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131 - Chapter 1140

1183 Chapters

제1131화

윤하경은 갑자기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듯 피곤함이 몰려왔다. 강현우는 이미 기억을 잃었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담담하게 말했다.“어쨌든 오늘은 고마웠어요. 그 이상은 말하지 않을게요. 저는 여기 있으면 됩니다.”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봤다.“아, 그리고... 오늘 일은 유호천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 지연이 수술 끝나면 걔 의견부터 물어보고 알려줄지 결정할 거예요.”속마음으로는 차라리 유호천이 이 일을 알게 되길 바랐다.그가 뼈저리게 후회했으면 좋겠고 가슴 깊이 미안함을 느꼈으면 했다.하지만 그건 소지연이 감당해야 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강현우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병원 복도에는 윤하경 혼자만 남았다. 그녀는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한참 지났지만 소지연은 여전히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윤하경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일어나 수술실 쪽을 바라봤다.그때 등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지연이... 어떻게 된 거야?”익숙한 목소리에 윤하경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여긴 어떻게 왔어?”유호천은 대답 대신 수술실 문에 귀를 대고 안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조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지연아! 괜찮아?”윤하경이 그를 거칠게 끌어냈다.“뭐 하는 거야?”그녀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수술 중에 의사 방해해서... 진짜 죽게 만들 셈이야?”그리고 비웃듯 말했다.“지연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너 같은 사람을 만난 거지?”유호천은 무언가 변명하려 했지만 막상 입을 열어도 힘이 빠져나오는 말뿐이었다.결국 그는 축 처진 채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였다.윤하경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정말 형편없는 놈이었다. 유호천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윤하경은 그런 그를 매섭게 바라봤다.‘분명 유호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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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2화

하지만 지금, 윤하경은 눈앞의 유호천을 보면서도 소지연을 위해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 한쪽에서는 깊은 안타까움이 차올랐다.유호천이 이렇게 애틋한 표정을 짓는다 한들 그가 소지연을 위해 해 준 게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그는 여전히 자기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아마 몇 년... 아니 몇 년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머지않아 그는 소지연을 완전히 잊어버릴 테니까.하지만 소지연이 입은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윤하경은 유호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음속에 쌓인 말을 쏟아냈다.그 말이 길어질수록 유호천의 눈빛은 점점 깊어졌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다, 옆으로 늘어뜨린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그리고 한참 만에 낮게 내뱉었다.“그래서... 너는 내가 지연이한테 진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윤하경은 고개를 저었다.“차라리 진심이 하나도 없다면 그게 제일 나아.”“반만 진심인 게 더 무서워. 유호천, 넌 나랑 달라. 넌 쓰고 버릴 시간과 돈이 얼마든지 있겠지만 지연이는 아니야.”그녀는 유호천이 소지연을 사랑한다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하지만 불완전한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험했다. 상대가 완전히 놓아주고 싶어도 끝내 미련이 남아 발목을 잡게 되니까.결국 끝까지 다치는 건, 언제나 소지연이었다.윤하경의 말에 유호천은 묵묵히 침묵했다. 그는 그녀 앞에서 조각상처럼 굳어 서 있었다.윤하경도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많은 건 스스로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그녀는 관심을 끊듯 고개를 돌려, 병상 위의 소지연을 살폈다. 그러자 잠시 후, 뒤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결정했어. 난 지연이랑 같이 갈 거야. 아무도 동의하지 않아도.”윤하경은 고개를 돌려 눈살을 찌푸렸다.“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마. 그럴듯하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라고. 괜히 또 지연이가 네 말에 속게 만들지 마.”유호천 같은 부잣집 도련님이란, 대개 인생을 장난처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주변의 유혹도 끝이 없었다. 그들이 한때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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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윤하경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너 임신한 거 언제 알았어? 병원에 와서 검사라도 했어야지.”소지연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대답했다.“나도 방금 알았어. 원래 병원에 가보려고 했는데... 누가 알았겠어...”그녀는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 아까 카페에 있을 때,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팠던 것이다.하지만 그 자리에 이옥연이 있었기에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고 그저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 사실이 이옥연 귀에 들어가면 자신이 하려던 일들을 하나도 못 하게 될 게 뻔했다.소지연은 배를 바라보며 눈빛을 살짝 흔들었다.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아쉬웠다. 이 세상에 드디어 자신과 피가 이어진 가족이 생길 거라 믿었는데 결국 이렇게 끝나버렸으니.윤하경도 그 표정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는 소지연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도 아이를 잃었을 때,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나중에는 다시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강현우와는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 결국 그와 자신은 애초에 인연이 없었던 걸까.윤하경은 손을 뻗어 소지연의 귀 옆 머리카락을 살짝 넘겨주며 부드럽게 말했다.“너무 생각하지 마. 언젠간 생길 거야.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랑.”소지연은 희미하게 웃었다.“사랑? 그런 게 대수야? 남자란... 다 거기서 거기지.”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아, 나 며칠은 본가로 못 가. 아마 아버지가 기절초풍하겠지.”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그 인간이 화나든 말든 상관없어.”소지연은 다시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나... 지금 괜찮아 보이지? 며칠 뒤면 내 결혼식이잖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윤하경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찡그렸다.“너 정말 그 임씨 집안 큰아들이랑 결혼할 거야?”“응.”소지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윤하경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무슨 꿍꿍이야? 나한테 말 좀 해줄래?”그 물음에 소지연은 잠시 눈을 숙였다. 그 안에서 미묘한 갈등이 스쳐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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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4화

소지연이 끝내 유호천을 내쫓아버린 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그가 질척거리며 계속 매달리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을 게 없었으니까.그렇게 생각한 윤하경은 입을 다물고 병실 한쪽에서 최대한 존재감을 줄였다.유호천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지연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곧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좋아, 잘한다 너.”그는 손가락으로 소지연을 가리키고는 고개를 홱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유호천이 나가자 병실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윤하경은 옆에서 보고 있자니 소지연의 표정이 조금 멍한 듯 보였다.“하경아... 나 좀 혼자 있고 싶어.”소지연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윤하경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병실 문을 나섰다.그러나 곧장 가지 않고 복도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연락처 하나를 눌러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그날 밤, 클럽 ‘헤븐’.유호천은 혼자 홀 구석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색 조명이 켜졌다 꺼지며 그의 얼굴을 스쳤고 그 음울한 기운을 더 짙게 만들었다.그는 술병을 끌어안고 목구멍에 부어 넣듯 술을 마셨다.“어이, 유호천, 이게 무슨 꼴이야?”한 부잣집 도련님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며 웃었다.유호천은 아무 대꾸도 표정도 없었다.“설마 여자한테 차였어?”다른 도련님 하나가 빈정대듯 다가왔다.“꺼져.”유호천이 고개를 돌려 차갑게 쏘아보았다. 장난이던 분위기가 순간 싸늘해졌다.그 남자는 당황해 웃음을 지우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얼른 중재했다.“야야, 재수 없는 얘긴 그만하자. 그냥 마시자.”술잔이 오갔고 억지로 웃음소리가 돌아왔지만 유호천은 끝내 표정 하나 없이 혼자 술을 들이켰다. 마치 자기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그때, 홀 안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휠체어를 탄 남자가 여자들 무리에 둘러싸여 들어오고 있었다.“도련님, 오늘 밤은 우리랑 놀다 가요.”그 주변 여자들이 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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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5화

임호원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유호천의 두 번째 주먹이 얼굴에 꽂히고 있었다.“네가 대체... 윽... 누구야!”임호원이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호천이 그의 옷깃을 거칠게 붙잡아 휙 들어 올리더니 던져버렸다.퍽 소리와 함께 휠체어가 뒤로 밀려나고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다리도 못 쓰는 주제에 여기 나와서 노는 꼴이라니.”유호천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임호원을 바닥에 눌러놓고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임호원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몸이 불편한 이상 유호천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일방적으로 짓눌린 채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경찰 불러! 빨리 불러! 난 오늘 이놈을 감방에 처넣을 거야!”그가 소리쳤지만 경찰보다 먼저 나타난 건 강현우였다.위층에서 다른 일을 보고 있던 강현우는 위난의 보고를 듣고 서둘러 내려왔다. 그때는 이미 임호원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강현우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살벌한 기운을 풍기며 다가왔다.“강 대표님, 마침 잘 오셨네요. 대표님 가게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때린 사람이 하필이면 대표님 사촌이라니요. 오늘은 꼭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강현우는 살짝 미간을 올렸다가 바닥에 주저앉은 유호천을 내려다봤다.“뭐야, 내 가게에 와서 사고 치는 거야?”유호천은 턱을 쓱 문지르며 임호원을 노려봤다.“여기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너 진짜 가만 안 뒀어.”사실, 유호천은 예전부터 임호원이 눈엣가시였다. 임씨 가문이 명문이라 해도 유씨나 강씨 집안 앞에서는 기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하지만 유호천의 거친 손버릇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강현우는 잠시 눈썹을 찌푸리더니 뒤에 서 있던 우지원을 향해 말했다.“유호천 데려가. 술 깨게 해. 그리고 호원 씨께는 직접 사과와 함께 선물 챙겨 드려. 여긴 내 가게니까, VIP 평생 회원권도 주고.”임호원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강현우가 유호천을 감싸고 도는 게 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코피를 훔치며 이를 갈았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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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6화

강현우는 뒤에 서 있던 우지원을 차갑게 쳐다보았고 우지원은 곧바로 눈치를 채고 유호천을 끌고 나갔다.임호원은 결국 더 이상 일을 키우지 못하고 신고를 취소한 채 강현우 사람들에게 병원으로 실려 갔다.최상층 사무실.강현우는 책상 뒤 가죽 의자에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말해봐. 무슨 일이야.”유호천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그냥 꼴 보기 싫어서 죽여버리고 싶었어.”“죽인다고 해서 소지연이 다시 너한테 돌아오는 건 아니야.”강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유호천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봤다.“형, 기억 잃은 거 아니었어?”강현우는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난 기억은 잃었어도, 바보가 된 건 아니거든.”그 말에 유호천은 이를 악물고 책상 위에 있던 꽃병을 쓸어버렸다. 순식간에 바닥에 유리 파편이 흩어졌다.강현우는 그 파편을 흘긋 보고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유호천은 이를 악문 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형, 나 좀 도와줄 수 없어?”“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고?”강현우의 말투에 개의치 않고 유호천은 침묵 끝에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나, 지연이 데리고 나갈 거야. 우리 엄마가 결혼 반대하니까 그냥 해외로 나가서 살려고. 어디서든 살면 되잖아. 나한테는 지연이만 있으면 돼. 맞선도, 정략결혼도 싫어. 형이 좀 도와줘.”“데리고 나가?”강현우는 비웃었다.“네가 먼저, 그 사람이 원하나부터 물어봐야겠지.”그 말에 유호천은 병원에서 들었던 소지연의 말을 떠올렸다. 마치 임호원에게 만족하는 듯한 모습이 스쳤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건 그냥 나랑 화나서 하는 말이야. 형도 오늘 봤잖아. 임호원 같은 놈이 어떻게 지연이 행복하게 해.”“그래.”강현우는 의미 없이 짧게 웃었다.유호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형, 제발 도와줘. 응? 부탁이야.”“먼저 우지원한테 가서 계산부터 해.”“네? 무슨 계산?”“생각해 봐.”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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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7화

윤하경이 다시 유호천을 마주쳤을 때 잠시 멍해졌다.그녀는 유호천이 화가 나서 나간 이상, 다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런 부잣집 도련님이 그런 모욕을 감당할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그래서 병실 밖으로 나와 음식 배달을 가지러 갔을 때, 복도 끝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호천과 눈이 마주쳤고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못 본 척 돌아서려 했다.하지만 유호천이 성큼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잠깐만.”“아직 무슨 할 말이 남았어?”윤하경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지연이가 이미 확실하게 말했잖아. 너랑 지연이는 이제 끝났어.”유호천은 그런 말을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했지만 결국 표정을 누그러뜨렸다.“한 번만 딱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돼?”윤하경은 이마를 짚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유호천, 난 이미 말했잖아. 너랑 지연이, 난 절대 잘될 거라고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널 도와줄 일도 없어. 게다가 지연이도 이미 끝이라고 했잖아. 이쯤에서 그만둬.”유호천을 돕는 건 소지연을 배신하는 일과 같았다. 그 말을 남기고 윤하경은 유호천의 손목을 빼내 곧장 소지연의 병실로 향했다.소지연은 가족이 거의 없었고 윤하경도 특별히 바쁜 일이 없었기에 병실에 남아 그녀를 돌보기로 했다. 병실 안으로 들어와 음식 봉지를 꺼냈다.“네가 좋아하는 죽 시켰어. 조금 먹어.”“입맛이 없어.”소지연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표정마저 생기가 없었다.윤하경은 잠시 그녀를 살피다 부드럽게 말했다.“지금은 몸부터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해.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몸이 회복돼야, 돌아가서 싸우든 뭐든 할 수 있는 거잖아.”소지연은 그 말에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너... 그걸 어떻게 알아?”윤하경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진 않아도 그녀는 소지연이 왜 주씨 가문 저택에 남았는지, 또 왜 임호원과 결혼하려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마주 앉은 윤하경은 조용히 말했다.“네 마음 다 알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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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밤이 내려앉은 별장은 어둡고 한층 더 쓸쓸해 보였다. 윤하경은 차에서 내려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어둠 속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던 순간 갑자기 그림자 속에서 손 하나가 뻗어와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아!”놀라 비명을 지른 윤하경은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벽 모서리에 몰렸다.익숙한 차가운 향과 함께, 진한 술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윤하경은 자신을 벽에 가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챘다.“현우 씨?”윤하경이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강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제 그만하시면 안 돼요?”짜증이 묻어난 목소리였다. 윤하경은 강현우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움직이지 마.”머리 위로 낮고 깊은 목소리가 내려왔고 술 냄새는 더 짙게 번졌다.‘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윤하경은 인내심이 바닥나, 휴대폰을 꺼내 민진혁에게 전화를 걸어 이 취객을 데려가게 하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손목이 단단히 붙잡혀 꼼짝할 수 없게 됐다.“가만히 있어. 잠깐만 진정하게.”술에 취한 듯 힘이 빠지고 나른한 목소리, 평소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묘하게 나른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봤지만 어둠 속에서 겨우 날카로운 윤곽만 보였다.“현우 씨, 왜 저한테 화풀이하는 건데요?”윤하경은 참지 못하고 따졌다.“그리고... 기억 잃었다면서요? 여긴 어떻게 알고...”윤하경의 날 선 질문에도 강현우는 거친 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우 씨?”“...”“아프다고요.”“...”강현우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윤하경은 화가 치밀어 손으로 그를 밀쳤다. 그런데 힘이 센 강현우가 전혀 버티지 않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윤하경이 놀라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강현우는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만약 대낮이었다면 그 충격에 바닥 먼지가 훤히 피어오르는 게 보였을 것이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윤하경은 잠시 멍하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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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9화

윤하경은 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꼭 다물었다.처음에는 강현우가 그냥 쇼하는 줄 알았다.그런데도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아직 여름이 오기 전이라, 아침저녁 기온 차가 컸다.윤하경은 옷깃을 여미고 강현우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두어 번 가볍게 쳤다.“일어나요.”평소 강현우의 얼굴은 마치 누군가에게 돈을 떼인 사람처럼 차갑고 냉정했다.관계가 좋을 때도 감히 이렇게 얼굴을 건드려 본 적은 없었다.그런데 막상 해보니 의외로 촉감이 부드러웠다.“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윤하경은 자기 손을 가볍게 털며 다시 고개를 숙여 강현우를 살폈다.희미한 빛 속에서 본 그의 얼굴은 평소의 날 선 기운이 사라지고 한층 부드럽게 보였다.‘기억까지 잃은 사람이, 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거지?’윤하경은 강현우와 집안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때, 하늘을 가르며 번개가 번쩍하고 치더니 곧 귀를 찢는 듯한 천둥과 폭우가 뒤따랐다. 봄철 날씨는 정말 순식간에 변했다.윤하경의 눈에 잠시 갈등이 스쳤으나, 결국 강현우의 한쪽 팔을 붙잡아 질질 끌고 별장 안으로 들였다. 비를 맞게 둘 수는 없었다.그를 거실 카펫 위에 눕히고 급히 담요 하나를 꺼내 덮어 주었다. 예전의 강현우라면 이런 먼지 묻은 바닥에는 절대 눕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눈을 떴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건 윤하경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이렇게라도 비 피할 곳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베푼 셈이었다.윤하경은 2층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그고 민진혁에게 빨리 와서 강현우를 데려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피곤함이 몰려와 침대에 몸을 누이자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한밤중.윤하경은 깊이 잠든 채, 자기 옆에 서 있는 커다란 그림자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천둥과 번개가 창밖을 하얗게 밝히자 강현우의 시선이 윤하경의 얼굴 위로 오래 머물렀다.그는 벽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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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0화

강현우의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는데 아마 거실 책장에서 꺼낸 듯했다.꼴이 딱, 이곳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모양새였다. 윤하경은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 다가가 한가롭게 앉아 있는 강현우를 바라봤다.“현우 씨, 이제 깨어나셨으니 제 집에서 나가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윤하경의 시선이 강현우가 반쯤 마신 커피잔을 스쳤다. 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윤하경을 한번 훑어보고는 손가락으로 빗발이 쏟아지는 현관 밖을 가리켰다.“비가 이렇게 오는데 나가라고?”그러고는 낮게 덧붙였다.“게다가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설명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설명...이요?”윤하경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응.”강현우는 짧게 대답하며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었다.“정신 차려보니 여기였어. 내가 널 의심할 만하지 않냐? 날 납치한 거 아니야?”“납치?”윤하경은 황당해서 웃음까지 나왔다.“제가 왜 현우 씨를 납치해요?”“그건 나도 모르지.”강현우는 책장을 넘기며 비웃었다.“혹시 내 얼굴에 반해서 이혼하기 싫으니까 이런 쇼를 벌인 건가?”“...”아침부터 이렇게 뻔뻔한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다.윤하경은 살짝 미간을 좁히더니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녀는 한 걸음 다가서서 강현우를 내려다봤다.“혹시... 기억 돌아온 거예요?”강현우의 손끝이 책장을 넘기다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윤하경을 바라봤다.“그건... 네가 맞혀봐.”윤하경은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입술을 다물었다. 사실 강현우가 기억을 잃었든 아니든, 이젠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어젯밤 강현우를 비 맞지 않게 끌어들인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강현우가 어떤 상태든, 윤하경은 그와 맞설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잠시만 망설이다, 곧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경비실이죠? 우리 집에 불법 침입자가 있어요. 빨리 와서 데려가 주세요...”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몸이 갑자기 공중에 뜨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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