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371 - Chapter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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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1화

영호가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사실 저도 예진 씨랑 민혁 형님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재하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진 씨가 민혁을 밀어내지도 않고 오히려 편하게 지내잖아. 그게 기회지 뭐.”평소에 보면 민혁은 결단력 있고 추진력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감정 문제만 나오면, 정작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기 일쑤였다.민혁은 두 사람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지금의 예진은 예전보다 훨씬 빛이 나.’‘이미 주성민 같은 경쟁자도 나타났고...’‘앞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날 수도 있어. 그러다 내가 뒤처지면...’‘그땐 후회해도 소용없을 거야.’‘시간을 더 끌 게 아니라, 이제는 행동에 옮겨야 해.’민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예진과 은주가 들러리 드레스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은주의 드레스는 다소 화려하고 섹시한 느낌이었다. 짧은 기장이 긴 다리를 드러내고, 마치 오르골 속 인형처럼 정교해 보였다.반면 예진의 드레스는 단아한 분위기가 강조된 하이웨이스트 롱드레스였다. 날씬하고 고운 실루엣이 한층 돋보였다.은주는 곧장 영호의 팔에 팔짱을 끼며 나섰고,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한 쌍처럼 잘 어울렸다.재하와 선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예진에게 향했다.“예진 씨, 몸매 진짜 좋네요. 이 드레스가 딱이에요.”“우리 아내가 제일 예뻐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들러리들한테 주인공 자리 뺏길 뻔했네요.”예진은 모두와 함께 웃으며 분위기를 맞췄다.그때 민혁도 다가가 입을 열었다.“예진 씨, 오늘 정말 예쁘네요.”‘여자들은 다 이런 말에 마음이 움직인다잖아.’‘예진을 빨리 내 여자친구로 만들고 싶다면...’‘나도 내 마음을 솔직하게 예진이에게 보여줘야 해.’민혁이 진심을 담아 칭찬하자, 예진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감사합니다.”막 분위기가 무르익어, 모두가 민혁이 다음 말을 이어가길 기대하던 그 순간.갑자기 은주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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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은주는 결국 전화기를 민혁에게 내밀었다. 눈빛에는 절박한 기색이 가득했다.민혁이 두어 번 가볍게 기침을 하고 나서 수화기를 받았다.“작은아버지, 제가 은주랑 같이 모시러 가겠습니다.”민혁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서중국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민혁이구나! 내일 시간 괜찮아? 아이고, 다행이다. 네 일이 바쁜 거 알기에 괜히 신경 쓸까 싶어 일부러 말도 안 꺼냈는데... 너는 참 다르구나. 네 철없는 여동생이랑은...]은주는 차마 반박하지 못한 채, 억울한 마음을 삭이며 허리에 손을 얹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얼마나 잘 버는지 알기나 할까? 프랜차이즈 술집 사장인데!’‘1년에 버는 돈도 꽤 된다구!’그런 은주의 표정을 본 민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작은아버지, 은주도 요즘 많이 달라졌습니다. 내일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짧은 대화가 오가고 나서야 통화는 끝났다.그러자 은주가 바로 폭발했다.“이건 불공평해! 저 사람은 내 아빠가 아니라 완전히 오빠 아빠잖아!”사실 서중국은 어릴 때부터 유독 민혁을 아꼈다. 그 정도가 친딸인 은주마저 질투할 정도였다.민혁이 처음 집에 왔을 때, 불안해서 밤새 잠도 못 자고 뒤척였던 때가 있었다.그때 서중국은 끝까지 곁을 지키며 달래 주고, 아이처럼 품에 안아 재웠다.그런 대접은 은주조차 받아본 적이 없었다.민혁은 씩 웃으며 은주의 머리를 툭 쓰다듬었다.“어쩌겠어. 술집 사장님 같은 직업은 작은아버지 눈엔 탐탁지 않아 보이니까.”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하가 영호에게 슬쩍 물었다.“공항 마중 나가는데, 같이 갈래?”요즘 영호와 은주의 관계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누가 봐도 알콩달콩한 연인 사이였다.하지만 은주의 아버지를 직접 뵌다는 문제 앞에서는 영호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영호는 은주를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저는... 은주 씨 생각에 따를게요.”은주는 한 번도 깊이 고민해 본 적 없는 문제라 잠시 머뭇거렸다. 부모님께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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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예진 씨는 지금 제 생활비서니까, 작은아버지를 모시는 자리에 같이 가는 게 자연스럽죠.”“게다가 은주 절친이잖아요. 은주가 작은아버지한테 예진 씨 얘기를 자주 했으니까, 한 번쯤 뵙는 게 나쁘지 않을 겁니다.”꽤 억지스러운 이유였다.하지만 민혁이 그렇게 말해 버리니, 예진도 굳이 거절할 수 없었다.‘모두 다 가는데 나 혼자 빠지면 더 이상하지...’결국 다음 날 저녁, 모두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잠시 기다리자, 은주와 민혁을 꼭 닮은 듯한 남자가 도착장을 나섰다. 날카로운 눈매와 단정한 수트 차림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남달랐다.그 뒤에는 비서가 얌전히 캐리어를 끌고 따르고 있었다.은주는 비록 아버지가 두려웠지만, 어쨌든 친부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본능적으로 반가움이 북받쳐,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려 했다.서중국 역시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리는 듯 보였다.그러나 막상 은주 앞에 이르자, 슬쩍 몸을 비키면서 은주를 흘려보냈다.순간 은주는 멍하니 굳었다.뒤돌아보니, 이미 서중국의 품은 민혁이 차지하고 있었다.은주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하... 역시 나는 ‘사은품’이지.”서중국은 민혁의 등을 두어 번 힘주어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훑어봤다.“이놈, 한층 더 우람해졌구나.”민혁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작은아버지 말씀대로 매일 운동했습니다. 게을리할 수 없죠.”“녀석, 입만 살아서는.” 서중국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은주가 다시 달려와 서중국 앞을 막아섰다.“아빠! 저 아직 친딸 맞아요?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면서, 인사 한마디도 없이 그냥 지나가요?”서중국의 시선이 드디어 은주에게로 향했다.“어휴, 내가 딸이 하나 있긴 했지? 집에 안 들어온 지가 얼마나 됐는지, 얼굴도 까먹을 뻔했다.”“저, 저기 아빠!”은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억울함이 치밀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그때 재하와 선아가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중국 삼촌, 이렇게까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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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혹시나 영호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까 걱정이 된 민혁이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정리했다.서중국을 모시고 공항을 빠져나와 곧장 차에 오른 뒤, 일행은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식당에 도착하자, 마침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테이블에 차려졌다.영호는 은주 옆에 앉았지만, 표정에서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다행히 은주가 그의 손을 꼭 잡아 주며 안정감을 주었고, 그제야 영호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민혁은 좋은 레드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예진은 자연스레 ‘비서’ 역할을 떠맡듯 먼저 일어나 와인을 서빙하려 했다.그러나 민혁이 먼저 잔을 들더니, 예진의 손에서 병을 빼앗듯 받고는 직접 와인을 디캔팅하기 시작했다.예진은 할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서중국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묘하게 미간을 좁혔다.‘이놈, 언제부터 이런 걸 챙길 줄 알았지?’‘게다가 은주 친구 앞에서까지 저러는 걸 보니...’‘혹시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런 생각이 스치자, 서중국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졌다.어색해진 공기를 눈치 챈 재하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삼촌, 정말 오래간만에 뵙네요. 일만 너무 바쁘시지 말고, 가끔은 H시에 내려오셔서 우리랑 시간도 좀 보내세요.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삼촌도 덩달아 젊어지실 텐데요.”그제야 서중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 나이에 젊어지기는. 괜히 젊은 흉내 내다간 노인네가 철없다는 소리나 듣지.”선아가 바로 받아쳤다.“삼촌, 그런 말씀 마세요. 지금도 충분히 젊어 보이시는데요.”서중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민혁이 잔을 채우자 모두 함께 가볍게 건배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됐다.은주는 혹시 영호가 어색해할까 봐 음식이 나올 때마다 그의 접시에 계속 챙겨 주었다.금세 접시 위가 작은 산처럼 쌓이자, 영호가 은주의 손을 잡으며 나직이 말했다.“은주 씨, 이제 그만. 이거 다 못 먹어요. 음식 남기면 아깝잖아요.”은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손은 멈추지 않았다.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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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영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은주가 먼저 끼어들었다.“사귄 지 좀 됐어요. 감정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저희 둘, 잘 지내고 있어요.”서중국은 또다시 말을 가로막히자 결국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너 이게 무슨 버릇이냐? 내가 지금 영호 군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왜 네가 다 대답하는 거야?”“저...!” 은주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영호가 은주의 손을 살짝 쥐며 나직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은주 씨. 저랑 회장님이 조금 이야기해도 돼요.”은주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다.“알았어...”서중국은 생전 처음 보는 장면에 잠시 놀랐다. 늘 제멋대로인 딸이 이렇게 얌전히 물러서다니.‘이 녀석, 은주를 제법 잘 다루네.’‘아무도 길들이지 못한 아이를 이렇게 잠잠하게 만들다니.’영호는 그제야 서중국을 향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회장님, 은주 씨와 만난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장기적으로 함께할 계획을 조금씩 세우고 있습니다.”서중국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서씨 가문의 위상은 물론 높았지만, 그는 딸이 무조건 ‘수준이 맞는 집안’하고만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진 않았다.‘은주가 행복하다면, 사람 됨됨이만 확실하면 그걸로 족하지.’그는 다시 물었다.“그래, 영호 군. 자네 집은 H시에 있나?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그 말에 영호의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저, 그게...”처음으로 맞닥뜨린 은주의 아버지 앞에서 가볍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괜히 잘못 말했다가 안 좋은 인상만 남을까 두려움이 몰려왔다.‘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영호가 머뭇거리던 순간, 은주가 다시 고개를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 옆으로 옮겨 앉았다.“아빠,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요? 남자친구는 제가 만나는 거잖아요. 저희가 천천히 알아가고 있는데, 아빠까지 부담 주면 힘들죠.”은주의 눈빛은 단단했다.‘이건 내 일이고, 내 선택이야. 영호 씨를 위축시키게 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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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민혁은 어릴 때부터 서중국의 눈앞에서 자라왔다.‘이놈 속을 내가 모를까... 식사하는 내내 눈길이 예진한테만 가더니...’‘분명 마음이 있는 게 틀림없지.’‘게다가 이혼 소송까지 맡아 줬다니...’‘그냥 변호사로 도와준 게 아닐 거야. 민혁이가 은근히 수완은 있어.’예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맞아요, 회장님. 제가 이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건 다 민혁 씨 덕분이에요.”서중국은 억지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답답함만 가득했다.‘에휴, 밥이 체하겠네.’결국 식사가 끝나자 서중국은 예정된 일을 보러 간다며 자리를 일찍 파했고, 일행도 뿔뿔이 흩어졌다.재하와 선아는 집으로 돌아갔고, 영호는 은주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가는 길 내내 은주는 영호의 표정에서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걸 눈치챘다.몇 번이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영호는 대답은 해 주되 어딘가 마음이 붕 떠 있었다.집 앞에 도착하자, 은주는 영호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늘 그냥 올라가자. 같이 있고 싶어.”영호는 은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게다가 지금 회장님이 H시에 계시는데 혹시라도 갑자기 은주 씨를 찾으시면 곤란해. 조금만 기다려. 회장님이 J시로 돌아가시면 그때는 내가 매일이라도 올게.”은주는 입술을 내밀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지만 더 이상 조르진 않았다.그런데 영호가 돌아서려는 순간, 은주가 갑자기 끌어안았다.“자기야, 오늘... 진짜 속상한 건 없지?”영호는 놀란 듯 몸을 돌려 은주를 품에 안았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왜 속상해. 아무렇지도 않은데.”“아빠가 자기한테 이것저것 물어본 건 그냥 호기심 때문에 그런 거야. 내가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데려갔으니까... 아빠도 당연히 궁금했을 거야.”은주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지만, 영호는 잔잔히 웃으며 받아줬다.“부모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사실 대단한 질문도 아니었어. 다만... 나는 걱정이 돼서 그래. 은주 씨랑 함께하려면, 언젠가 다 맞닥뜨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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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재하 집.재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아이구, 드디어 날 찾으셨네? 내 촉이 맞았지.”민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바로 본론을 꺼냈다.[헛소리 말고, 나 예진이한테 마음이 있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말해봐.]재하는 히죽거리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아이고, 이제야 묻네. 내가 연애 경험이 많진 않아도, 보고 듣고 배운 건 넘치게 있거든? 꿀팁이라면 많지.”[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알았어, 알았어. 솔직히 예진 씨 케이스는 좀 특별해서, 무작정 불 붙이듯 들이대는 건 안 돼. 근데 너 지금 속도는 너무 늦어.”“옆집 살면서 이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예진 씨는 아마 네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조차 모를 걸? 그 상태로 무슨 연애가 되겠냐?”민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작은 수첩을 꺼내 꼼꼼히 메모하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먼저 고백부터 해야 한다는 거야?]재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렇지. 최소한 네가 왜 잘해 주는 건지 정도는 알려야지. 은주 때문에 챙기는 게 아니라, 예진 씨가 좋아서 챙긴다고. 그래야 비로소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진 씨는 지금 분명 날 그냥 친구, 아니면 직장 상사로만 여기고 있어.’‘이 선을 넘지 않으면 평생 그대로일지도 몰라.’그는 곧바로 다시 물었다.[그럼... 어떻게 고백해야 예진 씨가 부담스럽지 않고, 그래도 좀 낭만적이라고 느낄까? 괜히 놀라서 거부하면 어떡하지?]재하는 속으로 눈을 굴리며 한숨을 삼켰다.“예진 씨가 애도 아니고, 누가 고백했다고 놀라서 도망갈 나이가 아니잖아. 솔직히 예진 씨 같은 조건이면 고백을 거절하는 것도 이젠 일상일 걸? 걱정 마. 그 정도로 겁먹을 사람 아니야.”재하가 이렇게 말했지만, 민혁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묘한 불편함이 남았다.‘이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에서 갑자기 성대하게 고백하는 건 좀 오버 같고...’‘그렇다고 대충 말하는 건 또 무성의해 보일 것 같은데...’그는 여전히 답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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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은주가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미는 모습에, 민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평소에는 세상 겁 없는 척, 심지어 한 번에 서너 명쯤은 거뜬히 상대할 기세였는데, 아버지 서중국 앞에서는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마는 모습이 꼭 ‘기가 죽은 강아지’ 같았다.“걱정 마. 작은아버지가 뭐, 여기까지 와서 널 잡아 가두기야 하겠냐?”은주는 고개를 휙 돌리며 툴툴거렸다.“차라리 잡아가두는 게 낫겠어. 아빠가 날 J시로 데려가면... 그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야.”H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재벌가 자제들이 제멋대로 사는 도시였다.하지만 J시는 달랐다.거긴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후계자들이 모여 있었고, 모든 생활이 규율과 전통으로 억눌려 있었다.식사 한 끼에도 예법을 지켜야 했고, 옷차림 하나에도 가문의 명예가 걸려 있었다.‘거기서 다시 살면, 숨이 막혀 버릴 거야.’ 은주는 속으로 끔찍한 상상을 떨쳐냈다.민혁은 은주의 머리 위를 손가락으로 툭 치며 웃었다.“됐어, 별 생각 말고 들어가자. 우리 기다리느라 화가 나시면 더 혼날 테니까.”은주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민혁 뒤에 바짝 붙어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발소리가 점점 다가오자, 긴장감이 은주의 가슴을 짓눌렀다....서중국은 이미 식탁에 아침상을 차려 둔 채,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다.차분히 차를 음미하며 두 사람을 기다리던 서중국은, 은주와 민혁이 들어서자마자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조용히 수저 소리만 이어지던 식탁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중국의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이제 두 사람, 솔직히 말해 보자. 누가 먼저 할래?”민혁은 잠시 멈칫했다.‘나까지 불려 나오는 건가?’그 순간, 은주는 본능적으로 민혁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서중국이 먼저 끊어냈다.“은주야, 네가 먼저야. 너하고 영호 군은 도대체 어떤 사이야? 얼버무릴 생각 말고! 지금 내가 묻는 건 네게 솔직히 말할 기회를 주는 거야!”“거짓말로 넘기면 어떻게 될지 알지? 네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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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은주가 긴장으로 손끝까지 굳어 있는 걸 본 서중국은 잠시 딸을 흘겨본 뒤,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영호 군... 참 쉽지 않게 여기까지 왔구나.”말을 잇던 그는 다시 은주를 바라보다가,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안타깝다, 참 안타까워.”은주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빠, 하나도 안 안타까워요! 전혀요! 전 영호 씨랑 있어서 진짜 행복하다니까요. 영호 씨가 날 얼마나 잘 챙겨 주는데요. 저한텐 그게 제일 중요해요.”서중국은 그런 은주를 향해 눈을 흘기더니, 콧방귀를 뀌듯 말했다.“내가 안타깝다는 건, 네가 아니라 영호 군 말이야.”“네?”은주는 순간 얼이 빠졌다.민혁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그렇지 않아요? 작은아버지, 그렇게 성실하고 묵직한 사람이, 왜 하필이면 우리 은주 같이 말 안 듣는 딸내미를 좋아하는 건지.”“아빠! 저 진짜 친딸 맞아요?”은주는 눈물이 맺힌 듯 억울한 표정으로 서중국을 노려봤다.서중국은 태연하게 대꾸했다.“친딸이니까 더 잘 아는 거지. 네가 어떤 성질인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네 엄마랑 내가 너한테 큰 틀을 강요해 본 적 없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키워 왔더니, 결국 이렇게 제멋대로 크더라. 남들 말하는 ‘재벌가 딸’하고는 거리가 멀어.”“저...!”은주는 당장이라도 반박하고 싶었지만, 서중국은 단호히 말을 잘라냈다.“다만, 네 눈은 제법 괜찮구나. 영호 군, 어제 보니까 사람 됨됨이가 좋아. 집안 사정이야 뭐, 우리 집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너희 둘이 알콩달콩 살면 되는 거야. 그만큼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니까, 네가 절대 실망시키면 안 돼.”은주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뭐야 이거... 아빠가 내 편이 아니라, 영호 씨 편을 드는 것 같은데?’그 옆에서 은주의 굳은 얼굴을 보던 민혁은 슬쩍 고개를 돌려 웃음을 삼켰다.다음 순간, 서중국의 시선은 곧장 민혁에게로 향했다.“너도 거기서 은주 놀리는 재미만 보지 말고, 솔직히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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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말을 이어가던 서중국이 가볍게 기침을 두어 번 했다.“네 나이에 아직도 연애 한 번 제대로 안 해 봤다니, 밖에 나가서 뭐라 말해야 하냐? 남들 눈은 둘째 치고, 나도 네 성정체성이 살짝 의심스러울 지경이다.”말이 떨어지자마자, 민혁은 마시던 물에 사레가 걸려서 연신 기침을 했다.은주는 옆에서 킥 하고 웃음이 터졌지만, 아버지의 매서운 시선이 자신한테 향할까 싶어 황급히 입을 다물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괜히 수저를 내려놓고 물잔을 정리하는 척하던 민혁은, 접시에 놓인 달걀을 잘게 썰며 바쁘게 굴었다.‘이상하게 곤란한 순간엔 괜히 손이 분주해지지...’‘예진이 전에 농담 삼아 나한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 적이 있었지.’‘이대로 가만 있으면, 예진이도 혹시 진짜로 믿어버리는 거 아냐?’그런 생각이 스치자, 민혁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정색했다.“작은아버지, 성정체성 같은 건 유전이라던데요. 설마 우리 집안 어딘가 전례가 있는 건 아니겠죠?”서중국은 민혁의 빈정거림에 눈을 흘겼다.“쓸데없는 말로 피하지 마. 내가 묻는 건 단 하나야. 여자친구, 네가 직접 찾을 거야, 아니면 내가 찾아줄까?”그는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J시에 있는 집안들, 내가 어느 정도는 다 안다. 네 성격이나 네 일과 잘 맞을 만한 집안의 딸들도 여럿 있어.”“올해 연말에 J시 들어오면, 내가 직접 자리를 주선할 테니까 얼굴이라도 익혀 둬라.”민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이번에 내려온 이유가 이거였군.’‘결혼 문제를 확실히 틀어쥐고 가려는 거지. 도망칠 수도 없는 판이네.’그는 결국 눈을 들어 작은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찾으실 필요 없어요. 작은아버지 이미 보셨잖아요.”순간 서중국의 표정이 굳더니, 곧장 탁자를 쾅 치며 벌떡 일어섰다.“내 그럴 줄 알았다! 너 이놈, 결국 어제 그 예진 양이지?”민혁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은주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움츠리고, 차마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조용히 웅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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