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501 - Chapter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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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1화

주익선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공을 세울 기회를 얻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군에 나가지도 않고, 궁궐에 들어가 호위무사가 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본분을 익혀둔 덕분이지. 아니었더라면 이 모든 건 나와 아무 상관도 없었을 거야.”“모든 게 결국은 가장 좋은 인연 덕분인 거네.”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덧붙였다.“너도 그래. 우리 둘 다, 모든 게 가장 좋은 인연이야.”이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왜 이렇게 말이 달콤하게 들리지?가슴이 또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마음속에만 담아두려던 말이 흘러나왔다.주익선이 대답했다.“나도 그래. 내 심장도 지금 엄청 빨리 뛰고 있어.”이진은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귀를 기울였다. 순간 주익선은 본능처럼 한발 물러섰으나, 이진이 곧장 다가와 다시 그의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진아…”주익선은 두 손을 허공에 멈춘 채, 안아야 할지 밀어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녀가 가슴에 얼굴을 묻는 순간, 소녀 특유의 맑은 향기와 따뜻한 기운이 밀려와 심장은 더욱 요동쳤다.“정말, 엄청 빨리 뛰네.”이진이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나, 나는…”“왜 그래?”“우리,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너무 선을 넘는 행동인 것 같아.”“뭐 어때? 어차피 우리 혼례를 약속한 사이잖아. 네가 날 데려가지 않으면, 넌 죽은 목숨이야!”주익선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내가 왜 널 안 데려가겠어. 내 평생 가장 큰 소원이 바로 널 아내로 맞이하는 건데!”사실 이진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나라에 공을 세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좋아, 더 말해 봐. 듣기 좋은데?”이진이 웃으며 말했다.주익선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머뭇거렸다. 귓불까지 붉게 물든 소년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난 반드시 노력할 거야.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면, 꼭 너를 아내로 맞이할 거야!”“좋아, 나도 꼭 네 아내가 될게!”이진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근데, 손은 왜 그렇게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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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2화

“그렇게 신기해?”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서 말인데, 내일 우리가 같이 그 사람을 한번 보러가자.”“그냥 보기만 할 거야?”“응.”주익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진아, 설마 그 자를 살려둘 생각은 아니겠지?”이진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그런 생각까진 없었는데, 그가 그렇게 묻자 오히려 흔들렸다.“네가 보기엔 그 자를 살려둘 필요가 있는 것 같아??”“전혀 없지!”주익선은 상태주가 비위 맞추며 아첨 떨던 꼴을 떠올리곤 인상을 찌푸렸다. 그 따위가 뭐라고…그가 어째 좀 언짢아 보이자, 이진은 일부러 바짝 다가갔다.그녀가 몸을 기울이자 주익선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왜? 내가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라도 돼? 내가 그렇게 무서워?”이진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아당겼다.“그런 게 아니야.”“그럼 뭔데? 왜 자꾸 날 피하는 거야?”“나, 나는 그게…”“뭐가?”주익선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진이 넌 아직 어리잖아. 모르는 게 많을거야.”“네가 말해주지 않으니 내가 알 리가 없지.”그가 차마 말하지 못한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은 이진보다 나이가 많고, 또 꿈속에서 이미 남녀의 일을 알아버린 탓이었다.이진이 자꾸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갔다.“아니, 왜 얼굴까지 빨개져?”이진은 그가 더 귀엽게 느껴져 얼굴이며 귓불을 쓰다듬었다.“앞으로 우리가 혼인하면 부부가 되는 건데, 넌 내 사람이고 나도 네 사람인데, 우리 사이에 뭘 그리 감출 게 있어?”주익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혼인하고 나서… 그때 말해줄게.”“또 그 소리네.”이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난 듯 물었다.“그 진정향은 계속 쓰고 있어?”“아… 아니. 더는 쓰지 않아.”계속 쓰다간 병이 날 것만 같았다.“계속 써야지. 그래야 오라버니한테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잖아.”“아… 그게… 만약 형님, 아니… 천왕 전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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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3화

주익선의 말을 들은 이진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쥐며, 억울하다는 듯 낮게 속삭였다.“주익선, 넌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인 거야.”“그걸 이제야 안거야?”“응. 올해가 돼서야 알았네. 그래도 늦진 않았잖아.”주익선은 그녀가 얼굴을 붙잡고 있는 위로 손을 포개고, 키가 맞지 않자 몸을 조금 굽혀 그녀가 마음껏 만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차가운 바람이 스치자 이진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가자,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아…”“왜 그래?”“어차피 내 방에도 와봤으면서.”“아, 아니! 선황께서…”“어차피 아바마마는 멀리 계시잖아. 뭘 그리 두려워하는 거야?”그러나 주익선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니, 그래도 안 돼.”“왜 안 돼? 아니면 네가 내 침상에 올라와서 날 건드릴까 봐 겁나서 그러는 거야?”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따졌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침상에만 안 오르면 괜찮다고!’주익선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가슴이 미친 듯 쿵쾅거렸다.“아, 아니 그래도 감히 그럴 수 없어.”“그럼 됐지 뭐. 같이 있으면서 잠깐 검법이나 겨루고, 씻고 자면 되잖아. 난 침대에서 잘 테니까, 넌 바닥에 요나 깔고 자!”이진은 그렇게 말하곤 그의 손을 덥석 잡아끌며 본채로 향했다.“진아, 진아…”그가 뭐라 말하든, 이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어쨌든 내 침상에만 안 오르면 돼.”“나, 난… 자신이 없단 말이야.”“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요즘 나한테 검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잖아? 이번엔 권법이랑 검술 다 가르쳐 줘.”그녀는 방 안에서 자신의 전용 유연검을 찾아 들며 씩 웃었다.“이번에 월성국 원정에선, 내가 반드시 전장을 밟아야겠어.”“뭐? 네가 전장에 나간다고?”“응.”“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주익선은 체면도 잊고 다급히 외쳤다.“칼날은 눈이 없잖아. 내가 한순간만 방심해도 널 잃게 될 수도 있고… 널 지키지 못하면 난 견뎌낼 수 없을 거야.”“위험한 건 내가 감당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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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4화

국공부.심연희와 심교은은 저녁상을 마친 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이야기를 마친 뒤 각자 쉬려 하던 참에, 심초운이 집으로 돌아왔다.“오라버니, 오늘 어쩐 일로 국공부에 다 오셨어요?”심교은이 황급히 달려 나가 맞이했다.심초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곁에 앉아 있는 심연희를 쓱 바라보았다.“며칠 전 연희가 아팠다고 들어서, 직접 와서 살펴보려고 왔다.”심연희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병이 아니었습니다.”말하며 심교은을 바라보자, 심교은도 급히 거들었다.“맞아요, 언니는 아픈 게 아니었어요.”다만 경장명과 얽힌 일 때문에, 스스로 방에 틀어박혀 지낸 것뿐이었다.심초운은 길게 숨을 내쉬곤, 심교은에게 말했다.“연희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 넌 먼저 들어가 쉬거라.”심교은은 입술을 삐죽였다.“오라버니. 제가 들으면 안되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저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아직 고작 열두 살인데, 어린애가 아니면 뭐니?”“열두 살이 어때서요? 저잣거리의 민가에서는 열두 살이면 시집도 가요! 시집갈 나이인데 어찌 어린애라 하시는 거예요?”심초운은 한숨을 내쉬며 무어라 하려 했지만, 심교은이 먼저 말했다.“제가 짐작건대, 오라버니가 국공부에 오신 건 분명 언니와 경 대인의 혼약 문제 때문이죠? 제가 틀렸나요?”심초운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곁의 심연희를 바라보았다.“네 일이니, 네가 판단하거라.”그 눈빛만 보아도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심교은은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언니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심연희도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심초운은 자리에 앉았다.심연희가 마주 앉자, 심교은도 곧장 언니 곁에 붙어 앉아 가볍게 팔을 끼었다. 큰 오라버니의 얼굴이 한껏 굳어 있어, 지금 전하려는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이때 하인이 차를 내오려 하자, 심초운이 손을 내저었다.“다 물러가라.”“예.”모두가 물러난 뒤에야, 심초운이 입을 열었다.“내가 진유에게 명하여 경장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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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5화

아직 혼약을 파하지 않은 건 단지 부모님께서 돌아오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본래도 경 대인과 파혼할 생각이었습니다.”심교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그런데 언니는 매번 그 사람 말 몇 마디에 흔들리시잖아요. 그러다 괜히 마음 약해져서 시집가 버리면 어쩌려고요?”심연희는 당장 대꾸하지 못했다. 사실 예전엔 정말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 경장명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뛰어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그때 그녀가 망설였던 건, 여인은 결국 시집을 가야 하고, 마음속에 둔 이를 만나지 못하는 게 더 흔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장명은 그런 현실을 다 받아들일 만큼 너그러웠으니, 그녀가 주저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하지만 여학당에 들어가 다른 여인들과 지내며 비로소 깨달았다. 여인의 길이 꼭 혼인과 자식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워서 익히고, 힘써 나아가면 남자들처럼 나라의 기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렇기에 좋은 벗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해도 평생 걸어갈 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빛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무심히 혼인하여 아이만 낳고 사는 것보다 훨씬 값진 삶이었다.심교은의 말은 절반만 맞았다. 그때, 무릎 꿇고 눈을 붉히며 혼약을 거두지 말아 달라던 경장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혼약 파기는 부모님께서 돌아오셔야만 제대로 논할 수 있었다.심연희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 사람에게 첩이 있었다지요. 그 사실만으로도, 저는 절대로 경 대인과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만약 경 대인께서 첩을 내보내겠다고 한다면요?”“그래도 파혼할 겁니다.” 심연희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내가 마음 편하자고 또 다른 여인을 내치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어요.”심교은이 두 손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맞아요, 바로 그거예요!”곁에서 지켜보던 심초운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과연, 심연희의 마음속에는 경장명에 대한 남녀의 정이 털끝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지금 누군가 이영이 다른 사내와 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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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6화

“오라버니 말씀이 맞아요!”심교은이 입술을 앙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꼭 폐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 거예요!”“언니도요! 우리 자매가 함께 힘써야 해요. 그 배은망덕한 심책운에게 절대 지면 안 돼요! 집에는 오지도 않고, 맨날 국자감에만 틀어박혀 있다니. 설마 열두 살에 장원급제를 하겠다는 거예요?”심연희는 가볍게 웃었다.“그래, 힘내자.”“언니도 힘내요!” 교은이 곧장 받아쳤다.심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자신의 학문적 바탕이 황실 여학당의 여학자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심교은이 다시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언니, 오라버니께서 그러셨잖아요. 이번에도 경 대인과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오라버니를 찾으라고요.”심연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경장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름대로 군자의 도리를 지켜왔다. 이제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사내가 첩을 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그가 내뱉은 달콤한 말쯤은 애써 못 들은 척하는 게 나았다. 서로 체면을 지키는 길, 결국 혼약을 거두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었다.……이튿날.이진은 왕부을 나서며 주익선을 먼저 마차 안에 밀어 넣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염이와 검구뿐, 그가 전날 밤 월왕부에 묵었다는 사실은 비밀로 남아 있었다.검구는 이영이 보내준 호위였다. 그뿐만 아니라 십여 명의 암위까지 붙어 있었고, 훗날 모두 이진을 따라 월성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이진은 슬며시 몸을 기울여 주익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사실은 어젯밤에도 이렇게 기대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그냥 방으로 가 버렸어.”주익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진아는 참으로 순진했다. 마치 같은 이불에서 하룻밤을 자면 아이가 생길 거라고 믿는 듯한 모습이었다.정말 그렇다면, 손을 잡고, 껴안고, 입을 맞춘 것만으로도 아이가 벌써 몇 달은 자라 있었겠지.“왜 웃어?”이진이 눈을 가늘게 뜨자, 주익선은 말없이 입술만 다물었다. 그러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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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7화

“적어도 둘은 낳아야지. 두 번은 낳아야 돼. 하나는 네 성을 따르고, 하나는 내 성을 따르고.”이진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그건 좀 곤란하지 않아?”“뭐가 곤란해?”“생각해 봐. 네 성을 따르는 애는 황실 성을 갖게 되잖아. 장차 왕위까지도 노릴 수 있고, 태생부터가 귀하단 말이지.”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주익선이 말을 이었다.“근데 다른 아이는 똑같이 우리 친자식인데도 내 성을 따르게 되면, 난 고작 장군일 뿐이잖아. 그 아이가 벼슬길에 오르려면 스스로 발버둥쳐야 해. 이건 불공평하지 않겠어? 자칫하면 두 아이가 그 문제로 평생 싸우게 될 수도 있잖아“근데 다른 아이는 똑같이 우리 친자식인데도 내 성을 따르게 되면, 난 고작 장군일 뿐이잖아. 그 아이가 벼슬길에 오르려면 스스로 발버둥 쳐야 해. 이건 불공평하지 않겠어? 자칫하면 두 아이가 그 문제로 평생 싸우게 될 수도 있잖아 그게 옳은 일이겠어?”이진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그러니까 차라리 하나만 낳는 게 나아. 네 성을 따르든, 내 성을 따르든. 비교 대상이 없으면 억울할 일도 없잖아. 맞지?”이진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고, 주익선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그렇지, 안 그렇니?”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운명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면, 그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그러니 한 번만 낳자. 사내면 내 성을 따르고, 딸아이면 네 성을 따르는 걸로. 어때?” 주익선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 낳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차마 말하지 못한 채였다. 괜히 진이를 겁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이진은 잠시 그를 올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그런데 우리 어마마마도 첫째가 언니고 둘째가 오라버니였잖아. 만약 내가 쌍둥이를 낳으면 어쩌려고?”주익선은 말문이 막혔다.“…그럴 리는 없겠지.”“누가 알아?”“됐다, 그 얘긴 이만하자.” 주익선은 황급히 그녀의 귀를 가리며 웃어넘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바깥에서 호위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하, 천옥에 도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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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8화

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꿇어라!”옥졸이 상태주의 머리를 발로 찍어 눌러 땅에 무릎을 꿇게 했다.“아직도 감히 엎드려 절하지 않겠느냐. 어서 월왕 전하께 배알드려라!”상태주는 이미 머리가 짓눌린 채 끌려와 제대로 고개조차 들지 못했는데, 또 발길질까지 당하니 이가 드러날 만큼 아파 비명을 삼켰다.“죄인은 당연히 무릎 꿇지. 뭐하러 그렇게 거칠게 구느냐.”목소리는 울먹였지만, 억울한 기색이 분명했다.이진은 그 꼴이 우스워 ‘히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상태주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죄인 상태주, 왕야께 배알드옵니다!”그런데… 방금 들은 그 아리따운 목소리가, 왠지 낯이 익었다.“고개 들어라.” 이진이 말했다.상태주는 의아했다. 목소리가 분명 여인인데, 어찌 된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렸다.그리곤 눈앞에 선 이진과 주익선을 보고 크게 놀라버렸다.한 명은 공주요, 또 한 명은 젊은 장군인데… 그렇다면 월왕 전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상태주는 두리번거리며 심문실을 샅샅이 훑어보았으나, 왕야다운 이는 보이지 않았다.“대담하구나! 감히 왕야를 똑바로 쳐다보다니…”“그만, 모두 물러가라!”이진이 나서서 옥졸을 제지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태주 앞으로 걸어갔다.옥졸들이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곧 허리를 굽혔다.“명 받들겠사옵니다. 저희는 바깥에서 왕야의 분부를 기다리겠나이다.”이진이 손을 내저어 보내자, 옥졸들이 모두 심문실에서 물러났다.상태주는 눈앞의 이 진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녀를 ‘왕야’라 부르다니… 공주님을 말인가?분홍빛 비단 치마를 입은 소녀는 눈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을 가만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 눈길에 상태주는 정신이 혼란스러웠다.“공주마마…?”이진은 손사래를 쳤다.“아니, 아니지.”“그러면… 월왕 전하…?”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옳다. 내가 바로 월왕이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릴 이래 첫 번째 여왕야라네. 놀랍지 않느냐? 뜻밖이지 않느냐?”상태주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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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9화

“저는 죽는 게 두렵진 않습니다. 다만 커다란 칼이 제 목을 베어낼 때… 아플까 봐 두렵습니다.”상태주는 눈물을 훔치며 옷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그래도 임종 전에 전하와 장군을 직접 뵐 수 있었으니, 이 죄인의 복은 조상 덕이 아니라 반드시 어머니의 덕일 것입니다. 참으로 큰 복을 누렸습니다.”이진은 그의 곁을 빙빙 돌며 입을 열었다.“네 관저의 하인들은 이미 조사했다. 또 네 시종 은장도 붙잡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 말은…”“은장을 찾으셨습니까?” 상태주의 눈빛이 번쩍였다.“그, 그 아이는 무사합니까?”“부디 전하께서 은장에게 좋은 집안을 찾아 주시길 간청 드립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땅에 엎드려 연이어 머리를 조아렸다.이진은 무심히 손을 내저었다.“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은장이 말한 건 네 말과 전혀 달랐다. 그는 오히려 네가 억지로 선남선녀를 빼앗아 갔다고 했다.”“뭐라구요…?” 상태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럴 리가… 어찌 그럴 수가…”“그러니 지난번에 날 속인 죄, 네 심장을 도려내고 눈을 파내며, 혀를 잘라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거짓된 입을 막을 수 있을 터다.”상태주는 고개를 떨군 채 다시 머리를 조아리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은장이 그렇게 말했다면, 이 죄인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변명하지 않겠느냐?”“변명해도 아무 소용 없을 것입니다. 다만 간절히 부탁드리옵건대, 전하와 장군께서는 은장이만은 살려 주십시오. 그 아이는 아무런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오직 제가 시켜서 따른 것뿐입니다.”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은장이에게 나름 잘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는 자신을 헐뜯는 쪽을 택했구나.’하지만 어차피 죽을 몸. 은장이 자신을 욕보여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이진은 고개를 갸웃했다.“심장이 아프냐?” 그러곤 옆에 선 주익선을 돌아보며 물었다.“익선아, 저자… 괜찮은 걸까?”주익선은 잠시 상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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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0화

이진이 입술을 달싹이며 주익선과 눈빛을 마주했다.‘이 자, 참으로 도량이 크구나.’그때 상태주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저는 이제 더는 종족을 잇는 일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상인호의 포악한 권세 아래서, 그저 하루 세 끼와 약간의 황은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그의 아들들과 총애를 다투던 날들… 이제는 끝났습니다. 아, 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너무나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이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선 옥졸을 불렀다.“저 자를 데려가라. 그리고… 잘 보살피도록 하라.”옥졸은 무슨 뜻인지 다 알겠다는 듯, 음흉한 빛을 눈가에 띠었다.이진은 곧 눈빛을 매섭게 바꿨다.“내가 말한 것은 다시는 저자를 심문하거나 매질하거나 욕보이지 말라는 뜻이다. 먹을 것, 마실 것 모두 정성껏 대접하거라.”그제야 옥졸은 놀라 부랴부랴 고개를 숙였다.“예, 예! 명심하겠습니다.”반역자의 자식인데… 어찌 전하께서는 저런 환관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는가.옥졸이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때, 상태주는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하고는 이내 끌려 나갔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이진이 주익선을 불렀다.“익선아.”목소리에는 쉽게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묻어 있었다.“너는 어떻게 생각해?”주익선은 잠시 입술을 깨물다 이내 대답했다.“분명 저 자는 은장을 지키려는 모양새였어. 죽음은 두려워하면서도, 담대히 죽음을 향해 나아갔지. 사내로서 그렇게 살다 간다면 결코 비겁한 게 아니야.”그는 곧 덧붙였다.“나도 사람을 시켜 알아봤어. 저자는 대역죄인일망정, 대악인으로 보긴 어려울 듯해”이진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은장이란 자를 만나보고 싶어.”그녀의 눈동자가 맑게 빛나자, 주익선은 가슴 깊숙이 알 수 없는 저림을 느꼈다.“너 정말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야?”이진은 잔잔히 미소 지었다.“응. 나는 그가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진심이든 거짓이든… 오라버니와 심초운, 그리고 너를 빼면, 내 곁에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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