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민여진이 옅은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만약 밤늦게 귀가한 것에 대한 이유라면 들어볼 마음이 있지만 그 여자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한 설명이라면 굳이 안 해도 돼.”박진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여진아?”“그럴 필요 없으니까.”민여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은 변함없이 다정했다.“난 널 믿어. 넌 정당하고 깨끗한 관계만 맺을 것 같아. 날 배신할 리 없고, 우리 관계를 배신할 리 없잖아. 난 그런 쓸데없는 생각 안 하니까 괜히 긴장할 필요가 없어.”박진성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그의 가슴은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듯 타들어 갔었다.민여진이 자신을 의심하고, 멀리하고, 심지어는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 수많은 가능성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완전히 실망하여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었다.그 믿음 때문에 그녀는 울면서 그 여자가 누구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히스테리를 부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가 늦게 돌아와 반찬이 식어버린 것을 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박진성은 민여진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감정의 파도가 너무 격하게 몰아쳐서 그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여진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며 평생 고통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할 존재였다. 그녀의 이토록 숭고한 사랑을 가질 자격도, 권리도 없었다.그런데도 그는 이기적으로 그녀를 소유하려 했고 그 집착이 끝내 지금의 모든 걸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믿어주었다.민여진은 어깨에 닿는 뜨거운 감촉에 무심결에 물었다.“재윤아, 너 지금 울어?”“아니.”그녀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자격은 무슨, 그런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나야.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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