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권세를 품은 용대비: Kabanata 21 - Kabanata 30

100 Kabanata

제21화

정오 무렵, 예종대군이 사람을 이끌고 궁에서 하사받은 물품들을 들고 왔다. 용재혁의 아내 진씨 마님은 응접실에서 하사품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궁에서 내려온 물건들이라 그런지 다르긴 하네요. 이런 진귀한 것들은 평생 처음 봅니다.”용재혁은 그녀의 눈빛에 비친 탐욕을 보고 못마땅해하며 낮게 꾸짖었다.“자기 분수는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것들이라 해도 부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잘 확인하고 형수님께 보고드려야 하니 탐하지 마세요.”진씨 마님은 주위를 살피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몸이 안 좋다면서요? 이 많은 물건들 중 몇 개는 우리가 실수인 척 챙겨도 모를 겁니다.”그러자 용재혁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제정신입니까? 하사품은 전부 예단 목록에 올라와 있는 물건들입니다. 형수님을 바보로 아십니까?”진씨 마님은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토했다.“어차피 지안이는 형수님의 친딸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제가 형수님보다 지안이를 더 아꼈습니다. 그런데 왜 형수님께서 이 하사품들을 독차지해야 하는 겁니까?”그러자 용재혁은 비웃으며 쏘아붙였다.“아꼈다고요? 웃기지 마세요. 괴롭힌 날이 더 많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하사품들 중 일부는 혼수로 쓰일 겁니다.”“혼수라…?”진씨 마님의 눈빛이 번뜩였다.“그럼 형수님께서 몸이 편찮으신 김에 제가 그 혼수 준비를 맡으면 어떨까요?”용재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그러시는 겁니까?”“그건 제 사정이고요. 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진씨 마님은 교활하게 웃으며 곧장 큰 마님의 뜰로 향했다. 그녀는 연국당으로 가 큰 마님께 청을 드렸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유신이 아프다니 네가 준비하거라. 혼수라면 그 품새에 흠이 없어야 해. 그러니 허술하게 해서는 안 된다.”“예, 어머님. 걱정 마세요.”진씨 마님은 명을 받자마자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떠난 뒤 곁에 있던 유모가 조심스럽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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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곽 나인은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곧 중전으로 입궁해 순장당할 여인은 겉보기만큼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곽 나인은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저 아가씨는 대비마마께서 친히 명을 내려 책봉하신 중전마마시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지.”진씨 마님은 곧장 되받아치지 못하고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허나… 하사받은 예물을 전부 혼수로 보내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예로부터 그런 규례는 없었습니다.”그녀는 이미 몇 가지 귀중한 예물은 따로 숨겨 두었다. 마치 중전의 혼수인 것처럼 말하며 목록에 기재했지만 정작 용지안에게 전해지지 않을 물건들이었다. 어차피 저 아이는 곧 순장하게 될 몸인데 죽은 사람의 혼수를 누가 일일이 따질까 싶은 얄팍한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곽 나인은 가차 없었다.“규례란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네도 분간할 줄 알아야지. 그 예물들이 하사품인지 예단인지를 말이다.”곽 나인은 단호히 말을 마치고 안으로 걸음을 돌렸다.“중전마마의 뜻을 따르거라.”그 목록에 기재된 물품들은 지나치게 소박했다. 이런 박한 태도가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용가에게 돌아갈 것이다. 진씨 마님은 이를 갈며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그녀는 대기하고 있던 길상과 여의를 보게 되었고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네 주인께 전하거라. 예단을 전부 혼수로 낸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곽 나인은 내실로 들어섰다. 용지안은 다리를 꼰 채 단정히 앉아 있었고 곽 나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 혹시 어젯밤 누가 다녀가지 않았습니까?”용지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누가?”곽 나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큰 마님께서 저를 불러 차를 내주셨는데 돌아와보니 계단에 피가 낭자하더군요. 혹 무슨 변고가 있었나 싶어...”“큰 마님의 차는 입에 맞던가?”용지안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궁에서 살아온 세월 내내 그녀는 한 번도 지금처럼 말을 잃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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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곽 나인이 연국당에 이르렀을 때 큰 마님은 마침 볕 좋은 정원에 나와 해를 쬐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몸을 굽히며 말했다.“큰 마님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어제 받은 물건은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은화를 꺼내어 큰 마님의 탁자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큰 마님은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더니 담담히 입을 열었다.“차 한 잔 값이라고 했을 텐데요.”곽 나인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답했다.“감사합니다, 큰 마님. 허나 저는 이걸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그녀는 다시 한번 예를 갖춘 뒤 곧장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저게 무슨 뜻일까요?”큰 마님은 은화를 가만히 바라보다 슬며시 웃었다.“곧 깨닫게 될 게다. 오늘 내 호의를 거절한 일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를.”그녀는 전하에게 직접 정 2품 작호를 받은 여인이었고 전장을 누빈 공신 집안의 안주인이었다. 그러니 주나라 안에서 그녀의 체면과 호의를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곁에 있던 유모는 문득 낮은 소리로 물었다.“듣자 하니 마님께서는 지난밤 지안 아가씨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다지요? 예전 같았으면 절대 그냥 넘기실 분이 아닌데 말입니다.”큰 마님은 나무로 된 의자의 팔걸이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나도 무척 궁금하구나.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유모는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조용히 물러났다.“그럼, 제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그 시각, 최유신은 전날 밤의 충격으로 병을 얻어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용우천은 밤새 홍화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새벽에 조정으로 향했기에 최유신의 병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계속 헛소리를 해대자 백이가 재빨리 의원을 불러와 약을 지었고 다행히도 효과가 있었는지 최유신은 점점 의식을 되찾았다. “마님,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하지만 최유신은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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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백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최유신의 얼굴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다면 다행이고.”그때 백이의 눈빛에는 서늘한 기색이 번졌다.“하지만 마님, 그 계집이 감히 주인 행세를 꿈꾸다니요.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최유신은 조용히 비웃었다.“그래. 그렇다면 그 아이의 망상은 내가 직접 이루어주지.”“마님, 그건…”백이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그렇게 쉽게 끝낼 일이 아닙니다.”“쓸데없는 말이 많구나.”최유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내리꽂히자 백이는 어깨를 움츠리며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예.”최유신은 이제 홍화 얘기에 흥미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지안이 쪽에서는 무슨 소식 없느냐?”“오늘 둘째 마님께서 다녀갔답니다. 혼수 목록을 보여주었는데 지안 아가씨께서 만족하지 않아 하는 눈치였답니다. 그래서 곽 마님께서 직접 나서서 면전에 대고 구박을 했더니 씩씩거리며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최유신은 문득 전날 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싸늘한 기운과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다시금 밀려들었다. 혹시 그 아이에게 양동매의 넋이 깃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상식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의 기이한 상황은 생각하면 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백이야, 만안사로 사람을 보내 스님 한 분을 모셔 오도록 하거라.”“갑자기 스님은 왜요?”백이는 의아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최유신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예, 알겠습니다.”백이는 순순히 물러서려다 다시 되돌아보며 물었다.“사람들이 스님을 부르는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최유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대답했다.“전하의 평안을 빌기 위함이라 하거라.”“알겠습니다.”백이는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물러났다. 최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녀 청이가 들어와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그녀는 무심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세월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문득 전날 밤 양동매가 남긴 말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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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최유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역시 네 손길이 더 익숙하구나. 이리 와서 내 머리를 좀 빗어주렴.”홍화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능숙한 손길로 최유신의 머릿결을 매만졌다. 청이는 옆에서 살며시 빗을 건넸지만 홍화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굳이 빗질할 필요가 없다. 마님의 머릿결은 곱고 매끄러우니 이렇게 비녀만 올려도 아름답단다.”그 말에 최유신은 가볍게 웃었다.“그래?”“그럼요.”홍화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며칠 후 여유가 생기면 염색하는 것도 도와드릴게요. 요즘 흰머리가 꽤 많이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그 말과 함께 그녀는 구리거울 속 최유신을 향해 은근히 도발적인 눈빛을 흘겼다. 그녀의 말속에는 조롱인지 도발인지 모를 기색이 담겨 있었으나 최유신은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어쩌겠느냐?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 젊은 너희들과는 다르지.”“무슨 말씀이세요? 마님께서는 저희 어머니와 동갑이신데도 더 젊어 보이세요.”홍화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청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얘졌다. 그녀는 몰래 손짓으로 홍화를 말리려 했지만 홍화는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어갔다.“다만 눈가 주름이 좀 보이긴 하네요. 청아, 백출 가루 좀 갖고 올래?”청이는 갈등이 섞인 눈빛으로 홍화를 바라보았다.정말 저 아이가 장군의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것일까? 이 집안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장군이 아니라 이 여인인데. 최유신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홍화 말대로 하거라.”청이는 조용히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더니 잠시 후 계란 흰자에 꿀이 섞인 백자그릇을 들고 돌아왔다.“계란 흰자에 벌꿀을 섞었습니다. 지금 발라드릴까요?”최유신이 대답하기도 전에 홍화가 나서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물론 지금 발라야지. 그렇죠, 마님?”최유신은 눈가 주름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지.”청이는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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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천한 집안에서 굴러들어 온 계집이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다리라도 분질러 쫓아내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진씨 마님이 이를 갈며 독한 말을 내뱉자 최유신의 미간이 찌푸러지기 시작했다.“너도 용가의 사람이다. 어쩌자고 그리 잔인한 말을 하는 것이냐? 만약 그 말이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한다면 우리 집안이 어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진씨 마님은 입을 비죽이며 투덜댔다.“그게 뭐 어때서요? 계집 하나 사람 취급해 준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그런 것들은 그냥 밟아줘야 조용해지는 법입니다. 안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화를 부를 거라고요.”최유신은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복이란 건 타고나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운명은 어찌해도 바뀌지 않아.”진씨 마님은 악의에 찬 웃음을 흘리며 비꼬았다.“복이요? 웃기지 마십시오. 지안 아가씨도 그렇잖아요. 오늘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궁중에서 받은 하사품은 모두 혼수로 들고 가겠답니다. 자기가 아주 대단한 사람인 줄 안다니까요?”그 말에 최유신은 어젯밤에 벌어졌던 기이한 일들이 떠올라 다시금 등골이 오싹해졌다.“지금은 그 아이를 자극하지 말거라. 내일이면 궁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제아무리 날뛰어 봤자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이니 내버려두거라.”“그럼 혼수는요?”진씨 마님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네 뜻대로.”진씨 마님은 그 말에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서둘러 준비할게요.”최유신은 냉담한 얼굴로 덧붙였다.“부족한 것이 있다면 홍화를 시키거라. 겸사겸사 경험도 쌓게 하고.”“예. 알겠습니다.”한껏 기분이 좋아진 진씨 마님은 최유신이 뭐라고 하든 꼬박꼬박 고개를 끄덕였다.그 무렵, 곽 나인은 중전에게 하사된 물품 목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 하사품들은 형식상으로 내려진 것이었기에 최지안이 입궁함과 동시에 모두 회수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즉 다시 말해 진정한 예물이 아니었던 것이다.궁에서 내려온 모든 물품을 가져가겠다던 용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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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그 시각, 용지안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곽 나인은 단숨에 그녀를 이불 속에서 끌어내 욕탕에 밀어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용지안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뜨거운 물속에 던져졌다.최유신은 곧장 하녀들을 불러들여 용지안의 머리를 빗기고 혼례복을 입혔다. 그 소란 속에서도 그녀는 한 마디 불평 없이 마치 세상 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눈만 감은 채 묵묵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해시가 되자 예조판서와 예종대군이 도착했고 궁중의 의장대는 장군댁 문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폭죽이 울려 퍼지고 일시적으로나마 혼례를 알리는 듯한 형세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자시가 되면 입궁하여 조정 신료들과 마님들의 문안을 받아야 했기에 혼례를 맞이하러 온 일행은 곧장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지안은 꽃가마에 오르기를 완강히 거부했다.“부모님께서 저를 길러주신 세월이 열여섯 해나 된다. 떠나기 전 당연히 부모님께 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그것은 일종의 고별이 아니라 명백한 경고였다. 다시 말해 용가의 온 식구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혼례를 배웅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특히 큰 마님께서 나오지 않으신다면 그녀는 기어이 꽃가마를 거부하겠다고 말했다.곽 나인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 입궁해야 했기에 사람을 보냈다. 용우천과 최유신은 이 상황 자체가 내키지 않았지만 예조판서와 예종대군이 그 앞에 서 있으니 눈치 없이 행동할 수는 없었다. 결국 모두 봉의당으로 나와 형식적인 작별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큰 마님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전갈을 받은 하인이 도착해 말을 전했다.“큰 마님께서 병환 중이라 몸을 일으키실 수 없다 하십니다. 그래서 중전마마의 배웅은 어려 울 것 같습니다.”이 말을 들은 용지안은 한 마디만을 남겼다.“할머니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나는 가마에 오르지 않겠다.”곽 나인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최유신에게 성을 냈다.“중전마마께서 친히 명을 내리셨다. 큰 마님께서 편찮으시다면 부축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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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모든 책임은 우리 용가에서 지겠다.”용우천의 낯빛은 먹구름처럼 어두워졌다. 장군의 살기와 위엄이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왔고 전장을 누벼온 사내의 냉정한 기세가 곽 나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직접 중전마마께 말씀드리지.”곽 나인은 깜짝 놀라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지금은 입궁 직전이라 어느 누구도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성인 사내가 드나드는 것은 금기지요. 이는 엄연한 궁중의 법도입니다.”그 말을 들은 용우천은 비웃음을 터뜨렸다.“법도라… 곽 나인, 그대도 알겠지만 법도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바꾸는 것도 사람의 몫이지.”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휘날리며 곧장 방으로 들어섰다. 곽 나인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감히 따라설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최유신은 부드럽게 웃으며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저는 곽 마님께서 좀 더 눈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어리석을 줄은 몰랐습니다. 곧 죽을 중전의 편을 들다니요. 후환이 두렵지도 않습니까?”노골적인 경고에 곽 나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세자가 즉위하더라도 군권을 쥔 이는 용우천이다. 대비조차 그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뜻을 거스른다면 막중한 후환이 따를 것이 분명했다.그 사이 용우천은 허락도 없이 곧장 용지안의 신방으로 들이닥쳤다. 동 씨와 철 씨가 저지하려 했으나 용우천의 눈빛에 기가 눌려 꼼짝없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용지안은 아직도 붉은 폐백을 쓰지 않은 채 침상 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오래전에는 아버지라 불렀던 사람이 지금은 눈앞의 적이었다.“장군님!”길상과 여의가 다급히 나서며 용지안과 용우천 사이를 막아섰다.“비키지 못하겠느냐?”용우천의 한 마디에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길상과 여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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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 순간, 그는 움찔하며 손을 거두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용우천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거셌던 탓에 그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침대 옆 조각이 세워진 나무 기둥에 부딪치고 말았다.쿵!낮게 울린 충격음과 함께 기둥 곁에 놓인 찻잔과 접시들이 와르르 쏟아져 바닥에 부딪히며 파편처럼 흩어졌다. 문밖에서 긴장하며 서 있던 동 씨와 철 씨는 반사적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곽 나인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용우천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분노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감히 몸에 비수를 지니고 있었단 말이냐?”그 말속에는 깊은 공포가 숨겨져 있었다. 혹여 이 아이가 품은 것이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용가에 대한 복수라면? 그녀는 어차피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잃을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는 그녀라면 충분히 숨겨둔 비수로 왕을 해코지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용가 전체가 그 핏값을 치러야 했다.용지안은 물기가 서린 눈으로 조용히 말했다.“아버님, 저는 이제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저를 키워주신 어르신들께 하직을 드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딸로서 마지막 도리조차 버릴 수는 없습니다.”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속에 담긴 절절한 슬픔이 방 안을 차디차게 적셨다. 하지만 눈동자에 맺힌 눈물은 끝내 흐르지 않았다.용우천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 연기, 이 눈물, 이 애처로운 말투까지... 전부다 거짓이라는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항상 이런 식이지. 이런 표정으로 사람들을 잘도 속여왔었지.’현대에 살아가던 시절, 용지안은 연극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만약 그녀가 연예계에 남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최고의 배우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양동매의 위패를 세우겠다고 협박했을 때도 이 얼굴이었다.그녀의 가증스러운 표정에 용우천은 속이 울렁거려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이가 갈리는 기분으로 차갑게 내뱉었다.“비수부터 내려놓거라.”용지안은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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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곽 나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용지안은 머리에 얹힌 금관을 손으로 가볍게 매만지며 대꾸했다.“별일 없었다. 혹 내 화장이 번졌느냐?”그녀는 손끝으로 뺨을 조심스럽게 짚으며 거울을 찾았다. 이 화장 하나에 들인 시간만 해도 거의 두 시간이었다. 방금 전 울컥 치밀어 오른 울음을 끝내 삼켜낸 이유도 단 하나, 이 얼굴에 흐트러짐 하나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곽 나인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낮게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더니 어딘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참한 꼴을 상상하며 급히 달려왔건만 막상 눈앞에 있는 용지안은 눈물 한 방울 없이 말끔히 앉아 있었다. 자신의 화장을 걱정하며 거울부터 챙기는 모습이라니... 곽 나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정말이지 묘하고 무서운 사람이구나.“화장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마마께서는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곽 나인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생각을 읽으려고 애썼지만 용지안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만 떠올랐을 뿐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아까… 장군께서 무척 화가 나신 듯하더군요.”곽 나인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그런 것 같기도 하고.”용지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간암에 걸리기 쉽다더라.”곽 나인은 눈을 껌뻑였다. 간암? 지금 그게 중요한가?“마마, 곧 길시가 다가옵니다. 이제 꽃가마에 오르시는 게 어떠실지요?”“그렇게 급한가?”용지안이 의아한 듯 묻자 곽 나인은 머뭇거리며 말했다.“제가 급한 것은 아니고... 정해진 시각을 놓치면 안 되기에...”용지안은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였다.“놓치면 놓치는 거지, 뭐.”곽 나인은 속이 타들어갔다.“길시는 국사께서 택하신 겁니다. 이 시각을 넘기면 불길합니다.”그녀는 궁중의 급변하는 기류를 직감하고 있었기에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덧붙였다.“마마께서 피곤하시다면 잠시 기대어 쉬시는 것도 좋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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