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경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하병철의 말을 기다렸다.그러자 하병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바로 네 외할머니와 너희 엄마다.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면 하고 싶지 않은 선택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너무 많단다. 하경아, 난 강현우 그 친구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어. 네 마음도 알고 있고. 하지만 현우 그 녀석은 절대로 좋은 배우자감이 아니야.”하병철의 말에는 손녀를 염려하는 진심이 깊이 담겨 있었다.그의 노련하고 깊은 눈빛이 윤하경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고 윤하경은 그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아까까지만 해도 하병철이 강현우를 칭찬하는 것을 들으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조차 사라지고 말았다.“할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현우 씨랑 그런 관계가...”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하병철은 조용히 말을 끊었다.“굳이 부정할 필요 없어. 나도 한때는 젊었단다.”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먼 기억을 떠올리는 듯 표정이 부드러워졌다가, 이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하경아, 내 말 명심하거라. 네가 현우 그 녀석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든, 지금 당장 끊어내야 해.”윤하경은 속으로 뜨끔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혼인신고서가 생각나 더욱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그녀가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하병철은 다시 진중하게 덧붙였다.“네 외할아버지인 내가 너에게 나쁜 길을 가라고 하겠니? 다 널 위해 하는 말이다. 강현우 같은 사람과 얽혀봤자, 결국 상처받는 건 너뿐이야.”하병철의 예리한 눈빛은 윤하경의 속마음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그 순간만큼은 윤하경 역시 짧은 침묵 끝에 고개를 떨구며 작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알겠어요, 할아버지.”그제야 하병철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같은 시각, 마침 차에 오른 강현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배지훈이었다.[어때, 내 말대로 다정하게 밀어붙였더니 효과 있지?, 윤하경 완전 넘어왔지? 하경이 외할아버지도 너희 사이 허락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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