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271 - Chapter 1280

1320 Chapters

제1271화

김단의 말을 들은 도령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영칠에게로 향했다.그 얼굴엔 특별히 제작된 인피면구가 씌워져 있었고, 절반쯤 가려진 얼굴 아래로도 눈빛에 서린 살기는 감출 수 없었다.호위로 살아온 자로서, 그는 그 살기에 익숙했다.피와 시체가 넘실대는 혈하 속에서 걸어나온 자의 기운, 뼛속까지 스며든 살기였다.수많은 전장을 누벼온 이들보다도 더 깊고 짙은, 본능적인 기운이었다.아무리 숨기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 것이었다.도령이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김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약왕곡은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것 외에도 자체적인 정보처와 인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칠은 암향당의 책임자이며, 그 외에도 이번에 함께 온 이들이 많습니다. 도령께서는 단 한 사람도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그 말을 들은 도령은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만일 김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은신술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설령 무공이 영칠만 못하다 해도, 결코 자신보다 뒤처지진 않을 것이다.“그러시니 도령께서는……”김단이 다시금 말했다.“절 막으실 수 없습니다.”도령의 시선이 마침내 김단에게 다시 돌아왔다.핏발이 선 두 눈으로 도령은 김단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그리고 김단의 눈 안에서, 단련을 거친 냉정과 강한 내공에서 비롯된 흔들림 없는 침착함을 보았다.그는 깨달았다.약왕곡이라는 이름이 품은 의미는, 단순한 의술과 독술을 넘어서는 것이란 사실을.시간이 조금씩 흘러가고, 빗방울은 처마를 두드렸다.도령의 가슴은 격하게 요동치며, 마치 말 없는 격전을 견디는 듯했다.마침내 활시위를 당긴 듯 긴장된 그의 등줄기가 툭 하고 풀어지더니, 가슴 깊은 곳에서 모든 기운을 짜내듯 긴 한숨이 무겁게 흘러나왔다.“좋소.”거칠게 갈린 듯한 목소리로 그가 겨우 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리고는 영칠을 한 번 바라본 뒤, 말했다.“모두 물러나라. 김단에게 할 말이 있다.”김단은 영칠을 바라보았다.영칠은 곧 눈치를 채고 방을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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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2화

당국의 도성은 유난히 번화하였다.넓은 주작대로는 열 마리 마차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만큼 광활하였고, 도로 양옆에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기와를 얹은 지붕 아래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비단과 명주, 금은과 옥기, 이국에서 들여온 향신료들이 초겨울의 서늘한 공기 속에 뒤섞여 사치스럽고도 독특한 향취를 자아냈다.행인은 어깨를 부딪치며 오갔고, 옷차림은 하나같이 화려하였다.상인의 호객 소리, 마차 바퀴의 덜컹임, 주루에서 흘러나오는 풍류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도성은 온통 소란스러운 물결로 가득했다.천하 제일의 거부라 일컬어지는 목씨 가문이 자리한 당국의 도성은 과연 사람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당국 황도의 번성함은 천하에 으뜸이지.”목설하의 음성이 곁에서 들려왔다.희미한 자부심이 깃든 그 말투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으나 감출 수도 없었다.그는 오늘 유독 화려한 먹보라빛 비단 도포를 입고 있었으며, 옷깃과 소맷자락엔 복잡한 은실 구름무늬가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다.허리춤에는 현철로 만든 명패가 매달려 있었고, 그 품격 있는 자태는 황도의 성대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분명 당국의 도성은 단순한 황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그 자체가 바로 목씨 가문의 위세를 상징하는 얼굴이었다.최지습은 시선을 거두며 담담히 응답했다.“명불허전이군.”마차는 북적이는 대로에서 멈추지 않고, 곧장 더 넓고도 조용한 어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길가 양편엔 고목이 하늘을 찌를 듯 늘어서 있었고, 짙푸른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바깥의 소란을 차단하였다.그리 오래 달리지 않아 눈앞에는 웅장하고 위엄 넘치는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목씨 가문의 관저였다.붉게 칠해진 대문은 키 큰 성인 두세 명이 나란히 설 정도로 높았고, 문고리는 사나운 비한수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문 위편에는 금실로 장식된 거대한 남목 편액이 걸려 있었고, 그 위에 써진 ‘목가관저’라는 네 글자는 황실에서 내린 어필이라 했다.마차는 정문에 멈추지 않고, 서편에 자리한 조금 더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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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3화

어조는 부드럽고 태도는 온화하여, 마치 최지습이 정말로 먼 길을 온 귀한 손님인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최지습의 경계심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겉으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물음에는 정중히 응하며 예를 잃지 않았으나, 그 속에는 은근한 탐색이 담겨 있었다.허나 목강수는 마치 가장 미끄러운 물고기처럼, 때마다 절묘하게 화제를 흘려보냈다.호랑이군에 대한 이야기, 소한에 대한 단서, 그들의 진짜 목적, 목씨 가문이 어찌하여 그를 황도로 ‘청한’ 이유……최지습이 알고자 하는 모든 핵심은, 목강수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허공으로 흩어지듯 사라졌다.마치 무거운 주먹이 솜에 빠지는 듯한 무력감이었다.‘장사꾼에겐 간사함이 따른다’는 말이 이 순간 뚜렷이 떠오를 지경이었다.반 시진이 흐르고도, 대화는 여전히 짙은 안갯속을 맴돌았다.목강수는 급기야 전조에서 새로 들여온 고화 한 폭을 꺼내어, 그 경치가 어찌 깊고 붓끝이 어찌 절묘한지 한껏 자랑스레 이야기했다.최지습은 차분히 귀를 기울였으나, 속으로는 이미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이 늙은 여우는, 애초에 오늘 실질적인 어떤 정보도 줄 생각이 없었다.오늘의 이 만남은 오히려 조용한 선언 같았다.너는 이미 내 손아귀 안에 있다.그때였다.당 밖에서 맑고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주, 목설원이 뵙기를 청합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 한 인영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목씨 가문 둘째 도령, 목설원이었다.그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고, 눈빛은 밝게 빛났다.들어오자마자 최지습에게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다.“대군자, 오래간만이옵니다!”최지습도 일어나 맞절했다.“자네는 여전하구려.”목설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목강수에게도 손을 모아 인사했다.“가주님께서는 대군자와의 말씀을 모두 나누셨습니까?”목강수의 눈가에도 웃음이 어려 있었다.“왜, 데려가려는 게냐?”목설원이 앞으로 나서더니, 단숨에 최지습의 어깨를 툭 안았다.“대군자께서는 귀한 손님이시니, 목씨 가문이 당연히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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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4화

몇몇 미인들은 ‘두둑한 상’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나둘 다가붙더니, 아양 섞인 목소리로 연신 외쳤다.“공자님, 공자님……”요염한 어조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목설원은 스스로 미인 하나를 품에 안은 채, 눈빛에 장난기 어린 웃음을 머금고, 여인들 틈에 둘러싸인 최지습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은근한 기대가 비쳤다. 오늘 이 미인들을 앞세운 시험에서, 최지습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를 보고 싶은 듯했다.하지만 뜻밖에도, 최지습은 말 한 마디 없이 허리춤의 단도를 탁 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탁.”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소리. 그러나 그 한 소리에 미인들은 흠칫 놀라며 일제히 몸을 물러섰다.목설원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남아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짝 어두워졌다.그때 최지습이 입을 열었다.“내 처가 엄하여, 실례를 용서하시오.”“하하하하하……!”목설원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당당한 평양원군이 부인을 두려워하다니? 좋아, 정말 좋아! 과연 내 좋은 매부로다! 너희들 다 물러가거라.”그가 손짓하자, 가리킨 몇몇 미인들이 단정히 예를 갖추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방 안에는 단 두 명의 여인만 남았다. 각각 두 사람의 곁에 무릎 꿇고 앉아 술을 따르고 안주를 차렸다.“대군자, 이 술은 운화루 최고의 명주로, ‘천일취’라 하옵니다. 자, 이 한 잔은 황도에 오신 걸 환영하여 올리는 바이옵니다.”목설원은 잔을 들어 권하였다.최지습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미인이 내민 잔을 천천히 받아들었다.“자네의 극진한 환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소.”그도 잔을 들어 멀리서 목설원과 부딪혔다.“이 두 번째 잔은, 대군자께서 제 체면을 세워주신 데 대한 감사의 뜻이옵니다.”목설원은 그렇게 말하자마자 잔을 들이켰다.그가 이렇게까지 말한 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도, 최지습이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걸.지금처럼 최지습이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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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5화

최지습은 속으로 비웃었으나, 겉으로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당국 황도의 번화함이 자자하여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람차에 특별히 들른 것이지요. 마침 목 가주께서 청하셨기에, 감히 폐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지요.”“유람이라?”우문호는 가볍게 웃었으나, 그 속엔 분명한 조롱이 서려 있었다.“왕께서 참으로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군요. 다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조선의 호랑이군들도 그런 취미를 갖고 계셔서, 우리 당국 국경 안까지 유람하러 오신 겁니까?”최지습의 마음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들끓는 감정을 억누르며 우문호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냈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우문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더 깊은 압박감을 드리웠다.“혹시, 소한을 찾아온 건 아닙니까?”그 눈동자는 마치 그의 눈 속에서 진실을 도려내려는 듯, 집요하게 박혀들었다.하지만 최지습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킨 뒤, 마치 무언가 떠오른 듯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소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만?”우문호의 눈빛이 즉시 차갑게 식었다.그러나 최지습은 전혀 피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격렬히 부딪혔다.월영각 안은 숨조차 얼어붙을 듯 긴장감이 감돌았고, 향기롭던 화장 냄새조차 흩날리다 멎은 듯했다.그 곁에 앉아 있던 목설원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 술잔을 들고 묵묵히 홀로 마셨다.한참 만에야 우문호가 입꼬리를 다시 끌어올렸다.“왕께선 아직 듣지 못하셨군요. 사실 소한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시 퍼졌던 죽음의 소문은, 그저 그가 조선을 배신하고 당국에 투항한 구실이었을 뿐이지요.”“오? 그렇습니까.”최지습은 담담하게 받아치며, 그 속내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그렇다면, 소한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우문호는 이내 술잔을 들어 마셨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대신 반문하듯 입을 열었다.“평양원군께서 이번에 황도에 오신 것도, 설마 조선을 배반하려는 뜻은 아니겠지요? 조선은 그리도 지긋지긋하신 겁니까?”최지습은 짧게 웃었다.시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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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6화

최지습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술기운 탓인지 눈앞의 사물들이 아른거리고 초점조차 흐릿했다.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약간의 불쾌함을 담아 말했다.“비켜주시지요.”그러나 뜻밖에도 여인은 비켜서지 않았고, 오히려 손을 뻗어왔다.가녀린 손가락이 그의 손목에 닿는 순간, 최지습의 눈매가 즉시 어두워졌다.당장 손을 뿌리치려던 찰나, 상대는 갑작스레 힘을 주어 그를 옆방 안으로 끌어당겼다.방 안은 어둑했고, 구석에 놓인 유리등 하나만이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었으며,공기에는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맑고도 은근한 약향이 퍼져 있었다.술기운이 점점 더 오르면서, 최지습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 몸이 허공을 딛는 기분마저 들었다.하지만 이 여인의 손힘이 지나치게 강했다.보통 여인이 아니라면, 목설원이나 우문호가 미리 심어둔 자는 아닐까?그는 고개를 흔들어, 혼미한 정신을 털어내려 애썼다.무슨 일이 닥쳐도 제대로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천일취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심각했다.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그 얼굴이 어느새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인물로 겹쳐보였다.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최지습은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스스로에게 말했다.지금 이곳에 김단이 있을 리 없다고.그리하여 차갑게 말했다.“낭자는 무슨 의도로 이러시는 겁니까.”낭자?김단은 잠시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다가, 곧 얼굴에서 온기가 사라졌다.“뭐죠? 대군자께서야 미인과 함께, 술과 진미를 즐기며 흥에 겨운 모양인데,그래서 이젠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까?”그 말에 최지습은 그대로 굳어버렸다.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이게 과연 술에 취한 자신의 환영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확인하려 애를 썼다..등불 아래, 눈앞에 선 여인은 산 능선을 닮은 가느다란 눈썹과 맑은 가을 물결 같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그 맑고 투명한 눈 속엔 웃음기와 장난기 어린 빛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그를 장난스럽게 바라보는 듯했다.최지습은 이마를 짚고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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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7화

김단의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러나 그의 허리를 감싸안은 두 팔은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조여들었다.최지습 또한 그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마치 자신 몸의 일부분이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가슴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만함이 퍼져나갔지만, 이내 걱정이 그 자리를 메우고 말았다.“네 몸속의 독은……”“풀었어요.” 김단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감히 이곳까지 당신을 찾으러 올 수 있었겠어요?”그제야 최지습의 눈빛에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그러나 곧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분명 열번째 도령에게 널 막으라 했는데, 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쓴 거지?”김단은 그의 품에 고개를 묻은 채, 그에게서 풍겨오는 숨결을 탐하듯 깊게 들이쉬었다.“목씨 가문이 절 겨냥한 것이라면, 도령들을 연루시켜선 안 되지요.”소한도 마찬가지였다.그 생각이 미치자, 김단은 눈을 떴고, 이내 최지습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뺐다.“소한은 어릴 적부터 저와 함께 자라며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그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는데,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요.”최지습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그리고 다시 김단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턱을 그녀의 정수리에 살짝 기대고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목설하의 말로는, 호랑이군은 목씨 가문에 있고, 소한은 우문호 손에 있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 그 말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 아까 여러 번 떠보았지만,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어.”김단은 그의 품 안에서 조용히 기대어 앉았다.그러다 문득, 예전에 천기당에서 전해 들은 소식이 떠올랐다.“우문호는 잔혹하고 교활한 자예요. 둘째 황자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 세력은 이미 당국의 세자를 능가하고 있지요. 심지어 당국 황제가 세자 자리를 바꾸려는 마음을 품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그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겁니다.”당연히, 몇 마디 말로 속내를 파헤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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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8화

이 순간, 최지습은 자신이 얼마나 탐욕스러운 사람인지 깨달았다.본디 그는 욕심이 많은 자가 아니었다.예전엔 황위를 향한 욕망도, 권세에 대한 탐심도 없었다.사냥꾼이 된 뒤에도, 사냥감을 잡는 것만으로 만족했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하지만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은 달랐다.그녀의 숨결 하나하나까지도 욕심이 났고, 이대로 영원히 품에 안고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했다.허나 하늘은 언제나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법.밖에서 목설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였다.“대군자! 최지습! 대체 어디 간 거야……”뒤이어 우문호의 혀 꼬인 목소리가 들렸다.“내 호위가 말하길, 어떤 여자랑 방으로 들어갔다던데.”“뭐?!”목설원의 술기운이 그 말에 반쯤 깬 듯했다.“어디라고?! 이런 이런, 술 마시고 실수라도 한 거면 단이가 날 잡아먹겠어!”그 말이 끝나자, 바깥에서는 누군가 길을 안내하는 기척이 있었고, 곧 문이 벌컥 열렸다.목설원은 거의 문을 밀치듯 넘어지며 들어왔다.“대군자! 이러면 안…… 단이?!”당황한 목소리는 말끝이 흐려졌고, 그 자리를 믿기 힘든 놀라움의 외침이 대신했다.우문호도 곧이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그의 시선은 들어서자마자 최지습 곁에 선 여인을 향해 꽂혔다.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시선이 김단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하지만 김단은 우문호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목설원을 향해 잔잔히 웃으며 인사했다.“오라버니,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목설원은 처음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두 눈이 반짝이며 커다란 기쁨이 터져 나왔다.목소리까지 높아졌다.“단이! 정말 자네가 맞는 게야?”그는 최지습을 완전히 무시한 채, 활처럼 몸을 날려 김단 앞에 섰다.“어찌 여기에 있는 게야? 언제 온 게야? 어째서 직접 목씨 가문 관저로 날 찾아오지 않은 게야?”김단의 눈동자에 장난기 어린 빛이 스쳤다.“오라버니께서 대군자와 함께 이곳에 오셨다고 들었기에, 저도 세상물정을 조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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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9화

김단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목 가주가 그 보물 어쩌고를 위해 자신이 온 걸 반길 거란 사실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하지만 겉으로는 내색 없이, 그저 예를 갖추어 말했다.“불청객이 되어 폐를 끼쳐드렸습니다.”“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목설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열정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자네가 오니 목씨 관저가 환해지는구먼! 가세, 오늘은 성대한 잔치를 벌여야지!”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지습과 김단을 이끌려는 듯 앞장섰다.그런데 그때, 우문호가 불쑥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본황자도 함께해도 괜찮겠지요? 목 가주께서 불쾌해하실 일은 없을 테니.”목설원의 발걸음이 멈췄다.속으로는 저 우문호의 뻔뻔함에 욕이 절로 나왔지만, 겉으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하께서 친히 오신다니, 저희 관저로선 무한한 영광입니다. 어서 드시지요.”최지습의 눈빛이 차갑게 우문호를 스쳐갔다.그런데도 우문호는 뻔뻔하게 그 시선을 받아내며, 여전히 ‘어쩔 텐가’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최지습은 마음이 불쾌했지만, 이 자리에서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어 속으로만 분을 삭였다.그 순간, 손바닥에 은은히 전해지는 차가운 온기.김단이 어느새 그의 손을 조용히 잡고 있었다.최지습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김단은 조용히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그녀는 그를 달래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손을 감싸 쥐며 조용히 물었다.“손이 왜 이렇게 차지? 혹시 옷을 얇게 입었나?”당국의 겨울은 조선보다 훨씬 매서운 추위였다.오늘 김단이 올 줄 알았더라면, 옷 한 벌 더 챙겨 입었을 텐데.그 순간, 우문호가 끼어들었다.“본황자는 우연히 망토를 챙겨왔소. 누구 없느냐—”“필요 없습니다.”김단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단호히 잘랐다.그녀는 우문호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그저 최지습만을 바라보며 말했다.“껴안아 주시면, 춥지 않아요.”최지습은 마치 깨달은 듯 서둘러 김단을 품에 안았다.나이는 김단보다 훨씬 많으면서, 이런 것도 가르쳐줘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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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0화

그날 밤, 목씨 관저의 연회장은 눈부신 등불로 가득했다.거대한 홀 천장에 수십 개의 유리 궁등이 높이 걸려, 구석구석까지 대낮처럼 환히 밝혔다.진귀한 음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황금 술잔과 옥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우러졌다.비파와 대금이 어우러진 선율은 유려했고, 무희들의 춤사위는 우아했으나, 연회장에 모인 이들의 시선은 어느새 모두 김단에게 쏠려 있었다.목강수는 얼굴 가득 온화한 웃음을 띠며 김단에게 일일이 소개했다.“이분은 너희 삼숙, 목진강이시다. 목씨 가문의 북부 상로를 총괄하고 계시니, 훗날 희귀한 약재가 필요하면 언제든 의논해라.”“이분은 오숙, 목진해. 관저의 호위군을 맡고 계시지.”“이분은 칠숙, 목진림. 정보에는 나름 귀가 밝으신 분이시다.”김단은 목강수의 소개에 따라 차례차례 술잔을 들고 인사했다.그러나 자연스레 최지습과 눈빛을 나누었다.목강수의 이토록 자세한 소개는, 겉보기에는 김단을 향한 극진한 환대 같았으나최지습과 김단의 눈에 비친 것은 조용한 과시였다.‘보아라, 보물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 내가 찾아냈다.’일가 친척들의 인사가 끝나고서야 김단은 자리에 앉았다.그러나 이내 누군가의 뜨거운 시선이 자신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눈을 들자, 아니나다를까, 또다시 우문호였다.‘저 사람, 도대체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가?’김단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그때, 술병을 든 한 여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김 낭자!”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또래의 여인이 서 있었고, 이목구비는 목설하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그 모습을 본 목설하가 즉시 눈매를 날카롭게 바꾸었다.“목몽설, 무례하게 굴지 마라!”누그러뜨린 듯한 음성이었으나, 그 안에는 짙은 경고와 위협이 서려 있었다.그 말에 김단과 최지습 모두 기류가 달라졌음을 감지했다.자연스레 목강수를 바라보니, 그 역시 얼굴에 미세한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하지만 이 목몽설 낭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제멋대로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난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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