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381 - Chapter 1390

1416 Chapters

제1381화

결혼식이 시작되자 윤하경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오랜만에 강현우의 어머니 한선아를 보았다. 불과 몇 달 사이에 한선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한때 누구보다 화려했던 기세는 사라지고 지금은 길에서 스쳐 지날 법한 평범한 중년의 모습이었다.한선아의 시선은 자꾸만 강현우에게로 갔다.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났지만 끝내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듯 망설임과 불안이 번갈아 스쳤다. 그 광경만 놓고 보면 마음 한쪽이 저릿해질 법도 했다.그러나 윤하경은 쉽게 연민이 생기지 않았다. 사람마다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법이고 예전에 한선아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결국 강현우가 냉정하게 선을 그은 것도 이해가 갔다.윤하경은 무심히 손을 뻗어 강현우의 손등을 덮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한선아를 보면 아무리 조금이라도 흔들릴 줄 알았는데 강현우는 담담했고 아예 한선아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다만 윤하경의 손길이 닿자 강현우가 그녀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왜 그래?”그러자 윤하경은 잠깐 숨을 고르고 조용히 말했다.“어머님 보니까... 현우 씨도 조금은 마음이 아플 줄 알았어요.”강현우의 눈빛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그는 습관처럼 한 번 한선아 쪽을 훑어본 뒤, 곧장 시선을 거두었다.“아니.”“그렇다면 다행이네요.”윤하경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말을 이었다.“그래도 지금 모습만 보면 안쓰럽기도 해요. 만약 현우 씨가 마음에 걸리시면...”강현우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지금이 좋아.”그 말에 윤하경은 더 붙잡지 않았다. 억지로 풀 문제도 바깥사람이 끼어들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결국 그 둘이 결정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결혼식이 시작되자 윤하경의 시선도 무대 위 소지연에게로 갔다. 유씨 가문이 체면을 세워 준 덕분에 전체 진행이 매끈했다. 단상에서 소지연과 유호천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 눈가가 동시에 젖었고 윤하경도 따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한편 강현우는 옆에서
Read more

제1382화

식이 막 시작되었을 때, 한선아가 장미자에게 고개를 기울였다.“소문을 좀 들었어. 윤하경, 임신했다지? 진짜야?”장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맞을 거야. 조금 전에 지연이랑 호천이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거든.”한선아의 얼굴에 잠깐 환한 기색이 번졌다.“그래, 임신했구나.”“그거면 됐지.”...한편, 넓은 차 안에서 강현우는 창밖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윤하경이 고개를 돌리자 강현우의 옆얼굴이 시야에 또렷이 들어왔다. 매끈한 선과 또렷한 이목구비는 어느 각도에서도 단정했다.순간, 윤하경은 스스로 멍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느낀 강현우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보았다. 윤하경이 눈을 떼지 않자 강현우는 미소를 띠고 손을 들어 윤하경의 머리 꼭대기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왜 그렇게 나를 봐?”윤하경은 잠깐 얼떨떨했지만 금세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 안 공기가 조금 답답해서였는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윤하경은 이유 모를 낯섦을 느꼈다. 매일 밤 곁을 지키는 강현우가 문득 멀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강현우가 시선을 맞추자 그 어색함이 순식간에 가셨다.윤하경은 몸을 바짝 붙여 강현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강현우의 익숙한 향수가 코끝에 감돌자 윤하경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오늘 너무 피곤해요.”윤하경이 작게 투덜거렸다.강현우가 낮게 웃으며 윤하경의 허리를 감쌌다.“조금만 있으면 집이야. 들어가서 쉬어.”강현우의 낮은 목소리가 잔잔히 깔리자 윤하경의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갔다.다시 눈을 떴을 때, 윤하경은 이미 별장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웠고 시간은 저녁으로 넘어가 있었다. 윤하경이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방 안에 강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윤하경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서재 앞을 지나며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봤지만 서재 안에도 강현우는 없었다. 윤하경이 걸음을 멈추고 집사를 보았다.“
Read more

제1383화

잠시 말이 끊기고 윤하경이 고개를 들어 집사에게 말했다.“전부 떼세요.”집사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께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안 된다고요?”윤하경의 눈매가 금세 서늘해지자 집사가 다급히 덧붙였다.“예, 대표님께서 철거는 불가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윤하경은 어금니를 살짝 물었다. ‘안 된다고? 이건 반드시 강현우와 따로 이야기해야겠어.’한편.칠흑 같은 방 안에서 한 남자가 서까래에 매달린 채 두 팔을 굵은 쇠사슬에 묶인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얼굴은 피와 진흙에 뒤범벅이 되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웠고 방 안은 숨소리마저 삼켜 버릴 만큼 고요했다.딱딱딱.정적을 깨는 발걸음이 천천히 다가왔다. 남자는 문 쪽으로 눈을 번쩍 뜨며 살기를 번뜩였다. 엉망이 된 얼굴이라도 기세만은 전혀 꺾이지 않았다.끼익.문이 열리자 길게 뻗은 그림자가 문틀에 드리웠다.“쳇.”문간에 선 이는 강현우의 얼굴을 한 채 매달린 남자를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기분이 어때. 허공에 매달려 있는 거, 버틸 만하냐?”매달린 남자의 눈빛이 독사처럼 번쩍였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입에는 테이프가 겹겹이 감겨 있어, 겨우 신음만 새어 나왔다.“으... 으...”아무리 온몸으로 버둥거려도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단히 단련된 몸도 이 구속 앞에서는 무력했다. 남자는 발악하듯 눈앞의 자를 노려보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그 눈빛에 서린 증오를 읽은 듯, 강현우의 얼굴을 한 남자가 만족스레 웃으며 리모컨을 눌렀다. 벽의 화면이 켜지더니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 윤하경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여기서 천천히 봐. 내가 윤하경과 다정하게 지내고 네 것이라 믿어 온 삶을 내가 누리는 모습을.”자세히 보면 피와 진흙에 뒤덮여 매달린 쪽이 진짜 강현우였고 강현우의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이는 오건우였다. 오건우는 빼앗은 얼굴로 강현우를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너도 예전의 나처럼 어둠 속 구석에서 내 행복이나 훔쳐보면 돼. 걱정하지 마
Read more

제1384화

어둠 속 방을 나서는 순간, 오건우는 다시 강현우의 얼굴과 걸음걸이를 완벽히 걸쳤다.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윤하경은 막 잠자리에 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미처 다 읽지 못한 외국 장편소설을 품에 안고 있다가 문 여는 소리에 책을 내려놓고 문 쪽을 돌아보았다.강현우의 모습이 들어서는 순간, 윤하경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윤하경은 슬리퍼를 끌고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으며 투정을 부렸다.“어디 다녀오셨어요? 왜 이제야 오세요. 저 이제 잘 뻔했는데요.”강현우의 얼굴을 한 오건우가 낮게 웃으며 손을 들어 윤하경의 머리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익숙한 향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일 좀 보고 왔어. 오랜 친구도 하나 만나고. 보고 싶었어?”오건우가 길고 고른 손가락으로 윤하경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천장 조명의 따뜻한 빛이 내려앉자 윤하경의 얼굴선이 한층 부드럽게 물들었다.“음.”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께로 파고들었다.“조금요.”오건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턱을 들어 올리자 조명은 은근했고 공기에는 열이 돌았다. 오건우는 윤하경의 붉은 입술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입술이 닿기 직전, 윤하경이 고개를 살짝 비켜 ‘흥’ 하고 소리를 냈다.오건우의 눈에 잠깐 실망이 스쳤지만 미소는 흐트러지지 않았다.“왜? 방금 전에는 보고 싶다 했잖아.”오건우이 낮은 목소리가 분위기를 파고들었다.윤하경은 얼굴이 붉어졌다. 강현우의 얼굴에 늘 약했는데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마음을 흔들면 더했다. 그래도 윤하경은 한숨을 고르고 손바닥으로 오건우의 가슴을 살짝 밀어내며 물었다.“집에 왜 이렇게 카메라를 많이 달아 놓으셨어요?”오건우는 입술을 짧게 눌리더니 셔츠 소매 단추를 풀며 태연히 대답했다.“내가 없을 때도 너를 보고 싶어서.”“그래도 너무 많아요.”윤하경이 이마를 짚었다.“보세요. 우리 방만해도 이만큼이나.”윤하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침실에만 카메라가 세 대 있었고 사각지대가 없을 정도였다.오건우가 가볍게
Read more

제1385화

그 순간 윤하경은 모든 게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이 알던 강현우가 아닌 듯했다.이상함을 눈치챈 오건우가 품에서 윤하경을 살짝 떼어 세우고 멍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오건우는 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으로 윤하경의 귀밑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귀 뒤로 정리해 주었다.“왜 그래? 표정이 안 좋네.”“아니에요.”윤하경이 옅게 웃더니 고개를 들었다.“그냥... 현우 씨, 달라지셨어요.”오건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읽기 어려운 기색이 눈에 스치고 곧 사라졌다. 마치 윤하경의 착각이었던 것처럼.“내가 왜 달라졌다고 생각해?”윤하경이 잠시 생각한 끝에 말했다.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 하셨잖아요. 요즘은 너무... 달콤하세요.”오건우의 손이 자연스레 윤하경의 허리로 내려갔고 시선을 낮추며 나직이 말했다.“그래? 그럼 예전에 내가 모자랐던 거네. 앞으로 천천히 고칠게.”윤하경이 흘겨보며 말했다.“그만하시고요. 벌써 늦었어요. 빨리 씻고 주무세요.””그래.”오건우가 짧게 대답하더니 윤하경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욕실로 들어갔다.윤하경은 그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한 뒤 돌아서서 침대로 갔다. 오건우가 나오기도 전에 졸음이 몰려와, 손에 쥔 책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그대로 깊이 잠들었다.잠시 뒤, 수건을 두른 오건우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윤하경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오건우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다가가 몸을 반듯이 눕혀 주었다. 고요하고 단정한 얼굴을 내려다보던 오건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역시 얌전하네.”오건우가 몸을 낮춰 다가가자 시선이 탐욕스럽게 윤하경의 얼굴에 꽂혔다.윤하경이 잠든 지금, 더는 강현우인 척할 필요가 없었다. 오건우는 낮게 웃으며 손끝으로 윤하경의 희고 고운 볼을 천천히 쓸었다.밤낮으로 품에 안아 보겠다고 얼마나 오래 꿈꿔 왔던가. 뜻밖에도 그 소원이 지금 이루어졌다. 비록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의 얼굴을 빌린 자리지만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아니 강현우의
Read more

제1386화

악몽에 놀라 깬 윤하경을 본 오건우가 손바닥으로 등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달랬다.“어떤 꿈을 꿨길래 이렇게 놀랐어?”윤하경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낮게 말했다.“현우 씨가 어디에 갇혀 계시더라고요. 제가 겨우 찾았는데... 죽었더라고요. 너무 무서웠어요.”방금 본 장면이 떠오르자 윤하경은 금방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운 사람을 붙잡듯이 오건우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건우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러나 입에서는 다정한 말만 흘러나왔다.“걱정하지 마. 나 여기 있잖아.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아무 일도 안 생길 거야.”오건우는 윤하경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하지만 윤하경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오건우의 눈빛은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윤하경은 한동안 오건우의 품에 안긴 채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문득 시선이 오건우의 가슴께로 내려갔더니 어딘가 이상했다.예전에 크게 다투던 날, 윤하경은 홧김에 강현우의 가슴을 세게 물어 작은 자국을 남겼다. 강현우도 맞물어 오긴 했지만 윤하경이 더 세게 물었던 탓에 그 자국이 한동안 옅게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윤하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번 더 살폈다.‘혹시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걸까?’오건우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를 채고 물었다.“왜 그래?”윤하경이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흉터가 원래 잘 안 남는 체질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설마 눈앞의 사람이 강현우가 아니라는 뜻일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느껴 고개를 내저었다.윤하경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악몽 이야기는 그만할게요. 배가 고파요. 뭐 좀 먹고 싶어요.”오건우가 짧게 대답했다.“그래, 일어나자.”윤하경은 오건우의 품에서 몸을 빼고 침대에서 내려 욕실로 들어가 씻을 준비를 했다.넓은 침실에는 잠시 오건우 혼자만 남았다. 윤하경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바라보던 오건우의 눈빛이 서서
Read more

제1387화

아침 식탁에서 윤하경은 죽만 멍하니 휘젓고 있었다. 맛도 모르고 빈 생각으로 숟가락만 놀렸다.오건우는 식사를 하면서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빛 깊은 데에 어둡게 스치는 기색을 감췄다.“하경아.”“네?”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윤하경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생각이 덜 걷혀 눈빛이 멍했다.오건우가 가볍게 눈썹을 올렸다.“나 이따가 잠깐 나가야 해. 너는 집에서 얌전히 쉬어. 심심하면 친구들 불러.”“친구? 지연이랑 해리 씨요?”윤하경에게 떠오르는 친구는 사실 그 둘뿐이었다.오건우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응.”그는 식기를 내려놓고 묻은 것도 없는 입가를 냅킨으로 한 번 훑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예전 강현우와 똑같았다. 오히려 너무 똑같아서 윤하경은 어딘가 미묘하게 걸렸다.오건우가 일어나 윤하경 곁으로 와,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얌전히 있어. 금방 올게.”“네.”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적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건우의 뒷모습이 현관을 지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하얀 손끝이 칼과 포크를 집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나간 방향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장면이, 지금 어두운 지하실의 모니터에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진짜 강현우의 시야에 불꽃 같은 집착이 번졌다. 자기 얼굴을 뒤집어쓴 오건우가 자신만이 해야 할 일을 태연히 대신하고 있다니.강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매달린 팔은 이미 감각이 사라졌고 몸은 힘이 빠져 흔들렸지만 오로지 의지 하나로 버텼다. 지금 눈을 감아선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모님.”한참째 숟가락을 대지 않는 모습을 보던 하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입맛에 안 맞으세요?”하녀는 이미 완전히 식어 버린 아침상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다시 만들어 올까요?”“아니. 됐어요.”윤하경은 식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으로 걸어갔다.오늘은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 윤하경은 나무 그늘에 앉아
Read more

제1388화

윤하경의 머릿속에 방금 아침 식탁 장면이 번쩍 떠올랐다.강현우는 어려서부터 후계자로 길러져 동작 하나까지 기품 있고 보기 좋다. 오늘 아침도 겉모습은 그랬다. 그런데 둘이서 식사할 때의 강현우는 원래 조금은 느슨하고 자연스럽다.하지만 오늘 아침의 ‘강현우’는 한 동작 한 동작마다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래, 딱 힘을 준 느낌이었다. 마치 정해진 절차를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처럼 모양은 근사한데 자연스럽지가 않았다.아침에 잠깐 스쳤던 불길한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탁!윤하경이 제비집 그릇을 내려놓았다.막 물러가려던 하녀가 돌아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사모님, 어디 불편하신가요? 입맛에 안 맞으세요?”임신한 사모님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 봐 하녀의 표정에는 긴장이 비쳤다.윤하경은 눈살을 살짝 모으고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물었다.“요 며칠 사이에... 현우 씨가 예전이랑 다른 점 못 느꼈어요?”“다른 점이요?”하녀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예전이랑 똑같으신데요.”안심이 되어야 할 답인데 윤하경의 가슴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손짓으로 물러가라고 했다.“알았어요. 들어가세요.”하녀가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사모님,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마세요. 임신하시면 원래 별생각이 다 나거든요. 대표님이 사모님 정말 사랑하세요. 그리고 점점 더...”“점점 더...”윤하경이 고개를 번쩍 들고 되물었다.“정말 점점 더요?”“그럼요.”하녀가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특히 병원에서 퇴원하신 뒤로는 사모님 드실 것과 마실 것을 하루 분량으로 전부 정해 주셨어요. 보양식은 몇 시, 엽산하고 비타민은 몇 시, 시간표로 적어서 저희에게 주셨거든요.”하녀가 ‘강현우의 살뜰함’을 줄줄이 이야기하는 동안, 윤하경의 심장은 점점 더 불편하게 뛰기 시작했다.“점점 더...”윤하경이 그 말을 낮게 따라 했다.하녀는 눈치채지 못한 채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정말이에요. 그리고 대
Read more

제1389화

‘현우 씨가 아닌 것 같아...’생각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하경은 그 기묘한 직감을 도무지 떨칠 수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 풍경은 안개 낀 듯 뿌옇게 번졌다. 색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듯한 공허함만 남았다.윤하경은 하루 종일 정원에서 자리를 지켰다. 오건우가 집에 들어올 때는 노을이 막 산기슭 너머로 기울 무렵이었다.“하경이는 어디 있어?”오건우가 차 키를 내려놓고 분주한 하인에게 물었다.“사모님은 정원에 계십니다.”오건우가 고개를 들어 정원을 바라보았다. 저녁 구름이 비단처럼 펼쳐지고 들판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자카란다 나무 아래 앉은 윤하경의 등은 이유 없이 쓸쓸해 보였다.따뜻한 손이 양쪽 어깨를 감싸듯 얹히자 윤하경은 그제야 생각의 물가에서 돌아왔다.“무슨 생각해?”오건우가 몸을 낮춰 귓가에 낮게 물었다.윤하경은 마음을 다잡고 표정을 정리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려 바라보았다.“돌아오셨어요?”눈앞의 사람이 진짜 강현우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지금은 내색하면 안 되었다. 의심이 사실이라면 먼저 눈치챌 수도 있으니 더더욱.그런데 또 얼굴만 보면 강현우와 똑같아서 스스로 괜한 의심을 키우는 것 같기도 했다. 직감은 계속 경고했지만 그 직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랐다.‘제발, 내가 괜히 생각을 키우는 것뿐이길.’윤하경은 오건우가 내민 손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섰다.“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오늘 좀 바빴어. 회의가 있었거든.”오건우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손을 들어 윤하경 머리 위에 내려앉은 자카란다 꽃잎을 가볍게 털어주었다.“들어가자. 해 지고 나면 금방 쌀쌀해져.”오건우는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안고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탁에 도착하자 의자를 먼저 빼서 편히 앉도록 자리를 봐 주었다.그날도 늘 하던 것처럼 오건우는 가볍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꺼내며 말을 이어 갔다.윤하경은 맞장구를 치면서도 마음은 딴 데로 가 있었다.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마주 앉은 오건우를 살폈다.예상했던
Read more

제1390화

오건우가 가볍게 웃으며 손을 들어 윤하경의 머리 위를 한 번 쓰다듬었다.“착하지. 이제 자. 나는 아직 정리할 게 조금 남았어. 서재에서 마무리하고 올게. 너는 먼저 자. 기다릴 필요 없어.”“알겠어요.”윤하경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고 오건우가 방을 나서자마자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아까 혀 밑에 감춰 두었던 알약을 조심히 뱉어내고 수도를 틀어 약이 물줄기 따라 완전히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숨을 놓았다.눈앞의 사람이 정말 강현우가 아니라면 그 약은 절대로 삼켜서는 안 되었다. 다행히 욕실에는 카메라가 없으니 들킬 염려도 없었다.엇갈리는 일들이 이어지니 씻는 일조차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간단히 샤워만 하고 나오니 오건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윤하경은 잠깐 망설이다가 슬리퍼를 끌고 침실을 나서 서재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복도 맨 앞과 맨 끝에 떨어져 있어 발소리를 최대한 죽였다.서재 문 앞에 이르니 문은 살짝만 닫혀 있었고 안쪽에서 낮은 말소리가 흘러나왔다.“오늘 하경이가 집에서는 어땠어?”오건우의 목소리였다.“사모님은 하루 종일 별다른 일 없으셨어요.”낮에 윤하경과 얘기를 나누던 그 하인이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윤하경의 가슴이 쿵 하고 위로 치받았다. 아침에 그 대화는 말하지 말라고 분명히 당부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강현우 쪽 사람들이다.만약 그 얘기가 전해졌다면 저쪽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더 경계할 것이고 자신이 확인하려는 일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서재 안에서 이어지는 보고가 한 문장씩 나올 때마다 심장도 함께 덩달아 조여 들었다.다행히 하인은 아침에 나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제야 윤하경은 조심스럽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반쯤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꺄...”뜻밖의 상황에 윤하경은 놀라 몸을 움찔했다. 방 안의 대화가 막 끝난 참인데 오건우가 이렇게 바로 문을 열고 나올 줄은 몰랐다.윤하경은 빠르게
Read more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