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월의 얼굴에 떠오르던 오만과 만사를 틀어쥔 듯한 득의는 순식간에 굳어 붙었다. 한겨울의 찬물을 뒤집어쓴 듯했다.그는 눈을 부릅뜨고 김단을 응시했다. 내 피가 곧 자옥정초라는 그 한마디의 뜻을 도무지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그러나 김단의 지나치게 침착한 기색을 보는 순간, 심월의 머릿속에 어떤 가능성이 번개처럼 스쳤다."말도 안 돼.”심월은 거의 찢어지는 소리로 외쳤다. 극도의 경악과 불신으로 목소리가 비틀렸다. “가당치 않습니다. 자옥정초가 얼마나 귀한데 사매가 무엇으로 이를 대신하시겠습니까. 천기금쇄의 순서는 저만 압니다. 사매가 무엇으로 푸시겠습니까. 그깟 피로요?”김단은 그의 경악 어린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옅게 입꼬리를 그었다. 그리고 천천히 몇 자리의 혈을 불렀다.“단중, 구미, 거궐, 신궐, 기해. 차례로 역충하고, 천추와 관원으로 맥을 정합니다. 사형, 제가 한 말이 맞습니까.”혈자리 하나하나가 김단의 입술에서 떨어질 때마다, 심월의 가슴속엔 쇳덩이가 내리꽂히는 듯했다.그의 동공이 급격히 죄어들었고, 안색은 경악에서 믿기지 않는 회색빛 참담함으로 바뀌었다.“말이 될 리 없습니다.”심월의 목소리엔 여전히 불신이 서려 있었다. “사매는 제 침을 놓는 것을 보시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아셨다는 것입니까.”“맥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형.”김단의 목소리에는 의원의 차갑고도 확고한 믿음이 실려 있었다. “소한이 경련할 때마다, 내기가 광폭히 역류하는 매 흐름마다, 금맥술이 건드려질 때의 미세한 막힘과 되튐까지도 그의 맥상에는 또렷이 적혀 있습니다.”벼락을 맞은 듯 심월은 비틀거리며 반 걸음 물러났다.발끝에서부터 서릿바람이 치솟아 정수리까지 파고들었다.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스승이 말하던 천부란 말인가.그러나 무엇으로.내 수십 년 공력이 어찌 그따위 천부 하나만 못하단 말인가.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심월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무엇을 떠올린 듯 이를 갈았다.“설령 요행으로 순서를 맞추셨다 한들 어찌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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