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401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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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예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민혁 씨, 뭐라고요? 그 꽃들... 전부 다 민혁 씨가 보낸 거였어요?”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예진은 지금까지 줄곧,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은 꽃다발이 모두 윤제가 보낸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그렇게 굳게 믿고, 윤제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며 깊이 빠져들었었다.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꽃뿐만이 아니에요.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예진 씨 책상 위의 아침 식사, 예진 씨 생일마다 도착했던 익명의 선물들...”“그리고 예진 씨가 늦게 귀가했을 때 골목에서 따라붙었던 불량배들... 그때 갑자기 나타나서 도와준 사람도 전부 다 저였어요.”남자의 고개가 조금 숙여졌고,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예진 씨 앞에 당당히 서 있을 용기가 없었어요. 예진 씨가 이미 누리고 있는 행복을 깨뜨릴 용기도 없었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하찮은 일들뿐이었어요.”예진은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에 온몸이 굳어졌다. 눈가가 뜨겁게 시리더니 눈물이 제멋대로 흘러내렸다.‘그 모든 게... 서민혁이었다고? 전부 다 이 남자였다고?’예진은 단 하나의 단서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그 모든 걸, 아무 의심 없이 윤제의 마음이라 여겼다.예진이는 책상 위에 매일같이 놓여 있던 아침을, 윤제가 사람을 시켜 준비해 둔 거라 믿었고, 이름 없는 꽃다발과 선물도 당연히 윤제가 보낸 거라고 생각했다.‘선물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딱 맞은 건...’‘부윤제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만 믿었는데...’밤늦게 돌아오는 길, 뒤에서 누군가 따라붙는 기분이 들다가도 금세 사라졌던 그 공포마저도... 예진은 단순히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제 알았다.‘모두 다... 서민혁이었구나.’그래서 결국, 수년 동안의 모든 시간은 예진의 착각에 불과했다.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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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예진 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예진 씨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예진 씨가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알았을 때, 저는 정말 차라리 저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어요.”“...”민혁은 항상 후회했다. 만약 그때의 자신이 조금만 더 용기 있었더라면.만약 그때 한 발짝만 더 내디뎠더라면.그러면 예진은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까?그렇게 많은 상처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하지만 세상에 ‘만약’은 없었다.그래서 민혁이 그 순간 할 수 있는 건, 예진이 다시 삶을 시작하도록, 자신의 꿈을 되찾도록 돕는 일이었다.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그녀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는 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 칼이 되고 스스로의 버팀목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그녀가 스스로 강해져서 어떤 변수가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것.그래서 민혁은 예진에게 일을 주었고, 운동을 함께 하며 무너져버린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아이만 돌보느라 상한 몸이 차츰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그리고 다시 법정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그제야 예진은 깨달았다.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이,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눈앞에서 정리되어 가는 걸.‘어쩐지... 왜 이렇게 싼 집이 있나 했어...’‘어쩐지... 왜 이렇게 좋은 상사가 있나 했어...’‘어쩐지... 왜 이렇게 좋은 동료와 기회가 있나 했어...’알고 보니 모든 게 민혁의 손길이었다.하지만 예진은 이 갑작스러운 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차라리 민혁이... 그런 시간 속에서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이 오래된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랑을 오해해 다른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너무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몰려와서 예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개를 가볍게 저으면서, 굳은 손길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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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은주에게 더 이상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민혁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서중국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서중국은 욕조에서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있던 참이었다.전화 화면에 ‘민혁’이라는 이름이 뜨자, 조금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화를 받았다.[이 녀석, 이렇게 빨리 작은아버지한테 고맙다고 하려고?]민혁의 목소리는 이를 악문 듯 날카로웠다.“작은아버지, 예진이한테 찾아가셨죠? 도대체 뭐라고 하셨어요?”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서중국은 몸을 곧게 세웠다.[뭘 또 대단한 걸 말했겠어. 네 녀석이 대체 언제쯤 고백할 건지, 내가 손 놓고 기다리다 늙어 죽을까 봐 말이지. 그래서 그냥 네 마음을 조금 흘린 것뿐이야. 어때, 지금 상황은 좀 나아졌냐?]서중국 역시 근본적으로는 민혁을 위하는 마음이었다.민혁도 잘 알고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경솔하게 입을 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늘 분별 있고,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오늘 예진이 집에 돌아와 단도직입적으로 ‘좋아하냐’고 물었던 걸 떠올려 보면, 서중국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민혁은 이를 꽉 깨물었다.“작은아버지, 저희 문제에 괜히 끼어들지 마세요. 진짜 두 사람 잘 되는 걸 보고 싶으시면, 결혼식만 보고 조용히 J시에 내려가 계시죠.”그 말과 함께, 민혁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서중국은 멍하니 전화를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뭐야? 이 녀석, 혹시 고백하다가... 차인 거야? 에이, 설마 그렇게 망신을 당했겠어?]...전화를 끊은 민혁은 곧장 은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마침 은주는 영호가 야간 당직이 없는 날이라, 오랜만에 제대로 된 데이트를 준비하며 들떠 있었다.둘만의 낭만적인 저녁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였다.“은주야, 나 큰일 났어.”민혁은 조금 전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털어놓았다.얘기를 듣고 있던 은주는 거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약속했던 낭만적인 고백은 어디 가고, 도움은커녕 일을 이렇게 크게 벌여버리다니.‘오빠는 왜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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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민혁의 머리는 마치 새둥지처럼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생기라곤 하나도 없었다.“오빠, 일단 진정부터 해. 이건 정말 너무 갑작스러워. 우리도 적응이 안 되는데, 하물며 예진이는 오죽하겠어.”민혁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옆에 앉아 있던 영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그래도 속마음을 드러낸 건 잘한 거예요. 형님이 계속 마음만 숨기고 있으면 예진 씨도 모르는 채 계속 지나갈 거잖아요.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이제는 선택할 기회가 생긴 거니까요.”은주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오빠. 예진이가 뭐라고 답하든 간에, 오빠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돼. 절대 포기하면 안 돼.”하지만 민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답답해진 은주와 영호는 눈빛을 주고받았다.은주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주방으로 향했다.와인장이 있는 곳에서 민혁이 아끼던 레드와인 두 병을 꺼내 들었다.“걱정 마, 오빠. 내가 직접 예진이한테 가서 물어볼게. 반드시 답을 받아올게.”그 말만 남기고, 은주는 집을 나서 그대로 맞은편 예진의 집 문을 두드렸다....예진은 소파에 웅크린 채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서민혁인가?’조심스레 현관 화면을 켜보니, 화면 속에는 은주가 서 있었다.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막상 문을 열어야 할지 망설여졌다.‘분명히 서민혁이 보낸 거겠지... 그냥 우연히 왔을 리는 없어.’예진은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지금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갈망이 피어올랐다.결국, 문을 열고 말았다.은주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예진아, 내가 뭐 가져왔는지 봐! 우리 영호 씨가 직접 만든 요리야. 그리고 이건 아주 오래 아껴둔 와인이거든. 오늘은 둘이서 속 얘기하면서, 취할 때까지 마셔보자!”예진은 문을 닫고 주방으로 들어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은주는 분주하게 음식을 접시에 옮기고 와인을 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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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윤제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의자에서 뛰어내린 이안은 달려가 윤제의 다리에 꽉 매달렸다.“아빠! 드디어 왔어! 이안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윤제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아들을 살폈다.“이빨은 아직도 아파? 어디 다른 데 불편한 데는 없고?”이안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안 아파, 아빠.”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깜짝 놀란 윤제가 급히 이안을 의자에 앉히고 휴지를 꺼내 코피를 닦아주었다.“갑자기 왜 코피가 나지? 이안, 아빠 속이지 마. 혹시 아직 어디 아픈 데 있는 거야?”아린도 다급히 다가와 옆에 쪼그려 앉으며 걱정스러운 척했다.“정말 없어...”이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윤제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윤제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아린은 옆에서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 성장기 애들 코피 자주 흘려. 이안은 괜찮아. 괜히 당신만 지치겠어.”그러나 윤제는 오히려 날 선 목소리로 아린을 눌러버렸다.“닥쳐. 이안이 아직 이렇게 어린데, 아무 이유 없이 코피가 터질 리가 없어.”처음이었다. 윤제가 자신에게 이렇게 날카롭게 말한 건.아린은 순간 멍하니 굳었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아빠, 엄마한테 화내지 마. 이안 진짜 괜찮아.”그제야 윤제는 정신을 차린 듯 숨을 고르며 진정했다.사실 그는 이미 짜증을 안고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아린이 낮에 전화도 제대로 받지 않고, 이안을 챙기는 것도 허술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고예진이랑 살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걱정을 한 적이 없었는데...’자신의 태도가 지나쳤음을 깨닫자, 윤제는 곧 아린의 손을 붙잡았다.“아린아, 미안해. 아까는 내가 너무 예민했어. 이안이 태어날 때부터 약했잖아. 그래서 더 겁이 났어.”아린은 그제야 정신을 추스르며,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 오늘은 내가 부주의한 게 맞았어.”하지만 이안의 코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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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건우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왜 고예진이 이안을 돌볼 때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예진의 이름이 나오자 윤제의 표정이 굳었다.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뒤, 불 꺼진 꽁초를 바닥에 짓이겼다.“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건우는 한발 물러섰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가정사에 지나치게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냥 말하는 거야. 새엄마는 어디까지나 새엄마일 뿐이지. 아무래도 친엄마만큼은 못 챙겨. 네가 친아빠라면 더 신경을 써야 해.”그 말만 남기고 건우는 자리를 떴다.윤제의 가슴은 복잡하게 뒤흔들렸다.사실 그는 예진에게서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비슷한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곧 스스로 부정했다.‘이안은 아직 어린애잖아.’‘만약 아린이 정말 못되게 굴었다면, 저렇게 잘 따를 리가 없어.’‘애들은 거짓말을 못하니까.’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윤제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2층으로 올라갔다.이안의 코피는 이미 멎어 있었고, 아린이 욕실에서 아이의 얼굴을 씻겨주고 있었다.윤제가 다가오자, 아린은 얼른 몸을 낮춰 앉아 세심한 척하며 손수건으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그 모습을 보자, 윤제는 안도하듯 숨을 내쉬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부윤제, 쓸데없는 의심하지 마. 이안도 결국 아린 손에 크지 않았나.’윤제가 방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린은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이번 위기는 일단 무사히 넘어간 듯했다.하지만 앞으로 병원 검사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차라리 결혼 따윈 안 하고 내연녀로 남을 걸... 괜히 들어와서 고생만 하네.’...한편, 다른 쪽.술이 세 번째 잔까지 돌자, 예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탁!그녀는 결국 식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술에 강한 은주는 멀쩡했지만, 갑작스러운 예진의 반응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은주야! 나 지금 너무 답답해! 속이 미치도록 불편해!”휘청이는 예진의 모습에, 은주는 속으로 ‘지금이 기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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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어이가 없어! 완전히 황당해! 서민혁, 진짜 바보야. 내가 그동안 네 오빠가 베풀어 준 호의 때문에 엉뚱한 사람을 사랑하게 됐는데... 이제 와서 몇 년 동안 날 지켜왔다고?”예진은 말할수록 울음이 더 터져 나왔다.“그럼 지난 세월 동안 지나간 내 마음은 뭐야? 전부 헛된 거였어? 내가 눈이 삐어서 그런 거야? 운이 더럽게 없었던 거야?”은주는 점점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결국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몰래 예진의 모습을 찍어 민혁에게 전송했다.화면을 바라보던 민혁은 핸드폰을 꼭 움켜쥔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술에 취해 눈물범벅이 된 예진이 작은 어깨를 떨고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졌다.민혁은 차라리 스스로를 후려치고 싶었다.‘결국... 예진이 부윤제에게 시집간 것도 다 내 탓이었어?’‘내가 했던 작은 배려들, 그 모든 걸 부윤제가 한 줄 알고 예진이 그를 사랑하게 된 거잖아.’‘그렇다면... 내가 그때 용기 내서 진실을 말했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우리의 인생이, 예진의 삶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자신의 겁쟁이 같은 선택이 수 년의 고통을 만들어낸 셈이었다.‘대체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겠어?’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은 결코 거슬러올 수 없었다.옆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영호는 민혁의 참는 듯한 표정을 보고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그 순간 은주는 전화를 끊었다.민혁은 핸드폰을 꼭 쥔 손에 힘을 주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낮게 중얼거렸다.“그래서 예진이 아까 나한테 진정하자고 했던 거구나... 그 반응이 다... 결국 날 원망해서였던 거야?”영호는 무슨 사정인지는 몰랐지만,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섣불리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은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30분이 지나서야 은주가 조심스럽게 맞은편 집에서 돌아왔다.은주를 보자마자 걱정이 든 민혁이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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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결혼하고 나서야 예진이 알게 된 거야. 부윤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그래도 예진의 성격 알잖아. 한 번 사랑하면 무조건 직진이잖아. 몇 년이고 그저 주기만 하고, 돌아오는 건 바라지도 않았어.”“이안을 낳을 때도 그 인간은 출장 나가 있었어. 예진 혼자 집에서 쓰러져 반쯤 죽을 뻔하다가 구급차에 실려 갔고... 결국 혼자 병원에서 이안을 낳았지.”“아이가 잘 안 나와서 결국 자연분만하다 제왕절개로 바뀌었어. 고통은 두 배였고, 몸도 크게 다쳤지.”“그런데도 도 여사 그 지긋지긋한 시어머니가 예진이 몸이 상했다는 핑계로 애를 데려가 버렸어.”“이안은 그 후로 줄곧 도순희 손에 자라왔어. 예진이 옆에서 늘 챙기고 보살폈지만, 아이는 결국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쪽을 닮게 돼. 오빠도 봤잖아. 이안이 벌써 많이 변했어.”“그뿐인 줄 알아? 얼마 안 돼서 류아린 그 계집애가 다시 들어왔잖아. 온갖 말로 설득하고, 눈물로 불쌍한 척하더니 금세 부윤제랑 도 여사 용서를 받아내고 본가에 들어앉았어. 이안도 눈이 돌아가서는 그 여자한테 엄마 소리를 하고.”은주의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다.“더 말 안 할게. 내가 봐도 숨 막혀. 그냥 딱 한 가지만 말해줄게. 예진이 이혼할 때 온몸에 상처투성이었던 이유... 그건 유치원에 불이 났을 때, 이안이 안에 갇혔거든.”“예진이 목숨 걸고 뛰어 들어가서 아이를 구했어. 근데 류아린도 쓸데없이 따라 들어가선... 결국 그 부자놈들은 류아린부터 끌어냈고, 예진이 혼자 불길 속에 남겨졌어. 불이 조금만 더 늦게 꺼졌어도, 예진이는 그날 거기서 죽었을 거야.”그 말을 듣자, 민혁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은주조차 눈물이 가득 고였다.영호는 당황해 은주의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였다.“오빠, 그런 예진한테 지금 와서 ‘사랑한 사람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그걸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민혁은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려 봤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한 진실은 상상조차 못했다.예진이 빠져든 그 깊은 절망은, 다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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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다음 날 아침, 민혁은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오늘은 예진이 처음으로 맡은 사건이 정식으로 재판에 올라가는 날이었다.그는 든든히 먹어야 더 좋은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그래서 용기를 내 맞은편 집으로 향해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마침 예진이 문을 열고 나왔다.두 사람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서로를 마주보았다.공기 속에는 어색하고 긴장된 기운이 흘렀다.잠시 후 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침 같이 먹자고 왔어요.”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고, 예진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젯밤 과음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도 불편했다.그리고 배가 고프긴 했지만, 어제 일들이 떠오르자 민혁과 마주 앉아 식사한다는 게 도저히 쉽지 않았다.예진은 두어 번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곧 법원에 가야 해서... 병원에 들러서 봉춘영 여사님이랑 같이 먹으려고요.”민혁은 그 말 속에 담긴 거절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더 이상 붙잡지 않고 옆으로 비켜 길을 내주었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 다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이번엔 예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참, 봉춘영 여사님 딸 심리 상태가 좀 안 좋아요. 아이를 법정에 데려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는 로펌에 두고 심리 상담 선생님이랑 시간을 보내게 하려고 해요.”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요.”“그럼 우리 법원에서 봐요.”“응, 법원에서 봐요.”대화를 마치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예진은 숨을 죽인 채 안으로 들어섰고, 문이 닫히고 나서야 조용히 숨을 내쉴 수 있었다.사실 어젯밤을 지나면서 예진의 분노는 이미 한풀 꺾였다. 다만 여전히 어색했다. 민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게 문제였다.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감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첫 재판 출석일. 예진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예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봉춘영 여사는 이미 옷을 차려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얼굴에는 아직 멍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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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솔직히 말해, 봉춘영뿐만 아니라 예진 역시 마음속 깊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이규철의 오른쪽 눈썹 위에는 흉터가 하나 길게 나 있었는데, 마치 칼에 베인 흔적 같았다.검게 그을린 피부는 거칠었고, 불그스름한 안색은 오랜 세월 술에 절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하지만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건 이규철의 눈이었다.예진은 대학 시절, 진현민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살인을 저질렀거나 흉기를 휘둘러본 사람의 눈에는 결코 맑음이 남아 있지 않다고.그 눈 속에는 반드시 변호사가 찾고자 하는 단서가 숨어 있다고.그땐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지금 눈앞의 이규철을 보며 깨달았다.‘사람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이렇게까지 무서울 수 있구나.’순간, 예진은 봉춘영이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규철은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여러 차례나 아내를 죽이려는 의도를 품었을지도 몰랐다. 피고석에 서서 죄수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규철의 얼굴엔 반성의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입꼬리를 비죽 올리면서 비웃는 듯한 표정에는, 자신감에 가득 찬 오만이 넘쳐 흘렀다.예진은 옆에 있는 봉춘영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봉춘영의 손등을 살며시 두드리며 위로했다.곧 재판장이 개정을 선언했다.봉춘영 측 대리인으로 선 예진이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예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저희의 주장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 먼저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리모컨을 눌러 대형 스크린을 작동시키자, 봉춘영의 진단서와 치료비 영수증, 그리고 병원 침대 위에서 찍은 사진들이 차례로 화면에 비쳤다.몸 곳곳에 남은 상처 사진까지 이어지자, 방청석 곳곳에서 숨죽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이규철은 오히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게다가 눈빛은 광기에 가까웠다.심지어 이규철의 부모조차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성은커녕 코웃음을 치며 시큰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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