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491 - Chapter 1500

1608 Chapters

제1491화

“제 출정까지는 아직 며칠 남았습니다. 도문군과는 예부터 가까우니, 돌아가면 한 번 물어보고 그 이해준이라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슬쩍 살펴보지요.”이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꺼냈다.이영은 곧장 미간을 좁히며 손을 내저었다.“그럴 것까진 없다.”그리 말했지만, 속으로는 사뭇 궁금했다.도문군이 막 경성에 들어와 이영의 신임을 두텁게 얻고 있기에, 전 남편이라는 그 사내는 지금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이튿날 새벽 조회 시간에 이천은 예부상서로 제수되었다.그날부터 국자감, 국녀감, 태학, 사문학 등 중앙의 모든 관학이 그의 손아래에 놓였다.조정 대신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돌았으나, 감히 대놓고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었다.본디 이천은 흠천감의 감정이었으므로 원칙상 다른 벼슬을 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천왕이었다.천왕이라면 마땅히 상운국의 대업을 위해 몸을 다 바쳐야 하고, 황제의 짐을 나누어 져야 하지 않겠는가.그날부터 이천은 국녀감에 상주하였다.이는 곧 황제가 여인들의 과거 제도를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를 세상에 천명한 것이었다.이 나라의 하늘이, 여인들의 하늘이 과연 뒤바뀌려 하고 있었다.하조를 마친 뒤, 이천은 상서도당에 들러 인계를 마치고, 미시 무렵 궁궐을 나와 곧장 국녀감으로 향했다.국녀감의 사업 장종은 이미 성지를 받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관저를 깨끗이 정리해 두었고, 이천이 도착하자 친히 안내했다.이천은 휑한 대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치지재격물… 이곳은 ‘격치재’라 부르도록 하자.”장종이 고개를 돌려 정연에게 일렀다.“문 대인, 기록해주십시오.”정연은 단정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 대인.”정연의 본가는 원래 문씨였다. 예전에 당안이 본관을 묻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날 새벽 성지를 받고서야 실감이 났다.감승, 비록 기강을 감독하는 칠품 관직일 뿐이었으나, 여인으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태의원의 여의들을 제외한다면, 조정에 발을 들인 첫
Read more

제1492화

“드디어 문 대인을 뵙는군요.”이천은 옅은 웃음을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넸다.정연이 살짝 미소 짓자, 그 기품은 ‘용이 아들을 낳으면 용, 봉이 딸을 낳으면 봉’이라 한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태후 마마 곁에서 자라며 쌓은 위엄과 기품이 은은히 풍겨 나왔다.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친근함은 신선과도 같아,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배처럼 느껴졌다.이천은 그 미소를 보며 문득 떠올렸다. 혼인하기 전의 정연은 어마마마를 도맡아 후궁을 함께 다스리며, 모든 궁녀들의 우두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 인물이 지금은 국녀감의 기강을 감독하는 감승으로 있다 하니, 그리 벅찬 일이 아닐 터였다.그제야 이천의 마음이 놓였다.잠시 뒤, 이진이 부탁한 말씀이 생각나 다시 입을 열었다.“국녀감 안의 도문군과 심교은, 심연희는 모두 잘 알고 계시지요?”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교은이와 연희는 잘 알고 있지요. 두 아이가 저를 때론 ‘어머니’라 부르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도문군은 일전에 한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부모와 남편을 반란 속에서 모두 잃었는데도 꿋꿋하더군요. 식사와 수면, 약간의 잡무를 제외하곤 온전히 학업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이천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강인함이란 대개 남들에게 보이려 하는 법이죠. …하여간, 그들이 바라는 것이 직책이든 권한이든, 가능한 한 편의를 봐주십시오. 이는 진녕공주의 부탁입니다.”정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당연하지요. 게다가 도문군의 손에는 월왕 전하께서 친히 내려주신 위패가 있지 않습니까.”이천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렇다면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한 셈이었다.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정연이 조심스럽게 청했다.“내일은 학자들 앞에서 한 말씀 해주셔야 합니다, 전하.”“물론이죠.” 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배웅하려 하자, 정연은 황급히 손을 들어 막았다.“어찌 몸소 배웅하려 하십니까. 그러지 않으
Read more

제1493화

심연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아니야, 집안 의원으로는 소용없을 거야.”명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아씨, 어디가 불편하신 건지요? 아니면 둘째 아씨를 모셔올까요?”“아니야. 교은이를 괜히 불러 번거롭게 하지 마.”심연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지만, 얼굴은 이미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단지 앞으로 이천을 자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치고, 가슴은 벅차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명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혹시 아씨… 천왕 전하께서 흠천감에 오래 머무신다 하여, 그래서 이렇게 밤새 잠을 못 이루시는 것입니까?”심연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그분 때문이야.”그녀는 두 손을 꽉 쥐고, 심호흡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여학에서 지내며 윤선 언니나 문군 언니 같은 분들과 오래 함께하다 보니, 나도 당연히 남자들에게 마음이 식을 줄 알았어. 그런데…”그녀의 입꼬리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경 대인에게서만 마음이 멀어졌을 뿐이더구나. 그런데 자꾸 천왕 전하 앞에만 서면…”심장이 다시 한 번 크게 뛰었다.경장명과의 혼인은 송윤선이나 도문군 같은 언니들조차도 더할 나위 없는 혼처라고 입을 모았던 일이었다.심연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명주를 바라봤다.“명주야, 네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니?”“저요?”명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천왕 전하는 분명 준수하시고 고결하신 분이지요. 하지만 성정이 차가우시고, 또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실 분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씨께서 만약 그분을 사모하신다면, 자손도 없이 쓸쓸한 여생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등잔불 밝히고 단란히 지낼 텐데, 아씨만 홀로 외로우실지도 모릅니다.”명주는 숨을 고르고 힘주어 말을 이었다.“만약 저라면… 당연히 경 대인을 선택할 것입니다.”“경 대인께서는 확연히 천왕 전하와는 다르십니다.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 또한 원만하시며, 무엇보다 아씨께서 하시는 일이
Read more

제1494화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서늘하여, 정신마저 씻어내는 듯한 아침이었다.국녀감 명륜당 안.향로 위로 햇살이 스며들며 자줏빛 연기가 아른거리듯 피어올랐다.이천은 지성선사의 초상 앞에 고요히 서 있었다.홀 안에 모인 학자들은 숨소리조차 줄이며 그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지금은 성군께서 친히 나라를 다스리시는 시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학문을 닦아 벼슬길에 오를 수 있으니, 오늘 이 자리에 앉은 그대들 또한 훗날 조정에 서서 나라를 돕게 될 것이다.”“오늘은 단 세 가지만 말하겠다.”“첫째, 학문에 임함에 있어 으뜸은 성실함이다. 시중의 시문을 베껴 과제라 속이거나, 남의 주석을 훔쳐 학식이라 자랑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고 남을 속이는 짓일뿐이다.”“둘째, 몸가짐은 신중해야 한다. 국녀학에 드나드는 자가 입는 옷과 지니는 패물은 모두 조정에서 내린 은혜다. 그 영광과 치욕은 곧 그대 자신의 이름에 달려 있다. 예법은 옥을 다듬는 칼날과 같아, 속박이 아니라 그대를 빛내기 위함이다.”“셋째, 뜻을 높이 세워라. 과거 급제를 최종 목표로 삼되, 안목이 뒷마당 한 칸에 갇혀서는 아니 된다. 사서 몇 권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장서각에 쌓인 수만 권의 책을 저버리지 말라.”그 말씀이 끝나자, 명륜당 안은 우레 같은 박수 소리로 뒤덮였다.심연희는 그 속에 앉아 이천의 목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차분하고 온화한 가르침, 예전처럼 신선한 기운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어디선가 세속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듯했다.그 박수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이어 장 대인과 문 대인이 차례로 연설을 이어갔다.곁에 앉아 있던 도문군은 심연희의 시선을 살피다 문득 깨달은 듯했다.‘아, 그래서 그날 진녕공주께서 자신을 찾아와 부탁했던 것이구나.’심연희를 도와달라고, 심지어 이천과의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까지 당부했었다.도문군은 다시 단 위를 바라보았다.저 사람은 지금도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 같았다. 비록 세속의 기운이 조금 스며들었다 하여도, 감히 가
Read more

제1495화

그날, 도문군을 찾아온 이는 다름 아닌 이진이었다.진녕공주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이천을 도와 심연희와의 인연을 맺어달라고.물론 도문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아씨께서는 이미 경 대인과 혼약이 정해져 있으니, 풍속에 어긋나는 일을 제가 감히 권할 수는 없습니다.”심연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저는…”목소리가 떨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몸 둘 바를 몰랐다.도문군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허나 제가 이틀간 지켜보니, 아씨께서는 경 대인을 사모하는 마음은 없어 보이더군요.”심연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사실을 인정한 셈이었다.“그렇다면 혹시…” 도문군은 곧장 물었다.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혼약을 파기할 생각은 있으신 겁니까?”심연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혹여, 그 이유가 천왕 전하 때문입니까?”순간 그녀의 얼굴이 활활 달아오르며 새빨개졌다.“아,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아니라니?도문군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마음을 품을 때 드러나는 기색을 자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주에서의 일, 그리고 이천의 곁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보살펴준 진녕공주까지.오늘 또 이천이 명륜당에서 남녀가 함께 입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것까지… 그런 사내라면, 여인이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심연희의 가문은 본래부터 명문가였다. 게다가 이진은 두 사람은 본디 인연이 있는 사이라 말하지 않았던가.만약 지금 그 인연을 붙잡지 못한다면, 훗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치 도문군 자신과 이해준의 일처럼 말이다.진주에서 과거 시험을 볼 때, 자신이 장원으로 뽑혀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되었을 때, 그녀는 깨달았다.결국 그는 결단을 내려 단 한 장의 서류로 혼인을 끊었다.당시에는 원망스러웠으나, 돌이켜보면 그 서류 한 장 덕분에 어린 딸 문이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도문군은 담담
Read more

제1496화

도문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을 이을 수 있도록 북돋아 주었다.심연희가 다시 입술을 떨며 말했다.“그분은 어쩌면 이미 제가 전하를 마음에 두었다는 걸 눈치채신 듯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말씀하시길, 언젠가 제가 다른 이를 마음에 품게 된다면 기꺼이 물러서 주시겠다고요. 다만, 만약 3년이 지나도록 그렇지 못하다면 그때는 반드시 저와 혼인하겠다 하셨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사랑이 아닌데 억지로 함께한다면, 서로에게 짐이 될 뿐일 텐데… 눈시울을 붉히며 제게 간청하셨습니다.”심연희는 고개를 떨군 채 힘겹게 내뱉었다.“그땐 별일 아니라고 여겼는데, 정작 제가 마음을 다치고 나니… 감히 구할 수도 없는 이 마음, 붙들 수도 없는 심정이 너무 괴롭습니다.”도문군이 담담히 말했다.“경 대인을 향한 그 애틋함을 불쌍히 여기는 게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심연희는 조용히 ‘네’ 하고 짧게 답했다.도문군이 자리를 뜨려 하자, 심연희가 서둘러 불러 세웠다.“언니!”“네?”“만약 언니가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도문군은 순간 멈칫했다가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저는 타인의 인연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한 저 역시 잘 알지 못합니다.”그녀의 삶은 사람들의 눈에는 명예와 성공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은 이미 집안이 무너지고 상처투성이였다.원한 것은 단 두 글자, ‘공평’이었으나, 돌아온 것은 피투성이와 폐허뿐이었다.심연희는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그녀는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고맙습니다, 언니.”도문군이 손을 모아 예를 갖추며 답했다.“고맙다 할 것 없습니다. 저는 이제야 제 본래 뜻을 좇아 걷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 길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 걸어갔다.도문군의 뜻은 곧 황제 폐하께서 추진하는 새로운 정령과도 같았다.수많은 여인들에게 학문의 길, 입사의 길을 열어주려는 이상. 그렇다면 자신
Read more

제1497화

이진은 눈을 몇 번이고 동그랗게 떴다.첫째는 이천이 느닷없이 상태주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둘째는 그 상태주라는 인물이 정말 말 그대로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봉변꾼이라는 점 때문이었다.“그야말로 웃기는 놈이네요.” 이진이 중얼거렸다.이영이 흥미를 띠며 고개를 기울였다.“웃기는 놈이라니?”“네,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이영이 어깨를 으쓱했다.“네가 웃기다 하면 그렇겠지. 다만 그자가 어떻게 웃긴다는 건지는 짐작이 안 가는구나.”이진은 눈을 반짝였다.“그럼 제가 직접 데려와서 언니께 보여드릴까요?”이영은 손사래를 쳤다.“그럴 것까진 없어.”이진은 순간 풀이 죽은 듯 시무룩했지만, 곧 주익선을 끌고 나가 놀러 가겠다며 눈짓을 했다.심초운은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이제 곧 월성국으로 가게 되면, 모든 일은 주익선과 진 장군의 말을 따르거라.”“저는 절대 전투 지휘에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이영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꼭 주익선과 군사들의 조언을 들을게요.” 이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자신을 단련시키려는 뜻은 잘 안다. 능력이야 어떻든, 어쨌든 월왕의 기치를 달고 친정에 나가는 자리인데 허술하게 보여선 안 되었다.그는 싱긋 웃으며 시선을 들어 이천을 힐끔 바라보았다.“왜,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이천이 미소 띤 목소리로 물었다.“아니에요.” 이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이천이 점점 더 오라버니처럼 느껴지는 게 이상했을 뿐이다. 식탁에서 반찬을 챙겨주기도 하고, 자신이 기쁜지 아닌지를 살펴주기도 한다. 그런 사소한 배려가 어쩐지 따스했다.심초운은 말없이 이영의 그릇에 반찬을 놓으며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굴렸다. 이미 사람을 보내 경장명의 내력을 알아본 참이었다. 정말로 첩이 있었다. 하지만 혼담이 오간 뒤로는 곧바로 내쳤다 한다.만약 서장자가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어찌 그 여인을 내보냈을까. 아니면 서장자가 아직 그녀의 뱃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그
Read more

제1498화

저녁 식사 후.이진과 이천은 함께 마차를 타고 궁궐을 나섰다. 경성의 야시장은 여전히 낮처럼 활기가 넘쳤다.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뒤섞여 시끌벅적했다.“오라버니, 정 대인께서 혹시 말씀해 주신 적 있으세요? 오라버니와 연희 언니의 인연이 깊다 하신 것을요?”이진이 마차 발걸이를 젖히며 물었다. 그러다 우연히 심연희와 심교은, 심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연희 언니…!”“멈추거라.”이진이 다급히 외쳤다.검오가 곧장 마차를 세우자, 이진은 이천을 돌아보았다.“오라버니, 우리 가서 볼까요?”이천은 미간을 찌푸렸다.“너 혼자 가거라.”“저 혼자 가라구요? 저를 누가 납치라도 해 가면 어쩌시려고요?”이천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검오야, 너는 진이를 데리고 다녀오거라.”“예, 전하.” 검오가 답했다.“그럼 오라버니는요?” 이진은 동그란 눈으로 물었다.이천은 무심히 마차 발걸이를 젖혀, 길가의 술집과 다방을 가리켰다.“나는 저 다방 안에 있으마.”이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만두죠. 어차피 익선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제가 연희 언니를 찾아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언니께서는 아직 정혼자가 있으신 몸이잖아요. 제가 함부로 끼어드는 건 지나치겠지요.”이천은 담담히 말했다.“진이를 데리고 바로 궁으로 돌아가거라.”“……”이진은 말문이 막혔다.이천이 곁눈질로 그녀를 보더니,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렸다. 억지로 인연을 맺게 하지 않으려는 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월왕부 앞.이진은 마차 발걸이를 젖히고 내려다보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월왕부’ 세 글자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묘한 감정이 가슴을 스쳤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천을 향해 말했다.“오라버니, 안으로 들어와서 잠시 쉬다 가시지요?”“괜찮다.” 이천은 단호히 잘랐다.“그럼… 알겠습니다. 모든 수리가 끝나면, 꼭 오셔서 함께해 주세요.”“그래.”이진
Read more

제1499화

“어서 가!”이진이 재촉하자, 주익선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알았어.”그 말과 함께 그는 긴 소매를 휘날리며 성큼성큼 달려 나갔다.정자에 앉아 있던 이영은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웃었다.잠시 뒤, 염이가 서둘러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전하, 저녁은 드셨습니까?”“이미 먹었다. 곧 주익선이 돌아올 테니, 월왕부 사람들 모두 입단속 잘 시켜줘!”이진이 단호히 일렀다.염이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예, 전하. 주의하겠습니다.”이진이 ‘에이’ 하고 소리를 내자, 염이가 다시 돌아섰다.“왕부 안 일들은 앞으로 저에게 전권을 맡기시려 하십니까?”“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어?”염이는 당황해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왕부라면 총관을 따로 두셔야 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녀들이나 시비들을 거두는 정도라면 몰라도, 그 외의 일은…”이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그제야 이영이 왜 자신을 보고 그토록 아쉬운 눈빛을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지금 자신이 염이를 바라보는 감정도, 그저 썩은 나무를 기둥 삼으려는 허망함과 다르지 않았다.“내일 충복이를 데려와줘. 이 왕부는 잠시 그 아이에게 맡아야겠다.”체념하듯 말하는 이진의 눈빛은 차가웠다.원래는 이당궁을 충복에게 맡기거나 새 직책을 주려 했지만, 이대로라면 왕부까지 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염이는 오히려 안도한 듯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예, 전하.”“……”이진은 말이 막혔다.눈앞에 놓인 커다란 기회를 조금도 붙잡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맡기게 되어 기뻐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전하…”염이는 그제야 이진의 표정에 드리운 불쾌함을 눈치챘다.“혹 제가 실수라도 저질렀습니까? 아니면 실언을…”그녀가 무릎을 꿇으려 하자, 이진이 황급히 손을 뻗어 일으켰다.“또 예법을 잊었니?”염이는 고개를 숙였다. 전하가 공주 시절부터 늘 말해 주었다. 괜스레 무릎 꿇을 필요는 없다고.“저는 다만, 전하께서 기분이 좋지 않으신 듯
Read more

제1500화

이진은 환한 달빛이 가득 비친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많은 생각에 잠겼다.언니가 여인들을 해방시키고자 한다면, 본래부터 더 큰 불공정과 짓밟힘, 모욕을 당한 이들은 자연스레 호응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 적잖은 여인들의 반발도 부르게 될 터. 왜일까?그들은 노비로 살든, 하녀로 살든, 아내로 살든, 첩으로 살든 각자의 자리에 이미 익숙한 안락을 누리고 있었다. 언젠가 극적인 불평등과 억압이 직접 그들 앞에 떨어지지 않는 한, 스스로 깨어나는 일은 너무도 먼 이야기일 터였다.“진아?”주익선이 이진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는 거야?”“언니가 하려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이젠 폐하의 정무까지 걱정하는 거야?”이진은 발끈하며 소리쳤다.“내가 월왕이잖아!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나라의 근심을 함께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주익선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웃으며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이진은 한숨처럼 크게 들이마셨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내뱉었다.“아까 염이한테 물어봤어. 왕부 총관을 맡아볼 생각이 있느냐고.”“염이한테?”“응.”“너랑 또래잖아. 아직 어린아이인데, 이렇게 큰 왕부를 맡기엔 벅찰 거야.”“하지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해.”주익선이 가볍게 웃었다.“어쩌면 스스로를 잘 아는 걸지도 몰라. 승산 없는 싸움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법이니까.”“그 말도 맞지만…”이진은 방금 전까지 곱씹었던 생각들을 그에게 모두 털어놓았다.“넌 어떻게 생각해?”“당연한 일이야.” 주익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울타리 안에 안주하려 하지. 자기 영역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는데, 왜 굳이 낯선 곳으로 나가 싸우고 경쟁하겠어? 얻으면 다행이지만, 얻지 못하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이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 말해달라는 뜻이었다.주익선이 말을 이었다.“나도 그랬어. 아버지, 어
Read more
PREV
1
...
148149150151152
...
16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