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의 모든 챕터: 챕터 1471 - 챕터 1480

1571 챕터

제1471화

숙희는 말을 잇는 사이 점점 더 허둥지둥하여 발을 동동 굴렀다.“안 되옵니다, 안 되옵니다! 아씨, 이 당국은 너무도 위험하옵니다! 저희는 어서 서둘러 떠나야 하옵니다!”김단은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그녀 또한 하루라도 빨리 이 용탄호혈을 떠나고 싶었다.처음 이곳에 들어온 까닭은 호랑이군의 행방을 찾고, 또 소한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허나 이제는… 소한이…소하가 낮고 서늘한 음성으로 단호히 입을 열었다.“내가 한 번 둘째 황자 관저에 다녀오겠소. 아마도 나를 보면 소한의 기억이 조금은 되살아날 수도 있겠지. 그가 우리와 함께하겠다 하면 반드시 설득해 곧장 길을 떠나 당국을 벗어나겠소.”이에 고지운이 근심 어린 낯으로 말을 이었다.“듣건대 우문호의 속셈이 깊어 결코 선량한 이가 아닙니다. 그가 소한을 관저로 들인 이상 분명 꿍꿍이가 있을 터, 뜻을 이루기 전에는 쉽사리 놓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숙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 둘째 황자는 온갖 수를 다해 소 장군을 붙들고 놓지 않으니,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입니까?”말끝이 떨어지자, 방 안은 잠시 적막해졌다.무엇을 위한 것인가.김단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처음에 우문호가 소한을 데려간 것은, 아마도 그가 조선의 장군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목씨 가문에 통적매국의 죄를 씌우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그러나 그 다음은 어떠한가. 목씨 가문이 이제 참화를 당했으니 그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인가.아니면… 다른 꾀가 더 있는가.김단의 미간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 물은 갈수록 깊고 혼탁하여 도무지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때 최지습이 낮게 말을 던져 눌러 앉은 침묵을 끊었다.“우선 윗방으로 올라가 쉬시지요.”그는 김단을 부축해 거스르지 못하게 위로 이끌었다.소하는 고지운의 뒤를 따르다가, 그녀의 얼굴에 여전히 그늘이 드리운 것을 보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 낮게 달랬다.“염려 말라. 별일 없을 것이다. 내가 조심하마.”문득 가까워진 숨결과 낮은 목소리에 고지운은 미세히 몸을 떨며 무심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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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2화

소하는 그제야 핏기가 다 가신 얼굴로 숙희를 홱 돌아보며 쉰 소리로 내뱉었다.“운이가 사라졌소!”“무엇이라? 사라졌다니요?” 숙희가 비명을 삼키듯 소리쳤다. 눈이 동그래졌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공주 전하께서 방으로 드신 뒤로 저는 내내 이쪽 기척을 살폈습니다. 나간 적이 없습니다! 문조차 열린 바 없고요!”이 의관은 오래되어, 문을 여닫기만 해도 삐걱 소리가 곧잘 났다. 하물며 고지운이 머무는 이 방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만약 문이 열렸다 한들, 바로 옆방의 그녀가 못 들을 리 없었다.이 소동에 최지습과 김단도 놀라 방을 나섰다. 최지습은 소하의 낯빛과 숙희의 다급한 기세만 보고도 사태의 중함을 알아채고 눈빛을 번득였다.“호랑이군, 들어라! 의관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라. 안팎을 한 치도 남김없이 수색하거라. 지금 당장!”“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호랑이군이 일제히 응답하며 움직였다.최지습의 부축을 받은 김단도 밖으로 나왔다. 성급히 움직인 탓에 아랫배의 상처가 쿡쿡 쑤셔 왔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웃방의 활짝 열린 문, 반쯤만 닫힌 창, 그리고 숙희의 말이 한데 이어지자, 그녀의 가슴을 싸늘하고도 선명한 생각이 덥석 움켜쥐었다. 고지운이 납치되었다. 더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 창으로 사람 하나를 통째로 끌고 나갈 만큼의 높은 수법이라면, 범인은 비상한 고수일 터였다.어젯밤 목씨 금역을 난입하여 목설하 등을 살해한 그 가짜 소하가 아니겠는가.김단의 눈빛에 서늘한 노기가 스쳤다.“영칠, 곧장 추적해 주십시오. 암위가 심어 둔 암선을 모두 동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목씨 가문 쪽도 함께 살펴 주십시오.”그녀는 소하로 가장한 자를 물론 의심했다. 하지만 증오로 눈이 뒤집힌 목몽설의 눈빛 또한 김단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극도의 비통과 분노 끝에 이성을 잃은 그녀가 소하를 협박하고자 고지운을 납치하는 무모함을 저지르지 말란 법도 없었다. 무엇보다 목씨 가문의 수하에도 강호의 고수들은 적지 않았다.고지운은 아직 몸에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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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3화

영칠은 익숙한 길을 따라 모든 시선을 피해 그림자처럼 여인숙 뒤뜰로 몸을 옮겼다. 지체 없이 천자 1호실로 향한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곧장 밀고 들어섰다.방 안은 어스름에 잠겨 있었다. 창가에 앉은 사내는 월백 비단 포의를 걸친 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 은근히 풍기는 온화하고 문아한 기운은 누추한 공간과 어울리지 않을 듯했으나,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따스한 기운을 머금은 청자 다구 한 벌이 놓여 있었고, 은은한 차향이 누런 빛에 실려 자욱이 번졌다. 그가 바로,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는 심월이었다.영칠의 기척을 눈치채고도 심월의 표정에는 티끌만큼의 동요도 없었다. 그는 잔을 우아하게 들어 손끝으로 잔뚜껑을 살짝 열어 수면의 거품을 부드럽게 불어 흩은 뒤, 가만히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나서야 시선을 들어, 미묘한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자네는 언제쯤 문도 두드리지 않는 버릇을 고치겠소?”그 말투는 마치 오늘 날씨나 묻는 듯 지극히 예사하였다.영칠은 등뒤 손길로 문짝을 눌러 닫아 바깥의 소리를 끊었다. 발걸음은 소리 없되 눌러오는 기세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차가운 금속 가면이 모든 표정을 가리고 있었고, 드러난 두 눈만 겨울 못처럼 서늘했다. 걸음에 맞추어 방 안 구석구석을 예리하게 훑어 사소한 흔적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심월 앞에 멈춰 서자 우뚝한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가면을 통과한 영칠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어 모래를 가는 듯했다.“심월!”“고지운은 어디에 있소?”심월의 눈썹이 아주 미미하게 까딱였다. 들고 있던 잔이 공중에서 잠깐 머뭇거렸다가 일부러 알아차린 듯한 빛을 띠었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몸을 약간 뒤로 기대며 일부러 장난기 어린 빛을 섞어 말했다.“고지운이라니? 그래, 그 돌궐의 공주를 말하는 것이오. 어찌된 일이오? 자취가 끊겼소?”“그만 시치미 떼시오.”영칠의 목소리는 못질하듯 단호했고 온기라곤 한 점도 없었다. “내 눈앞에서 물건을 훔쳐 갈 수 있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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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4화

심월은 한동안 영칠의 눈을 곧장 받아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자네 말이오, 단이 곁에 너무 오래 붙어 있었더니 성정까지 우물쭈물해져, 하루 종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구려.”그는 몇 가닥의 체념이 스민 얼굴로 말을 이었다.“단이는 스승이 내게 남겨 준 유일한 사람이오. 내가 어찌 그 목숨을 해하겠소. 더구나 기억을 바꾼다 하니, 세상에 그런 의술이 어디 있소. 나는 명의의 제자일 뿐, 신선이 아니오.”영칠의 목소리가 가면을 타고 얼음장처럼 흘렀다.“현사술이오. 약물로 심신을 마비시키고 은침을 다리 삼아 의식의 바다로 파고들어, 말의 주문을 실로 삼아 기억을 끌어당기는 법이오. 약왕곡의 비술이오. 이전 약왕곡의 주인이 이 술법이 지나치게 사악하다 여겨, 약왕곡의 모든 전적에서 지워 버렸소.”그의 검을 쥔 손은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검끝은 여전히 심월의 경맥에 닿아 얕은 혈선을 그었다.“그러니 이제 세상에서 현사술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자네 하나이오.”심월은 현사술이라는 낱말이 나오자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으나, 곧 깊고 차가운 연못처럼 잠잠해졌다. 그는 영칠의 서늘한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으며 낮고 마른 웃음을 흘렸다.“허, 뜻밖이로다. 보잘것없는 암위 주제에 우리 약왕곡의 오랫동안 봉인된 비술까지 낱낱이 꿰고 있다 하니, 참으로 새삼스럽구려.”심월이 암위를 깎아내리자, 영칠의 눈빛이 더욱 그늘졌다. 가면 아래서 쉰 목소리가 울렸다.“자네도 나도 심묵에게 주워진 고아일 뿐이오. 타고난 바가 다르면 맡은 바도 다를 뿐, 높고 낮음이란 없소.”“그래서 어쩌겠소.”심월이 비웃음을 흘렸다.“나는 성이 심이오. 자네는 이름도 없소. 그저 부호 하나일 뿐이오.”심묵의 성을 쓰게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묵이 그를 자식처럼 여기고 전인으로 삼았다는 증거였다.“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시오.”영칠이 어딘가 마음속 깊은 상처를 건드린 듯 낮게 호통치며 검끝을 다시 절반쯤 눌렀다. 가느다란 혈선이 순식간에 넓어지고, 붉은 피 한 방울이 심월의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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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5화

그러나 영칠의 손끝이 차가운 문짝에 닿으려는 찰나, 등뒤에서 하늘을 덮는 살기가 폭발하였다.심월의 얼굴에 떠 있던 온화와 나태, 방금의 억지 타협까지도 그 순간 흉악한 독기에 산산조각 났다.소매 속에서 한 줄기 찬빛이 번뜩이더니, 매미 날개처럼 얇고 가는 단검 하나가 벼락같이 튀어나와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휘음과 함께, 지극히 기묘한 각도로 독사처럼 영칠의 무방비한 등의 급소를 향해 사납게 파고들었다.검날이 허공을 찢었으나 일으킨 것은 알아채기 어려운 미미한 쇳바람 한 오라기뿐이었다.그 끝이 미치려는 일순, 영칠이 홱 몸을 옆으로 틀어 돌았고, 치명적 한기가 그의 어깨끝 옷자락을 스치며 울부짖듯 지나가다 짧은 천이 찢기는 소리만 남겼다.영칠의 눈동자에는 서릿발이 응결하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심월을 꿰뚫어보며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심월, 나와 기어이 겨루겠다는 뜻이오?”심월은 싸늘히 웃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단검이 다시 몰아쳤고, 나오는 수는 모조리 필살기였다.무학의 자질은 영칠에 미치지 못했으나, 조금 전 그가 한 말 하나만큼은 옳았다.그는 심씨였다.곧 심묵의 총애를 더 받았다는 뜻이요, 익힌 법 또한 남들보다 더 많다는 말이었다.그러나 타고난 기량만큼은 끝내 영칠이 위였다. 심월이 온힘을 다해도 영칠 앞에서 이득을 보지 못했다.십여 합이 흐른 뒤, 심월은 한 장격을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영칠의 장검 끝이 이미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심월, 죽고 싶은 것이오?”영칠은 냉담히 내뱉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정으로도, 심월이 끝내 자신을 베려 들 줄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바로 그때, 기이한 현기증이 예고도 없이 영칠의 머릿속을 맹렬히 덮쳤다.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바늘이 수없이 문득 꽂히는 듯, 시야 속 심월의 얼굴이 차츰 흐려지고 흔들리며 겹겹이 갈라졌다. 귓가에는 수많은 광포한 벌떼를 쑤셔 넣은 듯 윙윙 울렸다.그 알 수 없는 기운이 순식간에 사지백해의 힘을 쭉 빼앗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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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6화

한 시진 뒤.김단은 이층 계단머리에 서서 아래층을 굳게 내려다보았다.소하와 최지습은 아래 대청 한켠에 앉아 의관 바깥을 오가는 인파만 노려보고 있었다. 겉은 고요했으나, 마음속 초조는 이미 극에 달해 가슴 속에서 불안이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안 되오. 더는 못 기다리겠소.”시간이 한 치씩 흘러가도 호랑이군, 암위 모두 소식이 없자, 소하는 끝내 속을 누르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김단의 미간이 깊이 접혔다. 이 시각 다시 만류한들 소하는 듣지 않으리라.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것이다.영칠이 명을 받고 고지운을 찾으러 나갔으되 약속한 시각을 넘도록 종적이 묘연했다.매순간이 둔칼로 살을 베이듯, 모두를 불안하게 했다.마침내 최지습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하를 보며 낮게 말했다.“내가 함께 가겠소.”설령 목씨 가문이 칼바람과 불물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기어이 헤치고 갈 작정이었다.바로 그때 영칠의 모습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약왕곡의 주인.”그는 여전히 낮고 쉰 목소리로, 가볍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김단이 급히 다가섰다.“어찌 되었습니까. 고지운을 찾으셨습니까?”“찾았소. 사람은 목씨 가문에 있소.”“목씨 가문입니까?”김단의 심장이 움켜쥐어지듯 가라앉았다. 정녕 거기란 말인가.소하가 낮게 말했다. “곧바로 가서 사람을 데려오겠소.”말을 마치자마자 밖으로 향했다.최지습이 재빨리 뒤를 따랐다.이를 본 김단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영칠을 향해 외쳤다.“즉시 사람을 붙여 따라가게 하십시오.”영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련해 두었소.”그 말을 듣고 김단은 잠시 멍해졌다. 영칠이 소하가 반드시 목씨 가문으로 갈 것을 미리 짐작하고 조치해 두었다 여기고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 더 묻지 않았다.그때 시선이 문득 영칠의 목으로 내려앉았다.옷깃이 다 가리지 못한 자리에 깊게 그은 피흔이 보였다. 분명 예리한 날에 베인 자국이었다.“상처를 입으셨습니까?”김단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말끝엔 염려와 함께 가늠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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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7화

고지운은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고, 낯빛은 불길한 회청으로 질려 있었으며, 입술에는 기이한 검푸른 기가 돌았다. 이때 그녀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부드러운 침상에 눕혀져 있었고, 숨결은 들릴 듯 말 듯 미약하여 온몸의 생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너, 고지운에게 무엇을 하였느냐!”김단이 목몽설을 향해 따져 물었다.목몽설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뒤쪽을 흘끗 보았다.호위들이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들것을 앞으로 옮겨와 바닥에 내려놓았다.김단이 서둘러 다가가 손을 뻗어 고지운의 맥을 짚었다.맥은 미약하고 어지러워 때로 끊기고 때로 이어졌으며, 포궁 근처에는 뼛속을 갉는 듯한 음한한 기운이 웅크리고 도사려 있었다. 지극히 흉악한 징후였다. 김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처럼 질렸다.이 독은 맹렬할 뿐 아니라 곧장 태아를 겨냥하고 있었다.제때 풀지 못하면 그 뒤끝을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그녀는 번개처럼 고개를 치켜들어, 화살 같은 눈빛으로 곁에 선 목몽설을 꿰뚫었다. 목몽설의 낯에는 털끝만 한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하등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나 전해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해독약을 내놓으시오!”김단의 목소리는 극도의 분노와 근심으로 미세하게 떨렸고, 손바닥이 내밀어졌다.목몽설의 눈빛이 마침내 김단의 얼굴에 박혔다. 그 눈매에는 온기 한 점 없었고, 입가에는 지극히 조롱스런 웃음이 비스듬히 걸렸다. “그대는 약왕곡의 주인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고작 이 정도 독도 풀지 못하시겠습니까?”말을 잇는 사이, 그녀는 낮게 콧장을 울렸다.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한 글자 한 글자가 얼음송곳처럼 사람 마음을 찔렀다. “소하가 우리 목씨 가문을 몰살하였습니다. 진 빚이 산과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돌궐 여인과 그 뱃속의 악종까지 함께 독살하지 않고 보내 드린 것은, 지난 정을 생각한 지극한 자비였습니다. 김단, 감히 제게 해독약을 달라 하시겠습니까?”“너…!”김단은 그녀의 냉혹함과 적반하장에 온몸이 떨렸다.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올라 금세라도 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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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8화

고지운은 사람들의 극진한 손에 이끌려 내실로 들여와 부드러운 침상에 모셨다.김단의 낯빛은 서릿발처럼 굳어지며 곧바로 잡다한 인원을 물리고 명했다. “모두 나가라. 내가 침술로 독을 빼내겠다.”이 말을 듣자 일행은 연이어 방을 빠져나갔고, 무거운 나무문이 그녀 등 뒤로 천천히 닫혀 바깥의 초조한 눈길을 모조리 가려냈다.반 시진이 유독 아득히 길었다.소하는 문가에 고요히 앉아 있었으나, 눈빛 속 조급함은 우리에 갇힌 야수와도 같았다. 겉은 잠잠했으나, 굳게 움켜쥔 주먹과 미세히 찌푸린 미간이 그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숙희는 한켠에서 두 손을 모아 소리 없이 빌었다. 눈물은 금세라도 그렁그렁 차올라 흘러내릴 듯했다.영칠은 그늘진 곳에 바위처럼 서 있었다. 가면이 모든 표정을 가렸고, 다만 드러난 눈동자만 깊고 헤아리기 어려워 이따금 알아채기 힘든 물결이 스치듯 지나갔다.최지습은 조금 떨어져 서서 몇 사람의 기색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눈빛은 짙게 가라앉았고, 머릿속에선 요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이 쉼 없이 되감겼다.그는 줄곧 무언가를 빠뜨린 듯한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얼마가 더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김단의 모습이 드러났다. 낯빛은 백지처럼 창백했고, 이마머리는 땀에 젖어 뺨에 들러붙었으며, 걸음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녀는 문설주를 붙잡고 섰다. 전신에는 심신이 다한 듯한 피로가 짙게 배어, 막 사생결단의 싸움을 끝낸 자처럼 보였다.소하는 번개에 찔린 듯 벌떡 일어나 쉰 소리로 물었다. “운이는… 어떠하오?”김단은 지친 듯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 깊은 무력과 중압을 머금은 눈으로 답했다. “독성은… 제가 구요현망침으로 잠시 눌러 두었습니다. 우선 심맥과 태아는 지켜냈습니다.”그녀는 숨을 고르듯 말을 끊고, 이어지는 한마디 한마디마다 천근의 짐을 얹은 듯 내뱉었다.“그러나 이 독은 지극히 음독하고 교활하여 장부를 옭아매고 태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사흘 안에 참된 해독약을 찾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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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9화

김단의 목소리에는 염려가 어려 있었다.“상처는 어찌 제대로 감지 않으셨습니까?”그녀는 분명 일러 두었노라 기억하고 있었다.영칠이 잠깐 굳어 서더니 곧 눈을 내려,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피상처일 뿐이오. 대수롭지 않소. 지금은 약왕곡의 주인 안위가 급선무요.”“대수롭지 않다니요?”숙희의 울먹인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그녀는 성큼 다가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드문 단호함을 띤 눈물 어린 목소리로 쏟아냈다.“영칠 도령,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약왕곡의 주인께서는 진이 다하셨고, 공주 전하께서는 사지에 매달리셨습니다. 도령께서는 약왕곡의 주인이 가장 믿는 호위이십니다. 도령의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 상처조차 대수롭지 않다 여기시면, 만에 하나 강적을 만나 도령의 몸이 받쳐 주지 못할 때, 어찌 약왕곡의 주인을 온전히 지키시겠습니까!”말이 거세지자, 숙희는 아예 손을 뻗어 영칠을 잡아끌었다.“안 됩니다. 지금 당장 약을 바르시고, 반드시 제대로 치료하셔야 합니다.”영칠은 내키지 않는 듯 몸이 굳었으나, 숙희의 의심의 여지도 없는 힘과 김단이 묵인하는 눈빛 아래, 끝내 말없이 뒤를 따랐다.회랑 모퉁이 너머로 숙희가 영칠을 이끌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김단의 팽팽하던 신경이 그제야 실낱같이 풀렸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묵묵히 곁을 지키던 최지습을 돌아보며 눈빛으로 뜻을 보냈다.최지습이 곧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발을 맞추어 돌아서서 재빨리 김단의 방으로 들었다.문이 꼭 닫히자, 바깥의 소란이 일절 끊겼다.김단은 문판에 몸을 기대며 마지막 한 올의 기력까지 말려 올린 듯 했다.최지습이 근심스레 물었다.“무슨 일이오?”김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넉넉한 소매 속에서 잘게 접어 둔 쪽지 한 장을 조심스레 꺼냈다. 종이의 결은 평범하여 눈에 띄지도 않았다.“이것을 보시오.”김단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미세한 떨림이 비쳤다.최지습이 쪽지를 받아 펼쳤다. 그 위에는 짤막하게 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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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0화

말을 잇던 최지습이 잠시 숨을 고르고, 무심결에 누렇게 바랜 쪽지의 모퉁이를 매만지며 덧붙였다.“그 여인이 이 쪽지를 남긴 것은, 분명 무엇인가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오.”김단이 깊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세게 좁혔다.“저도 또한 그러하옵니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고, 누군가 혹은 어떤 세력에 겁박당해 억지로 휘둘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성정으로 보아 설령 소하를 이를 갈 듯 미워한다 하여도, 임신한 여인에게까지 이런 독수를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최지습이 쪽지를 손바닥에 꽉 쥐며 차갑고도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오늘 밤, 내가 친히 목씨 가문에 다녀오겠소.”반드시 물어야 했다. 목몽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어서 목씨 가문이 무엇을 도모하는지.한편, 곁방 안.누런 빛의 촛불이 갓 속에서 일렁이며 사람 그림자를 벽에 길게 끌었다. 밝았다가 어두워지기를 되풀이한다.숙희는 숨을 죽이고 영칠의 목덜미 옆에 피로 물든 붕대를 살그머니 풀어, 다시 약을 올릴 채비를 하였다. 공기에는 엷은 핏내와 약술의 알싸한 향이 배어들었다.등불 아래 드러난 상처는 길고 가늘었고, 깊지는 않으나 가장자리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숙희의 가슴이 왈칵 조여들었다. 미지근한 약술에 적신 면포로 상처 둘레의 굳은 피와 때를 극진히 닦아내며, 도로 참지 못하고 낮게 투덜거렸다.“보십시오, 이렇게 벌겋게 부어올랐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 하시니…”가면 아래의 그 음울한 눈빛에, 스치듯 교활한 한 줄기 빛이 어른거렸다.그때 숙희의 손길이 문득 멈추었다.시선이 영칠의 귓불 뒤에 가 닿았다.거기에는 원래 작고 옅은 갈색의 점이 하나 있어야 했다.그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번 영칠이 고열로 혼절하였을 때, 부득이 잠시 가면을 벗겨 식히고 닦아 주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그 작은 점의 모양과 자리까지 또렷이 뇌리에 새겨 두었고, 귓불 뒤에 점이 있으면 복이 두텁고 수가 길다는 어른들 말씀을 떠올리며, 속으로는 영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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