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귀비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굽혔다.“중전마마, 완 귀인은 입궁 전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후궁의 총애까지 휘어잡아 다른 자매들의 은혜까지 빼앗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인물을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중전마마께서 온귀인의 귀인 작위를 폐하고 즉시 궁 밖으로 내칠 것을 청합니다.”그 말에 응답하듯 옥 귀인도 무릎을 꿇었다.“온소운 귀인을 폐하고 궁에서 내쳐 주시기를 청하옵니다!”혜 상재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완 귀인을 궁 밖으로 보내주시옵소서!”일순간 후궁의 모든 여인들은 앞다투어 무릎을 꿇고 한목소리로 청을 올렸다. 봉의궁 안, 무릎 꿇지 않은 이는 중전과 말 없는 현비, 그리고 위 귀인뿐이었다. 혜비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옆에 있던 가빈의 팔을 끌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그때, 온소운 역시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중전마마, 빈첩은…”그때, 등 뒤에서 날카롭고도 위엄 있는 목소리가 궁중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짐이 모르는 사이에 누가 감히 완 귀인을 궁 밖으로 내치려 했는가?”그 차디찬 목소리에 모든 여인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주상전하를 뵙습니다.”황금색 용포를 입은 강규빈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키는 훤칠하고 기품 있는 몸짓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같았으며 그의 걸음마다 제왕의 위엄이 배어 있었다.선이 뚜렷한 이목구비, 특히 그 차가운 봉안은 무정한 바람결처럼 매서웠고 가늘게 일그러진 입꼬리는 냉담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그가 정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자 중전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리고 다시 그의 옆에 앉았다.“서 귀비께서는 완 귀인이 불임이라 호국사로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강규빈의 날카로운 시선은 창처럼 서 귀비에게 꽂혔다.“그게 너의 제안이었느냐?”서 귀비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신첩은 단지… 전하의 안녕을 위해 아뢰었을 뿐이옵니다. 요사한 여인이 나라를 어지럽힌 사례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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