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우정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지만, 작은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아니요, 그냥 작은할아버지댁에서 숙제하는걸요. 저 석현 오빠한테 종이접기도 가르쳐 줘야 해요! 저 동물 엄청 많이 접을 수 있거든요.”강민아는 다가와 쪼그리고 앉아 딸과 눈높이를 맞추었다.“우정아.”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엄마도 네가 민이 오빠를 많이 걱정하는 거 알아. 하지만 너랑 석현이는 아직 어리니까, 그런 일은 어른들에게 맡기자, 응?”반우정은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며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만약 너희가 정말 어떤 단서라도 발견하게 되면, 무조건 먼저 어른들한테 말해야 해. 너희들끼리 위험한 일에 뛰어들면 안 돼.”강민아는 딸의 작은 손을 꼭 잡으며 부드럽게 다그쳤다.“엄마랑 약속해.”반우정은 강민아를 향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엄마를 걱정시킬 만한 일은 하지 않을 터였다.“네... 엄마랑 약속할게요.”강민아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착하지, 잘 다녀와. 길 조심하고.”철컥, 문이 닫혔다. 반우정은 복도 한복판에 서서 방금 엄마가 뽀뽀해 준 이마를 쓱 만져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찔려왔다.방금 전 그녀는 엄마에게 반석현과 함께 이미 탐색 지도를 다 짜놓았고 오늘 오후에 그 폐공장 단지 근처를 둘러볼 계획이라는 걸 털어놓지 않았던 것이다.“엄마 미안해요.”그녀는 혼자 속삭였다.“제 생각엔, 저도 조금은 힘을 보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는 가방을 둘러메고 콩콩 발걸음을 재촉하며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반우정은 책가방을 멘 채 능숙하게 반용화네 집 현관으로 들어섰다.집 안은 고요했고 오직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만이 맴돌 뿐이었다.소리를 따라 다가가자 서재 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다.반우정은 고개를 쑥 내밀고 안을 살폈다.서재 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벽면 전체를 차지한 커다란 칠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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