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791 - Chapitre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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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1화

강현우가 말을 끝내자마자,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윤하경은 이미 끊긴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잠시 뒤 강현우에게서 문자가 온 것을 확인했고 문자에는 정확한 주소만이 적혀 있었다.윤하경은 살짝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밖에 나오니 어느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윤하경은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택시를 잡아, 강현우가 보낸 주소로 향했고 그곳은 사적인 회원제 클럽이었다.멀리 떨어진 변두리 도시인 만큼, 이런 화려하고 은밀한 공간이 더 대범하게 존재했다. 윤하경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입구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안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서 민진혁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윤하경을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하경 씨, 이쪽으로 오시죠.”민진혁의 단호한 얼굴과 간결한 말투에, 윤하경은 설명도 없이 따라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졌고 서늘한 예감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윤하경은 하이힐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릴 정도로 조심스레 걸으며 민진혁을 따라 몇 번이나 복도를 돌아 한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섰다.방 안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고 그 안에는 강현우만이 혼자 앉아 있었다.강현우는 윤하경이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손짓했다.“이리 와.”윤하경은 잠깐 머뭇거렸다. 전화에서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강현우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늘 자신만만하고 선 굵은 그 음성이, 오늘따라 힘이 빠져 있는 듯했다.강현우는 조급한 듯 다시 한번 말했다.“빨리 와.”윤하경이 주저하자, 그는 결국 인상을 살짝 찌푸렸고 윤하경이 가까이 다가서자, 코끝에 알싸한 피 냄새가 확 밀려오면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에요?”강현우는 입꼬리를 비뚤게 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신경도 안 쓸 것처럼 굴더니 표정 보니까 나한테 꽤 신경 쓰는 모양이네?”가까이서 보니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도 강현우는 태연한 얼굴로, 늘 하던 대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담배 연기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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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2화

윤하경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강현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불렀다.“여기 와서 총알 좀 빼줘.”또 총알이었다. 윤하경은 손에 든 가방끈을 꼭 쥐었고 예쁘게 정돈된 두 눈썹이 본능적으로 잔뜩 찌푸려졌다.“저... 그냥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게 어떨까요?”예전에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지만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조여 왔다. 살 속에 손을 넣어 총알을 꺼내는 그 감각은, 보는 것도 만지는 것도 매번 너무 힘들었다.하지만 강현우는 원래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윤하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얼굴을 찌푸렸다.윤하경은 상황을 눈치채고 곧장 의약 상자에서 집게와 소독 도구들을 꺼냈다.익숙하게 움직였지만 오랜만이라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그녀가 제대로 준비하자 강현우는 조금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윤하경은 가까이 다가가 가위로 그의 셔츠 소매와 임시로 감아둔 붕대를 조심스레 잘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슨 실수를 한 건지, 강현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윤하경의 손이 순간 멈췄고 강현우를 불안하게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죄송해요... 저, 실수했어요.”식은땀으로 젖은 강현우의 이마와 굳게 다문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자신이 아무리 해봤다지만 전문의도 아닌데 시간이 흐를수록 손이 떨렸다.강현우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오래 걸리면 피만 더 많이 나올 거야.”윤하경은 그 말에 입술을 살짝 깨물고 온 신경을 상처에 집중했다. 진한 피 냄새와 벌어진 상처가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었다.집게를 천천히 상처 속으로 넣는 순간, 강현우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윤하경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철저히 집중해서 금속에 닿는 느낌을 느꼈다.손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자, 조심스럽게 집게를 빼내어 총알을 꺼냈고 본래 황금빛이던 총알이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윤하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마치 힘이 다 빠진 사람처럼 강현우 옆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으며 숨을 거칠게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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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3화

강현우는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기운이 담겨 있었고 윤하경은 잠시 말없이 입술을 눌렀다.바로 그때 민진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 이명한은 어떻게 할까요?”이명한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윤하경은 저도 모르게 민진혁을 바라봤다.지난번 유람선에서 만났던 바로 그 남자였다. 총에 맞아 바다에 떨어진 걸로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었다니 놀라움과 불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더구나 이 먼 곳, 모성까지 와 있다니 정말 예상 밖이었다.강현우는 윤하경의 시선을 느끼고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어떻게 처리해야겠어?”그는 천천히 재킷 단추를 잠그면서 다시 물었다.“도망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민진혁이 눈썹을 살짝 올리고 대답했다.“이런 배신자는 원래 손발을 부러뜨려 강에 던지는 게 우리 방식이죠. 살아남으면 그게 그 사람 운이고요.”윤하경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오가는 말이 꼭 이명한만 두고 하는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치 자신까지 포함되어 있는 듯한 차가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이때 강현우가 짧게 웃었다.“그래, 평소대로 처리해.”그리고 윤하경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직접 구경할래?”그의 표정은 냉정하고 입가에 머금은 미소조차 섬뜩하게 느껴졌고 윤하경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이런 잔인한 광경은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강현우는 혀를 차며 윤하경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바라봤고 장난스러운 듯, 입꼬리를 더 올리며 다가오더니 가볍게 윤하경의 턱을 잡고 낮게 웃었다.“이런 구경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중에 아쉬워도 몰라.”그가 눈짓을 하자, 민진혁이 바로 눈치를 채고 말했다.“차 준비하겠습니다.”민진혁이 나가고 강현우는 다친 팔이 아닌 반대 손으로 윤하경의 어깨를 감싸며 문을 나섰다. 회관 문 앞에는 이미 민진혁이 차를 대기시키고 있었다.강현우가 차 앞에 서자, 윤하경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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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4화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면 너도 오래 못 갈 거야.”이명한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윤하경이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자, 피투성이가 된 이명한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요트에서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지금의 이명한은 완전히 만신창이였다.온몸이 피투성이였고 강현우보다도 훨씬 심하게 다친 듯 보였지만 목소리만은 또렷해서 아무리 심하게 다쳤어도 당장 죽을 것 같진 않았다.강현우는 그런 이명한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고 장난기 섞인 미소였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오히려 더 섬뜩했다.그가 손짓하자 민진혁이 바로 알아차리고 이명한을 천장에서 내려놓았다.강현우는 민진혁에게 손을 내밀었고 민진혁은 준비된 듯 곧장 그에게 야구방망이를 건넸다.“이제 네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 직접 확인해 봐야지.”강현우의 목소리는 원래도 낮고 매력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섬뜩함마저 느껴졌다.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이명한 앞에 다가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그래도 혹시 모르지, 네가 여기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봐줄 수도 있고.”이명한은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방금 전까지 욕설을 퍼붓던 입으로 간절하게 사정하기 시작했다.“제발, 강 대표님... 잘못했어요. 제가 다른 사람이랑 짜고 대표님 해치려고 한 거 정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 네? 제발요...”윤하경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강현우가 절대 이명한 같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강현우는 누구에게도 원한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한 번 눈 밖에 나면 끝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강현우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이명한의 총상 자국이 있는 다리를 힘껏 밟았다.이명한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쉿.”강현우는 다정하게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그러자 이명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왜 이러세요? 아까는 살려준다면서...”강현우는 미소를 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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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5화

밖으로 나오니 강현우는 이미 차에 올라타 있었고 윤하경이 반쯤 열린 창문 너머로 차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는 연기가 자욱했다.아마 강현우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양이었다.윤하경이 다가가자, 강현우가 연기를 내뱉으며 창밖에 서 있는 그녀를 한번 쳐다봤다.“타.”윤하경은 잠깐 입술을 깨물었지만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차에 타자마자 묘하게 어지러운 담배 냄새와 강현우 특유의 차가운 향기,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유쾌한 향기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강하게 침투해 오는 느낌이었다.윤하경은 잠시 숨이 막히는 듯했으나, 이내 강현우를 한번 슬쩍 바라봤더니 차가운 이목구비에 어딘가 힘겨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다친 몸에 담배까지, 차마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려다 멈췄다.바로 그때, 민진혁이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 안에 일은 다 정리됐습니다.”강현우는 특별한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자.”짧게 말하고는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대며 눈을 감았다.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윤하경은 그가 혹시 실신한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하지만 곧, 강현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걸 보고 그제야 이제야 정말로 ‘부상자’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마치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 같았다.윤하경은 그 생각을 잠시 하다가, 조용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고 머릿속에는 조금 전 이명한의 처참한 모습이 계속 맴돌았다. 강현우가 굳이 자신을 그 자리에 데려간 건, 분명 일종의 경고였다.차는 곧 강현우가 머무는 별장 앞에 도착했다. 강현우는 눈을 떴고 아무 말 없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윤하경은 바로 내리지 않고 잠깐 망설였다. 강현우가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민진혁이 뒤를 돌아봤다.“하경 씨, 내려주세요.”윤하경은 그의 눈치를 보며 가볍게 기침을 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저기... 현우 씨, 저한테...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겠죠?”강현우는 늘 표정이 무심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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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6화

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왜요? 아까 저더러 옷 벗겨달라고 하셨잖아요?”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강현우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만 띤 채 대답했다.“내일이면 나 경성으로 돌아가.”강현우가 느닷없이 그렇게 말하자, 윤하경은 순간 얼어붙었다.“정말요?”입에서 튀어나온 소리가 본인도 모르게 들떴던 탓에 자신도 당황스러웠다.역시나 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천천히 윤하경을 바라봤다.“내가 간다니까, 그렇게 좋은 거야?”‘당연하죠!’속으로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윤하경은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방금 다치신 분이 먼 길까지 가시는 게 걱정돼서요.”강현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신경 써주는 것처럼 굴긴. 그럼 나랑 같이 갈래?”“네?”윤하경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해 잠시 멈칫했다.“가기 싫어?”강현우가 다시 물었다. 그 깊은 눈동자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강렬한 시선이 윤하경을 꿰뚫고 들어왔고 그 시선에 괜스레 심장이 두근거렸다.잠깐 생각하던 윤하경은 조심스럽게 답했다.“저도 가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 외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좀 안 좋으셔서....”윤하경은 말을 흐리며 강현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는 입꼬리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래?”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좋아. 그럼 너는 여기서 얌전히 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강현우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덧붙였다.“그리고 이상한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러 다니지 마.”윤하경은 마지막 단추를 풀던 손이 순간 움찔하며 멈췄다.‘혹시 무슨 걸 알아챈 건가? 아니면 누가 자기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걸까?’이런 의심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혹시 더 무슨 말을 할까 싶었는데 강현우는 어느새 일어나 욕실로 걸어가고 있었다.욕실 문 앞에 멈춰서서 아직 멍하니 서 있는 윤하경을 돌아봤다.“거기서 멀뚱히 뭐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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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7화

“괜한 생각하지 말고 내가 돌아오면 좋은 선물을 준비해 줄게.”“선물?”윤하경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강현우가 주는 ‘선물’이라니 솔직히 그가 주는 건 늘 선물이라기보다 놀람에 가까웠다.그렇지만 굳이 태클을 걸지는 않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결국 조용히 강현우 품에 안기며 대답했다.“알겠어요.”윤하경은 눈을 감고 그날 하루의 혼란과 피로 속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그러다 한밤중,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났다. 꿈속에서 강현우는 며칠 전 이명한의 다리를 부러뜨린 그 야구방망이를 들고 차갑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은 바닥에 쓰러져 온몸이 굳어 있었고 강현우의 표정에는 어둠과 섬뜩한 미소만이 가득했다.“윤하경, 넌 참 고집불통이야. 난 배신을 제일 싫어해.”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현우는 야구방망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극도의 공포감에 숨이 턱 막혀버려, 윤하경은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으며 심장이 미친 듯 뛰었고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을 만큼 그 두려움이 생생했다.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이내 자신이 그저 꿈을 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휴...”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옆을 돌아본 윤하경은 강현우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남자는 숨소리가 거칠었고 윤하경이 조심스럽게 침대 옆 조명을 켜자, 어둑한 불빛 아래로 강현우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져 있는 게 보였다.강현우는 평소 잠귀가 밝아서 자신이 이 정도로 움직이면 금세 깨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현우 씨.”조심스레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결국 윤하경은 손을 뻗어 강현우를 흔들어보려 했지만 손끝이 그의 피부에 닿는 순간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손을 뗐다.강현우의 몸이 너무 뜨거웠고 살에 닿은 손끝이 화끈거릴 정도였다.“일어나 보세요.”불안한 마음에 다시 불렀지만 강현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이마에 손을 올려보니 역시나 심하게 열이 올랐다.“혹시 상처에 감염이 된 건가?”윤하경은 강현우의 붕대로 감긴 팔을 바라보았더니 흰 거즈 사이로 핏자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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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8화

윤하경은 강현우가 이런 상황에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순간 마음이 놓여 있던 터라 아무런 방비 없이 그 질문을 들었고 입술이 바짝 말라 무심결에 혀로 입술을 적셨다.“이유는 전에 다 말했어요.”조심스럽게 답했지만 열로 인해 붉어진 강현우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혹시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불안해하던 찰나, 강현우가 짧게 비웃듯 웃으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좋아.”별다른 이유도 설명도 없이, 의미심장하게 그 말만 남기고는 눈을 감았다.의사가 오기 전까지, 강현우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고 어떤 말도, 감정도 더는 내비치지 않았다.얼마 후 의사가 도착해 강현우의 체온을 재고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윤하경을 향해 조용히 설명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상처로 인한 감염 때문에 고열이 온 것 같습니다. 지금 열이 꽤 높으니 우선 약을 드시고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수액을 맞으셔야겠어요.”‘사모님’이라는 호칭에 잠시 멍해진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간 한마디도 하지 않던 강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의사가 하라는 대로 해.”강현우의 짧은 대답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준비하러 방을 나섰다.잠시 방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윤하경이 뒷걸음질 치듯 침대에서 일어나려 할 때, 강현우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걸 느꼈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묘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왜, 우리 사이를 그리도 급하게 부정하려고 해?”입을 열었다가,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머뭇거렸다.“물 끓여올게요.”조용히 한마디 남기고 부엌으로 향했다.사실 의사가 사모님이라고 부른 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정말 강현우의 아내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하지만 세상에는 만일이라는 건 없고 돌아가더라도 또 같은 선택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그 밤은 온통 분주하게 흘러갔다. 찬물에 적신 수건을 이마에 얹어주고 약을 챙기고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했다.해가 막 떠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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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9화

윤하경은 더 이상 오건우를 신경 쓸 마음이 없었다.“알아서 하세요.”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는 어젯밤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에 얼른 방에 올라가 쉬고 싶었다. 막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 밖에서 들어오던 집사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윤 대표님, 회장님께서 오시라고 하십니다.”윤하경은 그 말을 듣자 본능적으로 오건우를 한번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하병철이 부르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네, 알겠어요.”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윤하경은 다시 오건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오 대표님, 혹시 외할아버지가 저를 부르신 이유 아세요?”오건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저도 몰라요.”딱히 더 묻고 싶지 않았던 윤하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병철이 계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오건우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붙었다.하병철의 별장에 가까워지자, 멀리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집사들과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조용한 공간이 이렇게 북적이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윤하경은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가, 오건우와 함께 차분히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별장 마당에는 붉은 매화가 몇 그루 있었고 언제 피었는지 모를 매화 위로 은빛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그 조화로운 풍경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니 집 안에서 하병철의 목소리가 들렸다.“외할아버지.”윤하경은 조용히 인사하며 하이힐을 신고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무슨 일이신가요?”하병철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어. 너랑 같이 한 번 경성에 다녀올 생각이야.”“경성이요?”윤하경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잠시 놀랐다.“경성에는 왜 가시려는 건가요?”외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네 어머니가 어디에 묻혔는지, 난 아직 한 번도 직접 가보지 못했어. 내 몸이 언제 더 안 좋아질지 모르니까, 지금이라도 꼭 가보고 싶구나...”“외할아버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하병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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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0화

하병철이 바둑판에 마지막 돌을 내려놓으며 크게 웃었다.“봐라, 내가 뭐랬냐. 건우 말이야. 사람 참 든든하지 않냐?”하병철이 노골적으로 오건우와 윤하경을 엮으려는 속내는 이제 감추려 하지도 않는 듯했다. 윤하경은 그 기류를 뻔히 느끼면서도 굳이 맞장구치지 않았다.“이제 도착했으니 슬슬 움직이죠.”최대한 예의 바르고 담담하게 말하고 오건우를 향해서도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비행기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대표님.”윤하경은 일부러 거리를 두면서 말했고 오건우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좀 서운하네요.”은근히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흐리지만 윤하경은 받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때 하병철이 크게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뭘 그렇게 예의 차려. 다 한집 식구 같은데.”그리고 윤하경을 돌아봤다.“아, 맞다. 너한텐 미리 말을 안 했구나. 이번에 경성 온 김에, 나는 건우가 준비한 별장에 머물 거다. 너도 같이 있으렴.”“네?”윤하경은 순간 당황해서 하병철을 바라봤다.“숙소는 제가 따로 알아볼게요.”하지만 하병철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잘랐다.“괜찮아. 굳이 그럴 필요 없어.”그러고는 더 이상 윤하경이 반박하지 못하도록,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고 윤하경은 답답한 마음에 오건우를 흘겨봤다.“무슨 수를 쓴 거예요? 우리 외할아버지한테.”오건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치미를 뗐다.“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혹시 그냥 하병철 회장님이 절 좋게 보시는 거 아닐까요?”윤하경은 잠깐 한숨을 쉬고 오건우가 장난스럽게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오건우는 장난스럽게 다가와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괜히 내가 미운털 박힌 거 아니죠?”윤하경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최대한 거리를 유지했고 오건우가 다시 농담을 던졌다.“제가 하경 씨를 살려준 적도 있잖아요. 그 정도면 좀 친절하게 대해줄 만도 한데...”“그건 제가 빚진 거니까, 언젠간 갚을 거예요.”윤하경이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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