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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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예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역시 피는 못 속이지. 부윤제 집안은 하나같이 다 똑같아.’‘도대체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네.’예진은 더는 아린과 쓸데없는 말싸움할 생각도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내가 떠난 뒤 반 년 만에, 이안의 입 안에 충치가 가득 생겼어. 선생님 말씀으로는 간식을 오래 먹고 양치를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더군. 류아린, 네가 간식 사줬지?”아린은 순간 이안을 흘끗 바라봤다. 아이가 자신을 배신하고 말한 건가 싶어 긴장했지만, 이안이 억울한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결국 예진의 추측일 뿐, 증거는 없는 셈이었다.아린은 비웃듯 웃음을 흘렸다.“고예진, 이안은 네 자식이기도 하지만, 내가 곁에서 키우다시피 한 아이야. 게다가 지금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잖아. 그런 내가 어떻게 일부러 간식을 먹여서 아이 건강을 해치겠어?”예진은 아린이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더 말싸움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맞든 아니든 상관없어. 난 그냥 알려주는 거야. 지금 이안 치아 상태가 심각해. 네가 신경 좀 쓰라는 거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예진은 말을 딱 잘라 남기고는 곧장 차에 올라 민혁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예진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아린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에야 시선을 돌려 이안을 내려다봤다.“너, 혹시 고예진한테 엄마가 간식 사준 거 말한 건 아니지?”이안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엄마, 난 항상 엄마 말 잘 들었잖아.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저 아줌마가 그냥 알아차린 거야.”그제야 아린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낮췄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척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안, 정말 착하네. 그런데 아빠나 할머니가 혹시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알지?”이안은 순진하게 끄덕였다.“응, 알아. 엄마가 간식 준 적 없다고 할 거야.”아린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속삭였다.“역시 우리 이안이 제일 말을 잘 듣지. 앞으로도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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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건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지난번엔 약만 먹고 다시 치료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신경치료까지 간 거죠?”박상용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땐 새어머니랑 같이 왔을 때였고, 이번엔 친어머니가 직접 데리고 왔습니다. 그 사이 시간이 꽤 지났더군요.”“소염제 먹고 붓기는 가라앉았는데, 제때 치료를 안 해서 결국 악화된 겁니다. 지금은 신경치료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건우는 다시 물었다.“다른 치아들은 괜찮습니까?”박상용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솔직히 다 좋진 않습니다. 충치가 한두 개가 아니고, 앞니도 썩어 들어갈 조짐이 보여요. 앞으로는 자주 내원해서 상태를 체크해야 조기에 잡을 수 있습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핸드폰을 귀에 댔다.“들었지?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아이 상태에 문제 있으면 바로 알려 달라고.”윤제의 이마에도 주름이 깊게 잡혔다.사실 건우가 전해줬을 때도 별일 아니라고 넘겼었다.늘 튼튼했던 이안의 치아였으니까.‘하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에 충치가 갑자기 늘어나다니... 뭔가 이상하긴 해.’윤제는 곧 결심한 듯 말했다.[핸드폰 좀 의사 선생님께 바꿔줘.]건우가 바로 스피커폰을 켜자, 윤제가 물었다.[선생님, 이안이가 전에는 치아가 건강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충치가 이렇게 많아질 수 있죠?]박상용은 잠시 눈을 굴렸다. 사실 속은 뻔히 보였다.친어머니가 데리고 올 땐 늘 치아 관리에 철저했던 아이였다.그런데 이혼한 지 고작 반 년 만에, 새어머니 손에 이끌려 왔을 땐 입 안 가득 충치라니.게다가 본인이 분명 여러 번 정기 검진을 권유했지만, 새어머니는 끝내 데리고 오지 않았다.‘안 봐도 뻔하지. 간식 문제도 그렇고, 원인은 십중팔구 새어머니 쪽일 텐데...’그러나 박상용은 감히 단정 지어 말하지 못했다. 명문가 도련님 집안 문제에 잘못 끼어들면 되레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결국 그는 말을 최대한 돌려서 답했다.“아무래도 아이들이다 보니... 간식을 몰래 먹고 양치를 깜빡하면 금방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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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름과 단비를 따라 나섰다.“두 분이 정말 신기하네요.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니.”아름이 미소 지으며 맞장구쳤다.“네, 이력서 보자마자 단비 씨랑 뭔가 인연이 있겠구나 싶었어요.”단비도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깜짝 놀랐어요. 게다가 면접까지 바로 붙을 줄은 몰랐고요. 한 변호사님 덕분이에요.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해요.”아름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별 말씀을. 아, 전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두 분은 먼저 올라가 계세요.”그래서 예진과 단비 둘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아까 들었는데, 단비 씨 원래 디자인을 했다고요?”단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어쩐지 씁쓸했다.“네, 원래는 패션디자인을 했어요. 전공은 운영이었지만, 워낙 디자인이 좋아서 대학 다닐 때 복수전공을 했거든요.”“그럼 왜 계속 안 했어요? 취업이 잘 안 돼서?”단비는 한숨을 내쉬었다.“취업은 어렵지 않았어요. 근데... 이 바닥이 생각보다 더럽더라고요. 괜히 사람 잘못 만나서, 크게 당했어요.”말을 하던 단비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이더니 예진을 진지하게 바라봤다.“변호사님, 제가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말해 보세요.”“제가 그린 디자인 도안이 있었는데요, 이름도 안 쓰고 급히 낸 걸 어떤 여자가 자기 작품인 것처럼 이름을 올려서 패션위크에 출품하려고 해요. 이런 경우, 제가 소송할 수 있을까요?”예진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 법은 그런 경우를 막으려고 존재하니까요. 다만 단비 씨가 직접 그린 도안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조금 힘들어요.”단비의 어깨가 눈에 띄게 축 처졌다.“그럼 끝이네요. 그땐 마감이 급해서 그냥 내버렸거든요. 그 여자가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제 걸 빼앗아 갈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패션위크라니... 이건 단순한 신입 디자이너 사이의 경쟁이 아니겠군.’예진은 순간, 아린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갔다.단비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떻게 디자인 도안을 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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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걷던 예진은 부주의하게 발걸음을 옮기다,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죄송합니다...”무심코 고개를 숙여 사과한 예진은 이내 시선을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부딪힌 사람은 다름 아닌 서중국이었다.“회장님?”서중국은 몸을 바로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어이구, 힘이 제법이네. 예진 씨.”예진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회장님, 여기 웬일이세요? 어디 편찮으신 데가 있으신가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예진의 공손한 태도에 서중국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고씨 집안 피가 어디 가겠어. 몰락했다고 해도 아이 교육은 제대로 시켰네.’“아픈 데는 없어. 사실은 네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온 거야.”예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도 직설적인 말투에 순간 당황했다.‘하긴, 서씨 집안 사람들이 다 이런 성격이지. 은주도 그렇고.’...10분 뒤,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아 있었다.예진은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서중국에겐 따로 요거트를 시켰다.“전에 은주한테 들었는데, 회장님 위가 좋지 않다고 하셔서요. 제 마음대로 요거트로 시켰습니다.”서중국은 눈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세심하구나. 아이를 낳아본 여자는 확실히 달라. 남을 챙기는 법을 아는군.’예진은 본론을 꺼냈다.“회장님, 저를 찾으신 이유가 있으신 거죠?”하지만 서중국은 바로 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자네 아버지가 고환일 씨 맞지?”부모 이야기가 불쑥 나오자, 예진은 순간 잔을 들던 손을 멈추고 시선을 들었다.“회장님께서 제 아버지를 아세요?”서중국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예진의 경계심 어린 눈빛이 흥미로워 보였다.“네 아버지가 고씨 집안을 이끌던 시절, 정말 대단했지. 그 땐 J시, H시 할 것 없이 이 바닥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예진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는 은주가 말씀드려서 아시는 줄 알았어요.”서중국은 요거트를 한 모금 마신 뒤 슬쩍 예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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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사실 예진은 이전부터 의심이 들었다.그 집이 어쩌다 이렇게 헐값에 나온 건지, 또 어쩌다 하필 맞은편에 민혁이 살고 있는 건지.게다가 민혁은 자신이 세 든 집의 구조며 주변 환경까지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예진은 늘 생각했다.‘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분명 동기가 있기 마련이야.’‘그렇다면... 서민혁은 왜?’‘만약 집이 정말 서민혁 소유라면, 왜 이렇게 싸게 나한테 빌려주고, 굳이 연극까지 한 거지?’‘은주 때문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데...’민혁은 이미 예진에게 일자리까지 마련해준 사람이었다.이런 생각을 이어가며 예진은 시선을 서중국에게 고정했다. 말없이 있었지만, 눈빛은 담담하고 흔들림 없었다.‘내가 이유는 몰라도, 서 회장이 굳이 이렇게 직접 나를 찾아와 묻는다는 건... 분명 뭔가 아는 게 있다는 뜻이겠지.’예진의 침착한 태도에 서중국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꺼냈다.“너도 눈치가 있는 사람 같으니, 돌려 말하지 않겠어. 원하는 조건을 말해봐.”예진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회장님, 지금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만...”순간 서중국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내가 자네에게 얼마를 제시하면, 예진이 네 사랑을 살 수 있겠냐는 거야.”예진은 순간 황당함에 멍해졌다.‘이게 뭐야,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설마 수표를 툭 내밀면서, 그 유명한 대사까지?’‘금액은 네가 써. 대신 그 사람 곁에서 떠나라.’‘하지만 문제는, 떠나라니... 누구에게서?’‘은주와 나는 우정일 뿐이고, 그렇다면 사랑은 누구와의 사랑을 말하는 걸까?‘설마... 회장님이 나하고 서민혁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건가?’예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회장님, 아마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랑 민혁 씨는 회장님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민혁 씨는 제 상사일 뿐이에요. 감정적인 욕심은 전혀 없습니다.”서중국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말인데, 예진이 네 사랑을 사려면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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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설마... 서 회장님이 걱정하는 게 서민혁의 성향 문제인 건가?’‘혹시 서민혁이 여자친구 못 사귈까 봐...’‘주변에 있는 나한테 떠넘기려는 건 아니겠지?’한 번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니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예진은 애써 침을 삼키며 난처한 눈빛으로 서중국을 바라봤다.“회장님, 사실 요즘 사회는 많이 열려 있잖아요. 자유 연애도 중요하고, 감정이란 게 성별의 경계까지 넘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민혁은 그 말을 듣자 순간 멍해졌다.‘뭐야... 성별의 경계를 넘는다니?’‘설마 예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민혁이 말고 은주인 거야?’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불안감이 서중국의 얼굴에 스쳤다. 그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예진아, 그건 외국 애들이나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집안의 애들이 그런 건 절대 안 돼. 알았지?”예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역시... 서민혁의 성향 문제를 눈치챘구나. 그래서 저렇게 불안해하는 거네.’하지만 이런 문제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예진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입을 열려던 찰나, 서중국이 먼저 말을 잘랐다.“예진아,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민혁이가 자네를 정말 좋아해. 아니면 그 녀석이 왜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집을 빌려주고 챙기겠니? 너는 정말 몰랐어? 민혁이가 널 대하는 게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걸?”예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서민혁이... 날 좋아한다고?’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그동안 스스로 믿어왔던 ‘서민혁은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생각이 흔들렸다.예진은 그저 은주의 친구라는 이유로 특별히 챙겨주는 거라고만 여겼다.그 이상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아니, 내가 무슨 자격으로... 서민혁 같은 완벽한 사람이 날...?’서중국의 말이 확실해진 순간, 예진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얼굴에는 놀람이 그대로 드러나고, 머릿속은 완전히 공백이 되어버렸다.예진의 반응을 보자 서중국은 순간 긴장했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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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그래서 내가 오늘 직접 찾아온 거야. 예진아, 민혁이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마음은 없니?”예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솔직히 말해, 민혁은 외모며 성격, 가치관, 능력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였다.말 그대로 수많은 여자들의 꿈속 연인이자, 거절하기 어려운 존재였다.하지만 예진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예진의 반응이 더딘 것을 본 서중국은 넥타이를 고쳐 매며 덤덤히 덧붙였다.“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단순해. 혹시라도 앞으로 민혁이가 네게 고백하고, 너도 민혁을 좋아한다면... 집안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우리 집안은 널 환영할 테니까.”그 말을 남기고 서중국은 자리를 떠났다.문 앞에 이르러 잠시 멈춘 그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는 예진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역시 우리 민혁이가, 눈이 높긴 해도 사람을 볼 줄 아는구나. 작은아버지는 여기까지다.”예진이 정신을 차린 건 그가 떠난 지 십여 분이 지난 뒤였다.그러나 머릿속은 여전히 멍했고, 가슴은 설명하기 힘든 감정으로 가득했다.설레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무거운 감정.‘서민혁이 날 좋아한다고? 말도 안 돼.’‘서민혁 같은 남자라면 주변에 여자가 넘쳐나겠지.’‘굳이... 이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나 같은 여자를 왜...?’예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고예진, 정신 차려. 네가 어떤 처지인지 똑똑히 알아. 몇 마디 말에 흔들리지 마. 이런 허황된 꿈은 꿀 자격도 없어.”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두근거림은 이미 멈출 줄을 몰랐다....예진이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침 민혁 집의 문이 열려 있었다.가슴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면서, 고개를 숙인 채 못 본 척하고는 서둘러 자기 집 문을 열려 했다.그 순간, 앞치마를 두른 민혁이 현관에 나타나 예진을 불러 세웠다.“예진 씨, 같이 저녁 먹어요.”예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심장이 제멋대로 빨라져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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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행동이었는데, 예진은 마치 화들짝 놀란 듯 서둘러 젓가락을 거둬들였다.“왜 그래요? 무슨 걱정 있어요?”민혁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예진을 의심스레 바라봤다.예진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낯선 감정이 밀려오면서 도저히 제어가 되지 않았다.‘왜 이렇게 불안하지... 대체 뭘 숨기려는 거야.’‘왜 이렇게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지.’“저... 물 좀 떠올게요.”예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서둘러 컵을 집어 들었지만, 손이 떨려 미처 잡지 못한 채 컵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컵이 깨지는 소리에 예진은 몸을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다이닝룸에 있던 민혁은 곧장 뛰어 들어왔다.바닥의 유리 조각을 확인한 그는 반사적으로 예진의 손목을 붙잡았다.“괜찮아요? 데인 데는 없어요? 어디 다친 데는 없고요?”예진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대표가 로펌 직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게... 정상일까?’‘혹시...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건가?’그 순간, 지난 반년 간의 장면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생일날 함께 갔던 놀이공원.이혼 소송 준비 중 지쳐 있던 자신에게 건넨 격려.집을 구하지 못해 방황할 때 마련해 준 값싼 집.체력을 키우라며 시작한 아침·저녁 조깅.어머니가 건넨 한마디 이후 단 한 번도 다시 부엌에 세우지 않은 배려.그리고 아버지 병상에 불쑥 나타난 전문의들까지.‘이 많은 우연이 다 겹쳐 있다니... 이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야.’예진은 민혁의 손길에 이끌리면서 어깨 위로 얹힌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민혁은 여전히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그래요? 많이 놀랐어요?”예진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심장이 쿵쿵 울려 대며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민혁 씨, 혹시... 저 좋아해요?”그 한마디에 민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놀람 속에 엷은 두려움까지 비쳤다.순간, 시간이 멎은 듯 고요해졌다.정적 속에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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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지금 이 순간, 예진은 그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허리를 굽혀 바닥의 유리 조각을 주워 담으려 했다.민망함을 감추기 위해서 뭐라도 집중하고 싶었다.하지만 손끝이 파편에 닿기도 전에, 동시에 몸을 숙인 민혁이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위험해요. 제가 할게요.”민혁이 화제를 피하는 것 같아 예진은 속으로 안도했다.‘다행이야. 날 비웃지 않았어. 내가 혼자 착각한 건가 싶었는데...’예진은 곧장 몸을 일으켜 서둘러 부엌을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등 뒤에서 들려온 민혁의 낮은 목소리에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오래됐어요.”예진은 멈춰 서서 뒤돌아보았다.“뭐가요?”민혁은 천천히 일어나 예진 앞으로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지만, 눈빛은 한없이 따뜻했다.예진은 민혁이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한 적이 있었나 떠올려 보았다.재판에서조차 보여 주지 않았던 표정이었다.“예진 씨. 전 예진 씨를 좋아해요. 그리고... 아주 오래됐어요.”낮고 차분한 음성이었지만, 예진의 심장은 요동치듯 뛰어올랐다.‘이게... 진짜야? 서 회장이 했던 말, 다 사실이었던 거야?’‘서민혁이 정말 날 좋아하는 거라고?’그동안 스쳐 지나간 모든 우연들이 하나로 이어졌다.그가 보여 준 배려, 도움, 그리고 함께한 시간들.그 모든 게 결국 민혁의 의도적인 선택이었음을 예진은 깨닫기 시작했다.예진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내뱉었다.“오래됐다니... 도대체 얼마나요?”민혁은 잠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저도 언제부터인지 잊어버릴 만큼...”짧은 대답에 다시금 정적이 내려앉았다.예진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졌다.예진의 긴장된 기색을 본 민혁 또한 함께 불안해했다.‘결국 이렇게 돼 버렸네. 원래 계획은 전혀 아니었는데...’결국 이 고백은 특별한 이벤트도 화려한 무대도 없이, 가장 평범한 어느 밤에 터져 나왔다.한참 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결국 민혁이 먼저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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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민혁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아주 오래됐어요. 도대체 언제부터인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예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우리,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우리가 서로를 안 지는... 예진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어요. 중학교 때 기억 안 나요? 어머니 따라 외가가 있는 J시에 갔다가, 겨울방학에 한 정신병원에서 봉사활동 했던 거...”그 말에 예진은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민혁을 바라봤다.“민혁 씨가... 그 소년이었어요?”민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저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있었지만, 사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어요. 만약 예진 씨가 제 약을 몰래 사탕으로 바꿔주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요.”예진은 말문이 막혀,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이 사람이 아직도 그때 인연을 기억하고 있다니.’ ‘그 기억을 붙잡고 나를 기다려 왔다니.’“그래서... H시에 와서 대학 다니고, 법을 공부하고, 여기서 자리 잡은 게... 다 저 때문이에요? 우리가 그때 했던 약속 때문이에요?”민혁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예진 씨, 모를 거예요.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예진 씨를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이었어요. 금세 예진 씨가 부윤제와 함께 할 거라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어요. 예진 씨 삶을 흔들고 싶지 않았으니까.”민혁은 잠시 눈을 떨구며 힘없이 웃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돼요. 그때 모든 걸 무릅쓰고 예진 씨 앞에 섰다면... 끝까지 붙잡았다면... 예진 씨가 지금처럼 이혼으로 상처받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잖아요.”그러나 곧 민혁은 고개를 들어 예진을 똑바로 바라봤다.“하지만 이제 그런 후회는 의미 없어요. 저는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할 겁니다. 예진 씨를 두 번째로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놀란 예진은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대학 시절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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