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921 - Chapter 930

1059 Chapters

제921화

“우리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너도 대충 알잖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안 건드리는 타입이지. 그때 summer는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라, 그림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 덕분에 오빠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을 직접 사 볼 수 있었던 거지. 나중에 오빠가 큰돈을 들여 summer 작품을 사 모으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그런 초창기 인연에 대한 보답 같은 거야.”손형서는 그렇게 말하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연정미를 바라봤다.“근데 참, 첫사랑이 대단하긴 하네. 우리 오빠가 널 위해서라 몇 년 동안이나 매달리던 취미도 쿨하게 접을 정도니까.”연정미는 벽 한가운데 걸려 있는 그림을 올려다보았다.“내가 이걸 사고 싶다고 한 건 솔직히 말해서... 등 돌리고 있는 뒤태가 좀 나랑 닮아 보여서였어. 하지만 뒷모습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각도나 옷차림 조금만 겹쳐도 비슷해 보일 수 있잖아. 어쩌면 이 그림 속 사람은 애초에 내가 아닐 수도 있고.”손형서가 말했다.“아니어도 상관없어. 오빠는 이 그림이 너라고 생각해서 낙찰받은 게 아니니까.”하지만 손형서는 혹시라도 연정미가 이상하게 오해할까 싶어 서둘러 말을 이었다.“정미야, 우리 오빠가 summer 작품 모으기 시작한 건, 이 그림이 나오기 전부터야. 저 뒷모습을 보고 화가를 알게 된 것도 아니고, 그림 속 사람이 너라고 착각해서 좋아한 것도 아니야.”설령 이게 그냥 풍경화였어도, 손형원은 똑같이 비싼 돈을 내고 샀을 거다.무엇보다 손형원은 처음에 이 그림을 봤을 때 저 뒷모습을 연정미라고 여긴 적조차 없었다.어쩌면 손형원은 그림 속의 뒷모습이 연정미를 닮았다는 것도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다.그저 summer의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와 구도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다.물론 연정미 말대로 연정미가 아닐 수도 있다.하지만 아니면 어떤가.그림이 누구를 닮았든 아무도 그걸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뒷모습 하나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고.혹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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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2화

정기석은 망설이지 않고 공항을 나가지도 않은 채, 곧장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J시로 가는 가장 빠른 전용기를 준비해. J시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불러 모으고. 그리고...”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함우민의 최근 행적을 전부 조사해.”전화를 끊은 뒤, 정기석은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기더니 바로 함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함우민은 받지 않았다.정기석에게는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전화를 붙들고 기다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정기석은 곧장 비행기에 올라 J시로 향했다.다행히 J시와 S시는 그리 멀지 않아 비행시간은 두 시간 남짓에 불과했다.정기석이 J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S시로 날아오는 동안, 비서는 함우민과 하지율의 최근 일정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보고했다.하지율이 대회에 참가한 것 자체는 이상할 것 없는 일정이었다.하지만 함우민이 얼마 전 습격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기록이 눈에 띄었다.J시는 함우민의 구역이라 캐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고, 정기석이 손에 넣은 자료는 완전하다고 보기 어려웠다.정기석은 그 서류들을 넘겨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함우민 같은 사람이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하지율이 지금 연락 두절인 건 사실이지만, 화야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지율의 실종이 함우민과 연관돼 있다고 확신하는 걸까.정기석이 화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받지 않았다.정기석은 화야 역시 비행기를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으리라 짐작했다.어디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도착할 수 있었다면 정기석에게 먼저 전화를 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함우민...”정기석이 낮게 그 이름을 읊조렸다.함우민이 하지율을 도왔던 일은 정기석도 알고 있었다.하지율은 그 일을 정기석에게 숨기지 않았다.직접 마주한 적은 많지 않았지만, 하지율과 유소린의 말을 종합해 보면, 둘 다 함우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정기석도 몇 차례 스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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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함우민은 몸의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직접 나섰다.하지만 손형원의 도피 능력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병원을 빠져나간 뒤로, 뒤를 쫓을 만한 흔적은 단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시간이 지날수록 함우민의 불안은 서서히 커져만 갔다.지금은 하지율이 사라진 걸 알아챈 지 이미 네 시간도 넘은 시점이었다.실종이 확인되자마자 J시는 전면 통제에 들어갔다.들어오는 건 괜찮아도 나가는 길은 전부 봉쇄됐다.손형원이 하지율과 유소린을 데리고 J시 밖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그러니 하지율을 찾아내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었다.그렇게 생각해 보아도, 함우민 가슴속의 초조함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손형원이 제 눈앞에서 감히 사람을 납치해 간 건 함우민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이자 노골적인 도발이었다.함우민은 창밖에 내려앉은 짙은 어둠을 바라보았다.검게 그늘진 차창에, 아무 표정도 없는 자신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함우민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매서운 살기가 서늘하게 번뜩였다.만약 손형원을 찾아낸다면, 이 도시를 살아서 떠나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운전기사는 함우민을 태운 채, 의심스러운 구역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밤거리를 달렸다.함우민은 부상을 입은 몸이었다.기력이 부족한 탓에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갑작스러운 브레이크에 차체가 크게 흔들리자 함우민이 놀라서 화들짝 눈을 떴다.그는 눈을 치켜뜨며 낮게 물었다.“무슨 일이야?”운전기사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함 대표님, 차들이... 우리를 둘러쌌습니다.”J시에서 함우민의 차를 감히 가로막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함우민이 평소 온화해 보인다고 해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니까 말이다.함우민은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문을 밀어 열었다.운전기사가 황급히 말렸다.“함 대표님, 아직 다치셨는데, 이 사람들이 혹시라도 대표님을 해치려는 거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함우민은 이미 차에서 내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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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4화

정기석은 함우민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마치 함우민이 내뱉는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가늠하려 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함우민이 누구인가.그 정도 시선에 속내를 들킬 인물이 아니었다.결국 정기석은 함우민의 표정에서 아무런 단서를 읽어내지 못했다.질질 시간 끌 여유도 없었기에, 빈말을 주고받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함우민 씨, 지율 씨는 J시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모를 리 없죠. 지율 씨는 당신을 깊이 믿었고, 늘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나도 믿고 싶습니다. 당신 역시 지율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함우민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으나, 곧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았다.함우민이 자기 구역인 J시에서 하지율을 찾지 못하는 마당에, 정기석이 나선다고 해서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오히려 정기석이 먼저 찾아내기라도 하면, 그거야말로 함우민이 무능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꼴이었다.함우민이 입을 열었다.“지율 씨가 J시에 온 뒤로, 제가 모시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얼마 전 제가 습격을 당해 입원했고, 계속 요양 중이라, 그 이후로는 지율 씨와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그러다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함우민은 시선을 들어 정기석을 바라보았다.“그러고 보니, 제가 알기로 정기석 씨가 늘 사람을 붙여서 지율이를 보호해 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사람들도 지율 씨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겁니까?”정기석의 검은 눈동자가 더 어두워졌다.S시에서 화야 씨에게 전화를 받은 직후, 정기석은 곧장 그 경호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었다.그러나 돌아온 것은 끝없는 무응답뿐이었다.경호원들까지 동시에 연락이 두절됐다면, 하지율이 단순히 연락만 끊긴 게 아니라,정말로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정기석은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함우민 씨. 지율 씨의 실종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지율 씨가 손형원을 건드린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손형원이 지율 씨를 데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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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5화

유소린은 손형원의 싸늘한 시선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두려운 감각이 뼛속까지 치고 올라왔다.눈앞의 남자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그래도 옆에 붙들려 있는 하지율이 눈에 들어오자, 유소린은 공포를 꾹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연정미를 욕한 사람은 나예요. 지율이는 상관없어요. 화낼 거면 나한테 화내고, 지율이는 놔줘요. 지율이는 연씨 가문 사람이니 감히 지율이한테 손대면 연씨 가문에서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평생 연정미랑 결혼할 생각을 접어야 할 거예요!”손형원은 그 말을 듣고서야 흥이 난 듯 미소를 짓더니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치며 말했다.“역시 유소린 씨. 말발은 대단하네. 탑급 매니저 소리를 괜히 듣는 게 아니야. 나더러 당신 쪽한테 화 풀라고 했으니, 그 부탁은 들어줘야지.”손형원은 옆에 서 있던 부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단보현은?”부하가 고개를 숙였다.“이미 도착했습니다. 지금 문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손형원이 옅게 턱을 끄덕였다.“들어오라고 해.”얼마 지나지 않아, 단보현이 급히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손형원의 얼굴이었다.“손형원, 급히 부르길래 큰일 난 줄 알았네. 연정미 일 때문이야? 설마...”단보현이 거기까지 얘기하고 우뚝 멈춰 섰다.시선이 하지율과 유소린에게 닿는 순간, 단보현의 미간이 씰룩였다.“진짜로 잡아 왔네?”고지후와 함우민이 동시에 보호하고 있던 하지율을, 손형원이 이렇게까지 해서 납치해 왔다니.그 수고와 광기를 생각하면, 분명 보통 일은 아니었다.손형원이 느긋하게 말했다.“듣자 하니, 너도 하지율하고 조금 얽힌 게 있다면서.”단보현이 입꼬리를 얕게 올렸다.“별것 아니야. 그냥 작은 다툼이 있었을 뿐이지. 아버지가 얽혀 계신데, 내가 어떻게 하겠어.”그 말은 겉으로만 들으면 하지율을 두둔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단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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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6화

손형원이 비죽 웃으며 말했다.“나쁘지 않은 생각이네.”단보현은 유소린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더 잔혹하게 짓밟을 수 있을지 궁리를 시작했다.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꽂히자 오싹한 소름에 유소린의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 갔다.이가 달달 떨릴 정도로 두려웠지만, 그래도 유소린은 용기를 짜내어 입술을 열었다.“그, 그렇게까지 하겠다면, 지율이는 놓아줘요. 지율이는 잘못한 게 없어요.”손형원은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여유롭게 유소린을 훑어보았다.“보기보다 패기 있네. 다만, 조금 이따가 그렇게 버틸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한데.”손형원은 시선을 돌려 담담하게 명령했다.“들어오라고 해.”단보현이 흘끗 손형원을 바라보았다.아직 어떻게 손을 쓸지 생각도 못 했는데 벌써 사람을 부르다니.그 순간, 단보현은 깨달았다.손형원이 단보현을 이 자리에 부른 건, 직접 손에 피를 묻히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이 더러운 짓을 하기 위함이라는 걸 말이다. 하지율에게 손을 대기에는 아직 이것저것 계산해야 할지 몰라도 유소린 정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손형원이 부른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러자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단보현조차 잠시 말을 잃었다.“이게 뭐야.”안으로 들어온 건 여러 명의 남자들이었다.대충 세어 봐도 열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나이도 제각각이어서 앳된 얼굴에서부터 중년의 남자들까지 뒤섞여 있었다.생김새와 체격도 가지각색이었다.눈에 띄게 준수한 남자도 있었고, 평범한 얼굴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할 만큼 더러운 인상도 있었다.단보현은 도무지 손형원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해, 눈빛으로 조용히 물었다.손형원은 그 시선을 무시한 채 그대로 유소린 쪽을 바라보았다.“유소린 씨가 직접 말했지. 가장 친한 친구 대신 벌을 받겠다고. 그럼 시작해 보자고.”유소린의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뒷걸음질 쳤다.“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손형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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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7화

“그때가 되면 난 연경 그룹으로 들어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하지율의 눈동자가 손형원을 향했다.“손형원 씨 덕분에 한 가지 확실히 배웠어요. 여자로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결국 권력과 영향력이더라고요. 내가 연경 그룹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연정미를 회사에서 내쫓는 거예요. 연경 그룹은 우리 엄마가 온몸으로 지켜 낸 회사예요. 누구든 들어올 수 있지만, 연정미만은 안 돼요. 그때가 되면, 연정미의 야망이니 꿈이니 하는 건 전부 부서지고, 남자한테 매달려야만 숨 쉴 수 있는 애처로운 사람으로 남겠네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짝.손형원의 손바닥이 하지율의 뺨에 사정없이 꽂혔다.손형원은 혐오를 숨기지 않은 눈빛으로 하지율을 내려다보았다.“하지율. 결국 본색을 드러내네. 내가 뭐라고 말했어. 연정미를 해치는 놈이 있다면, 그게 가족이어도 봐주지 않겠다고.”얼마나 거칠었는지, 하지율의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고, 느슨하게 묶여 있던 머리칼이 흐트러져 쏟아졌다.맞은쪽 볼은 금세 부어올랐고, 입술 끝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지율아!”유소린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하지율은 한참이나 숨을 고른 끝에 겨우 목소리를 냈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날 죽여. 안 그러면, 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연정미를 편하게 두지 않을 거야.”손형원의 눈빛에 섬뜩한 살의가 떠올랐다.“내가 진짜 널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손형원이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단보현이 가볍게 팔을 뻗어 손형원을 막았다.“손형원. 저 여자가 일부러 자극하는 걸 수도 있어.”아무리 성질이 더러워도, 손형원 역시 함부로 하지율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율이 죽는 순간, 그 이후의 파장은 계산조차 하기 어렵다.무엇보다 연정미가 절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얼마 전만 해도 연정미는, 이 일은 하지율과 상관없다며, 오해하지 말라고 손형원을 말렸었다.손형원은 그런 연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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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8화

유소린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됐다.“지율아, 안 돼! 그냥 내가 할게, 내가 당하면 돼! 난 네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 거, 하나도 원하지 않아!”절규가 터져 나오자 손형원이 얼굴을 찌푸렸다.“시끄럽네.”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곧바로 눈치를 채고, 유소린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유소린은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두려움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그 자리를 증오가 집어삼켰다.유소린은 이를 악물고 손형원을 노려보며, 평생 입에 담아 본 적도 없는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그러나 그 독설에도 손형원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힐끗 돌아보는 일조차 없었다.손형원에게 유소린은, 분노를 들이밀 자격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그때, 맑고 짧은소리가 공기 속을 가르며 터졌다.뚝.순간,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고요해졌다.유소린은 욕설을 멈추고 얼어붙은 채 하지율을 바라봤다.단보현조차 무심코 고개를 돌려 하지율을 다시 보게 됐다. 그리고 약간 놀란 시선을 보냈다.‘이 여자는, 진짜로 하는구나.’정말로 자기 손을 깨부수는 선택을 했다.이 정도의 의지력이라면, 언젠가 연정미에게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그러니 손형원이 미리 싹을 잘라 두려는 것도 이해가 갔다.하지율의 얼굴은 핏기가 전부 빠져나가 종이처럼 하얗게 질렸다.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 아래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억눌러 삼킨 신음이 목구멍 깊숙이서 흘러나왔다.손에 들고 있던 망치는 극심한 통증과 바닥으로 떨어졌다.눈앞이 까맣게 잠식해 들어오며 의식이 흔들렸다.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순간 깊고 낮은 목소리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듯 들렸다.“하지율 씨.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야. 다음 손가락.”열 손가락이 심장과 이어져 있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통증이 뇌를 짓눌러, 몸을 숙여 망치를 다시 드는 일조차 불가능했다.손형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조금도 연민을 보이지 않았다.“버티기 힘든가 보네. 그럼 잠깐 쉬게 해 줘야지.”손형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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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9화

이렇게까지 된 판에, 하지율은 아직도 아까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 하고 있었다.손형원 같은 사람은, 마음에 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는 유형이다.하지만 적에게 한 약속은, 그저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장난일 뿐이었다.손형원이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하지율이 먼저 나서는 모습이 뜻밖이라는 듯, 묘한 흥미가 스친 표정이었다.손형원은 일부러 고민하는 시늉을 하며 몇 초간 뜸을 들였다.“그런데 말이야, 하지율 씨가 직접 하지 않으면, 우리가 힘없는 약한 여자 하나를 집단으로 괴롭힌 것처럼 보이지 않겠어? 나중에 어디 가서 우리가 한 짓을 떠벌리면, 좀 귀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불안 한 줌 없는 태도였다.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하지율은 단번에 알아챘다.손형원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지율이 직접 하게 하는 것이 아닌, 하지율의 손을 끝까지 부숴 버리는 데 있었다.핏기 하나 남지 않은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럼 당신 생각은 뭔데.”손형원이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몸도 성치 않은데, 괜히 무리시킬 순 없지. 나도 배려는 할 줄 아니까. 이렇게 하지. 방식을 조금 바꿔 보자.잠시 후에 내가 네 손가락을 하나씩 부술 거야. 비명이 나올 때마다, 네 친구한테 붙을 남자를 한 명씩 정해 줄게. 어때, 재밌지 않아?”그 말을 듣는 순간, 단보현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극심한 고통 앞에서 비명을 참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게다가 비명은 몸이 충격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쥐어짜 내는 행동이기도 했다.그걸 틀어막겠다는 건 사람을 산 채로 박살 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열 손가락에서 치솟는 통증은, 다른 상처와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고통이었다.단보현은 문득 손형원이 정말 선을 넘을까 봐 불안해졌다.“손형원, 그만하지. 어차피 할 말큼 다 했잖아. 지금 상태라면 앞으로 바이올린도 제대로 못 켤 거고. 하지율이 사라진 지도 꽤 됐어. 바깥에서는 이미 난리가 났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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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0화

고통이 극에 달하자, 하지율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이마와 턱에 맺힌 굵은 땀방울들이 끊어진 실처럼 바닥에 쏟아졌다.의식이 뚝 끊기는 듯 멀어졌다가, 정말로 이대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스쳐 갔다.단보현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서둘러 나섰다.“손형원, 됐어. 이러다가 사람 죽게 생겼어.”손형원의 입가에는 잔혹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그는 발을 치우고 하지율에게 숨 돌릴 틈을 던져 주는 듯한 시늉을 했다.“하지율. 아직 재미도 못 봤는데, 이렇게 빨리 쓰러지면 곤란하지. 네가 죽어 버리면, 뒤에 준비한 것들은 전부 네 친구가 감당해야 하잖아.”단보현의 표정이 굳어졌다.“손형원, 이 정도면 됐어. 상대는 여자야. 손을 못 쓰게 만들 거면, 사람 시켜서 한 번에 잘라 버리면 되지, 이렇게까지 가지고 놀 필요 있어?”손형원은 느릿하게 손을 뻗어, 칼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공포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줘야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않지. 이번에 확실히 찍어 눌러서, 감히 덤빌 생각 자체를 꺾어 놔야지. 제대로 길들이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심해질 거야.”단보현은 그 말을 들으며 손형원이 진짜 미쳤다고 느꼈다.이제 와서 단보현은 손형원의 손을 잡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하지만...”말을 다 잇기도 전에 숨을 고르던 하지율 쪽으로 손형원의 발이 다시 올라갔다.이번에도 그대로 내려찍더니, 검고 광이 도는 구두 끝으로 하지율의 손 위를 한참이나 짓이겼다.보기만 해도 뼈가 저린 장면이었다.더구나 비명조차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하지율의 동공이 서서히 탁해졌다.사람이 곧 죽을 때가 되면 잊고 있던 얼굴들을 본다는 말이 떠올랐다.머릿속에 하이현의 모습이 스쳤다.함께 선율을 맞추던 강병주의 손, 같이 학교를 다니며 웃어 주던 유소린, 한 무대에서 연주하던 심다희와 팀원들의 얼굴이 이어졌다.그다음에는 고지후가 보였다.방금 세상에 나온 고윤택을 안고 서 있던, 그 익숙한 옆모습까지.의식이 어지러워지면서,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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