내를 찾으려고 왔어. G시에도 없다면...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말을 이어가면서 레오의 미간은 점점 깊이 주름졌다.“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만 지낸 지 오래였거든. 그래서... 혼자 밖에 있으면 잘 못 버틸까 봐... 그게 제일 걱정 돼.”시연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레오 말만 들어서는... 그 아내라는 사람이 루시 엄마 같지는 않은데...’루시가 말했던 어머니는 레오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심지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는 표현까지 썼다.‘하... 남자란, 다 거기서 거기인가?’‘남자는 누구나 한 번쯤 바람을 피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겉으로만 보면, 전혀 그런 사람 같지 않은데...그렇다고 지금 같은 사이에서, 시연이 레오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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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3화

시연은 유건을 보지도 않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곧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유건은 온갖 물음표를 머리 위에 달고 뒤따라갔다. 그리고 참다못해 말했다.“나한테... 할 말 없어?”“무슨 말이요...?”유건의 눈이 동그래졌다.‘와, 표정 하나는 조이랑 판박이네.’시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네가 물어본 거니까, 나도 할 말 다 한다?”유건이 입을 열자마자 질투가 쏟아져 나왔다.“그 꼬마, 어디 애야? 왜 널 엄마라고 불러?”시연은 ‘역시 이거구나’ 싶어 피식 웃었다.“내 나이에 조이를 낳았다면, 좀 빠르지 않아요?”뜻밖의 질문에 유건은 잠시 멍해졌다.하지만 솔직히, 시연 나이에 조이를 낳았다면 꽤 이른 편이었다. 요즘이라면, 시연 또래의 여자들은 아직 연애 초반이라 눈치만 보는 시기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유건도 금세 눈치를 챘다.시선을 슬쩍 피하며 중얼거렸다.“응, 빠르지.”“그렇죠?”시연은 유건이 눈치를 챈 걸 보고 덧붙였다.“오늘 만난 그 애, 여섯 살은 훌쩍 넘었어요. 내가 그럴 능력이 있겠어요?”“크흠...”유건은 헛기침하며 스스로도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그리고 투덜거리듯 말했다.“참,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바보 같은 꼬마가... 예쁜 누나를 보자마자 엄마래.”시연은 대꾸하지 않고, 유건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당신... 보조기 찬 채로 얼마나 서 있었어요?”유건이 순간 눈을 피했다.시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설마... 전화 끊고 나서 지금까지 이러고 서 있었던 거예요? 내가 올 때까지?”“잘못했어!”“허...”시연은 비웃듯 코로 웃었다.“사과는 빠른데, 애초에 잘못하지 말았어야죠.”말을 마치며 유건의 등을 밀었다.“자, 얼른이요! 위로 가요!”“응.”...밤.유건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이호민이었다.‘혹시 또 할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진 건가?’‘아니면... 고장민이 또 본가에 간 건가?’전화를 받는 순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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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4화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레오는 시연이 부명주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오랜 동창 사이에, 전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유건은 확신했다. 레오는 알고 있다.아니, 그보다... 레오가 시연 앞에 나타난 방식이 너무 부자연스러웠다.마치 짜인 각본처럼, 아무 예고 없이 등장했으니까.‘내 추측이 맞다면...’‘레오가 이렇게 판을 짠 목적은 뭘까?’‘레오가 시연에게 유난히 잘해 주는 이유가, 단순히 옛 동창의 딸이라서?’그렇다면, 부명주와 레오의 관계는 절대 얕지 않았다.그리고... 레오가 시연에게 다가온 이유도, 단순할 리 없었다.모든 의문이 하나로 이어졌다.‘레오,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유건은 곱씹을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레오는 위험한 사람이다.[도련님?]이호민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다시 들렸다.“집사님.”유건은 심호흡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그 레오가 맞아요. 계속 조사하세요.”[네, 도련님.]...전화를 끊자, 욕실에서 물소리가 멎었다.곧 시연이 수건 모양 드라이 캡을 쓴 채 파자마 차림으로 나와, 화장대에 앉아 스킨을 두드렸다.“시연아.”유건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건 최소한 경계는 하게 만들어야 할 문제였다.“네?”시연은 거울을 보며 스킨을 바르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할 말이 있어. 네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뭔데요?”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유건은 거울 속 시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너희 어머니, 예전에 CA국에서 유학하신 적 있어?”시연이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맞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근데 왜 갑자기 우리 엄마 얘길 해요? 혹시... 우리 엄마를 조사했어요?”‘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이대로 가다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싸움부터 나겠다 싶어서, 유건이 먼저 말을 잘랐다.“그럼, 너희 어머니랑 레오가 대학 동창이었다는 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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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5화

“맞아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유건이 던진 의심의 실마리를 따라가다가, 시연은 미간을 좁히며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당신 말은... 레오가 우리 엄마랑 원한이 있었다는 거예요?”부명주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그 앙금을 놓지 못하고, 부명주의 딸인 그녀에게까지 그 감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가?‘이게 말로만 듣던 자식까지 빚을 갚는 거야?’시연은 차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도대체 얼마나 큰 원한이길래요?”‘우리 엄마가 레오 집안의 조상 묘라도 파헤쳤단 말이야?’“근데... 아닌 것 같아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레오는 날 해친 적이 없어요.”아무리 수상해 보여도, 그 사실만큼은 변함없었다.그가 뭔가를 숨기고, 일부러 다가왔을 가능성은 있어도, 지금까지 시연에게 준 건 해가 아니라 도움뿐이었다.“보다시피, 난 멀쩡하잖아요.”“응.”유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너희 어머니와 레오 사이의 얽힘을 풀어야 답이 나오겠지.”시연은 말없이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눌렀다.머리가 아팠다.‘왜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가는 거야...’“걱정하지 마. 집사님이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유건은 시연이 힘들어하는 표정이 싫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마지막엔 그냥 오해였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어. 네가 조금만 조심하면 돼.”“네.”시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이제 늦었다.”유건은 시연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며 말했다.“자자.”“네.”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쪽으로 가서 이부자리를 폈다.다친 유건이 혹시라도 다칠까 봐, 요 며칠은 같은 침대에 누워도 떨어져 자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건은 눈을 가늘게 떴고, 가슴속이 답답해졌다.“나 이제 거의 다 나았는데...”말뜻은 분명했다. ‘굳이 계속 떨어져 잘 필요 있나?’“좋아졌다는 걸 본인이 결정해요?”시연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이불을 정리하고, 휙 젖혀 들어가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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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6화

의사는 이내 시연과 진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신경 반사 실험을 골라 보여주기도 했다.“두 분도 잘 아시겠죠? 확실히 이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의사는 한 손으로 은범의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손을 그의 눈앞에서 움직였다. “보세요!”‘이럴 수가?’시연과 진아는 의사의 손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은범의 눈동자를 보았다.아직 느리긴 했지만, 분명 움직였다. “허허...”의사는 웃으며 말했다.“눈은 중추신경계 시신경으로 통제됩니다. 상당히 좋은 진전이죠.”한마디로, 은범은 분명히 들을 수 있고, 인지할 수 있다는 거였다.깨어날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시연.”감격한 진아가 시연의 손을 꽉 잡았다.은범과 시연을 위해 아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시연은 눈가가 촉촉해졌다.“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두 분이 곁에 있어 주세요. 말도 많이 걸어주시고요.” “네.”의사가 떠나자, 두 사람은 은범을 향해 다가갔다. “고마워, 은범아.” 진아는 은범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다 듣고 있지? 얼른 일어나. 너무 오래 잠만 자니까 걱정되잖아. 깨어나서 멍한 표정 지으면, 잘생긴 얼굴만 남게 되겠지?” “진아야...”“히히.”진아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전에 없던 미남인 건 맞잖아. 물론,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G시에서 은범이가 제일 잘생겼어!” “정말...”시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웃어?” 진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잘생긴 것도 능력이거든?”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은범이랑 애기 좀 해. 나는 화장실 다녀올게.” “나도 갈래.” 시연이 탁자 위의 물 주전자를 들며 말했다.“물이 다 떨어졌어. 사모님한테 물 좀 떠달라고 해야겠어.” 두 사람은 함께 방을 나섰다. 그때, 강수희와 노수철은 주방에서 은범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마침 노수철이 쉬는 날이라, 간호사에게 휴가를 주기로 했다. 두 사람은 바삐 움직이며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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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7화

그 장면을 생각하자, 노수철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깊게도 생각했네. 시연이랑 상의는 해본 거야?” 순간, 강수희의 표정이 멍해졌다.“그건... 아직이요.” “어?”노수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상의 안 했다고? 그럼 얘기도 안 해보고, 혼자 생각한 거야? 일방적으로?” 강수희는 곧장 남편을 노려보았다.“이게 왜 일방적인 거예요? 당신은 시연이가 은범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안 보여요?” “보이지. 하지만...”“‘하지만’이라뇨!”강수희는 듣기 싫다는 듯 노수철의 말을 끊었다.“우리 은범이가 왜 이렇게 됐는데요? 멀쩡하던 청년이, 그 아이 때문에 목숨을 걸었어요! 그러다 침대에 3년이나 누워 있었다고요! 20대, 꽃 같은 나이예요!” 순간, 목이 메기 시작했다. “당신, 아직도 울컥하는 거야?”노수철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시연이가 동의하지 않을까 봐 그러지. 괜히 헛된 기대가 될까 봐...”“뭐요?”순간, 강수희가 낮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우리 아들은 시연이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그런데 동의하지 않는다니, 그게 양심 있는 사람이에요?!” 순간적인 분노가 치밀자, 강수희는 가슴을 꾹 누르며 숨을 가다듬었다. “진정해!”노수철은 급히 아내를 부축했다.“그래, 당신 말이 맞아! 시연이는 양심 없는 아이가 아니야. 은범이랑 시연이는 반드시 행복하게 지낼 거야!” “당연하죠!”강수희는 이를 악물고 남편을 노려봤다.“내 아들은 시연이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그런데도 양심 없는 짓을 한다면... 좋은 꼴은 못 보게 될 거라고요!” 그 순간, 그녀가 문득 고개를 돌리며 주방 밖을 바라보았다.“누구지?” 발소리가 들리더니, 시연이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사모님, 저예요. 물 좀 담으려고요.” 강수희는 빙그레 웃으며 다가가 주전자를 받았다.“역시 세심하네. 난 물이 떨어진 줄도 몰랐어.” 그녀는 물을 가득 담아 시연에게 건넸다. “자, 얼른 은범이한테 가 봐. 말도 많이 걸어줘. 의사가 그러는데,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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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8화

유건은 시연이 은범을 찾아간 걸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돌아온 뒤에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당연히 은범 때문이라 생각했다.“아니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은범이는 괜찮아요.” “아.”유건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럼 피곤한 거네. 어서 위층에 올라가서 쉬자.” 시연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이끌려 안방으로 들어섰다. “옷부터 챙기고, 샤워 시켜줄게요.” 유건의 상처는 이미 아물어서 간단한 샤워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드레스룸으로 가려 했지만, 유건이 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급할 거 없어.”유건은 그녀를 끌고 소파에 앉았다.“아직 이르잖아. 얘기 좀 하자.” “그래요.”시연은 그저 담담히 말했다. “시연아.”유건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골동품을 다루듯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내 몸이 회복되는 대로, 지한이한테 일정 잡으라고 할게. 우리, 조이 데리고 여행 가자.” 순간, 시연은 당황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넌 어디 가고 싶어?”유건은 신이 난 것 같았다.“어느 나라로 가는 게 좋아? 난 어디든 좋아. 조이는 아직 어리니까 분위기만 즐길 거야. 난 네 의견에 따를게.”문득 그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신혼여행도 못 갔었잖아. 이번에 만회하자! 그때는 조이가 네 배 속에 있었지만, 이젠 태어났으니까 더 편하잖아...”유건의 입이 열리고 닫히며 낮게 이어지는 목소리.시연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유건 씨!”시연이 갑자기 유건을 불렀다. “응?”유건은 살짝 놀랐다.시연이 이렇게 부르는 건 드문 일이었으니까.하지만 기쁘긴 했다. “나 여기 있어.”시연은 입을 열었다가 몇 번이나 말을 삼켰다. 유건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무슨 할 말 있어?” 그녀는 결국,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우리가...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이 말에, 유건의 얼굴이 굳어졌다. 입술도 떨리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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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9화

유건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턱은 굳게 다물렸다.“내가 널 실망시켰구나.” 시연은 부정하지 않았다.“솔직히 말하면, 그랬죠.” 순간, 유건의 가슴이 내려앉았다.“그럼 지금은? 나도 아직 부족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더 노력할 거고...”“아니요.”“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나한테 잘해주는 것도, 다 알아요.” ‘그럼 뭐가 문제야?’유건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시연의 손을 잡고 절박하게 말했다.“이렇게 된 거, 그냥 내 옆에 있어 줘. 평생 네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면서 살게. 제발, 응?” “유건 씨.”시연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고, 가볍게 손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당신은 예전의 고유건이 아니에요. 지금의 당신은 정말 나아졌어요. 하지만, 나도 더 이상 예전의 지시연이 아니에요. 지금의 나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졌어요.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한때는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확실하고, 어쩌면 세월이 흐르며 더 빛날지라도... 시연은 더 이상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말에, 유건은 숨이 멎은 듯 굳어버렸다.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유건 씨.”시연은 그의 눈동자에 서린 슬픔을 읽어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리슬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만!”굳어 있던 유건이 이 한마디에 폭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하...”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집안도 당신이랑 잘 어울리고, 예쁘고... 무엇보다 당신을 좋아하잖아요.”“왜, 중매라도 서고 싶어서?” 유건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그런데 어쩌지? 난 그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데.”순간, 그는 시연의 허리를 감싸 품 안에 가뒀다.“중매하려면 남자 측 취향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시연은 눈썹을 찌푸린 채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아요? 당신, 예전엔 나도 안 좋아했잖아요.” 두 사람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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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0화

“아니에요!”시연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진심이에요. 당신이 다치길 원하지 않는다고요!” “그래?” 유건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왜 내가 다치길 원하지 않는데?” 순간,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아직 안 끝났어?’ 남자는 멈추지 않고 걸음마다 그녀를 이끌며 말했다.“몰라서 그래? 아니면, 말을 못 하겠어? 그럼 하나만 묻자. 나를 아껴서 그런 거지, 응?” 시연은 답답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 입으로 말해, 내가 걱정된다고!” 유건은 고개를 숙이고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읍...”시연의 동공이 흔들렸다.그 순간, 유건이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이내 표정이 굳더니, 손을 번쩍 들어 가슴을 움켜쥐었다.“왜 그래요?”시연은 가슴이 내려앉았다.‘불길해.’ “허.” 유건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뭐?’‘괜찮긴, 뭐가? 뭔데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봐요!”그의 가슴에 손을 대자, 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함부로 힘주지 말랬죠?! 몇 살인데 말을 안 들어요? 조이는 세 살이지만, 당신은 서른이잖아요!” 가슴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괜찮아.” 유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안 죽어.” 시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런 말만 할 거면, 입 다물어요!” “치.” 유건이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화를 내? 터지면 터지는 거고, 피 나면 피 나는 거지. 어차피 넌 걱정도 안 하잖아.” ‘이 사람이 진짜...’순간, 시연은 말문이 막혔다. 갓 아문 상처가 터진 거라 두 바늘은 꿰매야 할 터였다. 마침 그녀도 상처를 꿰맬 줄 알고, 집에 봉합 도구도 있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마취약이 없었다.“병원에 가요.”시연은 허리를 굽혀 유건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유건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의사가 왜 이렇게 됐냐고 하면, 뭐라고 말하게?” ‘못 참고 그 일을 했다고 할 순 없잖아?’시연의 얼굴이 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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