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빈의 미간이 서서히 내려앉았다.“백성을 다독이는 것이 으뜸이라는 건 안다. 네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지금 이 자리에 모인 조신들의 의도는 하나였다. 금족 중인 서 귀비를 사면해 달라는 간접적인 청이었다. 그래야 진씨 일문이 계속 왕실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므로.그러나 전하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노신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 그가 손가락 끝으로 올려둔 상소문을 다시 내려놓을 무렵 노 내관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온기가 남아 있는 인삼탕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전하, 심신이 고단하시니 약탕 한 모금 드시고 기력을 좀 회복하시지요.”강규빈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가서 준비하라. 오늘 밤, 목단원으로 갈 것이다.”노 내관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허나 전하, 오늘 밤은 이미 답응마마를 부르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강규빈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연 답응이란 그저 가벼운 흥밋거리일 뿐. 때때로 웃음을 던져주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가벼움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돌려보내면 그만이다.”“예, 전하.”노 내관은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나섰다.그 시각, 온하연은 아무것도 모른 채 거울 앞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그때 그녀는 모퉁이에서 혜비와 마주치게 되었지만 진한 화장과 화려한 자태에만 신경 쓴 나머지 혜비를 보아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사실 혜비는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요 며칠 사이 궁 안에서 연 답응에 대한 말이 돌고 있었기에 그녀가 서 귀비의 손에 의해 끌어올려졌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온하연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자 곁에 있던 행시가 나섰다.“마마, 여기 계신 분은 혜비마마십니다. 예를 갖추어 문안을 드려야지요.”그러자 온하연은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아예 못 들은 척 지나쳤다. 이틀 내내 전하를 모신 건 그녀뿐이었다. 심지어 총애를 독차지하던 위 귀인마저 자취를 감췄고전하의 눈길은 오로지 그녀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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