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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511 - Chapter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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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1화

아침을 먹고 나서, 시연과 은범네 식구들은 곧바로 집을 나섰다.이날 일정은 꽤 빡빡했다.결혼식을 G시에서 치르게 된 것에 대해 강수희는 내내 미안해했다.“시연, 너 참 고생 많다.”그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노씨 집안에서 은범은 하나뿐인 아들이며, 게다가 잃었다가 되찾은 귀한 자식이었다.그래서 강수희는 원래 더 크고 성대한 결혼식을 꿈꿨다.하지만 은범의 몸 상태가 문제였다.몇 년의 혼수상태 기간이 있었고, 지금도 회복기.비행기를 타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누가 봐도 모험이었다.결국 선택지는 G시뿐이었다.“정말 괜찮아요. 저는 상관없어요.”시연은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결혼식이 얼마나 힘든지... 시연은 이미 한 번 겪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만약 은범네가 고집하지 않았다면, 시연은 더 단순한 결혼식을 원했을 것이다.강수희는 그런 시연의 태도가 정말 고마웠다.그래서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너처럼 사리 분별 잘하는 애도 없다. 우리 은범이가 복 받은 거지.”식장 답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시연은 별로 고칠 게 없다고 했지만, 강수희는 여기저기 지적하고 수정 요청을 쏟아냈다.은범과 시연은 눈만 마주치고, 괜히 웃음만 흘릴 뿐 아무 말도 못 했다.점심 무렵엔 호텔에서 시식이 있었다.역시나 예상대로 강수희는 또다시 의견을 잔뜩 냈다.매니저는 거의 직각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예,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부 수정하겠습니다.”“아이구.”강수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내가 괜히 까다롭게 굴려는 게 아니라, 결혼은 인생의 대사잖아. 어떻게든 완벽하게 시키고 싶어서 그래. 미안하게 됐네.”“아닙니다. 사모님 말씀 맞습니다. 전혀 힘든 일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죠.”“그래, 그러면 됐고.”메뉴 시식을 마치니 이미 두 시가 다 되어 있었다.“시간 늦었다. 이제 신혼집 보러 가자. 인테리어 업체랑 약속했어. 늦으면 사람 기다리게 하잖아, 얼른!”그렇게 모두 다시 급히 ‘은빛빌’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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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2화

“좋지.”은범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너는 긴 머리도 짧은 머리도 다 잘 어울려. 근데... 아무래도 긴 머리가 너한테 더 잘 맞는 것 같아. 시연아, 나랑 결혼하는 거... 행복해?”시연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잘 얘기하다가 갑자기 웬 이런 질문이야?’“행복하지. 왜? 내가... 안 행복해 보였어?”은범은 고개를 저었다.“그런 뜻은 아닌데... 그냥... 여자들은 결혼 앞두고 불안해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한다길래...”“뭐, 그럴 수도 있지.”시연은 커피를 감싸 쥐고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근데 난 아니야.”시연은 고개를 들어 은범을 똑바로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우리 서로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제일 잘 알지. 우리 둘 사이엔 맞춰가는 과정도 필요 없잖아. 어차피 잘 지낼 거고. 그래서 난 불안하지 않아.”둘은 한동안 말없이 눈을 맞췄다.은범은 시연의 말이 모두 진심이라는 걸 단번에 느꼈다.시연은 억지로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단 1%도.은범의 마음은 뜨겁고 부드러워져서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그는 손을 뻗어, 아주 천천히 시연의 손을 감싸 쥐었다.“고마워, 시연. 정말... 고마워.”“뭐가...? 너 오늘 왜 이렇게 이상해?”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의아해했다.“응?”은범이 눈썹을 한 번 끌어올렸다.“나... 결혼 전 불안증 온 것 같아.”“하?”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곧바로 뾰로통한 척하며 말했다.“왜? 내가 너한테 큰 부담이야?”“아니, 절대 아니고...”은범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낮게 숨을 내쉬었다.“오히려 반대야. 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너를 가지게 됐어. 그게 너무 좋아서... 혹시라도 내가 그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너’를 잘 못 챙기면 어떡하나... 그게 무서워.”순간, 시연의 코끝이 뜨거워졌다.“진짜... 그럼 더 노력해.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알아들었어?”“응.”은범은 잔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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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3화

“시연아.”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은범이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시연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은범.”“오래 기다렸어?”은범은 다가오자마자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나오기 전에 일 좀 생겨서... 백일재가 처리를 못 하길래 내가...”“괜찮아.”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내가 뭐라고. 일은 일이지. 가자.”...샵 안으로 들어가자, 시연은 피팅 룸으로 들어가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은범은 밖에서 기다렸다.“다 됐습니다.”매장 직원이 커튼을 스르륵 열며 환하게 웃었다.“신랑분, 보세요. 신부님 정말 예쁘시죠?”커튼이 천천히 열리는 순간, 정중앙에 서 있는 시연.두 손을 앞에 모으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커다란 눈동자가 빛났다.“은범, 어때? 예뻐?”“예... 예쁘지.”은범은 원래 앉아 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 있었다.시연을 본 순간, 그는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리고 천천히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시연도 조용히 손을 올려 은범의 손을 잡았다.은범은 고개를 숙여 시연의 이마를 맞대듯 가까이하고, 낮게 속삭였다.“시연... 너무 예뻐. 진짜... 미친 듯이 예뻐.”“고마워.”시연도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변을 힐끔 보았다.“여기서 이러지 마. 사람들 보잖아.”“상관없어.”직원도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여긴 웨딩샵이라 다들 달달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히려 안 그러면 이상하죠.”그러고는 곧바로 물었다.“두 분, 어디 불편하거나 수정하고 싶은 부분 있으세요? 사이즈나 디테일 같은 부분요.”시연은 은범을 바라봤다.“난 괜찮은데... 이거 네가 디자인한 거잖아. 너는? 마음에 들어?”“응, 아주.”은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제작 과정에서 수십 번은 의견을 조율했으니, 더 고칠 부분이 있을 리가 없었다.은범이 되물었다.“근데 넌? 너는 좋아?”“좋지.”시연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내가 왜 그런 걸 고민하겠어?”은범이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는 시연의 취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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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4화

은범과 시연은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치르지 않았다.하지만 요즘 들어 은범은 자꾸만 시연을 ‘부인’이라고 불렀다.전통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결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나 다름없었기에 은범이 그렇게 부른다고 해도 틀린 건 아니었다.차가 달리기 시작한 뒤, 시연은 점점 의아해졌다.이 길은... ‘은빛빌’로 가는 길이었다.은범이 시연을 은빛빌로 데려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웨딩드레스를 입힌 채, 그렇게 신비롭게 구는 건 좀 이상했다.결국 차는 은빛빌로 들어갔다.은범은 차를 세우고 내려와 시연 쪽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도착했습니다, 부인님... 천천히 내리세요.”이번에는 도와줄 직원도 없어서 시연도 스스로 드레스를 들어야 했다.둘이서 함께 웨딩드레스 치마를 받치며 현관까지 조심스레 들어갔다.그런데 거실 안엔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집 안은 완전히 새롭게 꾸며져 있었고, 예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였다.은범은 시연의 손을 놓고 양팔을 펼치듯 말했다.“어때? 완전히 달라졌지? 마음에 들어?”시연은 천천히 둘러보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응. 마음에 들어.”“여기 봐.”은범은 거실 한가운데 있는 큰 소파를 가리켰다.“소파 새로 바꿨어. 러그도. 나중에 조이랑 바닥에서 같이 놀 수도 있고... 그리고...”이번엔 벽 한 면을 거의 차지하는 대형 TV.“앞으로는 네가 좋아하는 외국 드라마, 실컷 볼 수 있어.”“응. 좋네.”거실엔 여백이 넓게 남아 있었다.은범은 설명을 덧붙였다.“조이는 아직 어려. 아이들 뛰어다니니까 너무 많이 채워두면 다치거든.”“응...”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가가 아릿하게 뜨거워졌다.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은범이 하는 모든 말은 ‘우리의 미래’였고, 그 모든 문장에는 ‘조이’가 빠져 있지 않았다.“이리 와.”은범이 손을 잡아 시연을 소파에 앉혔다.그제야 시연은 여기에도 작은 화롯불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네가 좋아하잖아.”은범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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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5화

시연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그러다 결국 못 참고 살금살금 주방으로 기어들어 갔다.“도와줄 거 있어?”“없어.”은범은 조리대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재료 손질은 가사도우미 이모님이 미리 해놓고 가셨어. 남은 건... 네가 그다지 자신 없는 것들이지.”“쳇.”시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더 말은 안 했다.“가서 쉬어. 기다리기만 하면 돼.”“그래, 알았어.”도저히 낄 자리가 없는 걸 보고, 시연은 어쩔 수 없이 ‘손 놓고 먹기만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수고해요, 노 셰프님.”“네가 많이 먹어주면 그게 제일 큰 보답이야.”“흥.”시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그런 건 내가 잘하지.”주방에서는 은범이 바쁘게 움직이고, 거실에서는 시연이 화롯불에 손을 쬐며 앉아 있었다.조용하고 따뜻한 시간.화로 위의 간식이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시연은 일부러 많이 먹지 않았다.이따 메인 음식을 못 먹을까 봐.“시연.”은범이 부르는 소리에 시연은 바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밥 됐어!”“간다, 간다!”식탁 앞에 서자 메뉴가 과하게 많진 않았다.둘이 먹을 만한 양만 딱 맞춰져 있었다.완전 가정식도 아니고, 완전 서양식도 아닌... 딱 은범 스타일.냄비엔 붉은 스튜 같은 따끈한 국물 요리.뼈 있는 소고기 조각, 채소들이 푹 익어 있었다.작은 접시에 담긴 초록색과 흰색의 채소들.그리고 시연이 좋아하는 살짝 매운 황태구이 한 접시.앞에는 흰 쌀밥 한 그릇.시연이 들어왔을 때 은범은 촛대를 꺼내는 중이었다.그는 촛대를 식탁 가운데에 놓더니 손짓했다.“앉아.” “응.”시연이 앉자 은범은 촛불을 켰다.그런 다음 다이닝룸 불을 끄고 거실의 은은한 불빛만 남겼다.촛불만 두고 먹기엔 딱 알맞은 밝기.시연은 작게 감탄하며 웃었다.“분위기 괜찮네.”“응.”은범은 자리에 앉아 와인을 꺼내 두 잔을 채웠다.“와인까지 있네?”시연은 두 손으로 잔을 받으며 웃었다.“우리 둘이 새집에서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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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6화

은범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거실로 가서 오디오를 켰다.흘러나온 것은... 부드러운 왈츠였다.은범이 천천히 시연 쪽으로 걸어와 손바닥을 위로 펼친 채 내밀었다.“May I?”‘나보고 춤추자는 거야?’시연은 순간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너 아까 먹어서 배부르다며. 딱 좋지? 몸도 좀 움직이고, 소화도 되고.”“흥.”시연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자기 손을 은범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Why not?”은범이 손을 살짝 끌어당기자, 시연은 자연스레 일어나 그에게 이끌려 거실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같은 학교에 다녔다.서로 인생의 한 구석 같은 존재였다.첫 왈츠도 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던 새해 행사 때였다.그때 행사는 정말 단출했고 조금은 어설펐지만, 젊었던 시절의 그들은 그런 걸 몰랐다. 부족함보다 설렘이 더 컸으니까.이제 와서 떠올리면, 그 어설픈 장면들은 희미하고, 오직 반복될 수 없는 기대와 기쁨만 또렷했다.꽃은 다시 피어도 사람의 청춘은 다시 피지 않는다.비록 오래 춤을 추지 않았지만, 음악이 흐르자 두 사람의 발은 자연스럽게 맞춰졌다.시연은 은범의 손에 이끌려 살짝 이동하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기도 하고, 점점 몸이 풀리며 예전 감각이 되살아났다.따뜻한 난방이 돌고 있는 집 안에서 곡이 끝날 즈음엔 시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이제 진짜 소화되네. 나 땀났어...”시연이 웃으며 말하자 은범은 급히 말했다.“내가 휴지 가져올게.”“아니야.”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조금인데, 뭐. 괜찮아. 너 앉아 있어. 내가 부엌 정리할게.”“안 돼.”이번엔 은범이 시연의 두 손을 붙잡았다.“그냥 놔둬. 내일 이모님 오셔. 그리고... 나 너한테 할 말 있어.”“뭔데?”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궁금함 반, 불안함 반.“말해 봐.”“시연.”은범은 고개를 숙인 채 시연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따뜻한 손.하지만 이상하게도 떨리고 있었다.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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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7화

“근데...”시연은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 흔들리는 끝말을 바라보았다.“뭐...?”그 순간 시연의 표정은 은범의 마음을 너무 따뜻하게, 그리고 너무 아프게 만들었다.은범은 안다. 이 순간 자신이 마음만 굳게 먹으면 오랫동안, 너무 오래 바라왔던 ‘손 뻗으면 닿는 행복’을 그대로 붙잡을 수 있다는 걸.대학교 때부터, 아니, 더 이전부터... 은범이 바라온 건 바로 이 장면이었다.하지만 그는 자기 욕심 하나만 보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시연 앞에서는 더더욱.“근데, 시연...”눈물로 젖은 시연의 얼굴을 보며 은범의 심장은 그대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시연이 아파서 아프고, 자신이 아파서 또 아팠다.“너...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응...?”시연은 순간 멍해졌다.그리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느껴져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고유건 대표.”은범은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꺼냈다.“고 대표는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걸... 다 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고 대표가 줄 수 있는 것 중에... 내가 줄 수 없는 게 있어.”“은범아...”“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잖아.”시연의 숨이 멎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반박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도 몰랐다.“은범아...”그 이름밖에 나오지 않았다.눈물이 얼굴을 타고 쉴 새 없이 흐르는데, 손은 떨리고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데, 말은 나오지 않았다.“시연.”은범은 시연의 턱을 감싸며 고개를 들게 했다.“CA국에서 있었던 일... 나 다 알고 있어.”‘뭐...?’시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은범이... 어떻게 알아...?’CA국에서 있었던 일은 두 사람 사이의 가장 민감한 일이었다.시연이 돌아온 뒤, 은범과 그녀는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너... 어떻게...”“네가 돌아오기 전에 네 아버지가... 날 찾아왔어.”‘아버지...? 레오가...?’시연은 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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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8화

하지만 시연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마치 은범의 말을 못 들은 사람처럼.“하...”은범은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을 흘리고, 먼저 차에서 내려 시연 쪽 문을 열어주었다.시연은 아직도 갓 맞춘, 갓 수령한, 은범이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자.”은범은 팔을 내밀었다.“내려.”시연은 이를 악물고 남자의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현관 앞에 서고 나니 시연은 차마 집 쪽으로 돌아서지 못했다.“은범아...”시연은 은범의 손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 고개를 돌려 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걸로 자신과 은범의 모든 게 끝난다는 걸...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들어가.”은범은 시연의 손을 하나하나 떼어냈다.힘을 쓰지도 못하고 상처 낼까 봐 조심조심 떼어내며 말했다.“네가 들어가는 거 보고... 그다음에 갈게.”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손도 놓지 않았다.그저 눈이 젖은 채 은범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내가 들어가면... 은범은 어떻게 되는 거지...?’‘결혼식은? 호텔은? 가족들은...?’이런 것들은 사실 그녀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시연이 가장 감당할 수 없는 건... 은범의 미래였다.사람들은 흔히 말한다.누구 하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하지만 시연은 안다.은범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시연 때문에 아팠던 적이 있었다.아주 깊고, 아주 심하게.“괜찮아.”은범은 시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이번엔... 예전이랑 달라. 시연, 나 믿어...”“네가 깨고 난 뒤로, 넌 내 곁에 있어 줬고 내 재활도 함께 했고... 우린 결혼 얘기도 했지. 근데 난... 이제 진짜... 내려놨어.”‘정말...?’시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십몇 년을 끌어온 마음이... 죽다 살아나는 순간에도 버리지 못한 마음이...’‘레오 말 몇 마디에 정말 내려놓아지는 건가...?’물먹은 듯 촉촉해진 눈으로 시연은 은범을 가만히 바라봤다.아무 말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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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9화

시연이 돌아오지 않자 진아는 1층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소파에 기대어 TV를 켜놓았지만, 졸음이 쏟아지던 그때, 현관 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시연, 왔어...?”진아는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거실은 큰 조명을 켜지 않아 어둑했다.그 안에서... 입구에 서 있는 시연.하얀 웨딩드레스.풍성한 자락이 바닥에 고요하게 퍼져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와...”진아는 절로 감탄했다.“진짜... 예쁘다. 그거, 네 웨딩드레스야?”“응...”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범이 디자인한 거지? 와... 진짜 천재네.”진아는 감탄하며 조금씩 가까이 갔다.그러다 시연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왜 그래?”들어온 순간부터 시연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말도 없었다.표정도 보이지 않았다.“시연?”진아는 웨딩드레스 자락을 피해 시연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그리고 그제야 보였다.시연의 얼굴.부은 눈.젖은 볼.마스카라조차 다 번질 만큼 계속 흐른 눈물.진아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시연의 손을 잡았다.그 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시연? 무슨 일이야? 은범은? 너희 오늘 같이 있었잖아. 은범이 데려다준 거야?”“진아.”시연은 천천히 눈을 움직여 진아를 바라봤다.그러자마자 다시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오늘 하루 종일 마르고 나면 또 흐르고, 말라갈 틈도 없이 또 쏟아지는 그런 눈물.“흑...”시연은 갑자기 진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마치 빠져 죽기 직전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사람처럼,절박하고도 강하게.“나... 나... 나 진짜 나쁜 사람 같아...”“응...?”진아는 멍해졌다.그리고 바로 직감했다.이건... 분명 은범과 관련된 일이라고.“너네... 무슨 일 있었어?”“흑...흑... 우리... 우리 헤어졌어... 은범이가... 헤어지자 그랬어... 결혼식도 없어졌어... 우리... 끝났어...”말이 이어질수록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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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0화

진아는 손을 뻗어 진동하는 시연의 핸드폰을 꺼냈다.화면에 뜬 이름은 은범이었다.[시연, 집 들어갔지? 일찍 쉬고. 잘 자.]그 짧은 문장을 본 순간, 진아의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넘쳤다.시연은 핸드폰을 움켜쥔 채 손가락이 덜덜 떨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은범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평소처럼 따뜻하지 않았다.“은범아...”시연은 겨우 목에서 소리를 밀어냈다.“나... 도착했어... 잘... 잘 자...”[응, 잘 자.]잠시 정적.그리고 은범은 아주 낮게 말했다.[그리고... 앞으로 하는 일마다 잘 되길.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그 말에 시연은 입을 틀어막았다.소리를 내면 진짜 끝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겨우겨우 숨을 고르고 말이 끊어질 듯 이어 붙였다.“너도... 앞으로 좋은 날만... 순탄하게... 행복하게 살아...”그다음... 은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초, 2초... 끝내 아무 말도...그리고...툭-통화가 끊겼다.“진아...”시연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진아 품으로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진아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시연을 꽉 안아주었다.밤, 집 안의 시간은 울음만으로 흘러갔다....다음 날.시연이 눈을 뜨고 보니, 어디가 어딘지조차 알 수 없었다.몇 시인지, 언제 잠들었는지... 어떻게 방에 올라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희미하게... 진아가 얼음팩을 가져와 자신의 눈 위에 올려둔 장면만 어렴풋했다.그게 아니었으면 아침에 눈이 안 떠졌을지도 모른다.세수하고 내려가니, 진아는 이미 1층에 있었다.헬스방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매일 아침 러닝머신에서 1시간 걷는 건, 시연이 진아에게 꼭 지키라 한 것.체력이 괜찮을 때 미리 쌓아 두지 않으면, 나중엔 걷고 싶어도 못 걷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일어났어?”“응.”“나 씻고 올게. 조금 있다가 같이 아침 먹자.”“그래.”잠시 후,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요리사가 끓인 개운한 국물, 조금 맵게 간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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