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Bab 911 - Bab 920

1059 Bab

제911화

함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전에 혼자 M국에 유학 갔을 때, 늘 스스로 해 먹어야 했거든요.”유소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함우민 씨도 M국이었어요? 저랑 지율이도 같이 M국에서 유학했는데.”함우민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러네요. 우연치고는 꽤 신기하네요.”함우민이 자연스럽게 손을 보태자, 유소린도 따라 들어와 이런저런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함우민이 말했다.“수상한 인원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부탁해 두었습니다. 이틀 안에는 방향이 잡힐 거예요.”유소린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정말 고생이 많아요, 우민 씨.”함우민은 가볍게 웃어 보이고 전화를 한 통 받은 뒤, 자리를 떠났다....사흘 뒤, 점검이 모두 끝났다.하지율과 유소린은 함우민 회사 계열의 호텔로 옮겨 묵게 되었다.떠나는 하지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함우민이 낮게 중얼거렸다.“지율 씨가 여기 영영 머무르면 좋을 텐데.”하지만 함우민은 하지율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함우민이 더 다가갈수록 하지율은 한 발 더 물러설 것이다.억지로 붙잡을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사흘이다.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적어도 그 사흘 동안은 같은 집에서 지냈고, 하지율이 직접 차려 준 식사를 함께 나눴고, 하지율이 정성 들여 달여 준 약도 받았다.고지후도, 정기석도, 화야도 없는 하지율의 곁을 차지하고 나니 공기마저도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마치 하지율이 오롯이 자기의 것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하지만 그런 행복은 늘 짧다.고지후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정기석은 다른 일에 묶여 있고, 화야도 모습을 감춘 이 시기에 조금 더 움직여서 하지율과의 거리를 줄여 놓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둘 돌아올 때는 다시는 손을 뻗기 힘들어질 것이다.그때가 되면, 함우민이 준비한 일들도 쉽게 들켜 버릴 수 있다.하지율이 떠난 뒤, 함우민은 천천히 하지율이 쓰던 방문을 열었다.방 안은 놀랄 만큼 깔끔했다.떠나기 전에 일부러 정리하고 떠난 흔적이 역력했다.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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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바로 그때, 함우민이 번개처럼 하지율 앞을 가로막았다.칼끝이 그대로 함우민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우민 씨!”하지율이 비명 섞인 목소리로 함우민의 이름을 불렀다.옆에 붙어 있던 경호원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칼을 쥔 자를 제압했다.함우민은 마치 통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하지율을 바라보았다.“지율 씨, 다친 데는 없어요?”하지율은 함우민의 가슴에 꽂혀 있는 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난... 난 안 다쳤어요. 그런데 우민 씨는...”함우민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는데도, 끝까지 하지율을 안심시키려 했다.“괜찮아요. 지율 씨만 무사하면 그걸로 충분해요. 이 정도는...”남자들은 함우민 측 경호원과 정기석이 붙여 둔 경호원들에게 차례대로 제압당했다.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함우민은 그제야 힘이 풀린 듯 앞으로 고꾸라지며 의식을 잃었다....수술중이라는 불빛이 눈부시게 켜져 있었다.하지율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문밖에 서 있었다.유소린이 함우민은 좋은 사람이라 죽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며 하지율을 달랬지만 하지율은 여전히 신경이 곤두서있었다.“그 사람은 이미 나 때문에 이미 한 번 다쳤어. 상처가 낫지도 않았는데 또 나 때문에...”쉬어 버린 목소리로 말을 잇던 하지율은 끝내 뒷부분을 삼켰다.칼이 눈앞에서 꽂혀 들어가던 장면이 가져다준 충격이 너무 커서, 눈을 감아도 자꾸 그 장면만 떠올랐다.유소린은 무슨 말을 해 보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아까 그순간, 함우민이 목숨을 걸고 몸을 던져 하지율 앞을 막아선 모습은 묘한 감동이 있었다.잠시 망설이던 유소린이 조심스레 말했다.“우리... 정기석 씨한테 전화해서 돌아오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이번에 들이닥친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함우민이 아니었으면 유소린과 하지율은 정말 그 자리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손형원이 보낸 자들은 도가 지나쳤다.먼저 고지후를 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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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함우민이 남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어떤 부분에서는 하지율과 유소린이 직접 돌보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함우민 역시 둘의 그런 난처함을 눈치챘는지, 전문 간병인 두 사람을 따로 고용했다.대부분의 간단한 간호와 잡일은 간병인들에게 맡겼고, 하지율은 함우민의 식사를 책임지며 직접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유소린은 하지율이 주방에서 바삐 돌 때 병실에서 함우민을 살폈다.어느 날, 함우민의 비서가 병실로 들어와 업무 보고를 했다.입원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 더는 회사 일을 미뤄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상황을 눈치챈 유소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전 먼저 지율이한테 가 볼게요.”하지율이 함우민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병원에서는 작은 주방을 따로 내주었다.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줄이고, 언제든 약선을 만들 수 있게 배려한 공간이었다.유소린이 나간 뒤, 비서는 먼저 회사 전반의 현황을 보고했다.보고를 마치고는 슬쩍 병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문 앞에서 경호원들이 아무 이상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S시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지후 씨에게 의식 회복의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입니다.”함우민의 눈썹이 미세하게 좁혀졌다.곧바로 명령이 떨어졌다.“의료팀에 전해. 가능한 방법을 다 써서, 고지후 씨가 당분간은 의식을 찾지 못하게 하라고.”고지후의 주치의 팀은 애초에 함우민이 연결해 준 인물들이었다.지금까지 이어진 혼수 상태 또한 함우민의 손에서 시작된 결과였다.비서가 뒤이어 보고했다.“고지후 씨 비서인 진태환이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요즘 고지후 씨 주변 인물들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하준 쪽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고요. 아직 함 대표님을 의심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만약 진태환이 하지율 씨에게 손을 뻗고, 하지율 씨가 단종건 어르신께 직접 요청이라도 하면, 우리 쪽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습니다.”함우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침착하게 결론을 내렸다.“두 주일. 최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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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하지율은 저녁 식사까지 직접 준비하기 위해서 유소린과 함께 병실로 돌아가지 않았다.유소린이 약선을 들고 돌아왔을 때, 함우민의 비서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함우민 씨, 이건 지율이가 오늘 우민 씨를 위해서 끓인 약선이에요.”입원 초반 이틀에는 식사를 하거나 물을 마시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건 스스로 할 수 있었다.함우민은 그릇을 받아 들며 조용히 웃었다.“지율 씨 덕분에 사네요.”함우민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약선을 말끔히 비워 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소린은 문득 감탄하듯 말했다.“예전에 지율이가 고지후 씨랑 윤택이를 위해서 밤새 약선 끓였을 때, 고지후 씨는 반쯤 먹다가 갑자기 일 생겼다고 나가 버리고 업무에 매달리느라 몇 시간이나 놔두다가 결국 잊어버리기 일쑤였거든요. 윤택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밖에서 사 온 간식에 더 정신이 팔려서, 몇 모급 마시더니 싫다고 떼쓰고. 그렇게 지율이 정성을 헛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함우민이 낮게 말했다.“그건 그 사람들이 소중함을 몰랐기 때문이죠.”함우민이 애타게 바랐던 기회와 정성이, 그들에게는 너무 쉽게 주어졌고, 또 너무 가볍게 버려졌다.지금 함우민은 목숨까지 걸어가며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겨우 고지후와 비슷한 자리를 얻어 낸 셈이었다.세상은 참 불공평했다.“참, 지율 씨는요? 같이 안 오셨어요?”함우민이 물었다.“지율이는 우민 씨 저녁 만들고 있어요.”유소린의 대답에 함우민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그런 것들은 간병인들에게 맡겨도 됩니다.”물론 유소린은 하지율이 함우민과 마주 앉아 있는 게 어색해서 일부러 부엌에 틀어박혀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지율이는 대표님이 자기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해서 계속 미안해해요. 직접 뭔가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거죠. 그냥 하게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함우민은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하지만 저녁 시간이 되도록 하지율이 나타나지 않자, 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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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감시 카메라를 보면, 하지율 씨와 유소린 씨는 쓰레기 수거 차량을 통해 밖으로 실려 나간 것 같습니다.”비서의 보고가 끝나자, 함우민의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가셨다.함우민은 자신을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이 병원은 전부 자기 손 아래에 있으니, 최소한 여기만큼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손형원이 이런 비열하고 더러운 수를 쓸 줄이야.함우민은 어지러워지는 머릿속을 억지로 정리하며 물었다.“수색 인원은?”비서가 낮게 대답했다.“이미 사람들을 쫓아가게 했습니다. 다만...”말끝을 흐리는 것 자체가,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쓰레기차로 사람을 빼돌릴 정도라면, 그쪽의 회피 능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함우민은 상처 난 몸을 이끌고 일어나려 했다.“차를 준비해. 나도 같이 나가서 찾을 거니까.”비서는 창백해진 그의 안색을 보며 조심스럽게 만류했다.“지금 상태에서 무리하시면 상처가 더 깊어집니다. 혹시라도 의식까지 잃으시면, 하지율 씨를 구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겁니다. 그리고... 고지후 씨 쪽에 알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진태환이 하지율 씨 실종 소식을 듣는다면 분명 인력을 지원할 겁니다.”함우민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안 돼. 그쪽에 알려서는 안 돼.”애초에 함우민이 하지율을 병원에 붙잡아 둔 이유부터 함우민의 사심 때문이었다.하지만 그 안에서 하지율이 사라졌다면, 그건 함우민의 관리 부실이자 책임 문제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자기 구역인 J시에서조차 사람 하나 지켜 내지 못해, 결국 고지후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그런 모습은 죽어도 용납할 수 없었다.함우민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동원할 수 있는 사람 전부 내보내. 아직 오래 지나지 않았으니 멀리 못 갔을 거야.그리고 아래 모든 사람에 전달해. 이 일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전면 비밀 유지하라고. 단 한 줄이라도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된다고.”“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비서가 급히 나가자, 함우민은 처음으로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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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주용화의 가슴 한쪽에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주용화는 곧바로 하지율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하지율은 끝내 받지 않았다.이번에는 유소린에게 전화를 했다.결과는 마찬가지였다.주용화가 몇 차례 더 전화를 걸어 봤지만 두 사람 모두 끝까지 응답이 없었다.가슴속에서 피어오르던 불안함이 점점 커져가자 주용화는 차연지에게 연락을 넣었다.차연지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지율 씨랑 소린 씨, J시에서 경기 치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이 시각에 연락이 안 되는 건, 그냥 자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지금 Z국 시간은 밤 열 시다.자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간이었다.주용화가 물었다.“지율 씨랑 유소린 씨가 어느 호텔에 묵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정확한 주소까진 몰라요.” 차연지가 답했다.“다만 지난번에 둘이 S시 들렀을 때, 유소린 씨가 그러더라고요. J시 쪽 일정은 전부 함우민 씨가 맡아서 잡아 준다고요. 궁금하시면 함우민 씨한테 직접 물어보시는 게 빠를 것 같은데요?”“알겠어요.”주용화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이어서 주용화는 함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한참 울렸지만 받는 사람이 없어 자동으로 끊겼다.함우민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주용화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설마 셋이 함께 있는 건가.함우민이 하지율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주용화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이번에 하지율이 J시로 갔으니 함우민이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리 없었다.그렇게 생각하며, 주용화는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뚜... 뚜... 뚜...여전히 받지 않았다.하지율과 유소린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에게는 전화를 반복하지 않았다.하지만 함우민까지 배려를 해 줄 이유는 없었다.주용화는 거의 집착에 가깝게 끊고 또 걸고를 반복했다.몇 통을 걸었는지 알 수 없을 즈음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수화기 너머로, 성가신 기색이 살짝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누구시죠?”“화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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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그러나 고지후에게 건 전화 역시, 아무도 받지 않았다.‘왜 하나같이 전화를 안 받는 거야.’두 번째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제야 수신음이 끊기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안녕하세요, 고 대표님 비서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고 대표님께 무슨 용무가 있으신가요?”“난 화야라고 합니다. 비서님이 절 기억할지 모르겠네요.”진태환은 원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기에 곧바로 그 얼굴이 떠올랐다.너무 눈에 띄는 인상이어서 잊고 싶어도 잊기 어려운 남자였다.“안녕하세요, 화야 씨.” 진태환이 곧장 물었다.“무슨 일이신가요?”“고지후 씨한테 볼 일이 있으니, 전화를 바꿔 주세요.”진태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고 대표님은 현재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라, 의식이 없으십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통화가 어렵습니다.”진태환은 화야한테 어디까지 알려야 할지 한순간 저울질했다.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고지후의 중상과 혼수 상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이미 최혜은과 고윤영 쪽에서 대외적으로 알린 터였다.그 말을 들은 화야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무슨 일로 그렇게까지 다친 겁니까?”진태환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곧바로 얼버무렸다.“그냥... 사고였습니다.”주용화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지율 씨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둘러대지 말아요.”“하지율 씨...?”진태환이 흠칫했다.“하지율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먼저 내 질문에 제대로 답하세요.”고지후는 의식을 잃기 전에, 하지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걸 하지율 우선으로 움직이라고 분명히 당부했었다.주용화는 하지율의 경호를 맡아 온 사람이었고, 그렇다면 지금 이 연락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진태환은 더는 숨기려 들지 않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진태환의 말을 듣는 주용화는 말이 없었다.조용한 정적이 이어지자, 진태환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화야 씨, 하지율 씨 쪽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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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하지율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손형원?”손형원은 낮게 웃었다.“하지율 씨를 이렇게 한 번 제대로 뵙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더군요. 여기까지 오는 데 참 힘이 많이 들었어요.”하지율은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축축한 지하실이나 어두운 창고가 아니었다.반듯한 대리석 바닥에 조명이 환하게 켜진 이곳은 어딘가의 고급 별장 같았다.바닥과 벽도 깨끗했고, 먼지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몇 명이 서 있었다.조금 떨어진 곳에는 유소린이 누워 있었다.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하지율은 최대한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손형원을 바라봤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요?”손형원이 느긋하게 말했다.“하지율 씨는 참 연기를 잘해요. 모르는 척 묻는 것도 능숙하고.”하지율은 더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아무리 따져 물어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연정미 씨의 일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손형원은 소파에 편히 기대앉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렇겠죠. 그렇게 영리한 분이 직접 손을 써서 증거를 남길 리가 없지.”손형원의 입가에 비뚤어진 미소가 번졌다.“그러니 다른 사람을 이용했겠죠. 본인의 손을 더럽힐 수는 없으니까.”하지율은 손형원과 말싸움을 이어 가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다.함우민 쪽에서 자신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채고 움직이기까지, 단 1분이라도 더.“이미 여러 번 설명했잖아요.” 하지율이 담담히 말했다.“연정미 씨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터뜨린다고 해서, 제게 돌아오는 이익은 전혀 없어요.”손형원이 입꼬리를 올렸다.“이익만이 다는 아니죠. 감정은요?”차가운 시선이 뱀처럼 하지율을 훑었다. 그건 독을 머금은 눈빛이었다.“당신은 연정미가 재벌 집 귀한 딸로 대접받는 게 못마땅했겠죠. 그래서 그 지위를 박살 내고 싶었을 거고. 또한 바이올린 대회에서 연정미가 당신을 이길까 봐 불안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본선 전에 기사를 터뜨려서 연정미가 무대에 설 수 없게 만든 거 아니에요? 하지율 씨,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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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결국 그 일로 연태훈 씨의 분노를 사 집에서 쫓겨났죠.”하지율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눈동자 깊은 곳에서 날 선 빛이 번쩍 스쳤다.“그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예요?”손형원이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왜요?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내서, 지율 씨 전남편이랑 주변 남자들한테 복수라도 시키려고요?”“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지율이 낮게 말했다.“다만, 그런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 믿지 말라는 뜻이에요.”손형원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혹시 지금, 연정미가 날 속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하지율이 고개를 들었다.“손형원 씨, 저는 연정미라는 이름을 먼저 꺼내지 않았어요.”하지율은 연정미가 직접 이런 얘기를 떠들고 다닌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그게 연정미가 착해서가 아니라, 너무 쉽게 들통날 거짓말이기 때문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속사정을 몰라도, 연태훈만큼은 전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연태훈이 손형원의 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연정미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아무리 부녀 사이라고 해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이런 식으로 하이현을 짓밟을 만한 사람은 연정미 말고는 없었다.이 이야기가 연태훈과 연정미의 사이를 완전히 끊어 놓지는 못하더라도 균열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물론 손형원도 그 정도 계산은 했다.하지율 앞에서 이런 소리를 떠든다고 해도, 연태훈 앞에서 똑같이 읊을 생각은 없었다.어디까지나 예전에 우연히 들은 연정미와 연정미의 외삼촌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짜맞춘 얘기일 뿐, 진위는 여전히 확인된 바가 없었다.“말장난으로 내 기분을 떠보겠다는 겁니까?”손형원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제가 연정미 씨한테 온갖 누명을 뒤집어씌워야만 속이 풀리세요?”하지율이 되물었다.손형원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오래도록 하지율을 들여다보았다.마치 가면을 벗겨 속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처럼 말이다.마침내 손형원이 입술을 열었다.“정말 교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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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손형원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이 바이올린이야 하지율 씨한테는 그냥 추억일지 몰라도, 이 주인은 연정미한테서 엄마를 빼앗은 장본인이에요. 이걸 부숴 버리는 걸로, 연정미 어머니한테 조금은 위로가 되겠죠.”어릴 때부터 단단히 단련된 몸이라 손형원의 힘은 꽤 셌다.하지율은 악기가 자신의 눈앞에서 조금씩 부서져 가는 장면을, 눈을 뜬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놔요. 제발, 놔요.”손형원에게 달려들려고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옆의 경호원들이 팔과 어깨를 꽉 붙들어 꼼짝도 못 하게 짓눌렀다.여름밤의 별은 끝내 그녀 앞에서 두 동강이 났다.잘게 부스러진 나무 조각이 바닥으로 흩어졌다.손형원을 올려다보는 하지율의 눈에 짙은 증오가 번졌다.하지만 손형원은 그런 눈빛은 수없이 받아 본 사람이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더 즐기는 편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손형원이 환하게 웃었다.“당신 머리에 총을 대고 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결국 바이올린이 목숨보다 더 중요했네요.”하지율의 눈가에 뜨거운 물기가 차올랐다.하지만 하지율은 끝까지 이를 악물고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으려 버텼다.약자가 흘리는 눈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하지율은 이를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형원이 웃으며 하지율을 내려다봤다.“난 또 얼마나 대단한가 했는데, 결국 자기편 들어줄 남자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었네.”하지율이 고개를 들어 손형원을 똑바로 쳐다봤다.“제가 남자한테 의지한다고요? 그럼 당신은요? 집안이랑 배경 싹 떼고 나면 뭐가 남죠? 자수성가한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잘난 척하는 건데요.”손형원이 몸을 굽혀 강아지를 쓰다듬듯 하지율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말은... 그럴듯하네요. 조금은 일리가 있어요.”손형원은 낮게 웃었다.“아쉽게도 내가 기대고 있는 배후가 하지율 씨보다 훨씬 높고 단단하다는 게 문제죠. 그래서 하지율 씨는 이렇게 내 발밑에 깔려 있어야 하고. 아,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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