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Bab 911 - Bab 920

1085 Bab

제911화

“근데 그 박한빈이라는 사람은 다르더라. 내가 듣기로는 그 사람이 차고 있는 시계 하나만 해도 시내 아파트 몇 채 값이라던데? 그러니까 지서연이 나를 보고도 본척만척했던 거지. 저런 대단한 사람을 붙잡았으니 말이야.”“솔직히 내가 보기엔 걔가 너보다 더 예쁜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한번...”곽단은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어서 바로 엄마의 말을 끊어버렸다.“엄마, 미쳤어? 그 사람 이미 결혼한 사람이야.”“결혼했으면 뭐 어때? 이혼하면 되잖아? 게다가 지서연 걔 원래부터 깨끗한 애도 아니었잖니. 내가 늘 말하지만 남자들은 이런 거 신경 많이 쓴다니까?”“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도 깨끗하지 않은 거네.”곽단이 냉랭한 태도로 반박했다.“엄마, 나도 전에 남자 친구 있었잖아. 잊었어?”“너... 그런 말 하니까 내가 더 화가 나잖아! 너 지금 그게 자랑이라고 떠들어? 네가 얼마나 천한 짓을 했는지 아니? 스스로 남자한테 들러붙어서 자기 모든 걸 줘 버리고 결국 어떻게 됐어? 걔는 널 차버리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잖아! 결국 넌 공짜로 몸만 준 여자가 됐다고.”“누가 그래? 나도 그때 즐겼어.”“야! 너 진짜 내가 오늘 때려죽여야겠다.”여자는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곽단에게 던지려 했다.하지만 곽단은 익숙한 듯 그런 공격을 피하며 계속 말했다.“그리고 하나만 충고할게. 박 대표한테 기대하지도 말고 더 이상 헛된 망상을 하지 마.”“뭐라고?”“엄마는 그 사람이 그냥 심심해서 이곳에 온 거라고 생각해? 박 대표님은 지서연의 과거를 조사하러 온 거야. 남자가 자기 아내의 과거까지 그렇게 신경 쓴다는 건 그만큼 여자를 많이 아낀다는 뜻이야.”“그러니까 엄마는 차라리 엄마가 옛날에 지서연한테 너무 심한 짓을 하지 않았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어.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야.”...박한빈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성유리가 방에 남겨둔 노트를 펼쳐보았다.사실 안에는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여기저기 적힌 숫자들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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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잠깐 기다리라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30분을 하염없이 기다렸다.짧디짧은 시간 동안 박한빈은 곽단이 보내준 단체 사진을 이용해 성유리의 옛 선생님을 찾아냈다.그 시절 학교는 열악한 환경 탓에 대부분이 외부에서 파견된 교사들이었지만 다행히도 성유리의 담임은 아니었다.성유리의 담임선생님은 현재 50대가 넘었는데 그녀의 현재 신분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박한빈은 오히려 그런 상황이라야 제대로 성유리의 과거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내일 선생님을 직접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아둔 상태였다.전화를 끊고 난 후, 그는 성유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그녀가 어디에서 밥을 먹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찼다.‘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교통사고? 아니면 식당에서 폭발이나 화재라도?’‘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박한빈은 스스로도 이 생각들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았지만 쉽사리 통제가 되지 않았다.사 온 솜사탕이 천천히 녹아내릴 무렵,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성유리였다.손에 키를 들고 있는 그녀는 막 문을 열려던 참이었던 것 같았다.“어디 가려고요?”성유리는 박한빈과 눈이 마주치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박한빈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되물었다.“너 어디 갔었어?”“저요? 밥 먹으러 갔죠.”성유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박한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전화로 말했잖아요?”박한빈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렇지만 성유리는 그런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걸 내밀며 말했다.“아까 길에서 본 건데 이거 진짜 맛있더라고요. 한입 드셔볼래요?”성유리가 가리킨 건 이 지역의 특산 요리 같은 것이었다.떡과 비슷한 식감에 무말랭이와 파가 올려져 있었는데 맛은 의외로 달콤했다.박한빈은 성유리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고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그런데 입안에서 퍼지는 독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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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안 먹을래요.”성유리는 단호하게 말했다.“저 요즘 살쪄서 더 이상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원래는 이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최근 내내 촬영장에 있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배우라는 직업은 극도로 자기관리가 필요한 일이었고 특히 대형 스크린에 얼굴이 나올 때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다.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보니 이제는 자신도 조금 더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성유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쥐었다.“누가 너 보고 살쪘다고 했어?”“아무도 안 그랬어요. 그냥 제가 스스로 조절하려는 거지.”“그럴 필요 없어.”“네가 어떤 모습이든 난 다 좋아. 그리고 나는 오히려 네가 조금 통통한 게 더 예쁜 것 같은데.”“음, 그러면 지금 저보고 살쪘다는 거네요?”“그게 아니라 내 말은...”“그럼 지금 제 모습이 안 예쁘다는 거예요?”박한빈은 어떻게든 해명해 보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결국 말을 멈췄다.성유리도 물러서지 않고 그의 옷깃을 꽉 쥐었다.“빨리 말해요. 그 뜻으로 한 말 맞죠?”“아니라고.”“그럼 무슨 뜻인데요?”“내 말은 네가 어떤 모습이든 예쁘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정의하든 상관없어. 너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박한빈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네가 행복하면 다른 건 다 중요하지 않아.”성유리는 사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투정을 부린 것뿐이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런 진지한 대답이 돌아오니 순간 당황했고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변화는 숨길 수 없었다.그런 성유리를 유심히 보던 박한빈이 다시 물었다.“왜 갑자기 말이 없어?”잠시 머뭇거리던 성유리는 결국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미 다 말했는데 제가 뭘 더 말해야 돼요?”“그럼 이제 먹을 거야?”“먹을게요. 한빈 씨가 힘들게 사 온 건데 당연히 먹어야죠.”성유리가 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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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성유리의 선생님을 배려하기 위해 박한빈은 만남 장소를 학교 근처로 정했다.전날 사진으로 미리 학교의 모습을 확인했지만 실제로 와보니 사진 속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기에 학교는 더 낡아 있었다.게다가 주변에는 제대로 된 식당도 거의 없어서 이 대폿집이 그나마 가장 괜찮은 선택지였다.박한빈은 선생님을 처음 보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안경을 쓴 그녀는 손에 든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안녕하세요.”박한빈이 다가가 먼저 말을 건네자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리곤 박한빈을 한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지서연 애인 맞죠? 안녕하세요.”...한편, 성유리는 오늘 촬영장에서 할 일이 거의 없었다.그러나 박한빈이 약속이 있다고 했으니 호텔에서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사실 처음엔 그가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박한빈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이제는 박한빈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충분히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도 그가 없는 하루는 이상하게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혼자 촬영장에 가서 둘러보기로 했다.이미 본격적인 촬영이 진행 중이었는데 마침 남녀 주인공의 투 샷 장면이 찍히고 있었다.연기력만 놓고 보면 이우빈의 연기는 확실히 좋았다.특히 감정이 실린 눈빛 연기는 인상적이었다.그러나 이우빈이 진실한 감정을 담아 여주인공을 바라볼 때, 성유리는 불현듯 그날 밤 박한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고 앞으로는 그를 제대로 쳐다보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심지어 이 영화 자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촬영장을 나온 후에도 딱히 갈 곳이 없어 성유리는 근처 거리로 향했다.하늘이와 김서영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던 참이었으나 한창 선물을 고르고 있던 중, 호텔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성유리 님, 현재 프런트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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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음... 당신은 에릭 씨 형제인가요?”성유리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에릭에게 형제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물론, 둘 사이의 관계가 그 정도까지 깊지 않아서 에릭이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그러나 상대 남자는 그녀의 질문을 무시한 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당신이 그 로얀의 아내 되시는 분입니까? 에릭은 지금 어디 있죠?”남자의 말투는 마치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묻는 듯한 태도였다.“당신은 에릭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것 같은데?”“에릭 씨를 찾을 거면 왜 여길 찾아온 거죠?”“저는 뭐 원해서 온 줄 아십니까?”남자는 말할수록 화가 나는지 이를 악물었다.“에릭이 갑자기 미쳐서 어떤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당연히 반대했죠. 그런데 갑자기 도망치듯 여기에 와버렸고요. 지금 위치 추적도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그러다가 우연히 로얀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단서를 따라 여기까지 온 거야!”남자는 중간에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그중에는 몇 마디 욕설도 섞여 있었지만 성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에릭 씨는 여기 없어요.”“그럼 지금 어디 있죠?”“저도 잘 몰라요. 제 남편이 돌아오면 직접 물어보세요.”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판단한 성유리는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걸어가려 했다.그러나 남자가 그녀를 다시 막아섰다.“에릭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못 찾겠군요. 그러니까 당신이 먼저 제 숙소를 잡아 주십시오.”남자의 말투는 여전히 마치 당연한 요구를 하는 듯했다.참고 참던 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제가 왜 그래야 하죠?”“제 카드가 없어졌는데 비서랑도 연락이 안 됩니다.”남자는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그냥 방 잡아 주십시오. 제가 돈이 없을 거 같습니까? 나중에 열 배, 백 배로 갚아 줄 테니까 좀!”이 말을 듣자 성유리는 문득 깨달았다.남자는 한국어 실력이 예상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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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지서연 그 아이를 전 진심으로 아꼈어요.”선생님은 과거를 회상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시 우리 반에 학생이 많지 않았는데 지서연은 언제나 성적이 1등이었어요. 그리고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서 저는 서연이가 계속 그 길로 가길 바랐죠. 하지만 서연이 양아버지는 돈이 든다며 반대했어요. 심지어 걔가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결혼을 시키려고도 했고...”“지석민 같은 인간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 아이에게 온갖 더럽고 힘든 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밖에 나가 허드렛일을 해서 번 돈으로 도박 빚을 갚게 했죠.”“마을 사람들? 괜찮은 사람들은 그저 모른 척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못된 사람들은요? 아무나 서연이를 막 괴롭혔어요. 서연이가 일해서 번 돈을 빼앗기 일쑤였고 심지어 협박까지 일삼았죠.”“학교에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도둑질을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자주 썼고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어떻게 버텼을까 싶어요.”“그러다가 친부모님이 서연이를 찾으러 왔다고 했을 때, 사실 전 누구보다 기뻤어요. 이제는 서연이도 잘 살고 있겠죠?”“정말 그렇다면 참 다행이에요. 서연이의 남편으로서 이제는 정말 잘해 줘야 해요. 두 번 다시 서연이가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해 주세요.”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선생님의 말은 박한빈의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특히, 어제 마을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태도가 떠올라 더욱 기가 막혔다.그렇게 지서연을 방치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도로 포장해 달라, 학교를 지어 달라며 박한빈에게 기대고 있었으니 말이다.정말 가소로운 일이지 않은가?그들은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다.어제 마을을 돌아보면서 확인했  젊은이들은 거의 다 도시로 나가 돈을 벌고 있었다. 가난 때문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얻어먹으려는 심보일 뿐이었다.박한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지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많은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살짝 암시만 해도 상대는 바로 알아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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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에릭이 정말 결혼하고 싶다면 상관은 없다만 최소한 정상적인 사람을 골라야지 않습니까? 저 여자는 사기꾼이라고요.”“역시 당신 같은 미친놈들이랑 어울리면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군요. 지금 보세요! 에릭까지 제대로 정신이 나갔잖습니까! 결국 뒷수습은 또 제가 해야 하고!”알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안색 또한 어두워졌다.하지만 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알리가 자신을 어떻게 깎아내리든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당신이랑 에릭, 두 사람 분명 연락하고 있겠죠? 당장 에릭에게 말하세요. 얌전히 나랑 같이 돌아가자고. 정말 가정을 이루고 싶다면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 할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꿈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겠다고.”비록 알리의 말투엔 여전히 약간의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그 태도와 싸늘한 눈빛은 강한 위압감을 풍겼다.보통 사람이라면 그 앞에서 기가 죽었을 것이다.그러나 박한빈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물었다.“다 말하셨습니까?”“다 하셨으면 이제 나가시죠.”알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박한빈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이 호텔, 너무 형편없습니다. 전 여기서 안 잘 겁니다.”“그럼 안 자면 되죠. 어디 가든 당신 맘대로 하십시오.”알리는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더욱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그 행동은 마치 안 나가면 어쩔 거냐고 묻는 듯했다.박한빈은 그 모습을 보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성유리를 돌아보며 말했다.“경찰 부르자. 강제로 쫓아내게.”그 말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성유리는 순간 망설였다.그렇지만 박한빈은 성유리의 생각을 읽은 듯, 기다릴 것도 없이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호텔 매니저와 보안팀이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알리는 아무리 봐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건 박한빈의 존재감이었다.이 호텔에서 박한빈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결국, 그들은 알리를 ‘정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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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성유리는 원래 박한빈에게 한참을 설명해야 할 줄 알았다.하지만 의외로 그는 단 한 마디도 더 묻지 않았다.박한빈이 자신을 의심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성격상 설령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도 성유리가 다른 남자와 얽히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다.특히 호텔 방 안에서라면 더욱.그렇지만 지금 박한빈의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성유리는 꺼림칙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오늘 어디 갔었어요?”박한빈이 막 대답하려던 순간, 성유리는 갑자기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그리고는 코를 박한빈 옷깃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그 행동에 박한빈은 잠시 당황하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뭐 하는 거야?”“점심은 누구랑 먹었는데요?”성유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지사 사람들이랑.”“정말 그냥 식사 자리였어요?”“그렇지 않으면 또 뭐겠어?”“그런데 왜 저한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는데요?”그 질문에 박한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밖에서라면 그는 절대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에게서 작은 흔들림조차 놓치지 않았고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왜 말이 없어요? 혹시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가 봐요?”“너 원래 이런 자리 싫어했잖아.”“맞아요. 그런데 한빈 씨는 원래 그래도 같이 가자고는 했잖아요.”성유리는 마치 탐정처럼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했다.“근데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도대체 왜죠?”“그건...”“그리고 아까 한빈 씨 반응도 이상했어요.”박한빈은 태연한 척했지만 그녀의 집요한 시선에 긴장감이 스며들었다.“내 반응이 어때서?”“저한테 잔소리 한마디도 안 하셨잖아요.”성유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계속 말했다.“지난번에 제가 이우빈 씨를 방 안에 들였을 땐 엄청 화냈잖아요. 근데 이번엔 어쩜 이렇게 조용하죠?”“알리는 널 좋아할 사람이 아니니까.”박한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성유리는 미묘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박한빈은 그제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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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저야... 당연히 믿죠.”결국 성유리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그럼 됐어.”박한빈이 태연하게 말했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성유리는 얼어붙었다.그사이 박한빈은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휴대폰을 꺼냈다.“에릭 문제는 내가 처리할 거야. 우리 내일 바로 돌아가자.”박한빈은 그렇게 말하며 바로 항공권을 예약하려고 했다.그러나 성유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다가섰다.“잠깐, 박한빈 씨! 정말 이렇게 넘어갈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대체 누구랑 밥 먹었냐고요!”“너 방금 나를 믿는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내가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당연히 중요하죠!”성유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신이 다른 여자랑 데이트라도 한 거면 어쩌려고요?”“그렇게 말하는 건 결국 날 의심한다는 거잖아? 방금까지는 믿는다고 해놓고?”“저...”성유리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분명 자신이 박한빈을 추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이 오히려 추궁당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하늘이 선물은 뭐 살 거야?”박한빈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결정했어? 아니면 내가 같이 가줄까?”성유리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고민하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됐어요!”그러고는 홱 돌아서 걸어가려 했지만 박한빈이 성유리의 손목을 잡아끌더니 자기 품으로 끌어안았다.“뭐 하는 거예요?”성유리가 당황하며 몸을 빼내려 했지만 박한빈은 턱을 그녀의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그의 얼굴이 서서히 성유리의 목덜미에 파묻혔고 두 사람 사이 거리는 너무나도 가까워졌다.박한빈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간지럽히자 성유리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왜 이러세요?”“별 이유 없어. 그냥 너를 좀... 안아주고 싶어서 그래.”...비행기 티켓은 빠르게 예약되었는데 뜻밖에도 알리도 두 사람과 같은 비행기에 타 있었다.게다가 그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렸다.“당신 돈 많잖아? 왜 전용기를 안 빌린 겁니까?”“그게 알리 씨랑 무슨 상관이죠?”박한빈은 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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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한빈 씨 지금 저한테 점점 더 무례해지네요. 제가 예전에 금성에서 어떻게 대해줬는지 잊었나 봅니다? 제가 당신 집에서 하룻밤 자려고 했을 때도 싫다고 하더니 지금은 저한테...”공항에서 에릭은 박한빈에게 불평을 하고 있었지만 순간 그의 표정은 갑자기 사라졌다.그러다 얼마 후, 그는 박한빈을 돌아보며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시*, 너 지금 나 판 거야?”“난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박한빈이 대답했다.“결혼은 결국 두 집안의 일인 거잖아. 네가 여자의 부모님 동의를 구하려고 한다면 네 부모님의 동의도 중요하지 않겠어?”“우리 부모님이 동의할 리가 있겠냐?”“그건 네 문제지. 하지만 결혼 같은 큰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박한빈은 말을 마친 후, 에릭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는 더 이상 에릭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유리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성유리는 박한빈과 함께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았다. 에릭과 알리 두 형제가 서로 닮은 듯했지만 두 사람을 가까이서 보니 차이가 꽤 있음을 깨달았다.에릭은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내면은 차갑고 예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알리는 처음 봤을 땐 더 차가운 사람 같았지만 그의 성격은 에릭과 전혀 달랐다.그렇지 않았다면 알리가 이렇게 먼 길을 와서 박한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두 형제가 만나는 장면을 성유리는 기대와 호기심을 가졌지만, 박한빈은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알리와 에릭이 만났으니 짐을 덜어냈다고 생각했고 둘만 남기곤 성유리와 함께 얼른 자리를 떠났다.그러다 자꾸만 뒤돌아보는 성유리를 발견하곤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돌려버렸다.“뭘 보는 거야?”박한빈이 불만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싸울 수도 있지 않겠어요?”“넌 저 둘이 싸우길 바라는 건가?”박한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되물었다.그 모습은 마치 성유리만 원한다면 본인이 직접 둘 사이를 이간질해 싸움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아니요. 전 그냥... 에릭 씨가 한빈 씨를 원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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