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의 모든 챕터: 챕터 1481 - 챕터 1490

1571 챕터

제1481화

숙희는 말이 쏟아지듯 빨라졌다. 두려움을 모조리 말속에 쏟아 붓는 듯, 시선은 자꾸만 그의 목 곁 상처로 끌렸다.“여길 보십시오. 한 올만 더 깊었더라면… 그 한 칼에 목이 막혀 숨이 끊어졌을 터가 아니겠습니까?”‘영칠’은 불쑥 들이닥친 걱정이 성가신 듯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더니 손을 내저었다. 차갑고 단단한 음성이 떨어졌다.“다 되었소?”“아, 됐습니다, 됐습니다.”숙희는 사면초가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거의 본능으로 마지막 매듭을 떨리는 손끝으로 재빨리 묶으며, 애써 평온을 가장했으나 긴장과 메마름이 새어 나왔다.“상처가 작다 하나, 충분히 쉬셔야 합니다. 며칠은… 부디 무공을 쓰지 마시고 고이 쉬십시오.”말을 마치고는 약상자를 부지런히 정리했다. 더 머뭇거릴 틈도 두지 않았다.“우리 아씨 쪽도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먼저 물러가겠습니다.”거의 달아나듯 곁방을 빠져나간 숙희 뒤로, ‘영칠’만이 희미한 등불 아래 홀로 앉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막 감싼 상처를 스치고, 다시 귓가의 매끈한 피부로 미끄러뜨렸다. 가면 아래 입끝이 서늘하고 괴이한 각도로 천천히 치올랐다.숙희는 내달리듯 복도를 가로질렀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흉곽을 깨고 뛰쳐나올 듯 거세게 요동쳤다.그녀는 김단의 방으로 곧장 달려가 예법 따위는 내던지고 문을 홱 밀치고 들이닥쳤다.“아씨!” 그 목소리에는 극도의 공포와 다급함이 배어 있었으나, 누군가 들을까 낮게 누르고 있었다.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숨결은 거칠었다. “영칠… 영칠 그는…”숙희의 그 다급한 기세에 김단도 걱정이 앞섰다. 곁의 최지습과 묵직한 눈빛을 나눈 뒤 물었다.“무슨 일이냐? 영칠의 상처에 문제가 생겼느냐?”“아닙니다, 아닙니다!” 숙희는 연거푸 고개를 저으며 두 손으로 김단의 팔을 꽉 잡았다. 목소리는 더욱 급했다.“그의 상처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문제입니다!”사람이 문제라니.김단은 미간을 좁히며 의혹으로 가득 찼다.숙희는 더 바짝 다가와 김단의 귓가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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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2화

그 깨달음은 독을 바른 빙추와 같아 김단과 최지습의 심장을 사정없이 꿰뚫었고, 격통이 신경을 타고 번져 삽시에 전신을 얼려 버렸다.방 안의 공기는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쥔 듯 순식간에 응고되었고, 들숨마다 차디찬 납덩이를 삼키는 듯 답답하여 숨이 막혔다.촛불은 불안히 일렁이며 셋의 굳어진 얼굴에 깊고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숙희의 몸은 절로 미미히 떨렸고 손끝은 얼음장 같았다. 눈빛에는 감추기 어려운 공포가 서려, 보이지 않는 한랭의 파도에 휩쓸린 듯하였다.이때 김단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알아채기 어려운 떨림이 실려 끝음은 팽팽히 당긴 줄과도 같았다.“숙희, 먼저 가서 고지운 곁을 지켜라. 한 발짝도 떠나지 말라. 사소한 변동이 있거든 즉시 알리거라.”숙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문밖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희미한 기류가 일어 정적의 공기를 살짝 뒤흔들었다.무거운 문짝이 소리 없이 닫히며 바깥의 마지막 소리마저 가로막았다.방 안에는 김단과 최지습만이 남았다.촉심이 내는 자잘한 탁탁 소리마저 이 적막 속에서 한없이 크게 들렸다.최지습의 낯빛은 쇳덩이처럼 굳고 턱선은 팽팽히 당겨졌으나, 그 깊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익숙한 예리함과 침착한이 번뜩였다.그는 소리 없이 창가로 걸어가 귀를 기울여 한동안 자세히 살폈다. 창밖에 엿보는 기색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낮게 누른 목소리, 한 음절 한 음절이 단련된 찬 쇳말 같았다.“영칠의 기예는 내 아래가 아니오. 세상에 그를 소리 없이 다칠 자는 손가락으로 꼽는다. 다만 둘 중 하나라면 모를 일이오. 하나, 적이 다수로 몰려 천라지망을 쳐 날개가 있어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거나. 둘은…”그는 말을 잠시 끊고 번개 같은 시선으로 어둠을 가르며 김단의 눈 깊숙이를 꿰뚫었다.“그가 그 자를 전혀 경계치 않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만나러 갔다는 뜻이오.”“전혀 경계치 않고… 스스로 만나러…” 김단이 중얼거리듯 되뇌었다. 심장은 차가운 손에 사정없이 움켜쥐어진 듯했다. 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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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3화

호위인 호랑이군을 최지습이 김단 곁에 한시도 떼어 놓지 않는다 하여도, 저들이 쓰는 음험하고 요사한 수단을 막아 내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게다가 호랑이 그림자가 계속해서 따라붙기만 한다면, 괜히 풀숲을 헤집어 뱀을 놀라게 하는 꼴이 될 뿐이었다.김단은 최지습의 눈동자에 깊게 패인 걱정을 읽어냈다. 입가를 살짝 올려 괜찮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눈가까지 닿지도 못한 채 말갛게 스쳐 사라졌다.“걱정 마세요. 다른 암위들도 있습니다. 감히 제게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그녀가 가슴께를 가볍게 두드렸다. 안쪽 어딘가 단단한 것이 숨어 있었다.“내 몸을 지킬 물건이 있습니다.”최지습의 시선이 잠시 그 부근에 머물렀다. 김단의 옷깃 안쪽에는 언제나 피에 닿는 즉시 목숨을 앗는 독가루 몇 봉과 독을 머금은 은침 몇 가닥이 숨어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팽팽히 조여 있던 그의 신경이 그제야 조금은 풀렸으나,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밤빛은 마르지 않은 먹물처럼 짙고도 깊었다.최지습의 그림자는 밤에 스며든 유령 같았다. 그는 의관의 뒷창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나와 살쾡이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움직였다.모든 감시의 눈을 익히 피하는 길을 골라 지붕마루의 그늘을 타고 훨훨 건너뛰더니, 끝내 삼엄한 경계의 목씨 관저 높다란 담을 너머, 목몽설이 거처하는 작은 뜰 가장자리 무성한 파초 그늘에 정확히 내려섰다.그는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밤짐승 같은 예리한 눈으로 고요한 뜰을 훑어 보며, 행각 아래엔 인적이 없고 밤을 지키는 하인들 또한 졸음을 이기지 못했음을 확인하였다. 그제야 유령처럼 미끄러져 목몽설의 굳게 닫힌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손끝으로 문판을 아주 가볍게 세 번 두드렸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미미한 소리였다.“톡, 톡, 톡.”방 안에서 아직 잠들지 못한 목몽설은 두드리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했다. 몸이 거의 침상에서 튀어 오를 뻔하였다.그녀는 머리맡에 걸어 두었던 장검을 주저 없이 뽑아 들었다. 손에 닿는 차가운 자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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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4화

최지습은 목몽설이 와락 잡아당기는 바람에 한 걸음 비틀거렸다. 미간이 가늘게 찌푸려지고, 옷 너머로 손톱이 파고드는 듯한 움켜쥠이 팔에 전해졌다. 예가 지나쳐 무례에 가까운 그 동작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목몽설은 그제야 손을 놓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천근의 짐을 덜어낸 듯, 얼굴에는 탈진에 가까운 피로와 모든 것이 매듭지어진 듯한 기이한 확신이 어려 있었다.그녀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불꽃 같은 눈빛으로 최지습을 똑바로 보았다. 절망의 나락에서 끝내 붙들 수 있는 마지막 밧줄을 손에 쥔 사람 같았다.“역시나… 내가 쪽지를 남겼으니, 오늘 밤 찾아올 이는 반드시 그대일 것이라 알았소.”“고지운의 일,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오?”최지습은 인사 한마디 없이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눈빛은 횃불처럼 날카로웠고, 목몽설의 핼쑥한 얼굴에서 미세한 표정의 떨림과 눈빛의 물결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목몽설은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끝 모를 피로와 깊은 무력감이 드리웠다. 낮 동안 간신히 버티던 기운이 송두리째 빠져나간 듯했다.“나도 모르겠소. 오늘 정오에 빈소에서 돌아와 심신이 탈이 나, 그저 목욕하고 잠시 숨 좀 고르려 침방으로 들었는데… 문을 여는 순간, 돌궐 공주가 내 침상 위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니겠소. 마치 곤히 잠든 사람처럼 말이오. 깜짝 놀라 몇 차례 불러 보았으나 아무 반응이 없고… 가까이 들여다보니 낯빛이 잿빛으로 질려 있고, 숨결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약하더라. 그제야 극독에 당했음을 알아챘소.”그녀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목소리에는 떨림이 실렸다.“간담이 서늘해 혼이 나갈 뻔하였소. 온 당국을 통틀어 구할 이는 당누이뿐이라 여겨 한순간도 지체치 못하고 곧 심복을 불러 가장 빠른 길로 의관에 모셔 보냈소. 한 걸음만 늦었어도…”말을 잇지 못한 그녀의 두 손이 꽉 맞잡아졌다. 손마디가 희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낮에 벌어진 그 아찔한 한 장면을 떠올리자, 목몽설의 가슴이 다시 서늘해졌다.“반드시 누가 고의로 누명을 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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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5화

목몽설이 말을 이었다. 약간은 득의에 찬 기색이었다.“그래서 내가 빈소에서 그토록 노성을 높였던 것이오. 분명 그 자가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지. 당장 찾아낼 길이 없다면 차라리 그 계책을 역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소.”이에 최지습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목 낭자는 과연 단이의 예견대로 빙설처럼 영민하오.”목몽설은 조금 놀란 듯 반겼다.“당누이가 짐작했단 말이오? 다행이구려. 혹여 참으로 노하신 건 아닐까 마음이 놓이지 않았소.”그녀가 문득 무언가 떠올린 듯 했다.“잠깐.”목몽설이 재빨리 책상가로 가서 서랍을 열고, 조심스레 붓 한 자루를 꺼냈다. 평범한 호필로, 필대는 흔한 청죽이고 털끝은 다소 낡아 있었다.“금역 셋째 밀실에서 찾았소. 저 흉수는 금역에 들었던 까닭이, 무언가를 적으려 한 듯하더이다.”허나 셋째 밀실에 무엇이 있었던가.오직 석벽에 새긴 의서와, 요망서의 피눈물 어린 탄식뿐이었다.최지습은 그 붓을 받아 들었다. 차가운 필대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는 그의 눈빛이 문득 칼날처럼 매섭고 냉혹해졌다.흩어졌던 실마리들이, 보이지 않는 한 올의 줄에 꿰이듯 순식간에 하나로 이어졌다.역용술, 독술, 약왕곡과 목씨 가문의 은밀한 내력을 꿰뚫고 있는 자…… 한 이름이 번개처럼 그의 가슴속에서 울려 터졌다.그는 번쩍 고개를 들어 목몽설을 바라보며, 전례 없이 무거운 경계의 빛을 눈에 담아 낮게 일렀다.“알겠소. 목 낭자, 부디 스스로도 조심하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쉽사리 믿지 마시오.”“명심하겠소.” 목몽설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몸을 지키고, 또한 진상을 밝힐 방도를 찾아보겠소. 그대들 역시… 조심하시오.”최지습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깊이 한 번 바라보더니, 온몸을 밤빛에 녹여 들듯 소리 없이 물러나, 목씨 관저를 떠났다.의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삼경이었다.최지습은 야경을 비켜 그림자처럼 김단의 방으로 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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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6화

심월은 심묵의 적전 대제자다. 어려서부터 줄곧 심묵 곁에 붙어 의독의 술을 익히고 무예를 닦았으며, 심지어는 원한까지도 배워 왔다.목씨 가문의 금역 석벽에 새겨진 의서와 요망서의 피맺힌 고발에 그토록 집착할 자는 그자밖에 없다.영칠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 또한 그자뿐이다.그리고 고지운의 체내를 파고든 독, 그 음험하고 기이한 조성은 예전에 심묵이 은밀히 조제하던 몇 종의 비독과 너무도 흡사하다.더구나 번개처럼 번뜩인 생각이 김단의 가슴을 쳤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며, 스스로 얼마나 방심했던가를 떠올렸다. 소한을 그에게 맡겨 버렸던 것이다.그 결과가 무엇이더냐.소한은 기억이 어지러워졌고, 몸 상태는 더욱 참담해졌다.처음엔 정말로 심월의 말을 믿었다. 소한이 성급히 쾌차하려다 약탕욕의 약력이 뒤엉켜 혈맥이 거꾸로 치달은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약탕욕의 약력이 아무리 세다 한들 소한이 거의 주화입마에 빠질 리가 있겠는가.그렇다면 도대체 심월은 왜 이런 짓을 벌이는가.심묵을 따라 수년을 보냈음에도 약왕곡을 잇지 못하고, 오히려 김단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인가.만약 과연 그러하다면, 그가 원한을 품을 대상은 김단 한 사람일 터였다. 그렇다면 칼끝은 곧장 김단을 겨눠야지, 어찌하여 연이어 그녀의 곁사람들을 해치는가.바로 그때, 옆방에서 섬찟한 외침이 터졌다. 소하의 목소리였다.“운이!”김단과 최지습의 눈빛이 번개처럼 마주쳤다. 싸늘한 기운이 방 안을 가르며 터졌다.두 사람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문을 박차고 나가, 곧장 고지운이 있는 방으로 내달렸다.눈앞의 광경에 김단의 가슴이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쳤다.침상 위의 고지운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히 잠들어 있었으나, 이 순간 격렬한 경련에 휘말렸다. 사지가 제멋대로 쥐나고 곧게 뻣으며, 보이지 않는 실에 미친 듯이 끌려가는 꼭두각시와도 같았다. 김단이 공을 들여 겨우 한 줄기 생기를 돌려놓았던 얼굴엔 다시 섬뜩한 잿빛이 내려앉고, 희미한 사기가 배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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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7화

뒤이어 소하는 더는 내뱉을 기력조차 없었다.모든 감정이 침상 위, 끝없이 경련하는 그 몸짓에 모조리 휩쓸려 가 버렸다.손 장로가 그를 바깥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먼저 나가 계시지요. 여기는 저와 약왕곡의 주인이면 됩니다.”소하는 반응조차 잊은 채, 두 눈을 고지운에게 곧게 박은 채 서 있었다. 문이 닫히고, 시야가 완전히 가로막힐 때까지.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산을 무너뜨릴 기세로 몰아쳤다.그는 문득 떠올렸다. 예전 자신이 침상에 혼절해 누워 있던 날들, 고지운이 밤낮을 지켜 주었을 때의 마음도, 지금의 자신과 같았을까.“괜찮을 것이오.”곁에서 최지습의 낮고 단단한 위무가 들려왔다.소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을 것이다. 고지운은 그토록 선한 사람이거늘. 하늘이 반드시 도울 것이다.방 안에서는 금침이 촛불 아래 서늘한 광을 번득였고, 인삼탕의 김은 희망과 절망이 뒤엉킨 기운으로 자욱했다.최지습이 목씨 관저로 향했던 동안, 김단은 약왕곡의 해독법을 더듬어 떠올리며 마침내 한 가지 실낱같은 가능성을 짚어 냈다. 다만 손 장로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나는 손 장로의 내력이 깊고, 또 하나는 그가 독성을 익히 알아 더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이리하여 김단과 손 장로는 물 흐르듯 합을 맞추었다. 한 사람은 내력으로 심맥을 굳게 떠받치고 독세를 흘려 보내며, 한 사람은 금침으로 혈을 봉해 약력을 끌어올렸다.시간은 숨이 막히는 고행 속에서 더디게 흘렀다.촛대에 맺힌 밀랍의 눈물은 작은 산처럼 겹겹이 쌓였고, 창밖 하늘은 가장 짙은 먹빛에서 서서히 잿빛 여명으로 물들어 갔다.김단의 이마엔 잘디잔 찬땀이 번져 옆머리까지 흥건히 적셨다.오래된 배의 상처가 내력을 거듭 운기하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뿜어져 나왔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당겨지며, 속에서 무뎌진 칼날이 훑어 지지는 듯했다.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얼굴을 차가운 돌처럼 굳힌 채, 모든 고통을 목구멍 깊숙이 꿀꺽 삼켰다. 오로지 금침 끝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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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8화

손 장로는 눈앞의 광경에 눈시울이 뜨겁게 젖었다.김단은 지친 눈을 감고 깊게 한숨을 들이킨 뒤에야 목끝의 비릿한 역겨움을 눌러 삼켰다.복부의 상처가 불로 지지는 듯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일으키며 몸의 한계를 일깨웠다.하지만 지금은 쉴 때가 아니었다.그녀가 손 장로를 향해 말했다.“손 장로, 부디 저와 함께 오시지요.”말을 마치고 곧장 곁방으로 발을 옮겼다.최지습은 그녀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다가가 부축했다.손 장로도 뒤따랐다.방에 들어서자 김단은 다소 힘겹게 책상 앞에 앉았다.손 장로가 문을 닫고서야 그를 바라보며 근심 가득 물었다.“약왕곡의 주인께서는 며칠 전 겨우 저승문턱에서 목숨을 건져 나오셨는데, 이 며칠 또 남의 일로 날마다 마음을 쓰시니 이 상처가 어찌 낫겠습니까?”말하며 다가와 진맥하려 했다. 그는 김단이 자신을 부른 까닭이 그 일이라 여겼다.그러나 김단이 가볍게 손을 들어 막고는, 사력을 다해 정신을 추슬러 손 장로를 일별하며 물었다.“손 장로, 심월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손 장로가 멍하니 굳었다.“심 선생입니까? 전에는 약왕곡으로 자옥정초를 구하러 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김단의 시선은 줄곧 손 장로의 두 눈을 파고들었다. 그 눈빛에서 무엇이든 읽어내고자 했으나,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김단은 미간을 어둡게 드리우고, 자신과 최지습이 짚어낸 의심을 한 조각도 남김없이 손 장로에게 들려주었다.손 장로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심 선생이 왜 이렇게까지 하시겠습니까?”김단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쇳물처럼 차가웠다.“모든 의심이 그자를 가리킵니다. 금역에서 나온 붓, 영칠의 실종, 고지운의 몸에 도는 독, 그리고 소한의 이상까지, 두루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손 장로가 숨을 거칠게 들이켰다. 노기가 어려운 눈에 경악이 번졌다.“심월이라니요? 그는… 그는 무엇을 도모한단 말입니까?”“그 점은 저도 풀리지 않습니다.”김단이 욱신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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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9화

그래, 숙희다!김단은 분명 앞서 숙희에게 고지운을 지키라 분부했건만, 방금 고지운에게 변고가 닥쳤을 때 숙희는 자취마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숙희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잠시 눈을 붙인 줄로만 여겼다. 더구나 고지운의 상황이 다급하여, 김단은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하지만, 분명 숙희는 영칠이 남의 역용술로 꾸민 가짜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그를 따라나섰단 말인가?협박을 받은 것인가?김단의 얼굴에서 핏기가 삽시에 사라지고, 몸까지 떨렸다. “그자가 무엇을 하려는가? 대체 무엇을 노리는가!”왜 하필 내 곁 사람들을 해치는가? 벨 테면 내게로 오면 될 것을!배를 에는 듯한 격통과 하룻밤 쌓인 피로, 그리고 숙희의 안부를 향한 끝없는 걱정이 마치 산사태와 쓰나미처럼 동시에 몰아쳐, 간신히 버티던 김단의 의지를 무너져 내리게 했다.눈앞이 문득 새까매지며 몸이 저절로 휘청였고, 비릿한 단내가 목구멍으로 치밀었다.“단이!” 최지습이 번개같이 손을 뻗어 쓰러질 듯한 그녀를 부축했다. 굳센 팔로 억지로라도 그녀를 붙들어 세웠다.김단은 최지습의 팔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지경이었다. 낯빛은 금박처럼 창백했고, 눈에는 속을 태우는 조급과 얼음 같은 두려움이 번졌다. “숙희를 찾아라! 어서 사람을 보내 숙희를 찾아! 그 아이는 일이 나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숙희는 김단이 진산군 댁으로 돌아온 뒤로 줄곧 곁을 지키며 돌보고 위로해 주었다. 생사고비를 함께 넘겼으니 비록 주종의 사이라 하나 이미 자매와 다름없었다. 그녀는 숙희를 잃을 수 없다…김단의 몸을 타고 전해오는 전율과 억눌러지지 않는 공포를 느낀 최지습의 눈빛이 순식간에 칼끝처럼 날카로워졌다.그는 한 손으로 김단을 단단히 붙들고서 암위에게 준엄히 명했다.“즉시 명을 전하라! 움직일 수 있는 전 인원을 동원해 동쪽의 모든 출구를 봉쇄하라! 숙희와 가짜 영칠의 자취를 샅샅이 수색하라! 목씨 관저에 급보하여 경계를 배가하고, 특히 목몽설을 엄중히 호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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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0화

그 영칠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그는 부서진 달빛과 짙은 그림자의 경계에 서 있었고, 얼굴에 쓴 영칠의 면구가 어둑한 빛 속에서 소름 돋는 기이함을 뿜어냈다. 가면 아래의 두 눈은 음산하고 괴이하여 그저 숙희만을 오래 응시하더니, 문득 낮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은 고요한 폐사에 메아리쳐 밤올빼미의 울음 같았다.숙희는 진산군 댁에서도 대담하기로 이름났으나, 이 순간만은 겁이 뼛속까지 스며 심장이 움찔거렸다. 그녀는 그를 바라볼 뿐,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그가 손을 들어 면구를 벗어 내렸다. 그 아래로 전혀 낯선 얼굴이 드러났다. 이목구비는 반듯하고 눈매는 깊었으며, 약간의 서생같은 기품까지 배어 있었다. 그런 얼굴은 도처에 온화가 흐려 숙희의 두려움이 한순간 한결 가셨다. 다만 그 온화한 얼굴에 걸린 웃음은 용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사냥감을 가늠하는 듯한 농이 서려 있었다.숙희가 심월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의 내력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역용술로 소하로 변장해 목씨 관저에서 살육을 벌인 자가 바로 그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영칠마저 그의 독수에 당했다.그 생각에 미치자, 방금 가셨던 두려움이 다시 물결처럼 밀려왔다.숙희는 스스로를 다잡아 그 음험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억지로 가라앉힌 탓에 목소리가 다소 날카로워졌다.“너, 네 꼴은 사람처럼 그럴싸하니 말은 지켜야지! 나더러 따라오면 영칠을 보게 해 준다 하지 않았느냐! 사람은 어디 있지? 영칠은 대체 어디에 있지!”그녀는 목청을 높여 속의 큰 파도를 허세로 덮으려 했다.심월은 겁에 질려 죽을 지경이면서도 끝내 버티며 따져 묻고, 심지어 제 꼴을 두고 험말을 하는 작은 시녀를 보며 입가의 웃음을 더 깊게 했다.“낭자, 담력은 제법이로구나.” 그의 목소리는 게으른 기색을 띠었고, 독사가 혀를 날름이는 듯 느릿하게 흘렀다. “너와 영칠은…… 무슨 사이냐.”그는 흥미 있는 눈길로 숙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재미난 장난감을 관찰하듯했다.숙희는 그 시선이 차가운 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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