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더 물어보려 했지만 이번엔 임재윤이 먼저 나섰다.“여진이는 절벽에서 떨어져서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이번 납치 사건으로 충격도 컸고요. 심리적으로 아직 상처가 깊은 상태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조금씩 마음을 정리하면 그때 다시 말씀드릴 수 있을 거예요.”논리정연한 임재윤의 말에 경찰은 아쉬운 기색을 보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민여진 씨, 혹시라도 기억이 나는 게 있으면 꼭 저희에게 연락하세요.”곧 세 사람은 악수까지 마치고 인사를 나눴고 민여진은 무거운 마음으로 경찰서를 나섰다.자신이 언제까지 이렇게 숨고 도망치듯 살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리고 자꾸 이런 의문이 들었다.이 모든 걸 숨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자신이 하는 모든 것이 옳은 걸까?이 부당한 현실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임재윤과 함께 독일로 가서 모든 걸 내려놓고 새출발하는 게 맞는 걸까?그런데 문채연, 그녀는 왜 단 한 번의 대가도 치르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살 수 있어야 하지?민여진은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그때 임재윤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차가운 손끝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온기가 남아 있었다.“괜찮아?”민여진은 애써 미소 지었다.“괜찮아. 그냥... 납치당했던 일 생각나서 기분이 좀 가라앉았어.”임재윤은 조용히 민여진을 바라보다가 결국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진아, 나한텐 숨기지 마. 네 마음에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거... 나도 알아.”민여진은 순간 멍해져 표정을 숨기지도 못한 채 임재윤을 바라보았고 이내 콧잔등이 살짝 시큰해졌다.임재윤은 정말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다.아니, 그만큼 민여진을 아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임재윤은 그녀를 먼저 차에 태웠다.밖은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차가 출발하자 임재윤은 최대한 민여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 묻었다.“납치 때문에 그래? 네가 분명히 누가 널 납치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갑자기 말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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