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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Bab

제1771화

심연희는 입술을 황급히 가렸다. 그가 자신을 물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고요하고 청아한 기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너무 세게 물었느냐?”이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심연희는 고개를 저었다. 피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놀라서, 그를 바라볼 수 없을 뿐이었다.“이후로는 이런 일로 다시 나와 서먹해지지 말거라.”이천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이어졌다. “혹여 자식을 얻지 못하더라도, 네가 아이를 좋아한다면 폐하나, 진이, 혹은 네 동생들 중 한 명에게 부탁해 입적하면 되지 않느냐. 허나 만약 그저 우리 둘만의 삶이 좋다면, 그 또한 좋다. 아이 따위는 없어도 된다.”심연희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마치 온몸에 금빛이 감도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전하, 전하께서는 선황 폐하의 유일한 적통이시지 않습니까.”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게 어쨌단 말이냐. 나는 왕위를 이을 생각이 없는데.”“…….”“아바마마, 어마마마 두 분 모두 남자가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시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오래전부터 영이를 황태녀로 키우셨겠느냐.”“…….”“내가 말한 것은 다 사실이다. 나는 사람 사귀는 것도 서툴고, 아이와 어울릴 성격도 못 된다. 그러니 차라리 이 귀찮은 일은 없는 게 좋지 않겠느냐.”이천의 말투는 마치 아무 일 아닌 듯 담담했다.하지만 심연희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이런 다정함이 너무 벅찼다.“울지 마라.”이천이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머금은 채,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약속하거라. 다시는 나와 멀어지지도, 피하지도 않겠다고.”심연희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말은 너무나도 달콤했지만… 과연 1년, 아니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수 있을까?전생의 경장명도 그랬다. 그도 처음엔 진심이라 했다. 하지만 혼인 후, 그 깊던 정은 끝내 변해버리지 않았던가.“연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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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2화

“쳇, 전하 같은 분이 어찌 외로이 죽을 수 있답니까?”심연희는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건 알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불쌍하게 포장할 수 있단 말인가.이천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마치 연민을 구하듯 낮게 물었다. “그렇다면, 연희 너는 어찌 나에게 시집올 수 없다는 것이냐?”“저, 저는…”심연희는 그가 일부러 저런 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역대 흠천감의 감정들은 모두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혼인하지 않거나, 자식을 두지 않거나, 그건 그들의 길이었다.하지만 이천은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이천처럼 따뜻한 분이 평생 곁을 함께할 벗 하나 없이 살아간다는 건… 너무도 가혹했다.“저…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심연희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리를 해야 했다.이천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선 그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저, 돌아가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심연희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이천은 이번엔 아주 순순히 대답했다.“그래.”그녀는 안도하듯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녀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이천은 가슴 한가운데가 알싸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그를 조여오는 건, 바로 그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는 증거였다.심연희가 학사로 돌아왔을 때, 심교은은 이미 낮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살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그때 명주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조금 전 검오가 왔다가 물었습니다. 오늘 수업 끝나면, 격치각으로 함께 가실 거냐고요.”심연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검오에게 전하거라. 여긴 여학이지, 정분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고. 다시 그런 말 하면, 바로 오라버니께 고해바치겠다.”명주는 눈을 껌뻑였다. “...정녕, 고하신다고요?”“그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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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3화

검오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이제 그는 아마 전하께서 사랑 때문에 본격적으로 움직이시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하루 종일 머금고 있던 비가, 밤이 깊어지자 마침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는 이틀 내리 계속 내렸다.이틀 동안, 심연희는 원치각에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덕분에 송윤연과 심선희를 비롯한 여학당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각종 추측이 쏟아졌다.그들의 궁금한 눈빛을 느끼며 연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만… 너희들이 전하를 진심으로 마음에 두고 있다면…”“응? 그래서”연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끝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내 탓을 하지는 말아줘.”“……”“……”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천왕전하께서 오셨습니다!”순식간에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비단같이 곧은 자태, 신의 손으로 새긴 듯한 오관과 기품까지. 그는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신선 같았다.이천은 직접 식판을 들고 와, 태연히 심연희의 맞은편에 앉았다. 심교은, 도문군 등은 눈치껏 엉성한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비웠다.이제 이 자리에 남은 학생은 거의 없었다.심연희는 밥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이천이 그대로 따라 일어나는 걸 보고는 결국 체념한 듯 다시 앉았다.그는 확실히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태세였다. 결국 그녀도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창문 너머, 송윤연과 심선희 두 사람이 몰래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이번에도 또 심연희가, 그 맑고 고결하다는 천왕전하를 거절한 거야?!’‘도대체 쟤는 어떤 매력을 지닌 거지? 경 대인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천왕전하까지…’옛 시절이었다면, 이런 여인은 아마 '돼지우리 형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지금은 남녀의 자유로운 마음을 존중하는 시대. 만일 누군가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험담을 일삼고, 심지어 사과해도 당사자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옥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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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1774화

갑자기, 공선소 문앞에서 한 폭의 장면이 펼쳐졌다. 높고 낮은 두 그림자… 검오는 전하께서 심연희의 손을 이끌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선소를 빠져나오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이, 이게 뭐야…”놀란 건 검오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여학당의 다른 학자들도 모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요즘 폐하께서 남녀 간 자유로운 사랑을 장려하시긴 하지만, 이렇게 대낮에, 그것도 많은 사람 앞에서 공공연히 손을 잡고 나오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심연희, 정말… 대담하기가 하늘을 찌르네.”“그러게, 천왕전하를 무시하고 저럴 수 있다니!”“아무리 황가 사람이라 해도, 마음이 없으면 강요할 수 없는 거지. 이건 폐하께서도 친히 말씀하신 일이잖아?”검오가 두어 번 헛기침을 하자, 웅성거리던 여학생들은 재빨리 흩어졌다.심연희는 이천에게 이끌려 한적한 길가로 향했다. 이제 곧 그의 꾸지람을 들을 거라 생각한 찰나, 청년은 그저 숨을 두 번 깊게 들이쉬더니, 묵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를 피해 다니느냐?”심연희는 순간 숨이 막혔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저… 학업에 전념하고 있었을 뿐이에요.”“거짓말을 하는구나. 너는 지금 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느냐.”“누가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심연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며칠 새 그의 눈빛이 전보다 한층 어두워졌다.“그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생각해야 할 사람은 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에 생각을 끝냈다. 네가 말한 그 모든 것들, 나는 개의치 않는다.”“전하께서는 괜찮으시겠지만, 선황 폐하와 태후마마, 그리고 폐하께서는 어찌하십니까?”“그 분들이 신경 쓴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그건… 음!”이천은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내가 상관하지 않으면, 그 누구의 뜻도 중요하지 않다. 만약 내가 불문에 들거나, 도를 닦으며 평생 자식을 두지 않는다면, 결과는 같을 터다.”심연희는 할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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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5화

소녀의 입에서 따뜻한 말이 흘러나오자, 이천은 마치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약속을 하려느냐?”다시 말해,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심연희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았고, 설령 혼례를 올렸다 해도 전 제 나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고 싶지 않을 때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끌고 나가는 일, 만약 이 사실이 폐하께 전해지면 전하께서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이천은 말이 막혔다. “……”또 있느냐는 듯 눈짓을 보냈다.심연희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혼례는 가을 과거 시험이 끝난 뒤로 미루겠습니다.”이천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이번 가을의 과거 시험은 이영이 특별히 하사한 시험이었다. 여인들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고, 성적이 좋으면 내년 정식 과거에까지 나갈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좋다. 그럼 가을 시험이 끝난 뒤에는, 나도 내 요구사항을 하나 말할 것이다.”심연희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좋다.”그리하여 두 사람은 그렇게 약속을 맺었다.그날 이후, 이천이 심연희를 찾는 일은 폐하를 알현하는 것보다 어려워졌다. 그는 한 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성정이었다. 그래서 가을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녀를 억지로 찾지 않았다.며칠 뒤 새벽 조정.이영은 어전에서 장중히 말문을 열었다. “월왕, 이진이 월성을 훌륭히 다스리고 있도다. 머지않아 군을 이끌고 조정으로 복귀할 것이다.”조정의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축하의 말을 올렸다. 상운국의 국력은 눈에 띄게 번성하고 있었고, 그 기세는 날로 커져갔다.다가올 과거 시험을 앞두고, 이천은 국자감의 제사로서 국녀학과 국자감 모두를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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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6화

“폐하,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좌승상과 경 대인 등 대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이영은 표정을 굳힌 채 용상을 짚고 서서, 옆에 오래도록 앉아 있던 이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친오라버니이자, 현 흠천감의 감정이었다.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천은 잠시 눈썹을 모으더니 낮게 말했다. “결국 근본은 단 하나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요.”좌승상과 경성세 등 대신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왕전하께서 또 무슨 고견을 내놓으시려는 걸까? 민간에서 떠돌며 반쯤 속세를 떠났던 황자가 나라의 대정을 얼마나 알겠는가 싶었다.본래 세상 이치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 하지 않던가. 여인이 남자와 겨루겠다고 나선다는 건, 마치 한 산에 두 마리의 범이 함께 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모두가 이천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명을 내려야겠습니다. 이제부터 여아가 태어나면, 그 집의 세금을 한 몫 줄이고, 한 살이 될 때마다 나라에서 은전 한 냥씩 내리도록 하십시오. 열여덟이 될 때까지 해마다 내리고, 그 여인이 장가를 가 딸을 낳으면, 그 집 역시 같은 혜택을 잇도록 하는 겁니다.”그가 덧붙였다. “반대로 아들을 낳은 집에는, 아무런 상도 내리지 말고요.”“이, 이런 정책이 가능하겠습니까?”“딸을 낳으면 상을 주고, 아들을 낳으면 상이 없다는 건… 폐하께서 말씀하신 남녀평등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경성세가 조심스레 나서자, 이영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경 대인, 그 입은 여전히 헛된 말만 내뱉는구나.”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혹시 그 불초한 아들 편을 들며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이냐?”경성세는 그 자리에서 겁에 질려 다시 고꾸라졌다. “폐하, 노여움을 거두소서! 신은 단지… 남녀가 평등하다면, 아들과 딸 모두 같은 정책을 펴야 한다고…”이영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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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7화

“폐하의 뜻은, 훗날 정령을 시행하기 어려울 때는 다른 부서의 사람을 보내 처리하게 하자는 것입니까?”“바로 그 뜻입니다!”탁자를 엎을 각오가 아니라면 피를 묻혀야 한다. 무슨 선례후병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허망한 소리였다. 칼날 위에서 피를 핥아야, 비로소 어떤 자들은 다시 입을 다물 터였다!“오라버니, 저를 굳건히 지지해 주실 겁니까?”이영이 이천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연하지요.”“듣자하니, 연희와 오라버니께서 요즘 꽤 다투신다던데요.”이천이 혹여 그 일로 여인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품는 건 아닌지, 이영은 알 수 없었다.“이 일은 오라버니께서 잘 처리하시길 바랍니다.”이천은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속에 담긴 경계의 뜻을 그는 분명히 느꼈다. 그는 그런 강제로 빼앗는 부류의 사람이었던가? 하지만, 만약 연희의 마음이 정말로 변했다면…그 생각에 이천의 표정이 묘하게 흔들렸다. 그때 고개를 들자, 이영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꿰뚫듯 바라보고 있었다.이천은 피식 웃었다. “먼저 저를 흔든 건 그쪽이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서 그 책임을 묻는 게 어찌 내 잘못이겠습니까.”이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과연 오라버니 말씀이 옳습니다.”“이 일은 폐하께도 책임이 있지요.”이영은 말문이 막혔다. “……”“당초 저는 오로지 도문의 길만을 향하던 몸이었는데, 폐하께서 제게 향을 보내셨지요. 그 뒤의 일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이제 와서 제가 정에 휘말렸고, 연희에게 마음이 깊이 들었습니다. 만약 언젠가 연희가 저를 버린다면, 폐하께서 내 편을 들어주십시오.”“……”이영은 분통이 터져 주먹으로 이천을 쾅 치며 말했다. “처음부터 간섭하지 말 걸 그랬네요!”“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습니다!”그는 이미 심연희와 평생 얽힐 각오를 마친 사람이었다. 혼인을 못 하면 그뿐이지, 그렇다고 심연희가 다른 이와 혼례를 올리게는 두지 않으리라.이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까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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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8화

제왕의 근심은 깊었다. 무관으로서 충성 외에는 그에게 내놓을 계책이 없었다.장소검이 두 손을 모아 절하며 말했다. “신이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합니다.”이영은 젊고 재능 있으며 장수다운 기개를 지닌 장소검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오늘 너를 부른 것은 임무를 맡기기 위함이다.”장소검은 순간 멍해졌다. 폐하께서 오래전 그를 암위영에서 내금위로 옮기시고, 또다시 승진시킨 이유가 바로 오늘을 위한 것이었구나!“신은 몸이 부서지고 목숨이 다하더라도 폐하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그는 다시금 공손히 절했다.“좋다.”이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짐이 새로이 하나의 특별한 부서를 세울 것이다. 나이 많고 고집불통이며, 늘 조정의 발목을 잡는 자들을 다스릴 기관이다.”장소검은 즉시 뜻을 깨달았다. 정치는 결코 '이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선황께서도 피와 철의 손아귀로 자리를 얻으신 분이었다.지금 여황 폐하의 치세가 겉으로는 태평성대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여전히 불만을 품고 훼방을 놓는 늙은 간신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자들을 제압하고 여인들에게 당당히 설 수 있는 세상을 주려면, 감화만으로는 어림없었다.장소검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여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무릎을 꿇었다. “신은 폐하께서 거두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폐하를 위해 불속이라도 달려들 것입니다.”이영은 미소를 지었다. 부친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죽을 각오로 충성할 자들을 중용하거라.’그녀는 손을 들어 장소검의 손목을 직접 잡았다. “좋다. 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너희야말로 짐이 믿고 의지할 자들이다.”그 따뜻한 손길에 장소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번에는 형식적인 가식이 아니었다. 폐하께서, 정말로 자신의 손을 잡아 올려주었다!만약 검오가 이 사실을 안다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신은 결코 폐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그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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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9화

심초운은 장소검을 바라보았다.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았지만, 묘하게 안정감 있고 신중한 기운이 도는 사내였다.“내 먼 친척 중에 말이다.”심초운은 슬며시 미소를 띠며 말을 꺼냈다.“아직 혼례를 올리지 않은 괜찮은 아이가 하나 있는데… 장 부도독은 혹시 인연을 맺을 생각이 있느냐?”장소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역시 그랬다. 심초운은 자신을 떠보는 중이었다.하지만 장소검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위기와 시련을 뚫고 살아남은 사내였다.그런 그가 몇 마디 말에 동요할 리 없었다.그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공손하면서도 품격 있게 대답했다.“대인의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신의 혼사는 폐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그 말은 곧, 자신이 황제의 직속 인물임을 은근히 드러내는 말이었다.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지만, 심초운만큼은 알고 있었다.그가 바로 이영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심초운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장 부도독, 조심히 가거라.”“조만간 다시 보도록 하지.”장소검이 자리를 뜬 뒤, 곁에 있던 당안이 조심스레 물었다.“심 대인, 이제 어전으로 드실 겁니까?”심초운은 그를 한번 바라보며 되물었다.“요즘 폐하께서 장소검을 자주 부르시느냐?”“그게… 예, 자주 부르십니다. 폐하께서 근래 들어 무척 피로해하시거든요.”심초운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영이 어떤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그 무게가 얼마나 버거운지.그녀는 밤마다 꿈속에서도 늙은 대신들과 싸우고, 쏟아지는 상소문 속에서 하나하나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그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었다.요즘 그는 경성의 하층민들을 돌며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있었다.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여성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배움을 얻을 기회는 여전히 너무나도 적었다.이번 가을 과거 시험에서 국녀학의 여생들이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은 달라질 터였다.“알겠다.”심초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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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0화

이영은 고개를 들어 살짝 입술을 다물었다. 평소 좀처럼 찡그리지 않던 그녀가 약간의 투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네가 제일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구나.”심초운은 부드럽게 웃었다.그는 문득 그 ‘장소검’이라는 자를 떠올렸다. 꽤 괜찮은 얼굴이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이영이 처음으로 그가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심초운이 미소 지었다.“방금 전, 막 승진한 장 부도독을 보았습니다.”“아, 그 사람 말이지?”이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내일이 지나면, 그는 금의위의 대도독이 될 것이다.”“금의위라 하셨습니까?”“그래. 그가 앞으로 내가 휘두를 첫 번째 칼이 되겠지.”이영은 심초운 앞에서만큼은 경계심을 내려놓은 듯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였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피를 볼 생각이시군요.”심초운이 낮게 말했다.“그래. 초운아, 나를 냉혈하다고 생각하느냐?”심초운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폐하께서 하시려는 일이라면, 신은 언제나 따를 뿐입니다.”“게다가 폐하의 뜻은 천백성에게 이로운 일 아닙니까. 조금의 피를 보는 일쯤은, 피할 수 없는 대가이옵니다.”그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다.여성이 제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은 단지 여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들의 손이 세상에 더해질수록 상운국의 국력은 한층 더 강해질 것이고, 외적이 감히 넘보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다.이영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그래.”그녀도 알고 있었다.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조금은 편해지셨습니까?”심초운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물었다.“응. 네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정말이십니까?”“그럼, 당연히 정말이야.”이영이 미소를 지었다.심초운이 문득 물었다.“전에 말씀하셨던 일부일처제 도입 문제 말입니다. 그건 언제 시행하실 생각이십니까?”이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건 서두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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