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목표는 전하를 유혹해 후궁의 주인이 되는 것: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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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온소운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이제껏 아버지가 이토록 완고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아버지께서는 정말로 전하께서 단지 정실을 홀대한 일로 아버지를 질책하셨다고 믿으십니까? 실은 칼날을 휘두르기 전의 경고입니다. 아버지를 내세워 진국공 관저를 겨눈 것이지요.”그녀의 음성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릴까요? 진국공 댁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예로부터 군왕의 권세를 위협하며 분수를 모르는 자가 무사했던 적이 있나요? 진국공이 전하의 어명을 가로막고 반박했던 거 잊으셨습니까?”온태안은 지금 눈앞의 딸이 문득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조정의 일은 네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히 끼어들 생각하지 말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은 후궁에서 총애를 받는 것이다. 전하께서 너를 아낀다면 그 덕은 나에게 돌아오는 법이지.”그는 여전히 전통적 사고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 온소운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조용히 되물었다.“진국공이 왜 아버지께 손을 내밀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온태안이 반박하려 하자 그녀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혹시 아버지의 ‘출중한’ 자질 때문이라 생각합니까? 여섯 번이나 낙방한 과거시험의 결과?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몰락 직전의 대감 댁의 위세?”그녀의 가차없는 말에 온태안의 낯빛은 창백해졌다. 하지만 온소운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를 북문의 병마사 지휘관으로 추천하셨고 그 덕분에 지금도 아버지는 도성의 병마사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계신 겁니다.”“만일 훗날 진국공이 반란을 도모한다면 변방의 군사는 너무 멀어 제때 대응할 수 없겠지요. 그때 필요한 게 바로 아버지의 손에 쥔 병마사 병력입니다.”온태안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닥쳐라!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는 것이냐? 반란이라니,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려?”온소운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저를 믿고 진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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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온소운은 버려진 궁실에서 나서며 단 한 마디만 남겼다.“아버지께 드릴 시간은 오직 닷새뿐입니다.”그날로부터 닷새 후, 운성에서는 처음으로 수해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 오일 뒤 조용히 길을 떠난다면 정확히 십일 후 수해가 터진 운성에 닿을 수 있게 된다. 모든 계획은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 판 위에서 제 몫을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이튿날 새벽, 강규빈은 조양궁에서 나왔다. 어젯밤은 간만에 현비와 동침을 한 날이었다. 무릎을 꿇은 현비는 강규빈의 곤룡포를 손수 매만지며 단아한 미소를 머금었다.그녀는 줄곧 궁중의 다른 여인들보다 침착하고 조용한 여인이었으나 전하의 뛰어난 용모와 거대한 체격 앞에서는 늘 애틋한 갈망이 일었다.어떻게 해야 이 남자의 마음을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언제나 현비의 마음속에 뿌리처럼 박혀 있었다.비록 용비나 혜빈보다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서 귀비와 그녀가 전하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다.“전하.”그때 노 내관이 급히 달려오며 강규빈을 불렀다. 강규빈의 표정을 본 그녀는 눈치껏 몸을 일으키며 얘기했다.“전하, 빈은 먼저 물러나겠습니다.”강규빈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노 내관을 바라보았다.“전하, 어젯밤에 쫓아낸 궁녀 추희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살되었고 그 집안 식구들까지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그러자 강규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누가 지시한 것이냐?”“어젯밤 장복해가 몰래 궐문을 나서는 걸 보았다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서 귀비의 수하인데 궐을 나가 추희의 가족을 매수한 것도 그였다고 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강규빈의 안광이 번득였다. 그는 전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 귀비에게 마지막 한 줌의 연민을 남겨두었었다. 하지만 그 여인은 모든 것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그것이야말로 명백한 죄의 자백이었다.“짐은 그 아이가 이렇게까지 독하게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자 노 내관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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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옥 귀인의 말에 서 귀비는 문득 깨달은 듯 다리에 힘이 풀려 푹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허망함이 스쳐갔고 이내 불안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그렇다면 본궁은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 전하께서 본궁이 잔인하고 독한 여인이라 여겨 노하신 것이냐? 지난번 일도… 본궁이 전하의 몸을 해친 건 사실이니…”죄책감에 휩싸인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안 되겠다. 내가 직접 전하께 찾아가 말씀드려야겠어. 본궁은 진심으로 해치려던 게 아니었다고.”옥 귀인은 다급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마마, 부디 조금만 진정하세요.”그때, 장복해가 숨을 몰아쉬며 궁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마마! 방금 전 전하께 아뢴 것은 다름 아닌 노 내관이라 합니다. 연희궁에서 사람을 죽인 일이며 소인이 추희의 가족을 매수한 것까지…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합니다. 게다가 그 뒤에 완 귀인에 대한 동정과 위로의 말까지 더한 덕분에 전하께서는 아침부터 목단원에 갖은 상을 하사하셨다 합니다.”서 귀비는 말문이 막힌 듯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온소운… 반드시 그 계집이 노 내관을 부추겨 전하 앞에서 본궁을 모함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추희의 마음을 돌려 전하의 신임을 얻고 본궁에게는 죄를 덮어씌우다니.”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서 귀비는 지금 당장이라도 온소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 만약 어젯밤 완 귀인이 정말 추희를 의심했다면 어찌 그 아이를 그리 느슨히 풀어두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은 완 귀인의 계략일지도 모릅니다. 마마께서 추희의 가족을 매수하도록 유도하여 꼬투리를 잡게 하려는 속셈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마마께서는 마음이 조급하여 손을 쓰셨고 그 탓에 지금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지요.”서 귀비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이제 본궁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옥 귀인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이제 순빈마마께서는 금족 되셨고 신첩 또한 총애를 잃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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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완 귀인만으로는 부족하단 말이지. 그 위 귀인도 눈에 거슬려. 지금 이 후궁 중에서 그 아이만큼 총애를 받는 자는 없다. 그러니 그 아이도 없애버려야 해.”서 귀비의 눈빛은 마치 독을 품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옥 귀인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마마, 안심하십시오. 저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서 귀비가 연희궁에 갇혀 있는 사이 온하연은 마침내 그토록 바랐던 시침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가 뜰을 나설 때 얼굴에는 얕은 장밋빛이 어렸고 고개를 들 때마다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 기세는 꼭 전생에 온소운이 총애를 받아 대비 자리까지 올랐던 것처럼 그 운명이 이제 자기 차례라 확신하는 듯했다.온소운은 그 모습을 보고도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녀가 말없이 웃을수록 온하연의 자만은 날로 치솟았다.“언니.”그녀는 목단원을 나서며 비죽 웃었다.“미리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언니가 제 발밑에서 무릎 꿇고 살아야 할 테니까.”‘전생에는 언니가 전하의 총애를 얻고 아이를 가졌으니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온하연은 곧장 장미원으로 가지 않고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정자에 몸을 맡겼다.그녀는 얇은 옷을 걸친 채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다.전생에 온소운은 바로 이 자리에서 전하를 만났다. 그 기억 하나만으로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꽁꽁 감싸 쥐며 버텼다. 그때 홍 유모가 다가와 간곡히 말했다.“마마, 이대로 있다가는 동상에 걸리십니다. 제발 돌아가시지요.”온하연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그만하거라. 나는 지금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곧 수해 소식이 들릴 테고 전하는 정사로 분주해질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하지만 그녀의 희망은 헛되었다. 전하는 오지 않았고 그저 급히 달려가던 궁녀와 부딪히며 물에 빠질 뻔했을 뿐이다.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즉시 궁녀의 뺨을 때렸다.“감히 누굴 건드리는 것이냐? 지금 이 몸이 얼마나 귀한 줄 알고? 겨울날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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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요즘은 위 귀인이 거의 매일 전하를 모시고 있어 그녀에 대한 전하의 총애는 날로 깊어만 갔다.운양과 운비는 할 일이 없어져 한가하게 온소운 곁에서 글씨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그녀가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처마 밑에 앉아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면 그녀 곁에서 거들 뿐이었다.그러나 궁 밖은 오히려 시끌벅적했다. 맹씨 마님은 눈꽃 연회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되었다.그녀는 이미 자신의 딸이 전하를 모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온하연이 직접 편지도 써서 보냈다.편지에는 자신이 언제 즈음 아이를 가질 것인지, 그때가 되면 전하께서 어떤 상을 내릴 것인지가 또박또박 젹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둘째 왕자가 틀림없이 전하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을 것이라는 예언 같은 말까지 곁들여져 있었다.아직 첫째 왕자조차 태어나지 않았는데 둘째 왕자라니? 그러나 딸의 그 기묘한 확신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숨겨져 있어 그녀 역시 반신반의 할 수밖에 없었다.그리하여 맹씨 마님은 딸이 총애를 받는다는 소문을 은근히 흘리기 시작했고 조만간 회임 소식이 들려올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그래서 이번 눈꽃 연회에서 그녀는 귀족 부인들의 아첨과 칭송을 한몸에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연회에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고씨 큰 마님과 고씨 마님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온소운의 외할머니와 외숙모였다.고작 오품 관리 집안의 여자들이 어떻게 자신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단 말인가? 맹씨 마님은 그 사실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귀족 부인들은 고씨 큰 마님을 에워싸고 입에 꿀이라도 바른 듯 말했다.“큰 마님께서는 참 복도 많으세요. 들어보니 완 귀인께서는 입궁하자마자 승급하셨다지요? 봉호까지 하사받으시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맞아요. 이 궁궐 안에서 완 귀인만큼 총애를 받는 이는 없지요. 전하께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귀히 여기신다더군요.”누구 하나 영익관저(勇毅侯府) 부인의 눈치를 보는 이는 없었다. 완 귀인과 맹씨 마님의 불화는 궁 안에서도 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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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오늘 새벽 조정에서 용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정은 고요했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어요.”온소운은 냉소를 터뜨렸다.“그래요. 썩은 진흙은 아무리 떠받쳐도 벽에 붙지 못하는 법이지요.”그때 마침 운양이 편지를 들고 들어왔다.“마마, 외가 쪽에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외가 쪽? 온소운의 가슴 어딘가가 부드럽게 젖어들었다. 대강 접힌 봉투와 덜 여문 밀봉 상태인 편지는 누가 봐도 급히 써넣고 전달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지체 없이 편지를 열어보았다.종이 위에는 낯익은 필체가 번져 있었다. 그녀의 글씨는 바로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손을 잡아가며 가르쳐 준 것이었다. 늘 반듯하고 엄정했던 그의 글씨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단단한 획마다 조바심이 서려 있었다.내용을 다 읽고 난 온소운은 눈꼬리가 젖어 들었다. 고가에서는 맹춘화의 헛소문을 듣고는 그녀가 궁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고 심지어 곧 냉궁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었다. 그리하여 급히 편지를 보내 혹여 어려움이 있으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외가가 비록 작고 힘없는 오품 관리 집안이지만 기꺼이 온 집안을 걸고서라도 그녀를 지킬 것이라 적혀 있었다.편지의 말미에는 이런 말도 남겨져 있었다.[소운아, 두려워하지 말거라.]온소운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맹춘화와 온하연 모녀는 참으로 우스웠다. 고작 몇 마디 거짓된 기세만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게 가증스러웠다. 과연 누가 냉궁에 들어가게 될지는 맹춘화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을.운양도 편지를 엿보고는 기쁜 얼굴로 다가왔다.“고씨 마님과 고씨 큰 마님께서는 정말 마마를 아끼시는군요.”온소운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때문에 홀로 후원으로 옮겨져 그녀를 돌볼 수가 없었다. 온소운은 언제나 홀로 남겨져 있었고 그 어린 나날의 외로움 속에서 외할머니는 그녀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그녀는 외숙모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지난 생, 그녀가 후궁에서 권세를 얻었을 때 외가에 보답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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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다시 말해 조정 신료가 전하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단지 실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정에는 말단에서 고위직까지 층층이 압박과 견제가 존재했고 권신들은 결코 자기 손아귀 밖의 인물이 전하 앞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그들의 억제로 인해 아무리 능력 있는 자라 할지라도 전하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는 권세 있는 자들과 적당히 웃고 떠들며 처세할 줄 모르는 성정이었다.비위를 맞추는 일도, 궤변을 늘어놓는 일도 못 하는 사람이라 끝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다.고가에는 그런 오라버니 외에도 재능 있는 사촌 형제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지난 생에는 가족과 함께 수도를 떠나 멀리 이주하였고 조정과도 인연을 끊은 채 살아야 했다.그러니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녀가 고가를 끝까지 붙들어 끌어올릴 것이다. 외가는 한때 그녀의 피난처였고 지금은 그녀가 외가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 줄 것이다.그날 오후 고위림은 마당에서 검을 휘두르며 무예를 연마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하인이 다급히 달려오며 외쳤다.“아가씨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그 말에 고위림은 단번에 칼을 내려놓고 손수 편지를 받아 들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봉투를 찢어 읽어보니 첫머리에는 냉궁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헛소문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그러나 편지가 중반으로 넘어가자 그의 미간은 점차 깊게 주름지기 시작했다. 길고 단정한 눈썹 아래의 눈빛은 차츰 무거워졌고 그의 단단한 얼굴 위로는 짙은 생각이 드리워졌다.한참 후에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편지를 품에 감추고 할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그는 이 편지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온소운은 신중한 아이였다. 그녀는 보통 여러 필체를 써서 글을 남기지만 이번만큼은 필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적어 보냈다.그건 일종 믿음의 표시였고 그녀가 그를 완전히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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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위림아, 너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금오위(金吾卫) 하나만 맡고 있으니...”“내 능력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젊은 시절, 나는 내 재능 하나만으로도 언젠가는 군왕의 신임을 얻게 될 줄 알았다. 어떤 문벌도 어떤 세력도 빌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지. 그러나 결국 상왕께서 승하하실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관직의 사슬은 겹겹이 나를 억눌렀고 그 속에서 겪은 억울함은 셀 수조차 없어.”“너는 무예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능력만으로는 부족하지. 이번 운성의 수해와 도적 토벌은 이 할아버지가 조정에서 어떻게든 너를 추천해 주겠다. 허나 그 이후는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그 말에 고위림은 말문이 막혔다.“저는… 누구의 손도 빌릴 생각 없습니다. 이번 토벌에서 돌아오면 제 힘으로 반드시 전하 앞에 설 겁니다. 다시는 고가가 조롱받고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제가 잘하겠습니다. 잠자코 견뎌온 숙모와 묵묵히 살아온 소운이는 제가 지킬 겁니다.”그 말에 조부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네 각오는 참으로 장하구나. 그러나 너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너는 조그마한 금오위 장교일 뿐이다. 운성에 간다고 해도 장군 뒤를 따르는 보잘것없는 졸병에 불과하지. 운 좋게 공을 세운다 한들 전하께서 너를 기억해 주시겠느냐? 우리 고가는 벼슬도 낮고 성도 미약하다. 이 참혹한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것이지. 아무리 큰 뜻을 품었다고 해도 권세와 배경 없이는 단 하나도 이뤄낼 수 없단다.”고위림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수년간 조부가 겪어온 좌절을 그는 직접 봐왔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리고 그 때문에 고모가 온 대감 댁으로 시집간 뒤에도 멸시를 받았으며 온소운도 정실이 아닌 첩의 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아왔었다.힘이 없다는 것은 곧 사랑도 자존심도 얻지 못한다는 뜻이었다.“소운이는 이 편지에서 운성에 관한 일만 말한 것이 아니다. 그 아이는 지금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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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맞다. 그러니 이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해. 얼른 소운이에게 답장을 쓰거라. 그 아이가 후궁에서 너를 도와주는 만큼 너도 전조에서 길을 닦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서야만 세상이 너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고위림은 마음 깊은 곳에서 파도가 이는 듯했다. 하지만 곧 그 감정을 다잡고 고개를 숙였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온 대감 댁에서 지켜주지 못했으니 이제는 제가 지킬 겁니다. 소운이가 제게 건 희망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온소운은 외사촌 오라버니의 답신을 받은 날 유난히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역시나 외가 식구들은 더없이 밝고 통명스러웠다.마침 그 무렵 조정에서 있었던 일들도 궁중에 속속 퍼지기 시작했다.태사부가 소위 유심지인(有心之人)에 의해 각종 비리를 적발당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온소운이 예상했던 대로 모두 중벌로 다스리기에는 모호하고 경미한 죄목들뿐이었다.태사 또한 집안 후손들의 무능을 이유로 들어 전하에게 사직 상소를 올렸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물러났다. 이에 전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그의 뜻을 허락했고 태사에게 씌워졌던 거역의 죄책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온소운은 이 소식을 들은 즉시 곧바로 움직였다. 감사를 표하러 올 것이 분명한 하경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부탁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다름 아닌 자신의 외사촌인 고위림을 이번 운성 토벌의 부사로 천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가 입을 열어야 고위림이 단순한 졸병이 아니라 부사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터였다. 하경운은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하며 반드시 관철시키겠다 약속했다.이튿날 아침, 온소운은 조정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뒤, 궁정에 울린 소식은 그녀가 기다리던 바로 그것이었다.강규빈은 운성의 수해와 도적에 대한 보고를 듣자마자 얼굴을 바짝 굳혔다. 곧바로 각지의 재해와 민생을 총괄하는 호조판서를 파직시켰고 즉석에서 조서를 내렸다.“하경운을 주사(主使)로, 금오위 고위림을 부사(副使)로 임명한다. 군사 일만을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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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강규빈의 미간이 서서히 내려앉았다.“백성을 다독이는 것이 으뜸이라는 건 안다. 네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지금 이 자리에 모인 조신들의 의도는 하나였다. 금족 중인 서 귀비를 사면해 달라는 간접적인 청이었다. 그래야 진씨 일문이 계속 왕실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므로.그러나 전하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노신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 그가 손가락 끝으로 올려둔 상소문을 다시 내려놓을 무렵 노 내관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온기가 남아 있는 인삼탕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전하, 심신이 고단하시니 약탕 한 모금 드시고 기력을 좀 회복하시지요.”강규빈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가서 준비하라. 오늘 밤, 목단원으로 갈 것이다.”노 내관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허나 전하, 오늘 밤은 이미 답응마마를 부르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강규빈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연 답응이란 그저 가벼운 흥밋거리일 뿐. 때때로 웃음을 던져주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가벼움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돌려보내면 그만이다.”“예, 전하.”노 내관은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나섰다.그 시각, 온하연은 아무것도 모른 채 거울 앞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그때 그녀는 모퉁이에서 혜비와 마주치게 되었지만 진한 화장과 화려한 자태에만 신경 쓴 나머지 혜비를 보아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사실 혜비는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요 며칠 사이 궁 안에서 연 답응에 대한 말이 돌고 있었기에 그녀가 서 귀비의 손에 의해 끌어올려졌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온하연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자 곁에 있던 행시가 나섰다.“마마, 여기 계신 분은 혜비마마십니다. 예를 갖추어 문안을 드려야지요.”그러자 온하연은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아예 못 들은 척 지나쳤다. 이틀 내내 전하를 모신 건 그녀뿐이었다. 심지어 총애를 독차지하던 위 귀인마저 자취를 감췄고전하의 눈길은 오로지 그녀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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