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비밀애인: Bab 21 - Bab 30

100 Bab

제21화

가희는 병원에서 며칠을 지내다 퇴원하던 날, 윤호로부터 출장을 가라는 문자 통보를 받았다. 짧고 간결한 메시지는 너무나도 윤호다운 방식이었다. [7시, 공항.]가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집으로 돌아가 짐을 간단히 챙기고 나서,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고,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7시 정각이었다.그녀는 헐레벌떡 공항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있는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 윤호는 가희를 보며 약간의 불만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한 실장, 지금 시간이...” 가희는 그가 말을 끝내기 전에 단호하게 끊으며 대답했다. “6시 58분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전에 다른 분을 도와드리느라 30초 정도 지체됐으니까 늦은 건 아니죠.” 윤호는 순간 멍해졌다. 눈앞에 서 있는 가희의 맨얼굴에는 은은한 홍조가 번져 있었고, 약간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흘러내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자의 입술은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고, 평소와 다른 숨 가쁜 모습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윤호가 잠시 말 없이 가희를 바라보는 동안, 옆에 서 있던 남자 비서 주성은 속으로 감탄했다. ‘한 실장님 진짜 대단하시네... 괜히 대표님께서 항상 칭찬하는 게 아니야.’주성도 그동안 윤호가 가장 신뢰하는 비서가 ‘한가희’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성은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살짝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희는 주성에게 가볍게 미소를 보냈고, 그 미소는 고스란히 윤호의 시야에 들어왔다. 윤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뭘 꾸물대고 있어? 빨리 안 가고.” 가희는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윤호는 아무 말없이 앞장섰고, 가희는 일정한 속도로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세 사람 모두 일등석에 탑승했다. 윤호는 가장 앞자리에 혼자 앉았고, 가희와 주성은 그 뒤쪽에 나란히 자리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성이 말을 걸어왔다. “한 실장님, 아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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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내 사람.” 여자는 윤호와 가희를 번갈아 가며 짧게 훑어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자리를 뜨기 전, 기분 나쁜 듯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요즘 잘생긴 남자들은 죄다 눈이 먼 모양이네.” 가희는 속으로 황당함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까지 보기 흉하게 생겼나?’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윤호가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 가희가 잠시 멈칫하자, 윤호는 오해를 피하려는 듯 덧붙였다. “앞으로 또 귀찮게 굴지 못하게 막아.” 가희는 윤호의 말을 듣고 잠깐 당황했지만,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원래 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은 상황을 이해하고 기분 좋게 자리를 바꿔 주었다. B 국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6시간. 가희는 얼마 전 병원에서 퇴원했기 때문에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피로가 쌓여 있었다. 윤호가 곧바로 노트북을 꺼내 일을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가희는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쉬려 했다. 그러나 피로가 극심했던 탓인지, 그녀는 생각보다 더 빨리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가희는 완전히 잠이 들었고,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윤호 쪽으로 기울어졌다. 결국 그녀의 머리는 윤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기대게 되었다. 윤호는 느껴지는 무게감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를 깨우려 했다. 하지만 남자의 시선이 가희의 얼굴에 닿자 그녀를 깨우려던 손가락을 잠시 멈췄다. 평소 강한 인상을 가진 가희의 잠든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가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윤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손을 내렸다. 대신 노트북을 닫고 잠시 쉬기로 했다. 뒤쪽에 앉아 있던 주성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표님이 엄청 심한 결벽증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왜 한 실장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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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윤호의 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과 은근한 위협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때마침 코피가 멎자, 가희는 휴지로 코를 가볍게 닦아낸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이제 전 괜찮아요. 바쁘시면 먼저 가셔도 돼요.” 남자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정말 죄송합니다. 누나는 진짜 예쁘고 마음도 착하시네요. 혹시 B 국에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희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B 국이 얼마나 넓은데 다시 만날 확률이 있겠어.’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아직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풋풋한 에너지와 밝은 미소가 가희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녀는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회가 된다면요.” 가희의 말과 함께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고, 눈이 살짝 휘어지며 그녀의 분위기는 한층 더 따뜻해 보였다. 그 순간 윤호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지면서 얼굴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주위의 공기는 급격히 차가워진 듯했다. 마치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것 같은 강렬한 냉기를 풍기며 윤호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졌으면 빨리 가자. 오늘 밤 미팅 늦으면 곤란하니까.” 윤호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 가희는 살짝 긴장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주성은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대표님... 저렇게까지 표정 굳어질 일인가?’윤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이며 빠르게 걸어갔다. 갑작스럽게 속도를 내는 윤호의 뒷모습을 보며 가희와 주성은 당황한 채 서둘러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주성은 윤호의 기세에 압도당해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얌전히 따라갔다. 세 사람은 곧바로 준비된 차에 탑승했다.차 안에서 윤호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조용히 쉬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었고, 주성은 긴장한 채 구석에 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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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한 실장, 너 지금 일부러 그런 거야?” 가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고,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대표님. 못 봤어요.” 가희의 반응에 윤호는 괜히 더 짜증이 났다. ‘왜 이 여자는 다른 사람한테는 늘 싹싹하게 웃으면서 나한테만 이렇게 딱딱하게 구는 거지?’ 가희와의 관계에서 뭔가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답답함이 밀려오자 윤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더 찌푸린 표정으로 가희를 쳐다보았다. 가희는 윤호의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윤호가 왜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짜 뭐야... 남자 갱년기도 아니고 왜 저러지?’ ...두 사람이 만찬장에 도착했을 때, 상대 회사의 대표이사인 왕국영은 부인을 동행하여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윤호와 가희가 들어오자 왕국영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대표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윤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희야말로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사업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저희도 좋은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 가희는 자리에 앉으며 단정한 미소를 유지했지만, 왕국영의 부인인 예은정을 보며 잠시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애써 그게 단순한 착각이길 바랐다. 가희가 자리에 앉자마자 예상대로 상대 회사 왕국영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렸다. “이분이 이 대표님 곁에서 일하시는 유명한 한 실장님이시군요? 전에 소문으로 들었을 때도 능력이 뛰어나고 미모까지 겸비했다던데, 오늘 직접 뵈니 과연 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표로 SR 그룹 관련 업무에 나설 때마다 가희는 늘 비슷한 칭찬을 들었지만, 그런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상대가 칭찬하는 것은 SR 그룹의 ‘유능한 비서’라는 타이틀일 뿐, 그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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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예은정은 가희가 이 갑작스러운 부탁에 승낙하자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가희는 그 상황이 묘하게 불편했다. 그 후로도 일행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이어갔고,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가희는 계산하러 자리에서 일어난 뒤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상대 회사 대표인 왕국영이 복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희의 심장이 순간 빠르게 뛰었으나, 곧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왕 대표님, 여기서 뵙다니 우연이네요.” 남자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그의 표정은 점점 기묘하게 변해갔다. “한 실장, 내가 일부러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가희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으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없었다. “그러십니까? 그럼 혹시 무슨 일인지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가 이 대표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뭐, 한 실장도 눈치 빠른 분이시니 굳이 돌려 말할 필요는 없겠죠. 아이 돌봐 주실 필요 없고, 서로 비즈니스만 깔끔하게 끝내면 될 일 아닌가?” 가희의 얼굴에 띤 미소가 점점 더 깊어지더니,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왕 대표님, 아드님 일은 사모님께서 직접 저에게 부탁하셨고, 방금 식사 자리에서 이미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고, 그는 가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위압적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눈빛은 마치 가희를 압도하려는 듯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왕국영은 이를 악물고 손가락으로 가희의 팔을 움켜쥐며 점점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한 실장,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제가 좋게 말할 때 좀 잘 들어. 아니면, 원하는 게 따로 있어?” 그는 음흉한 눈빛으로 가희의 몸을 훑어보며 속에 담긴 추악한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가희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왕국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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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이렇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네.” 가희는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으나, 아직 대답하기도 전에 윤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처럼 서늘했다. “술집에서 만난 남자 문제는 아직 조사 중인데, 이번엔 또 왕 대표가 끼어드네. 한가희, 이게 도대체 누구 때문인지 말해볼래?” ‘거기에 비서실에 새로 들어온 주성과도 꽤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갑자기 주성과 대화를 나누며 밝게 웃는 가희의 모습이 괜히 떠올라서 윤호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 “한가희, 경고하는데, SR 그룹에 있는 동안에는 그런 지저분한 스캔들은 여기까지 끌고 오지 마.” 억울함에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가희는 더 이상 억지를 부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윤호는 가희가 남자들과 얽혀 스캔들만 만드는 사람으로 보이는 듯했다. 가희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대표님 말씀은, 제가 SR 그룹을 나가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윤호의 관자놀이 근처에 핏줄이 불쑥 튀어나왔고, 당장이라도 독설을 내뱉을 듯한 기세였으나 꾹 참으며 말을 삼켰다. 대신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서려 있었다. “그래. 회사를 나가면 네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어.” 가희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슬픈 기색의 눈빛을 감추고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말씀 명심할게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조용히 몸을 돌려 걸어갔다. 가희의 뒷모습이 유난히 가냘프고 여려 보였다. 몇 주 전만 해도 건강해 보이던 그녀는 체중이 갑자기 급격히 빠진 것처럼 한층 더 야위어 보였다. 오늘 저녁 만찬을 위해 그녀의 체형에 맞춰 제작된 드레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몸에 잘 맞지 않고 헐렁한 느낌을 주며 공허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윤호는 아까 가희의 눈빛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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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가희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아 달라는 거야?” 아이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가희를 바라보더니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희는 미소를 머금고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린 뒤 다정하게 물었다. “아침밥 먹었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옆의 가정부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재준은 평소 집에서 말도 거의 하지 않을뿐더러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거나 반응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가정부는 이번에도 아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가 가희의 품에서 살짝 몸을 빼더니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가희는 부드러운 미소로 재준에게 말했다. “그러면 누나랑 같이 가서 밥 먹을까?” 가정부는 그 광경을 보고 조용히 놀란 마음을 감춘 채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윤호는 자기 방에서 나오다가, 가희가 재준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가 커다란 눈망울로 윤호를 보더니 갑자기 가희 뒤로 숨었다. 마치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윤호는 속으로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희는 당황한 아이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누나 회사 상사셔. 대표님이야.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 그러나 재준은 더욱 몸을 웅크리며 가희 뒤에 꼭 붙어 숨었고, 가희는 윤호를 향해 약간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윤호는 그런 상황이 불쾌한 듯 코웃음을 치며 눈길을 피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가희는 다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야. 누나랑 같이 가서 밥 먹을까?” 아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윤호의 표정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가희를 향해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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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윤호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 마침 옆에 있던 주성이 문밖으로 나오며 가희의 말을 듣고 밝은 얼굴로 말했다. “놀이공원이요? 저 놀이공원 진짜 좋아하는데, 같이 가도 돼요?” 가희가 미소 지으며 대답하려는 찰나, 윤호가 갑자기 냉정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어제 보낸 회의록 오늘 안으로 정리해서 올려. 놀이공원 티켓은 네가 직접 가서 사 와. 내 티켓도 같이 사.” 주성의 얼굴은 금세 시무룩하게 변했다. 윤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가희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혹시... 질투하는 거 아니야?’ 주성이 따라가는 걸 괜히 막은 것 같은 윤호의 행동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곧 가희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이윤호는 나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데 질투는 무슨...’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기대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가희는 자신의 빨라진 심장 박동을 느끼며 현실을 자각했다. ‘괜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 때문에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세 사람은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재준은 놀이공원 안의 놀이기구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에 호기심과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희는 아이의 그런 표정을 금세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물었다. “재준아, 여기 처음 와봤어? 오늘 누나랑 같이 여기 있는 놀이기구 다 타보자, 어때?” 그렇게 말한 뒤 윤호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같이 가서 한번 타보실래요?” 윤호의 눈에 잠깐 망설임이 스쳤으나, 곧 무표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됐어. 너희끼리 가서 놀아.” 그렇게 말한 윤호는 앉을 만한 곳을 찾아 걸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가희의 얼굴에는 잠시 실망하는 빛이 스쳤고, 그걸 눈치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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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한가희!” “누나!” 두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상대가 다시 총을 겨누려는 순간, 윤호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무장한 남자들을 제압했다. 그러나 이미 가희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가슴 부근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옷을 빨갛게 물들였고, 바닥에도 붉은 피가 빠르게 흘렀다. 가희의 입가에서도 피가 흘러내렸고, 피로 물든 바닥은 더욱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윤호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눈빛엔 깊은 분노와 불안이 서렸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119 불러!” 그런 다음,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희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가희, 넌 절대 죽지 않아. 내 목소리 들려? 끝까지 버텨.” 가희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윤호의 얼굴을 희미하게 바라보았다.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고 창백해진 얼굴은 엄청난 고통을 참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희는 한 줄기 환한 빛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게... 구원의 빛인가?’ ‘이렇게 하면... 내 불행했던 인생도 이제 막을 내리는 걸까?’ 가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힘겹게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표님, 그동안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윤호의 ‘비밀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지내온 세월이 떳떳한 건 아니었지만, 가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SR 그룹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 그녀가 외부에서 ‘완벽한 비서’로 불리며 칭찬받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가 처음에 얼마나 서툴고 부족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가희는 원래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교 다닐 때도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받았고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윤호의 비서로 발령받았고, 그 후로 학업과 전공은 점차 잊혀 갔다. 점점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윤호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이 마치 가희가 처음 비서로 일할 때 만났던 윤호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때 가희는 겨우 회의록 작성하는 법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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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가희는 피곤한 듯 살짝 떨리는 입술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내가 왜 남을 신경 써야 하지...’ 귀가 먹먹해지며 주변의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가희는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의식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한편, 윤호는 응급실 문 앞에 서서 싸늘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분노로 가득한 그의 얼굴은 마치 그 위에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떨어뜨리면 그대로 터져버릴 듯한 엄청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로 그때, 왕국영이 급하게 달려왔다. “이 대표님,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유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사건은 제가 반드시 철저하게 조사해서 책임질 사람들을 찾아내겠습니다. B 국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결코 이대로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옆에 있던 예은정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윤호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래요? 왕 대표님, 이번 일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왕국영은 당황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표님, 제가 이런 큰일을 미리 알았다면 진작에 나서서 해결했겠죠. 이렇게 늦게 도착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그러나 윤호는 차갑게 웃으며 사진 한 뭉치를 왕국영 앞에 던졌다. 사진에는 얼마 전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났던 무리와 왕국영이 은밀히 거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사진 속 왕국영의 표정은 잔혹하고 냉혹했으며, 마치 누군가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왕국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 이건...” 윤호는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왕 대표님,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놀이공원에, 아드님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혹시 그 자리에서 아드님도 다쳤다면 어쩔 뻔했죠? 설마 자기 자식까지 잃을 각오로 이런 일을 벌인 건가요?” 윤호가 냉소를 지으며 또 한 묶음의 사진을 내던졌어요. 사진 속에는 왕국영과 긴 머리를 늘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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