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891 - Chapter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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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1화

하지율과 유소린은 오히려 가장 늦게 그 소식을 들었다.J시는 관광 도시라, 둘은 경기가 끝난 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을 식히고 있었다.그러다가 연재영에게서 전화가 와서야 하지율은 연정미의 소식을 알았다.전화기 너머 들리는 연재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아버지가 당장 들어오래.”하지율은 연재영의 말투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무슨 일 생겼나요?”연재영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더니 비웃음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몰라서 물어?”하지율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비꼬는 듯한 이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몰라요.”연재영의 음성은 더 싸늘해졌다. “지금 온라인에서 난리 났는데, 넌 하나도 몰라?”하지율의 말투도 딱딱해졌다. “온라인에서 무슨 얘기를 떠들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하지율, 네가 연기를 이렇게 잘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하지율은 더 이상 말장난을 할 생각이 없어서 전화를 확 끊어 버렸다.뚝 끊긴 통화를 바라보던 연재영은 잠깐 어이가 없었다.다시 걸었지만 하지율은 받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하자, 하지율은 아예 연재영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몇 분 후, 하지율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고지후였다. 하지율은 화면에 뜬 이름을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지율아, 괜찮아?”“괜찮아. 무슨 일 났어?”하지율이 아직 모른다는 게 의외였던지, 고지후는 잠시 말을 멈췄다.하지만 고지후는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상황을 전했다.“연정미가 사생아라는 얘기가 온라인에서 크게 터졌어. 장인어른이랑 네 어머니, 그리고 연정미 어머니 일까지 다 파헤쳐졌고, 장인어른의 젊은 시절 첫사랑 얘기까지 다시 끄집어냈어. 연경 그룹 쪽 주가도 이 일로 인해서 크게 손해를 봤고. 지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연씨 가문을 비웃는 중이야.”고지후는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다 뺀 채 지극히 객관적으로만 말했다. 그제야 하지율은 왜 연재영이 그렇게 흥분해 있었는지 이해했다.고지후가 다시 물었다. “지율아, 이거 네가 한 일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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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연정미의 갑작스러운 기권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벗어났다.기껏해야 압박을 견디지 못해 기권할 수도 있겠다고들 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른 줄은 몰랐다.겨우 한 경기만 치렀을 뿐인데. 조금도 더 못 버틸 상황이었나?온라인에서는 댓글부대가 분위기를 틀어쥔 탓에, 연정미가 무엇을 선택하든 욕을 피할 길이 없었다.단성훈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댓글들을 보다 못해 직접 나섰다.별도의 부계정도 쓰지 않았다. 본인의 본계정을 사용하여 한 네티즌을 정면으로 받아쳤다.“너희 같은 loser들은 연정미가 예쁘고 유능하고 집안 좋다고 질투하는 거지? 너희가 아무리 물어뜯어도, 평생 연정미 발끝도 못 따라갈 거야.”이 한마디가 곧장 민심을 자극했다.여론몰이 중인 댓글 알바가 적지 않다고 해도, 결국 다수는 일반 네티즌들이었다.“연정미를 질투한다고? 사생아를 누가 질투해? 웃기지 마. 우리 다 평범한 가정의 자식들이야. 그런 걸 왜 부러워해?”“연정미 엄마는 불륜녀의 모범이지. 자기 경험으로 증명했잖아. 불륜녀의 최종 목표는 사생아를 귀한 영애로 키우는 거라고 말이야. 정작 진짜 영애는 집 밖으로 내몰리고 떠돌며 살았고.”“제보에 따르면, 예전에 연태훈이 기억을 잃고 연정미 엄마랑 잘 먹고 잘살고 있을 때, 연경 그룹을 혼자 지킨 사람이 하이현이었다더라. 끝내 두 모녀는 집에서 쫓겨났고, 그런데 왜 연결 그룹 지분에 불륜녀 딸 몫이 끼어 있대? 진짜 자존심이 있다면, 본처가 일군 회사를 내려놓던가.”“연태훈, 하이현을 볼 면목이 있어? 하이현이 겨우 지켜낸 회사를 불륜녀 딸에게 넘기다니!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어!”온라인의 화살은 오히려 연태훈을 더 세게 겨눴다.단성훈의 발언은 역효과만 낳았다....M국, 연씨 가문연상진이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밖에 나갔다가 찌푸린 얼굴로 들어오는 연상준이 보였다.연상진은 연상준의 낯빛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물었다. “연상준,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그 이씨 가문 아들 기억나?”“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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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3화

강병주는 강씨 가문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은 배우고 단련하는 단계였다.이런 큰 계약은 여전히 강수로가 직접 맡았다.연씨 형제 둘을 보자, 강수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 낯빛이 좋지 않군요. 잠을 못 잔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요?”두 형제의 낯빛이 바로 굳어졌다.어젯밤 확인해 보니, 연정미 일은 Z국에서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진 상태였다.강병주는 어릴 때부터 Z국에서 자랐고, 그쪽과 아직도 연락이 닿을 것이다.이 일을... 강수로가 모를 리 없었다.강수로는 가볍게 웃더니 두 사람을 더 자극하지 않고 곧 자리를 떴다.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연씨 형제와 사이가 좋지 않던 자제들이 신이 난 얼굴로 다가왔다.“어이, 여기 연씨 가문 도련님들 아니야? 어휴, 연씨 가문엔 인재들이 줄줄이구먼. 여자들은 서로 먼저 연씨 가문으로 시집가려고 난리고, 남자들은 연정미랑 결혼하려고 목표 세우고 피땀 흘리고. 듣자 하니 손씨 가문의 가주 손형원도, 연정미한테 걸맞아지려고 힘없는 사생아에서 가주 자리까지 기어올랐다며? 연정미를 건드리기만 했다간, 인간 취급 못 받게 만들어 준다지? 이야, 연정미의 매력, 거 참 정말 대단하네.”입으로는 치켜세우면서도, 말투는 비아냥거려 듣기가 거북했다.다른 한 명이 또 웃으며 거들었다.“전에는 나 같은 사람은 연정미 같은 여신을 감히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나도 기회가 있나 봐?”“생각지도 못했네, 당당한 일류 명문 아가씨가 사실은 사생... 악!”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상진이 뛰어들어 주먹을 날렸다.“닥쳐!” 연상진의 표정은 아주 사나웠다. “연정미를 다시 모욕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뺨을 감싼 남자가 비웃었다.“모욕? 나는 사실만 말했어! 지금 다들 아는 사실인걸. 너희는 같은 아버지를 둔 이복남매면서, 친여동생은 미워하고 연정미만 보물처럼 떠받들지. 연정미의 친엄마 때문에 너희와 너희 어머니가 떨어져 살았는데 말이야. 복수는커녕 원수를 친동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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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화

연씨 형제 쪽이 집단 조롱을 받는 동안, 연태훈 쪽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면전에 대고 비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Z국에 있는 동안 연태훈은 며칠 내내 끝도 없는 전화 세례를 받았다.온라인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캐묻는 전화.풍류를 즐길 줄 안다며 비아냥거리는 전화.꽤 비밀을 잘 숨겼다며 빈정거리는 전화까지, 별별 소리가 다 몰려왔다.대부분은 연태훈의 처지를 구경거리로 삼는 전화였다.연태훈은 분통이 터져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 버렸다.지금의 연씨 가문은 마치 동물원에 끌려 나온 곡예단 같았다. 누구나 멋대로 품평할 수 있고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었다.연태훈은 낯빛이 굳은 연재영을 돌아보았다. “하지율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나?”연재영이 시간을 확인했다. “타고 있는 항공편이 곧 착륙할 겁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도착해요.”사태의 전말을 알게 된 하지율은 결국 연재영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이건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이번 일은 파장이 너무 커서, 하지율이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곧장 배후로 지목되는 수준이었다.하지율은 대회 휴식기에 맞춰 비행기를 타고 S시로 향했다.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유소린에게 말했다. “원래면 커리어 하이가 시작돼야 하는 타이밍인데, 재수가 없네. 별일도 아닌 걸로 누명을 뒤집어쓰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유소린이 미안해했다. “지율아, 미안. 지난번에 내가 괜히 입을 놀렸어.”며칠 전, 온라인에는 유소린이 세 여자 앞에서 연정미가 사생아라고 말한 영상이 떠올랐다.혹시 그 일 때문에 하지율에게 큰 화를 끼친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다.생각해 보면 하지율이 그때 말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건 현명한 판다이었다.연예인의 말 한마디는 곧 족쇄와도 같다. 그런 하지율의 곁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아무 말이나 꺼내선 안 된다.이번에 연정미 사건이 폭로된 뒤, 유소린은 잠깐 속이 시원했지만 곧 끝없는 불안에 휩싸였다.연씨 가문의 한계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연정미가 아무리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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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5화

손형원은 전설이라 불러도 좋은 사람이었다.권력도 세력도 없이, 게다가 사생아라는 꼬리표를 단 채, 짧은 시간에 손씨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올랐다는 건,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물론 손형원이 쓰는 수단은 지독하리만큼 거칠었다.고지후의 얼굴에는 보기 드물게 어두운 기색이 어렸다.“지율아, 연정미가 사생아라는 걸 터뜨린 건, 반드시 누군가가 뒤집어써야 할 일이야. 이 사건을 폭로한 사람을 못 찾으면, 네가 아주 위험해져. 나한테 생각이 있어. 일단 같이 연씨 가문으로 가자. 이 일은 내가 일단 인정하고 책임질게. 넌 윤택이 엄마니까 내가 널 위해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야.”하지율은 반사적으로 막았다.“안 돼. 손형원이 그렇게 위험하다면서. 지후 씨가 인정하면 결국 지후 씨가 위험해지는 거잖아.”그 말에, 고지후의 깊은 눈동자에 옅은 기쁨의 기색이 스쳤다.“내 걱정을 해 주는 거야? 고마워.”하지율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고지후는 표정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하지만 범임을 찾지 못하면 다들 너라고 생각할 거야. 게다가 유소린 씨도 위험해져. 손형원의 성격으로 생각해 보면, 연정미의 험담을 한 유소린을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말이야. 지금 떠도는 정보는 다 외부 플랫폼을 통해 퍼져서 범인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려.”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가장 없는 게 시간이었다.질질 끌수록 하지율에게 불리할 뿐이다.고지후는 그동안 손형원의 증오가 본인에게 쏠리게 만들 생각이었다.손형원이 자신을 겨냥해 움직이면, 당장은 하지율을 신경 쓸 틈이 없다.유소린은 그 말을 듣고 고지후를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해졌다.하지율의 절친인 만큼, 유소린의 말은 곧 하지율의 입장으로 읽힐 것이다.손형원은 분명 그 점 때문에 하지율을 향해 더 악의적으로 매달릴 것이다.결국 유소린이 하지율에게 짐만 얹은 꼴이었다.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안 돼. 지후 씨가 위험을 대신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고지후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묘한 온기가 배었다.“여기는 Z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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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요 며칠 손형서가 병문안 왔을 때, 연정미는 그림 이야기를 들었다.물론 손형서가, 손형원이 연정미에게 summer의 그림을 차마 내주지 못해 망설였다는 속사정을 그대로 털어놓을 리는 없었다.손형서는 말을 바꾸어 “오빠가 이 그림 속 인물이 너라는 걸 알고, 직접 소장하고 싶어 한다”라고만 전했다.하지만 사실 손형원은, 이 그림 속 뒷모습이 연정미라는 걸 처음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그저 summer의 작품을 깊이 아꼈기에 큰돈을 들여 낙찰받았을 뿐이었다.연정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형원 오빠, 이건 너무 귀해요. 제가 받을 수 없어요. 그리고 형서가 그러던데, 오빠가 이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고요.”약간 쉰 듯한 손형원의 낮은 목소리에는, 드물게 은근한 다정함이 어려 있었다.“그림은 죽은 것이고 사람은 살아 있지. 이 그림을 포기하는 게 아깝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너와 비교하면 결국 더 중요한 건 너야. 게다가...”손형원이 캔버스 속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보았다.“작가가 네 뒷모습을 이렇게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었다면, 아마 마음속으로 너를 좋아했을지도 몰라. 자기 그림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면, 그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아니겠어.”손형원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너그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를 없애 버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summer는 손형원이 사랑한 화가였다.손형원은 summer의 몇몇 작품에서, 억압되어 있는 호흡,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는 고독을 읽었다.그건 한때 손형원이 처했던 곤경과도 맞닿아 있었다.손형원은 summer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른다.손형원에게 summer는 구원이니 첫사랑 같은 존재니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다만 취향이 맞는 벗, 마음이 통하는 동료 같은 기묘한 친근함이 있었다.손형원이 summer의 그림을 쉽게 놓지 못하는 까닭은, 메마른 삶에 드물게 생긴 하나의 취미이자, summer의 화풍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었을 뿐이다.물론 손형원이 summer에게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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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7화

연태훈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겉으로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늘 온화하던 웃음은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연재영은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하지율이 들어와도 두 사람 누구도 웃는 기색은 없었다.연태훈은 그래도 억지로 한 번 웃어 보였다. “지율이 왔구나... 어라? 지후도 같이 왔네?”고지후가 담담히 설명했다. “네. 윤택이가 한동안 지율이를 못 봐서요. 오늘 돌아온다고 해서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가, 저녁에 아이와 함께 식사하려고 합니다.”연태훈이 고지후를 힐끗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도 윤택이를 못 본 지가 좀 됐어. 요즘따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네. 지후야, 왜 그렇게 오래 우리 집에 데려오질 않지? 우리 연씨 가문이 무슨 사람 잡아먹는 가문도 아니고.”고지후는 얇게 미소 지었다. “선생님, 오해십니다. 요즘 제 원수가 Z국에 들어온 것 같아서요. 혹시 아이까지 노릴까 걱정이 컸습니다. 선생님도 손자에게 무슨 일 생기는 건 바라지 않으시잖아요.”연태훈의 눈썹이 미세하게 까딱였다. 찻잔을 들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그때 연재영이 빗대듯 말했다. “공교롭게도, 윤택이가 우리 집에 안 온 지 얼마 안 돼서 연정미 일이 터졌네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지후 씨가 일부러 판을 짠 줄 알겠습니다.”고지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윤택이와 얽힌 관계를 생각하면, 비록 혈연은 아니라도 우린 가족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죠. 연재영 씨는 왜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의심합니까?”연재영은 말의 속뜻을 모를 리 없었다. 더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로 던졌다. “당연히 의심스럽죠. 하지율의 사생아 얘기가 터지자마자, 바로 뒤이어 연정미의 사건이 공개됐습니다. 이 정도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고 볼 수밖에 없죠.”물론 고지후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했습니다”라고 어리석게 고백할 리는 없다. 고지후가 한마디, 한마디를 아껴 할수록, 오히려 하지율 편을 드는 소리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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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8화

연재영은 표정이 굳어버렸지만 고지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씨 가문의 영애라는 신분이, 고지후의 전처라는 꼬리표보다 못할 까닭이 없다.게다가 회사 주가가 빠지면 하지율에게도 득 될 게 없다.앞으로 하지율도 일부 지분을 받게 될 텐데, 연경 그룹 주가 하락은 곧 하지율의 손실로 이어진다.분노에 휩싸여 처음부터 하지율이 벌인 일이라 단정한 건, 연재영 자신이었다.어색한 기운을 거두기 위해 연재영은 일부러 태연한 척 물을 들어 한 모금 삼켰다.눈길을 옆으로 흘기자, 거실 한편의 연태훈이 보였다.하지율을 오해한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그때의 연태훈도 같은 생각이었던 듯했다.하지율은 고지후를 흘끗 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조용히 떠올랐다.예전에 임채아를 두둔하던 때처럼, 오늘의 고지후는 하지율을 감싸고 있었다.만약 아직 이혼 전이었다면, 하지율은 아마 눈물이 날 만큼 벅차올랐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기쁘지는 않았다.기쁘지 않다고 해도, 이 순간 대신 나서 주는 일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고지후가 여기까지 말해 준 이상, 굳이 앞에서 고지후의 말에 반기를 들며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문득, 정기석이 들려준 말이 머릿속에서 또렷해졌다.“지율 씨,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여주인공은 절대 남자 힘 안 빌린다고 하는데, 그런 말에 휩쓸리지 말아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 가운데 인맥이 전혀 없는 경우가 과연 있나요? 인맥이 뭔지 아세요? 필요할 때 친척, 친구, 파트너, 그리고 주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문제를 푸는 힘이에요. 남 이야기는 접어 두고, 제 이야기부터 해 볼게요. 제가 오늘의 자리에 선 건 든든한 제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도 솔직히 가문의 힘을 쓴 거예요. 제 곁의 친구도 적지 않고, 저에게 호감을 보이며 결혼까지 생각하는 유능한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분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도움을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요. 다들 성인이고, 비즈니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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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9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하지율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기감이 심장 밑에서 서늘하게 치솟아 올랐다.불안함을 눈치챈 듯, 고지후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반걸음 앞으로 나서서 하지율 앞으로 선 채 남자의 시선을 가로막았다.“손형원 씨도 여기 계셨네요?”손형원의 시선이 고지후에게 옮겨 갔다. 입가에 뜬 웃음은 차갑고 섬뜩했다.“고지후 씨가 직접 연씨 가문까지 오다니, 전처를 위해 변호하러 온 겁니까?”고지후는 담담했다. 부정하지도 않았다.“지율 씨는 윤택이의 어머니예요. 제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습니까.”고지후의 태도는 분명했다. 하지율은 자신이 지킬 사람이라는 뜻이었다.손형원은 짧게 웃고 더 말하지 않고 그저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그리고 옆에 서 있던 연재영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연재영 씨, 우리끼리 두지 말고 소개 좀 해 주시죠?”연재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손형원 씨, 이분은 우리 막내 하지율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고윤택의 아버지, 고지후입니다.”손형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외로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고지후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고지후가 마주 손을 내밀지 않을 리 없었다.“손형원 씨, 이름은 들었습니다.”손형원의 시선이 하지율에게로 옮겨 갔다.손형원이 똑같이 손을 내밀었다.“하지율 씨, 연정미한테서 자주 이름을 들었습니다. 오늘 직접 뵈니 과연 범상치 않군요.”고지후가 눈살을 좁히며 막아서려는 순간, 손형원의 눈빛이 번개처럼 매서워졌다.위험을 감지한 고지후가 하지율을 뒤로 밀려는 그때, 차갑게 윤이 난 권총 한 자루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하지율의 이마에 들이대졌다.“움직이지 마요.” 손형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누가 함부로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쏩니다.”고지후의 눈빛이 달라졌다.연태훈과 연재영은 잠시 굳어 있다가 그제야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연태훈이 분노를 터뜨렸다. “손형원, 지금 뭐 하는 짓이야?!”손형원이 말했다.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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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0화

모두가 잔뜩 긴장한 눈으로 하지율을 바라보았다.누구도 손형원이 이렇게까지 미친 짓을 벌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권총이 이마를 겨누고 있었지만 하지율은 그저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을 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겁에 질려 핼쑥해지지도 않았다.하지율이 입을 열었다. “전 아니에요.”손형원이 가늘게 눈을 치켜 떴다. “하지율 씨, 제가 아까 말했죠. 전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고.”하지율이 받았다. “저도 총을 겨누는 건 싫어해요.”손형원의 눈빛이 얼음처럼 가라앉았다. “총이 싫으면, 얌전히 내 질문에 답하세요.”하지율의 어조는 담담했다. “이미 대답했습니다. 손형원 씨가 귀가 어두워서 못 들으신 건가요? 아니면...”하지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살기 어린 손형원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제가 한 대답이 당신이 듣고 싶어 한 답이 아니라서요? 그렇다면, 손형원 씨가 듣고 싶은 답을 알려 주세요. 그대로 말해 드리죠. 아니면, 차라리 여기서 바로 쏘시든가요.”말이 떨어지자, 고지후와 연태훈, 연재영의 얼굴빛이 동시에 변했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하지율!”원래도 광기 어린 손형원을 이렇게까지 자극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손형원의 동공이 수축했다. 눈 저편으로 싸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지율, 감히 날 도발해?’손형원이 낮게 내뱉었다. “내가 못 쏠 줄 알아요?”하지율은 옅게 미소 지었다. 두려움은 전혀 티도 나지 않았다.“그럼 쏘세요.”손형원의 눈에서 냉기가 번쩍였다.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방아쇠를 당겼고, 방아쇠가 걸리는 또렷한 소리마저 들렸다.연태훈이 호통쳤다. “손형원, 이제 그만해! 여긴 연씨 가문이다. 네가 함부로 설치는 곳이 아니야!”손형원은 못 들은 척, 총구를 그대로 하지율에게 고정했다.손형원이 낮게 웃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소원을 들어줘야지.”손형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제 막아야 했다. 고지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으며 몸을 던지려는 순간, 계단 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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