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941 - Chapter 950

992 Chapters

제941화

전화를 끊고, 시연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가느다란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져 나와 선명하게 드러났다.‘아까, 정말 간신히 참았어...’시연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또 길게 내쉬었다.잠든 은범의 단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은범아, 나 기억력 좋은 사람인 거 알지? 네가 당한 일, 내가 당한 일, 하나도 안 잊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 절대 같은 실수 두 번은 안 해.”...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말없이 한참 서 있었다.‘이거,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노은범한테 마음이 가 있단 얘기, 그렇게라도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걸까?’...은범의 집을 나와 예전 자기 집으로 향한 시연은, 필요한 책들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그때 또다시 울리는 전화.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시연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았다.“왜요?”저쪽에서 잠깐의 정적.그러다 유건이 낮게 말했다.[보인다. 거기 서 있어. 책 무겁잖아.]‘고유건이 여길?’시연이 뭘 물어볼 틈도 없이 전화는 뚝 끊겼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길 건너편에서 유건이 성큼성큼 뛰어오고 있었다. 긴 다리로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눈앞까지 닿았다.“줘.”자연스럽게 시연 손에서 책을 받아 안은 유건은, 말하며 앞장서서 걸었다.“가자. 차는 저기 세워뒀어.”그런데 두 걸음쯤 간 유건은 고개를 돌렸다.‘왜 안 따라오지?’시연이 그대로 서 있는 걸 보고, 웃으며 물었다.“왜 안 와? 가자니까?”“당신...”시연은 한참 유건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지금 이거... 뭐 하는 거예요?”“내가 뭐?”유건은 이해 안 된다는 듯 한쪽 눈썹을 올렸다.“책 들어주고, 데리러 온 것도 싫어?”“풋...”시연은 숨죽여 웃었다.“당신... 원래 모든 애인한테 이렇게 다정해요?”“음?”유건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기울여 되물었다.“너 지금... 내가 너한테 다정하다고 인정한 거야?”“맞아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웃고 있
Read more

제942화

시연이 금세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지자, 유건은 황급히 시연의 어깨를 눌러 붙잡았다.그리고 남자의 얇은 입술이 시연의 귀 옆에 살짝 닿았다.곧이어 들리는 속삭이는 소리.“화내지 마. 내가 널 어떻게 하든, 적어도 이 G시에서 널 가장 잘 챙겨주는 남자는 나야, 알겠어?”“하, 하하.”시연은 어이없어 웃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했다.‘진짜, 기가 막히네.’시연은 어깨를 으쓱였다.“맘대로 해요. 당신만 좋으면 됐죠, 뭐.”“아이고, 착해.”유건은 한껏 기분 좋은 얼굴로 시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자. 조이가 엄마 찾으면서 난리야.”...차는 GP그룹 본사 건물 아래에 멈췄다.시연은 팔짱을 끼고, 옆자리의 유건을 비스듬히 바라봤다.“조이가 엄마 찾는다면서요?”“미안.”유건은 부드럽게 달래듯 웃었다.“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서. 금방 끝낼게.”오는 길에 걸려 온 전화 한 통.회사 컴퓨터에만 있는 중요한 파일을 메일로 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본사로 오는 수밖에 없었다. “같이 올라갈래? 너 좋아하는 간식 있을 텐데.”“안 가요.”시연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저었다.“빨리 다녀와요.”“알았어.”유건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말은 저렇게 하지만, 사실 내가 뭐 어쩌겠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그냥... 그땐 그렇게라도 말할 수밖에 없었어.’시연은 분명, 유건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러니까, 유건은 그저 시연의 선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유건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차 안에 혼자 남은 시연은 잠시 등을 시트에 기대었다.어딘가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한 기분.‘하, 안 되겠다.’결국 시연은 차 문을 열고, 잠시 바깥 공기를 쐬러 나섰다.GP그룹 본사 1층에는 꽤 유명한 밀크티 가게가 있었다.‘괜히 차에서 답답하게 기다리지 말고, 뭐라도 사 마시자.’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걸어가 밀크티 한 잔과 디저트 박스를 사 왔다.느긋하게 빨
Read more

제943화

이윽고 정민환과 정기환이 도착했고, 시연은 병원으로 옮겨졌다.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대부분이 가벼운 찰과상, 팔과 손목에 인대가 약간 늘어난 정도.입원까지는 필요 없었고, 간단히 치료하고 처방전만 받아도 귀가할 수 있었다.그때 주지한이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형님, 범인 찾았습니다. 정은희 씨 팬클럽 회장이랍니다.”“뭐라고?”유건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멍해졌다.머릿속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내리꽂힌 느낌.지한도 고개를 저었다.“형님, 요즘 팬덤 쪽은... 생각보다 훨씬 과격합니다. 아마 은희 씨 편을 들어준다고, 대신 화풀이한 것 같습니다.”어떻게 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몇 년간, 은희는 사실상 ‘고유건 여자’로 불리며 살아왔다.그런데 최근 들어, 고유건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G시 안에 돌기 시작했고, 그 이후 은희 관련 뉴스는 뚝 끊겼다.업계 안팎에선 이미 ‘고유건 대표 마음 떠났다’, ‘정은희는 밀려났다’는 얘기가 파다했다.은희 입장에선 이미지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고, 그걸 못 견딘 열성 팬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았다.유건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삼켰다.‘이게 다 뭐냐, 진짜.’“형님...”지한이 뭔가 더 말하려는 찰나, 병실 문이 열리며 시연이 나왔다.유건은 가볍게 눈짓을 줬고, 지한은 바로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지한 씨, 알아냈어요?”자신과 관련된 일이니, 시연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방금 두 사람 대화의 일부는 이미 들은 상태였다.“팬덤 과열... 그쪽 문제 맞아요?”지한은 잠깐 유건을 보고,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그렇군요...”시연은 잠깐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내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유건은 한쪽 팔로 시연의 어깨를 감싸며 살짝 안았다.“내가 정리를 못 한 탓이야. 앞으로는 어디 가든 너를 데리고 다닐 거야. 절대 너 혼자 두지 않을 거야.”‘잠깐 눈에서 안 보인 사이에 이런 일이 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어
Read more

제944화

유건은 그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금세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며 웃음이 번졌다.그리고 바로 손바닥을 펴서 시연 눈앞에 내밀었다.“봐, 여기.”남자의 손바닥, 특히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45도 각도로 그어진 약 4센티미터짜리 긁힌 자국이 보였다.피가 배어 나와 말라붙은 데도 있었고, 아직 촉촉한 데도 있었다.시연은 숨이 턱 막혔다.‘저건 아마, 아까 나 감싸 안고 구를 때 땅에 짚으면서 난 상처겠지.’“당신은 여태 뭐 했어요? 나 검사받는 동안 시간 있었는데, 의사한테 처리 좀 받지 그랬어요?”“괜찮아, 안 아파.”유건은 웃으며 말했다.진심이었다.시연 걱정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다.“안 아파요?”시연은 비웃었다.“그럼 아까 왜 신음했는데요?”유건은 어깨를 으쓱였다.“그냥, 괜히 쓸데없이 힘줬나 봐.”“얼른이요!”시연은 지한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지한 씨, 고유건 씨 데리고 치료실 가서 소독하고, 상처 깊은지 보고 필요하면 꿰매야 해요.”“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유건은 시연의 팔을 붙잡았다.“그냥 집에 가서, 너한테 손 봐달라 하면 되잖아.”“안 돼요!”시연은 단호히 잘랐다.“지금 내 꼴을 좀 봐요.”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긁히고, 인대 늘어나고... 나도 환자예요. 병원에서 처리하세요.”유건은 잠시 말문이 막혀 있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같이 있어 주면 안 돼?”“나 같은 환자가 어떻게 같이 있어요.”시연은 턱으로 주지한을 가리켰다.“지한 씨 있잖아요. 같이 가세요.”그러곤 털썩 벤치에 앉았다.이어서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얼른 다녀와요. 시간 많이 끌었어요. 조이 깼는데 나 없으면 또 난리 날걸요?”유건은 잠시 멍해졌다. 혀끝에 번지던 씁쓸함이 다시 퍼졌다.“형님.”지한은 눈썹을 찌푸리며, 할 말은 많지만 꾹 눌러 삼켰다.“가시죠. 날도 더운데 상처 관리 안 하면 곪을 수도 있어요.”“그래.”유건은 마지막으로 시연을 힐끔 바라보고, 무겁게 발걸음을
Read more

제945화

지금 이 순간에도, 유건은 시연을 억지로 곁에 붙잡고 있는 셈이었다. 권력으로 얻게 되는 건 결국 ‘사람’뿐, 마음은 아니었다.지한은 어릴 적부터 유건과 함께 자란 사이였다.그래서 누구보다 유건이 안쓰러웠다.이건 시연만 힘든 게 아니었다.사실, 유건도 지치는 거 아닌가?‘우리 형님... 평소엔 그렇게 냉철하면서...’‘왜 유독 감정 문제에선 이렇게 헤어 나오질 못하지.’“형님... 뭐 하러 이렇게까지...”“그만.”유건은 낮게 잘라 말했다. 미간에는 깊게 주름이 잡혔다.잠시 침묵하던 유건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억지라도, 이렇게라도 시연이 옆에 있는 게... 그 지난 3년보단 낫지.”지한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사랑이라는 게 진짜 무섭구나.’시연은 유건에게 있어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그럴 거면요, 형님. 차라리... 시연 씨한테 솔직히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때요?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강제로, 숨기면서...”유건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입꼬리를 옅게 올렸다.‘솔직히 전하면... 달라지기라도 할까?’그 생각만으로 웃음이 나왔다.“저는요,..”지한은 조심스레 말했다.“한 번쯤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지금보다 더 나쁠 순 없잖아요. 만약, 형님이 평생 시연 씨를 놓지 않을 생각이라면...”“됐어.”상처 치료가 끝난 유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붕대를 살짝 고쳐 매며 말했다.“가자. 시연이 기다리겠다.”지한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하... 진짜 답답하다.’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보니... 텅 빈 벤치.시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어디 갔지?”지한은 조심스레 유건을 힐끔 바라봤다.유건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설마... 진짜 그냥 간 거야?’‘형님 걱정은커녕, 이 잠깐도 못 기다리고?’‘너무하네...’“제가 찾아볼게요...”지한이 핸드폰을 꺼내려던 순간, 건물 모퉁이에서 시연이 물병을 들고 걸어왔다.지한과 유건을 발견하자
Read more

제946화

“엄마아!”작은 발걸음 소리가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시연과 조이,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울먹이며 서로에게 달려갔다.조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훌쩍이며 시연 품에 와락 안겼다.“엄마... 엄마, 조이 버린 거예요...?”“그럴 리가?”시연의 눈가도 금세 붉어졌다.조이의 말랑한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엄마는 조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절대 안 버려.”“엄마, 안아줘요!”“그럼 그럼.”시연은 웃으며 조이를 번쩍 안으려 했다.“잠깐!”뒤따라 들어온 유건이 단호하게 막아섰다.늘 부드럽던 그가 진지하게 굳은 얼굴을 하자, 엄마와 딸은 동시에 멈춰 섰다.그리고 그다음, 유건이 몸을 숙여 조이를 안아 올렸다.“으앙! 아앙아앙!”조이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시연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 조이 놀랐잖아요! 얼른 내려놔요!”유건도 그제야 깨달은 듯 조이를 바라봤다.“미안, 아저씨가 놀라게 했네. 우리 조이 화났어?”조이는 빨개진 눈으로 힐끔 쳐다보며 훌쩍였다.“아저씨, 조이 싫어졌어요... 아저씨, 조이 무섭게 해요...”“아냐아냐.”유건은 바로 무너져 내리듯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우리 조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님인데, 아저씨가 어떻게 싫어하겠어?”“진짜예요?”조이는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진짜지.”유건은 조이를 살살 안고, 조곤조곤 설명했다.“근데 말이야, 엄마가 지금 다쳐서 팔에 힘을 주면 안 돼. 엄마가 조이 안아주고 싶어도, 엄마 아프면 우리 조이도 마음 아프잖아, 맞지?”조이는 깜빡깜빡 눈을 깜박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엄마 다쳤어요?”엄마한테 달려가고 싶어서 몸을 꼼지락거리다가도, 혹시라도 엄마 아프게 할까 봐 조심했다.그러다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조이, 엄마 안 아프게 할래요. 안아달라고 안 할래요.”“우리 조이, 진짜 착하다.”시연의 마음은 그 순간 푹 녹아내렸다.‘이런 아이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Read more

제947화

결국, 시연은 그 방에 남았다.유건 말대로, 그는 정말 시연을 안고 조용히 잠들었고,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런데도 시연은 왠지 더 불편했다. 예전처럼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이렇게 꼭 껴안고 잠드는 게 훨씬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왜 이렇게 어색하지?’그녀는 손바닥에 은근히 땀이 배었고, 전혀 졸리지 않았다.남자의 숨소리는 점점 잔잔해지고, 시연의 몸에선 긴장이 빠져나갔다.유건이 잠든 모양이다.‘이제 가야지.’시연은 조심스레 숨을 고르며, 허리 위로 감긴 유건의 팔을 천천히 치워냈다.그녀는 살금살금 일어나 이불을 곱게 덮어주고, 문 쪽으로 발걸음을 떼려다가 멈췄다.그리고 잠깐 망설이더니, 입술을 꾹 누르고는 유건의 오른손... 다친 손을 가만히 집어 들었다.전문의로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대를 풀고, 핸드폰 불빛을 비춰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 부위는 깨끗이 소독되어 있었고, 깊지는 않았지만 길이가 있어 방심할 순 없었다.게다가 오른손이었다.시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준비해 둔 붕대를 가져와 새로 감았다. 내일 약을 지을 때 항염 성분을 조금 섞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심히 남자의 팔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잠시 소리 없이 유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머릿속에 오늘 낮, 유건이 온몸으로 자신을 감싸 안았던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지한 씨가 괜히 나한테 뭐라 한 게 아니었지.’‘그렇게까지 날 지켰는데, 나는...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주질 않았네.’시연이 조금 못 됐는지는 몰라도 후회는 없었다.그리고 앞으로도, 이 못된 태도를 끝까지 지킬 생각이었다....이틀간 시연은 손의 회복을 위해 수술 스케줄에서 빠지고 외래 진료만 맡았다.하지만 강울대병원의 외래도 만만치 않았다.진료실에 도착하자 이미 대기실은 만원.시연은 서둘러 가운을 입고, 간호사에게 번호를 부르라고 신호를 줬다. 반나절 동안 진료를 보니 온몸이 늘어지고, 목은 타들어 갈 듯 말랐다.그녀는 물컵을 부여잡고 한숨에 들이켰다.그때 간호사가 들어와 말했다.
Read more

제948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시연은 관자놀이를 눌렀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 솔직히, 두 분 일엔 1도 관심 없거든요.”하지만 이 상황, 은희가 굳이 찾아온 이상, 듣든 말든 시연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시연이 이렇게 담담할수록, 은희의 속은 더 뒤틀렸다.은희는 손바닥을 꾹 쥐며 이를 악물었다.“들었어요. 지 선생님 다친 거... 제 팬 중 하나가 그랬다면서요.”‘아...’시연은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그래서... 고 대표님이 그 일로 화가 나서, 당신을 내쫓아냈단 말이에요?”“맞아요...”은희는 이미 아침 일찍 소속사 매니저에게서 연락받았다.모든 스케줄 정지, 계약 정지.하룻밤 새 모든 게 끝났다.‘결국 본인을 찾아가야 풀릴 일이지...’그래서 시연 앞에까지 온 것이다.“저는 정말 몰랐어요. 그 일, 저랑 아무 상관 없다고요. 제발... 고 대표님께 한 마디만 해주세요. 저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요. 이렇게 묻히면 난 정말 끝이에요.”울먹이는 은희의 얼굴은, 분명 진심이 섞인 듯했다.시연은 그게 연민인지, 그저 피곤함인지,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결국 시연은 짧게 답했다.“알았어요. 어쨌든 저 때문인 건 맞으니까, 말은 해볼게요. 다만... 제가 보장할 순 없어요.”“보장할 필요 없어요!”은희는 바로 표정이 환해졌다.“지 선생님이 말만 해주시면 돼요!”시연은 별말 없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정은희 씨, 이제 가봐요. 저 아직 환자 한 명 더 있어요.”시연은 접수증을 은희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이건 가서 취소하시고요.”“네.”은희는 접수증을 받으며, 잠깐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지 선생님...”“네?”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은희는 눈을 피하며 힘겹게 말했다.“고 대표님한테... 조금만 더 잘해 주세요. 그분 사실... 그동안 진짜 힘들었어요.”‘무슨 소리야.’시연은 웃었다.아무 말 없이.은희는 눈가에 씁쓸한 기색을 담아, 자기 얼굴을
Read more

제949화

시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좋고 싫고 할 문제는 아니에요. 정은희 씨 잘리든 말든, 솔직히 나한텐 아무 영향 없어요.”그러면서 유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딘가 심드렁한 듯 웃었다.“그냥 좀 의외였어요. 당신은 그렇게까지 매정한 사람이었나요? 정은희 씨도 어쨌든 당신 곁에 있었던 사람인데... 내 기억 속 당신은, 자기 옆에 있던 여자들한텐 좀 다정했잖아요?”시연은 눈웃음을 살짝 치며, 유건의 넥타이를 잡아 손가락에 휘감았다.“예전에 당신, 그 말 자주 했었죠... ‘장소미는 그래도 나랑 한때 함께한 사람인데, 잘 살았으면 좋겠어.’”유건의 얼굴이 굳었다.시연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계속 말했다.“맞죠? 그런 뉘앙스였잖아요?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비슷한 말이었죠?”유건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아.”시연은 웃음이 터졌다.“물어봤는데 왜 대답 안 해요? 하하하...”유건이 가만히 있는 사이, 시연의 웃음은 점점 커졌다.“3년 사이 당신 많이 변했네요? 몇 년 따라붙은 여잔데도, 싹 잘라버리네요? 솔직히 좀 안됐다 싶어요. 나야 뭐 상관없지만... 당신, 이번만 봐줘요, 네?”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유건이 불시에 시연의 허리를 껴안았다.“뭐해요?!”시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왜 이래요?!”유건은 강하게 시연을 끌어안은 채 낮게 말했다.“나 예전 그랬던 거, 너 싫어했잖아.”시연은 순간 얼어붙었다.유건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방금까지의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지금 당신이랑 당신 여자들 얘기하는데, 왜 거기에 날 끼워 넣어요?”시연은 작게 중얼거렸다.“너 예전엔... 내 아내였어.”입을 떼자, 유건의 가슴 한편이 서늘하게 시려왔다. 시연의 허리를 감싼 손끝마저 살짝 떨리고 있었다.“그때 그 일, 내 잘못인 거 알아.”시연의 눈이 순간 커졌다. 가슴 깊숙이, 어디선가 공포가 밀려왔다.‘안 돼... 그 얘긴 하지 마.’재회한 뒤로 단 한
Read more

제950화

시연은 순간 얼어붙었다.‘또 이 말? 고유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왜 멍해졌어?”유건은 손을 들어 시연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내가 너 아껴줄 거니까, 너는 그냥 그걸 받아들이면 돼. 괜찮지?”“왜요?”시연은 가늘게 눈을 뜨고 유건을 올려다봤다.“당신 옛날 여자들이 장소미만 못해서요? 아니면, 그 여자 중에서 그나마 내가 제일 당신 마음에 맞아서요?”이번에는 혀끝뿐만 아니라 목구멍까지 쓰라렸다.유건은 알았다. 어떤 일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과거로 묻히지 않는다는 걸.그는 변명할 수 없었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만 내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넌, 그냥 내가 아끼는 거 받아주면 돼.”‘후...’시연은 웃었고,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았다.“내가 좋은 아이디어 줄까요? 장소미를 다시 찾아가요. 솔직히 나보다 그 여자가 당신 취향이잖아요, 안 그래요?”이제 이 대화는 더는 금기가 아니었다.유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연의 허리를 껴안았다.“안 돼. 장소미랑 나는, 3년 전에 이미 끝났어. 지금 난... 너밖에 없어. 너만 아끼고 싶어.”하지만 시연은 믿지 않았다.유건은 끝냈다지만, 시연은 그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시연의 웃음은 입술에만 걸렸고, 눈동자는 싸늘했다. 입꼬리만 어색하게 올라간 채로 말했다.“알겠어요, 알겠어요. 놀아주는 거니까 보스의 특별한 취향은 맞춰줘야죠. 그건 나도 알고 있는데, 굳이 정은희 씨까지 잘라낼 필요는 없었잖아요?”시연은 팔을 남자의 목에 걸친 채, 가볍게 흔들었다.“지금은 3년 전이 아니잖아요. 나도 당신의 아내가 아니에요. 날 아낀다고 다른 여자까지 다 잘라낼 필요 없어요. 난 진짜 신경 안 쓴다니까요?”유건은 그 자리에서 굳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왜요?”시연은 눈을 깜박이며 웃었다.“못 믿겠어요? 진짜예요. 정은희 씨보다 내가 뒤에 들어온 사람인데, 나 그거 가지고 화낼 사람 아니에요...”하지만 시연의 목소리는
Read more
PREV
1
...
9394959697
...
10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