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게 꼭 불쌍한 건 아니에요. 모든 걸 바쳐 모성의 빛을 드러낸다 해도, 결국은 스스로 감동하는 연극일 뿐이죠. 누가 그런 위대한 명성을 원하고, 누가 그런 모성의 찬사를 바라겠어요?”“차라리 남편의 출세를 돕느니, 제가 직접 금 만 냥을 벌고 말겠어요.”심교은은 말할수록 한숨이 깊어졌다.“왜 여자는 꼭 혼인을 해야 하는 걸까요?”이진은 담담하게 받아넘겼다.“세상을 하나로만 단정할 순 없지 않겠니. 사람은 멸종할 수 없는 법이니까. 결국은 균형을 찾아야 하고, 그래야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거야.”“그렇다면 왜 꼭 여자가 시집을 가야 합니까? 남자가 처가로 들어가는 건 왜 드문 건데요?” 심교은이 억울하다는 듯 되물었다.“그런 경우도 있지.”“하지만 손에 꼽잖아요. 경성 전체를 봐도 열 집 남짓 될까 말까잖아요.”이진은 어린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는 자기보다 어리지만 말하는 투는 제법 날카로웠다.“그렇게 불만이라면, 책을 열심히 읽고 과거에 나가 보렴. 혹시 모르지, 네가 합격하면 내 언니를 도울 수 있을 테니까.”“저, 꼭 합격할 겁니다!” 심교은은 눈빛을 빛내며 다짐했다.이진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다시 언니 심연희를 떠올렸다.“문은 걸어 잠갔니?”“네, 잠갔습니다.”이진은 직접 두드려 보고 싶었지만, 심교은이 고개를 저었다.“언니가 말씀하셨어요. 스스로 정리하고 나오시겠다고.”“하지만 저렇게…”“걱정 마세요. 제가 넣어둔 음식은 다 드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이진도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럼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겠네.”“월왕 전하를 배웅합니다.”이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참, 오늘은 반나절도 안 돼서 발길을 돌리게 되는구나.”그녀는 주익선을 불러 함께 떠났다.심교은은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두드리려는 순간,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언니, 조금 전에 월왕 전하께서 다녀가셨어요.”심연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들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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