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951 - Chapter 960

1004 Chapters

제951화

급박한 순간, 유건은 고개를 숙여 시연의 입술을 덮쳤다.시연은 마치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숨통을 찾은 사람처럼,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바로 눈앞에 커다랗게 다가온 남자의 잘생긴 얼굴.‘누구야...?’시연은 마치 유건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격하게 몸부림쳤다.“읍...!”두 손으로 유건을 마구 밀어내며 주먹으로 그를 때리기까지 했다.“왜 그래?”유건은 황급히 입술을 떼었지만, 여전히 시연을 품에 안은 채 여자의 뺨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그리고 손끝이 닿는 곳은 모두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유건은 이마를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악몽 꿨어? 무슨 꿈이었어?”시연은 멍한 눈으로 유건을 바라봤다. 말도 없고, 표정은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했다.“말하기 싫어? 아니면 기억이 안 나?”유건은 부드럽게 시연을 달랬다.“괜찮아, 꿈은 그냥 꿈이야. 이제...”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연은 힘껏 유건을 밀쳐냈다.“시연?”예상치 못한 반응에 유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저리 가요!”시연은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유건을 마치 무서운 괴물이라도 되는 양 경계했다.“시연, 왜 그래?”유건은 놀라서 다가가려 했다.“나야. 이제 다 끝났어, 꿈에서 깬 거야.”그가 조심스레 시연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아악!”시연은 귀를 틀어막으며 비명을 질렀다.유건은 멍하니 얼어붙었다.‘시연이가... 나를 무서워하고 있어...’‘가짜가 아니야. 온몸이 떨리고 있어...!’“알았어, 안 만질게!”유건은 즉시 손을 떼고, 두 손을 높이 든 채 한 발 뒤로 물러섰다.“잘 봐. 나 안 다가가. 안 만졌어. 괜찮아, 진짜야. 난 너를 절대 해치지 않을 거야.”왜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건지, 아직 꿈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건지, 유건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자극도 주면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시연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커다란 눈으로 유건을 경계하며 바라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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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2화

유건은 문득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시연의 눈빛... 혹시 날 미워하고 있는 건가...?’시연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그는 이미 3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3년 전, 겉으로는 시연이 유건을 속이고 떠났지만, 그 시작은 그녀가 유건을 믿지 못하고, 증오한 데서 비롯됐다.시연은 끝까지 주장했다. 유건이 장소미를 감쌌다고, 그의 잘못이라고.그 후 재회했을 때, 둘은 그 일에 대해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시연은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겉으로 내비친 적이 없었다.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으로 유건을 미워하는 듯했다.“시연...”유건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나 덮어두기만 할 순 없었다.어떤 말은 시간이 지나도, 언젠가는 꺼내야만 마음의 매듭이 풀리는 법이었다.“우리, 이야기 좀 하자.”“피곤해요.”하지만 시연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지친 표정이었다.“쉬고 싶어요. 내려갈게요.”몸을 돌린 시연이 걸음을 떼려는 순간.“잠깐만!”유건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막아섰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질리지도 않아?”고개를 돌린 시연의 눈빛은 차갑고도 날카로웠다.짜증과 혐오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그 눈빛에 유건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이런 얼굴, 처음 봐.’알 수 없는 쓴웃음이 저절로 번졌다.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실크 가운을 주워 들었다.원래는 시연에게 살포시 덮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냥 내밀며 말했다.“이거라도 입어. 감기 걸리지 않게.”시연은 멍하니 그 손에 들린 가운을 바라봤다.잠시, 숨을 고르고.‘정신 차려, 지시연!’그리고 천천히 가운을 받아들었다.“고마워요.”순간, 미묘하게 풀린 여자의 표정.그리고 시연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까... 미안했어요. 먼저 갈게요. 잘 자요.”말을 끝내자마자, 시연은 가운을 여며 쥔 채 황급히 방을 나섰다.“시연!”유건은 두 걸음 내디뎠지만, 결국 그 자리에 멈췄다.‘지금 따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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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방문 앞에 다다르자, 유건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문을 열려 했다.“아저씨!”뜻밖에도 조이가 후다닥 달려와 두 팔을 벌려 막아섰다.조이는 엄마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안 돼요! 엄마는 여자예요. 남자는 함부로 여자 방 들어가면 안 돼요.”어린이집 선생님이 늘 강조했던 말이었다. 남자랑 여자는 다르다고.“아, 그렇지.”유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조이 말이 맞네. 아저씨가 잘못했어.”순순히 손을 들어 보이며 문을 노크했다.똑똑.똑똑.몇 번이고 노크했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엄마 자고 있어서 못 들었나 봐요.”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하지만 유건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저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나... 혹시 어디 아픈 건가...?’“조이야, 우리 안에 들어가 보자. 엄마가 많이 아픈 걸 수도 있어.”조이는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네... 들어가도 돼요.”“착하다, 우리 조이.”유건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커튼이 걷혀 있어 방 안은 밝았다.침대 위, 시연은 옆으로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고, 이불은 허리께만 느슨하게 걸쳐져 있었다.“엄마!”조이는 달음질치듯 침대로 다가가 말했다.“엄마, 일어나요! 햇님 다 떴어요!”작은 손으로 톡톡 건드리는데도, 시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유건은 이마를 찌푸리며 다가가 시연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미묘하게 뜨거웠다.‘열이 있잖아.’병원에 데려가야 했기에 유건은 몸을 숙여 조심히 시연을 안아 올렸다.그러자 조이가 깜짝 놀라 발을 동동 굴렀다.“아저씨! 안 돼요! 엄마는 여자라니까요! 남자는 함부로 안아주면 안 돼요!”자기는 아기니까 괜찮은데, 아저씨랑 엄마는 어른이라서 안 된다는 말이었다.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린 마음에 머릿속은 복잡했다.“우리 조이, 괜찮아.”유건은 다시 달래듯 미소를 지었다.“엄마가 지금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해.”“엄마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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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4화

유건은 말문이 막혔다.“그런 뜻이 아니야.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거지.”“당신!”시연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낮게 외쳤다.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조이를 흘깃 봤다.‘조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유건은 그제야 깨달았다.‘우리 사이 얘기, 아직 조이한텐 안 한 거구나...’조이는 아직도 상황을 잘 모르는 듯, 엄마 얼굴 한번, 아저씨 얼굴 한번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엄마랑 아저씨 싸웠어요?”“아, 그게 아니고...”시연은 잠시 멍하니 굳었다.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조이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아저씨, 엄마는 여자예요! 아저씨가 져줘야 해요!”“그래, 맞아. 아저씨가 잘 기억할게.”유건은 피식 웃으며 조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아저씨는 절대 엄마랑 안 싸워. 엄마는 항상 맞으니까.”“히히히.”조이는 기분 좋게 웃으며 유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우리 잠깐 나가 있을까? 엄마 세수하고 예쁘게 꾸미게.”“네! 좋아요!”부녀가 방을 나서자, 그제야 시연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어질어질해. 큰일 날 뻔했네.’둘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시연은 금방이라도 티가 날 뻔했다....식탁에서는 도경미가 조이 옆에서 함께 아침을 챙기고 있었다.조이는 아직 젓가락질이 서툴러 면발을 얼굴이며 옷이며 다 묻혀가며 먹고 있었다.도경미는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 ‘좀 이따 옷 갈아입혀야겠다’ 생각 중이었다.시연은 식빵을 따뜻한 우유에 적셔 한 입 한 입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러던 중, 갑자기 들려온 유건의 낮은 목소리.조이가 있는 걸 의식해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우리 얘기, 언제 조이한테 할 거야?”시연은 순간 멈칫, 고개를 번쩍 들었다.“말 못 하겠어?”그 놀라고 당황한 표정에, 유건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럼 내가 할까?”“안 돼요!”시연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고, 유건은 가늘게 눈을 좁혔다.“너도 말 안 하면서 나도 말 못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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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시연은 뭐라 더 말하려다가, 조이가 몰래 이쪽을 힐끔거리는 걸 보고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애 앞에서 싸울 순 없지.’아침 식사가 끝난 뒤, 셋은 함께 집을 나섰다.강울대병원이 집에서 가장 가까웠기에, 유건은 먼저 시연을 병원에 내려주고 그다음 조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로 했다.“아저씨.”엄마가 없자, 조이는 자연스레 유건 품에 폭 안겼다.작은 팔로 목을 끌어안는 모습이 영락없는 ‘조이’였다.“아저씨, 엄마 좋아해요?”“응?”뜻밖의 질문에 유건은 잠시 눈이 동그래졌다.‘요즘 애들 이렇게 빠른 거야?’‘역시,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우리 얘기 조이한테 미리 해두자고.’‘어린애라고 해도 다 안다고.’이미 물어온 이상, 유건은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다.다만 마음 한쪽이 살짝 긴장됐다.‘애가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응, 아저씨 엄마 좋아해.”말을 꺼내고 유건은 잠시 숨을 고르며 조이의 반응을 기다렸다.“와!”조이는 해맑게 웃으며 눈이 반달처럼 접혔다.“진짜구나!”‘어라, 생각보다 잘 받아들이는데...?’유건은 안도하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진짜야. 아저씨는 엄마도 좋아하고...”잠시 멈칫하다가 덧붙였다.“조이도 많이 좋아해.”“나도 알아요! 나 바보 아니에요. 다 알고 있었어요!”유건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래? 그럼 조이는 아저씨가 엄마 좋아하는 거 안다고 했는데, 엄마는 어때? 엄마도 아저씨 좋아하는 것 같아?”그 질문에 조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몰라요... 조이는 그건 몰라요.”“쳇.”유건은 웃으며 조이의 작은 코끝을 살짝 집었다.“아저씨가 조이 마음을 모를까 봐? 엄마 마음도 아저씨는 잘 알아.”“아저씨 속상해하지 마요!”조이는 꼬물꼬물한 손바닥으로 유건 어깨를 툭툭 치며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아저씨가 엄마한테 잘하면, 엄마도 아저씨 좋아하게 될 거예요!”“오?”유건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애가 이렇게 쿨하게 받아들여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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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레오의 걱정과 호의, 시연은 잘 알고 있었다.“알겠어요. 버티기 힘들면 꼭 말할게요.”전화를 끊고, 시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어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능하면 안 귀찮게 하고 싶어.’‘이미 이분한테 빚진 게 얼마인데...’‘애초에 나랑 무슨 관련 있는 분도 아니잖아.’...오후, 회의 시간.이번 회의는 병원 간 협진 회의였다.강울대병원은 심폐 분야에서 국내 최상위 수준을 자랑했고, 이번에는 L시의 병원에서 협진 요청이 들어왔다.환자는 L시에선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인사였기에, 병원 측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사전 논의 끝에, 현장 상황을 보고 필요하다면 직접 수술까지 맡아야 할지도 몰랐다.결국 누가 현장에 가느냐가 문제였다.양석현의 자랑스러운 제자라 하면, 변이준과 지시연이 있었다.하지만 양석현 본인은 당분간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변이준 역시 현재 환자 일정이 꽉 차 있었다.결국 남은 건 이제 막 팀에 합류한 탓에 상대적으로 일정이 여유로운 시연뿐이었다. 양석현이 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손은 다 나았지?”“네, 이제 괜찮아요.”시연은 싱긋 웃으며 두 손을 살짝 움직여 보였다.“그럼, 네가 다녀오자.”믿음직스럽게 웃으면서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괜찮겠지?”“네, 문제없어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좋아. 그럼 준비 잘해.”“네, 교수님.”...G시를 떠나 며칠 있을 일정.시연은 잠깐 고민했다.‘이걸... 고유건한테 말해야 하나?’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굳이 알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지금 두 사람이 그저 돈으로 엮인 관계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을 거다.하지만 요즘 들어 유건의 행동은 뭔가 선을 넘고 있었다.유건은 비록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지만, 바보가 아닌 시연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너무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애인으로 오래 있으라는 게 무슨 말이야.’‘웃기고 있네. 그 어떤 명분이 붙어도...’시연은 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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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7화

시연은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하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진동이 멎고, 화면이 꺼졌다.잠시 숨을 고르던 시연은 그대로 핸드폰을 꺼버리고, 침대 협탁 위에 화면을 엎어두었다....그 시각, 유건은 핸드폰을 쥐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샤워 중인가, 아니면 벌써 잠들었나...’다시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자는 걸 깨울까 봐 손을 멈췄다.잠시 고민하던 그는 대신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형님.”주지한이 다가왔다.“다 준비됐습니다. 회의 들어가시죠.”“응. 가자.”유건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일에 집중하러 발걸음을 옮겼다....다음 날 아침.시연은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 전원을 켰다. 곧장 어젯밤 온 메시지가 알림창에 떴다.[전화했는데 안 받네. 자는 것 같아서 더 안 걸었어. 일하러 간다. 잘 자, 좋은 꿈 꿔.]시연은 그 문장을 가만히 읽었다. 눈동자는 잔잔했고, 표정은 무심했다.다만, 입가가 잠깐, 아주 미세하게 경련처럼 일그러졌다.결국, 답장은 하지 않았다.오늘 시연은 L시로 가야 하는 날이었다.그녀는 평소보다 이르게 집을 나섰다.마수경도, 도경미도 아직 자는 시간.이번 출장은 혼자였다.필요하다면 그쪽 병원에서, 혹은 강울대에서 따로 보조 인력을 보내줄 예정이었다.고속철도에 몸을 싣고, 시연은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그리고 아이 마스크를 쓰고, 잠시 눈을 붙였다.‘너무 일찍 일어났으니까, 더 자둬야겠다.’...같은 시각, 유건은 밤샘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문득 시연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차가운 기계음.[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음...?”유건은 잠깐 시간을 확인했다.‘아직 안 깼나?’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전화 꺼져 있네. 지금 집 가는 중이야. 이따 아침 같이 먹자. 영복루에서 게살 만두 샀어, 너랑 조이가 좋아하는 거.]하지만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다.답장도 오지 않았다.유건은 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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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8화

유건은 완전히 허를 찔린 상태였다.‘젠장, 순간 진짜 끝난 줄 알았잖아.’방 안에 시연이 보이지 않는 그 순간, 유건의 세계는 두 번째로 무너지는 듯했다.마수경이 급히 CCTV를 확인하고 와서 보고했다.“고 대표님, 지 선생님 다섯 시 조금 넘어서 나가셨어요.”“알았어.”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관자놀이를 눌렀다.‘어딜 간 거야... 왜 한마디도 없었지...’...한편, 시연은 L시에 도착했다.병원 측에서 차량을 보내주었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첫 회진과 진료를 마치고 보니, 예상대로 검사가 충분하지 않았다.시연은 상세한 진료 의견을 남기고 추가 검사를 지시했다.그 결과가 나와야 비로소 본격적인 치료 방향을 잡을 수 있을 터였다.모든 걸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쌓여 있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진아의 연락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나머지는 전부, 유건이었다.아침부터 시작된 부재중 전화들, 그리고 이어진 문자들.[어디 간 거야?][왜 전화 안 받아? 바쁜 거야? 지금 통화 어려워?][점심은 챙겨 먹었어?][...]시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지만, 마음에 일렁임은 없었다.‘그런데, 왜일까?’하나하나, 가슴에 박히는 바늘 같았다.‘역시... 변함없이 다정하네.’하지만, 그게 너무 싫었다.싫고, 싫어서 더 숨이 막혔다.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시연은 결국 핸드폰을 들어 유건의 번호를 눌렀다.두 번도 울리기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연?]낮고 부드럽지만, 급한 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이제 끝났어?]“네.”시연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미안해요. 갑작스레 출장이 잡혀서 L시에 왔어요. 당신도 바쁜 거 같아서 일 끝나고 말해줘야지 했는데... 그만 깜빡했네요.”‘이게 깜빡할 수 있는 일이야?’메시지 하나면 끝날 일을, 하지 않았다.유건은 입 안이 쓰게 말라붙었다.‘정말이라면, 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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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9화

그날 밤, 시연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뒤척이고, 또 뒤척였다.‘이러다 내일 일 못 하겠는데.’결국 시연은 포기한 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방에서 약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작은 알약 하나를 손바닥에 떨어뜨렸다.이어서 물 한 모금에 꿀꺽 삼킨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약효가 서서히 올라왔고, 마침내 그녀는 머릿속이 몽롱해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아침.시연은 핸드폰 벨소리에 깨었다.알람이 아닌 전화였다.“여보세요.”손 더듬어 핸드폰을 잡아 귀에 댄 시연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나른하고 낮았다.그 너머로 들려온 건 유건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일어났어?]“쳇...”시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에도 잠을 설친 다음 날은 유독 예민해지는 편이었다.“아닌데요? 좀만 더 늦게 깨웠으면, 내가 감동했을지도 몰라요.”[내가 깨운 거야?]유건은 시계를 힐끔 보며 말했다.[이제 일어날 시간 아니야? 평소에도 이쯤 일어나잖아.]“이쯤이면 아직 아니죠!”시연은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10분은 더 잘 수 있었거든요!”잠깐 말이 막힌 유건은 이내 곧 사과했다.[내 잘못이네. 그럼 다시 자볼래?]“뭘 자요? 이미 깼는데요.”시연은 중얼거리며 이불을 끌어안았다.“에휴, 이제 마음도 식었어요.”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역시 사람은 나이 들면 잠이 없나 봐요.”유건은 순간 말이 막혔다.‘나, 나이가 들었다고?’‘최근에 시연이 앞에서 한참 열정적으로 증명했는데, 그게 안 통한 건가?’그래도 그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전화를 받았고, 심지어 툴툴대며 투정을 부렸다는 건, 적어도 무시하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유건은 목소리가 더 부드러워졌다.[오늘도 많이 바빠?]“모르겠어요.”이제 좀 정신이 든 시연이 말했다.“오전엔 확실히 바쁠 거고, 검사 결과 보고 나서야 계획이 나올 거예요.”[응.]서로는 더 할 말은 없을 것 같았다.시연도 슬슬 전화를 끊으려는 눈치였다.그 순간.[시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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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화

수술은 다음 날 아침, 첫 번째 스케줄로 잡혔다.오늘은 토요일.아침 일찍, 유건은 시연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지 않았다.‘바쁜 거 알면서도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정확히 뭐가 걱정되는 건지, 본인도 잘 몰랐다.‘이럴 바엔 그냥 가볼까?’마침 조이는 어젯밤 고상훈이 본가로 데려갔고, 그도 오늘은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결심이 서자마자, 유건은 곧장 차고로 내려가 차를 몰고 L시로 향했다.그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외래 진료 시간이었고, 병동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유건은 시연에게 문자를 남긴 채,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씩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씩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오전 10시.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2시.유건은 핸드폰 화면은 여전히 말끔했다.‘답장이 없네.’배도 슬슬 고파졌다.‘일단 뭐라도 먹고 오자.’손에 쥔 담배를 비벼 끄며, 차로 돌아가려던 찰나.“저기요.”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경비 두 명이 다가와 서 있었다.“무슨 일이죠?”유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경비원 두 명은 한 명은 왼쪽, 한 명은 오른쪽으로 다가와 유건을 에워쌌다.“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그리고 운전면허증도요.”‘뭐야, 이건 또...’유건은 잠깐 멍해졌다.“저를 조사하는 겁니까?”“아침부터 몇 시간째 주차장 주변을 맴도시고, 차에서 내렸다 탔다 반복하시고... 혹시 뭔가 관찰하신 거 아닙니까?”‘관찰? 은밀하게?’유건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오해입니다. 아무도 관찰 안 했고요. 제 아내가 여기 근무 중입니다. 기다리는 중이에요.”두 경비원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내분, 어느 과세요? 의사세요, 간호사세요?”“제 아내는...”유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시연은 이 병원 직원이 아니어서 이름을 말해도 알아들을지 의문이었다.그 찰나의 머뭇거림이, 경비원의 눈에는 더 수상하게 비쳤다.“신분증 빨리 보여주세요!”“알겠습니다.”유건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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