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의 모든 챕터: 챕터 1391 - 챕터 1400

1416 챕터

제1391화

방으로 돌아온 윤하경은 천장 구석의 카메라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이 의식했다. 모르는 척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여며 덮고는 몸을 살짝 틀어 등짝이 카메라 쪽을 향하게 했다.지금은 깊은 밤이라 원래라면 곧 잠들어야 맞지만 이상하게도 졸음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머릿속으로는 같은 생각만 맴돌았다. 눈앞의 얼굴이 분명 강현우와 똑같은데 도무지 강현우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밖에 꺼내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오히려 윤하경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입술을 꼭 깨물며 애써 생각을 정리해 보았지만 마음은 자꾸만 곁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로 흐른다.‘만약 현우 씨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내 곁에 있는 걸까?’“무슨 생각해?”따뜻한 손이 허리를 감싸듯 얹히는 순간, 윤하경은 화들짝 놀랐다. 생각에 깊이 잠겨 있다 보니 다가오는 기척을 놓친 것이다.윤하경은 억지로 미소를 띠며 몸을 돌려 오건우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자 조금 전까지의 의심이 또 우스워졌다.‘눈앞의 사람이 강현우가 아니라고? 설마 쌍둥이라 해도 이 정도로 똑같을 수 있을까?’혹시 자신이 괜히 예민해져 과하게 의심하는 건 아닐지 짧은 순간, 마음은 수없이 흔들렸다.그러나 윤하경은 내색하지 않고 미소만 띤 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현우 씨 안 오시면 잘 못 잔다고요. 기다리고 있었어요.”그 말을 듣자 오건우의 입꼬리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말 그대로 기분이 풀린 표정이었다. 오건우는 팔을 벌려 윤하경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겉모습만 보면 다정한 연인과 다를 바 없는 장면이었다.“얼른 자. 임신했으면 푹 쉬어야지.”윤하경은 대꾸하지 않고 자세만 살짝 고쳐 누웠다. 어깨를 그의 말에 기대듯 스치고 지나가자 오건우는 그것을 애교로 받아들인 듯 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눈빛이 잠깐 가늘어지며 입매에는 여유와 자만이 동시에 스쳤다.지금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코끝을 가득 채운 향도 강현우의 것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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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2화

문이 열리자 하인이 쟁반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윤하경 쪽으로 다가오며 상냥하게 말했다.“대표님이 역시 사모님을 아끼세요. 몇 시에 일어나실지까지 딱 맞추셔서 시간 되면 방으로 아침을 가져오라고 하셨어요.”그냥 스쳐 지나갈 말이었지만 윤하경의 귀에는 번개처럼 내려앉았다.“일어나는 시간을 아세요?”“네.”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식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았다.“대표님께서 요즘 특히 신경을 많이 쓰세요. 임신하셨으니 쉬어야 한다고 아래위층 오가시지 말고 방에서 드시라고 하셨어요.”윤하경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아... 그렇네요.”본인조차 일정하지 않은 수면 리듬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까. 정말로 세심하게 챙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윤하경은 시선을 내려 죽그릇을 바라보았다. 하인이 손에 쥐여 준 수저로 죽을 천천히 저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이 집에서 오래 일하는 하인은 눈치가 빠르다. 윤하경의 표정이 그다지 기쁘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고 그 미묘한 반응을 조용히 마음속에 적어 두었다.“그럼 먼저 드세요. 조금 있다가 와서 치우겠습니다.”윤하경은 짧게 대답을 아끼고 건성으로 수저를 들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뒤엉켜 있었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의심이 지나치다고 다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강현우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더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하인은 방을 나서 곧장 서재로 향했다. 문 안에서는 키보드 소리 대신 눌린 정적이 감돌았다. 책상 뒤에 앉은 오건우는 화면을 뚫어져라 보다가 문이 열리자 잽싸게 프로그램을 닫고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이야?”목소리는 낮고 담담해서 기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하인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었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대표님, 사모님 일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하경이가 왜?”그제야 어조가 조금 누그러졌다. 오건우는 옆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깊어진 눈빛으로 하인의 표정을 가만히 살폈고 말없이도 압박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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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3화

서재 안 공기가 한순간에 눌린 듯 무거워졌다.원래도 긴장하던 하인은 더 불안해졌고 이마에 진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참이 지나서야 책상 위에 앉은 오건우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왜 그렇게 생각해.”하인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서야 겨우 말을 이었다.“제가 대표님이 사모님을 얼마나 챙기시는지 말씀드리면 사모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지가 않아서요. 예전의 사모님은 밝고 쾌활하셨거든요. 요즘은 조금 달라 보이십니다.”오건우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불호의 기색도 동의의 기색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잠깐 침묵을 치렀고 이윽고 입가에 엷은 웃음을 올렸다.“좋아. 지금 말한 것만 봐도 네가 하경이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겠다.”그는 고개를 아주 조금 들며 하인을 내려다봤다.“앞으로 너는 하경의 전담 집사야. 하경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빠짐없이 모두 내게 보고해. 문제 있나?”“아, 아니요.”뜻밖의 칭찬에 하인의 얼굴에 잠깐 기쁜 기색이 스쳤다.“다음 달부터 네 월급 삼십 퍼센트 올려줄게. 가 봐.”“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그래.”오건우는 서랍을 열어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의사에게 받아둔 비타민이야. 하경이가 맛이 쓰다며 잘 안 먹으니까 앞으로 매 끼니에 한 알씩 음식에 섞어.”“알겠습니다. 매번 챙기겠습니다.”“그래. 나가봐.”하인은 두 손으로 약병을 공손히 받들어 서재를 나왔다. 처음에는 걱정돼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을 뿐인데 오히려 꾸중은커녕 월급까지 올려 준다니 당황스러울 만큼 고마웠다.윤하경의 침실 문을 열었을 때, 하인은 잠깐 멍해졌다. 방금 전만 해도 깨어 있던 윤하경이 금세 다시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이동식 테이블 위의 그릇에 음식이 반쯤 비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살짝 놓았다. 하인은 이불을 정갈히 여며 주고 조용히 쟁반을 들고 방을 빠져나왔다....며칠이 연달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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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4화

하인이 대답하고 나가자 윤하경은 소지연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소지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하경아, 너 상태 진짜 안 좋아 보여 현우 씨는? 병원 안 데려갔어?”윤하경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말을 꺼내려던 순간, 침실 문이 다시 열렸다.윤하경이 고개를 돌리자 큰 체격의 오건우가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윤하경의 얼굴빛이 아주 살짝 굳었고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소지연이 곧장 오건우를 향해 물었다.“이렇게까지 컨디션이 안 좋은데 병원은 왜 안 가요?”눈썹을 세운 얼굴에는 걱정과 불만이 그대로 드러났다.오건우가 힐끗 시선을 주며 입꼬리를 스쳤다.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윤하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임신하면 졸음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다잖아요.”그러고는 소지연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 이어서 오건우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현우 씨, 저 지연이랑 잠깐 얘기하고 싶어요. 나가 주시겠어요?”윤하경이 이렇게 자신을 부르자 오건우의 눈매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러더니 금세 미소를 걸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다만 나가면서 남긴 시선은 묘하게 길었다. 방을 나서 문이 닫히기 전까지, 그 눈길이 소지연에게 머물렀다.문이 완전히 닫히자 윤하경이 숨을 고르듯 눈을 감았다.“왜 그래?”소지연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눈을 맞췄다.“혹시... 너 임신하고 나서 현우 씨가 딴마음 먹은 거야?”억울함이 묻어나는 소지연의 말투에 윤하경은 어금니를 꾹 씹다가 불쑥 소지연을 끌어안았다.“보고 싶었어.”소리가 조금 컸다. 바로 다음 순간, 귓가로 낮게 속삭였다.“지연아, 우지원 좀 찾아 줘. 그리고... 현우 씨를 찾아 달라고 전해줘.”소지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잠깐, 무슨 소리...”“쉿, 지금은 말하지 말고.”윤하경이 소지연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네가 직접 가지 말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우지원에게 전해. 현우 씨 행방이 묘연하다고.”며칠 동안 윤하경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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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5화

소지연은 잠깐 멍하니 윤하경을 보더니 금세 걱정이 얼굴에 번졌다.“하경아, 너 상태 진짜 안 좋아 보여. 혹시... 멘탈이 무너진 거야?”윤하경은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소지연뿐이었다. 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벽 구석의 카메라를 의식하며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오랜 친구답게 소지연은 그 눈빛에서 뜻을 읽었다.“알겠어. 내가 알아서 해볼게. 걱정하지 마.”소지연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 바로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금방 나갔던 오건우가 또 들어왔다.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이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가며 의심이 또렷하게 스쳤다.윤하경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이세요?”“이제 쉬어.”오건우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사실상 내보내겠다는 신호였다. 윤하경은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윤하경의 눈짓을 본 소지연은 눈치 있게 일어섰다. 일부러 태연한 척 껴안으며 말했다.“하경아, 괜찮은 거 확인했으니까 됐어. 집에서 편히 쉬고 시간 날 때 또 올게.”“응.”오건우가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다. 괜히 더 머물게 하면 위험을 키울 수 있었다.작별을 건네고 소지연은 오건우를 향해 짧게, 차갑게 말했다.“대표님, 하경이를 잘 부탁드려요.”오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한 번 스쳐볼 뿐이었다. 소지연은 뒤돌아서서 곧장 나갔다.넓은 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윤하경은 익숙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이를 살짝 깨물었다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툭 던지듯 말했다.“왜 그렇게 서둘러 지연이를 내보내셨어요.”오건우가 눈매를 스치듯 움직이며 미소를 얹었다.“아니야. 네가 더 피곤할까 봐.”윤하경은 짧게 웃고 더 묻지 않았다. 지금은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연기해야 했다.오건우는 의자에 앉아 윤하경을 살포시 눕히고 이불 모서리까지 곱게 여며 주었다. 만약 그가 강현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런 세심함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그가 나가려 하자 윤하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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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6화

“그러니까 앞으로, 그 이름은 내 앞에서 꺼내지 마.”오건우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식었다. 마지막 한마디는 한 치의 여지도 남기지 않을 만큼 단호했다.윤하경이 잠깐 멈칫했지만 끝내 그의 시선을 마주한 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알겠어요.”그제야 오건우의 눈매가 조금 누그러졌다. 손을 들어 윤하경의 머리끝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착하지. 이제 푹 쉬어.”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윤하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자 그는 조용히 돌아서 침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어지자 윤하경의 눈이 다시 떠졌다. 닫힌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며칠을 곱씹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곁에 있는 이 남자가 진짜 강현우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인가.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의심의 표적을 죽었다던 오건우로 먼저 찍었다.시신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그의 죽음 자체가 처음부터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 전에도 반응을 보려고 그런 말을 던진 것이었다.분명 확신에 가까웠는데 막상 방금 그의 대답을 듣고 나니 다시 흔들렸다. 그렇다면 오건우가 아니라면 또 누구란 말인가.윤하경의 시선이 점점 어두워졌고 원래도 몽롱하던 머리는 더 무거워졌다. 잠시 더 생각을 잇고자 했지만 끝내 버티지 못하고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문이 닫히기도 전에 오건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미소는 사라지고 눈빛에만 서늘함이 번졌다.오건우는 계단을 내려가 거실 한가운데에서 짧게 명령했다.“모두 지금 거실로 모여.”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가사도우미들과 운전기사가 서둘러 모였다.“대표님.”굳은 낯빛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부르며 고개를 숙였고 누구 하나 감히 시선을 들지 못했다.오건우가 소파에 앉아 한 사람씩 훑었다. 한여름인데도 그 시선이 스치자 등줄기를 한기가 타고 내려갔다. 사람들로 꽉 찬 거실은 숨소리마저 삼킨 듯 고요했다.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아까 소지연, 누가 들였어?”“저… 제가요.”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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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7화

소지연은 우지원을 잘 알지 못했고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답답함이 쌓여 가던 찰나, 유호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화면에 유호천 이름이 뜨자 소지연의 눈이 번쩍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다급하게 먼저 물었다.“호천아, 너 우지원 연락처 알아? 찾아줄 수 있어?”유호천은 원래 오늘 소지연이 집에 들어왔는지 같이 영화 보러 갈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받자마자 소지연이 다른 남자 얘기를 꺼내니 기분이 살짝 상했다.“왜?”소지연이 입술을 꾹 눌렀다. 그때 룸미러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윤하경 집에서 나올 때부터 뒤를 밟던 바로 그 차였다. 지금까지도 꼬박 붙어 따라온다.그 순간, 윤하경이 직접 우지원을 찾지 말라던 말이 번개처럼 스쳤다.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소지연이 핸들을 확 꺾어 골목으로 들어갔다. 다음 순간, 뒤차가 신호까지 무시하며 그대로 따라붙는 것이 보였다. 소지연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일단 만나서 얘기하자.”잠시 뒤, 소지연은 유호천과 함께 사는 도심의 대형 아파트로 곧장 돌아왔다. 주차를 마치고도 본능적으로 백미러를 확인했다. 뒤따라온 그 검은 세단이 시야에 걸렸다.소지연은 곧장 문을 열고 내려 그 차를 똑바로 응시했다. 운전자는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잠깐 주춤하더니 이내 가속 페달을 밟아 출구 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소지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처음에는 윤하경의 말이 엉뚱하다고도 생각했다. 임신해서 예민해진 탓일 수도 있다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그 차를 보고 나니 윤하경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어금니를 살짝 깨문 소지연은 차에서 가방을 챙겨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울리며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유호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유호천은 문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더니 대뜸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아까 왜 우지원을 찾았어? 그 사람은 또 왜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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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8화

“그래.”우지원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만날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약속 장소는 도심 한복판이었다. 사람 많은 곳일수록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법, 숨기에는 한적한 곳보다 낫다.유호천이 소지연을 보며 고집스레 말했다.“나도 같이 갈 거야. 네가 다른 남자를 혼자 만나서 단둘이 있는 건, 나는 못 봐.”투정 섞인 표정에 소지연은 한숨이 났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대신, 무슨 얘기를 들어도 놀라지 마.”“나를 뭐로 보는 거야. 내가 뭐에 놀란다고.”…“뭐라고? 지금 그 강현우가 내 사촌 형이 아니라고?”맛골목 작은 분식집 2층. 유호천이 옆자리의 소지연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그런 소리 막 하면 어떡해. 강현우가 아니면 누군데?”유호천이 손을 뻗어 소지연 이마를 짚자 소지연이 손을 툭 치워냈다.“그만해.”소지연은 맞은편의 우지원을 바라봤다. 우지원이 미간을 좁히며 낮게 물었다.“정말입니까? 윤하경 씨가 저더러 ‘진짜 강현우’를 찾아 달라고 하셨다는 말씀이에요?”“네, 확실해요.”소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윤하경 상태도 좋지 않아요.”소지연이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오늘 보니까 강현우도 어딘가 이상했어요. 윤하경을 보자마자 겨우 3분 만에 저를 내보내더니 밖으로 나오자 차까지 붙여서 따라왔어요. 정말 강현우라면 왜 그렇게까지 했겠어요? 그래서 결론은 하나예요. 윤하경 말이 맞아요. 지금 그 사람은 강현우가 아니에요. 진짜 강현우가 어딨는지는 모르겠고...”“아이고!”유호천이 옆에서 탁자를 탁 쳤다.“강현우, 강현우 하다 보니 머리가 핑 돈다. 만약 그 사람이 내 사촌 형이 아니라면 그럼 누군데? 난 ‘진짜 강현우’ 찾을 게 아니라 윤하경부터 병원에 데려가서 상담받게 해야 된다고 봐. 임신해서 예민해진 거 아닐까?”그 말에 소지연이 눈매를 세웠다.“나는 하경이를 믿어. 근거 없이 말하는 사람 아니야.”유호천이 더 말하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우지원이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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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9화

우지원도 속이 씁쓸했다.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있었지만 방금 소지연의 말을 듣고 나니 퍼즐 조각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졌다. 그는 어금니를 살짝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우지원이 밖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진혁이 급히 올라왔다. 방 안에 앉아 있는 셋을 훑어본 민진혁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모았다.“무슨 상황이야?”우지원이 소지연을 향해 눈짓했다.“아까 그 얘기,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소지연은 민진혁을 잠깐 바라보며 망설였다. 애초에 윤하경이 찾아 달라고 한 사람은 우지원 한 명뿐이었으니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우지원이 그 표정을 읽고 말끔히 정리해 줬다.“걱정하지 마세요. 민진혁은 우리 사람이에요. 사실이라면 반드시 알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사람이 엉뚱한 지시를 내릴 때, 민진혁 쪽도 위험해져요.”민진혁은 여전히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갸웃했다.“그러니까,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는 건데?”소지연은 숨을 고르고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우지원에게 말했던 내용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전했다.끝까지 들은 민진혁의 표정이 굳었다.“뭐라고? 대표님이 아니라고?”민진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정말이에요?”기대한 반응이 아니었기에 소지연은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삼켰다. 그때 우지원이 다시 나서서 자신이 겪은 일들까지 보태 또 한 번 차분히 설명했다.오랫동안 강현우 곁을 지켜 온 민진혁은 멍청한 편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터무니없게 들리긴 했지만 우지원의 말은 믿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윤하경이 쉽게 입 밖에 낼 사람도 아니었다.그동안 그 옆에서 겪어 온 크고 작은 일들이 민진혁의 머릿속을 차례로 스쳤다. 우지원이 겪은 일까지 따져 보니 믿는 쪽으로 마음이 크게 기울었다.민진혁이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을 모으더니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아니라고 했다면 저는 믿어요.”그는 어금니를 살짝 물고 우지원을 바라봤다.“지금 당장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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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0화

“벌써 아침이에요?”윤하경의 물음에 오건우가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웃었다.“그래. 아침이야.”오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자 큰 그림자가 침대 위로 드리웠다.“일어나서 아침 먹고 병원 다녀오자.”병원’이라는 말에 윤하경의 어깨가 본능적으로 굳었다.“병원은... 왜 가요?”경계가 어린 눈길이 저절로 오건우를 향했다.오건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숙였고 날카로운 인상이 잠깐 누그러졌다.“잊었어? 오늘 산부인과 정기 검진 있는 날이잖아.”“정기 검진이요?”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분명 얼마 전에 검사를 받았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안개 낀 것처럼 몽롱했고 시간 감각도 흐릿했다.“바보야.”오건우가 윤하경의 머리를 다정한 척 쓰다듬었다.“나 없이 어떻게 하려고 그래.”윤하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조금 빼다가 의심을 살까 봐 억지로 멈춰 섰다.그녀가 바로 움직이지 않자 오건우가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힘들면 내가 안아서 욕실까지 데려가 줄까?”“아니요.”너무 빠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싶어, 윤하경은 숨을 한번 고르고 말끝을 다듬었다.“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먼저 아침 드세요. 금방 내려갈게요.”윤하경은 정신을 다잡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오래 누워 있었던 탓인지 발걸음이 허공을 디디는 듯 가벼웠다.욕실로 가는 동안, 윤하경의 머릿속은 방금 오건우가 한 말을 끊임없이 되감았다. 오늘이 정말 검사 날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단 하나 분명한 건,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오건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점점 선명해졌다.거울 앞에 서자 핼쑥한 얼굴과 마주했고 깊게 찌푸린 이마가 먼저 답을 내렸다.‘가면 안돼. 절대로 안 돼. 우리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즘 들어 머리가 유난히 무겁고 흐렸다. 오건우가 뭔가를 먹인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서서히 부풀었다. 윤하경은 조심스럽게 아랫배에 손을 얹었고 앳된 얼굴 위로 먹구름 같은 근심이 드리웠다.“다 했어?”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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