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내 목표는 전하를 유혹해 후궁의 주인이 되는 것: Bab 81 - Bab 90

100 Bab

제81화

소 답응은 눈치 없이 굴 인물은 아니었다.다만, 요 근래 후궁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시달리며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에 마지못해 몸을 낮추며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그녀는 곧장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얘기했다.“언니, 고마워요. 그럼 저는 먼저 물러갈게요.”몸을 돌리려던 찰나 소 답응의 시선이 문득 곁에 놓인 비단 천 위에 머물렀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조용히 다가가 그 비단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뜻밖의 행동에 온소운과 운양을 비롯한 모두가 일제히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온소운도 잠시 당황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 답응은 확인을 마친 듯,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말했다.“언니, 무례하게 굴었다면 용서해 주세요. 다만, 이 비단… 뭔가 이상한 점이 보여서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도 괜찮을까요?”그러자 온소운의 눈빛이 순간 가늘게 떨렸다.“그러세요.”소 답응은 다시 비단에 손을 뻗더니 가까이서 냄새를 맡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언니, 이게 ‘직금운화부광금’… 맞나요?”그 말에 온소운의 눈빛이 차츰 무거워졌다.“맞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직금운화부광금’은 상주(湘洲)산 명주로, 어릴 적부터 그곳에서 자란 저에겐 너무 익숙한 비단이에요. 특히 향료에도 익숙하지요. 그런데 이 비단, 원래는 소옥향(娑玉香) 같은 고급 향을 머금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맡아보니 향이 탁하고 무언가가 섞인 듯합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목단원 안의 사람들 모두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온소운은 운양에게 눈빛을 보내었고 운양은 곧장 방 안의 잡다한 궁녀들을 내보냈다.“그럼 혹시 어떤 향인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소 답응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충심을 보일 때. 이번 일을 제대로 밝혀낸다면 분명 완 귀인의 눈에 들 수 있을 것이다.“언니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 돌아가서 정확히 알아보겠습니다.”바로 그때, 내무부의 환관이 다시 들이닥쳤다. 그는 조심스레 예를 갖춘 뒤 고개를 숙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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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온소운은 조용히 숙희를 불렀다.“네가 가서 확인해 보거라. 그 비단이 어디로 보내졌는지.”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답했다.“예, 마마.”마침 그때 예소형이 궁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단정하게 예를 갖추며 온소운에게 인사를 올렸다.“귀인마마를 뵙습니다.”그의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고 전생에서보다 훨씬 더 소년다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온소운은 조용히 운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운양은 손에 들고 있던 비단을 예소형에게 건넸다.“예 태의, 이 비단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예소형은 조심스럽게 비단을 받았다. 그녀가 그를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전생 내내 반평생을 곁에서 함께했던 사람이었기에 예소형의 의술은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생에도 온소운이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알겠습니다.”그는 비단을 조심스레 펼치고 냄새를 맡으며 감촉을 살폈다. 그도 온소운이 자신을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방 안에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자신을 해하려 하는지도 무슨 계략이 숨겨져 있는지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지금, 온소운은 섣불리 그 어떤 정보도 누설할 수 없었다.한참의 침묵 끝에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마마, 이 비단에는 ‘백라(白罗)’라는 약제가 묻어 있습니다.”온소운은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백라? 그게 무슨 약 이지?”“이 향은 일반적인 향료와 아주 유사하지만 미세하게 다릅니다. 매우 희귀한 약재로 장기간 흡입하면 활혈(活血), 즉 혈류를 지나치게 촉진시켜 여성의 체온을 떨어뜨리고 특히 아이를 가진 여인에게는 유산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요.”온소운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이건 본래 그 비단에 묻어 있던 것이다.”예소형은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독한 짓을 하다니… 다행히도 마마께서는 아이를 가진 상태가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온소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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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그녀는 문득 말을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는 왕자를 더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공주를 더 예뻐하시나요?”강규빈은 책 속 문장 위에 시선을 잠시 멈추었다. 그 순간, 창가에 기대앉아 있던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고 부드러운 얼굴에 말갛고 맑은 눈을 가진 낭자.그녀가 더는 순진무구한 여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후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서서히 그녀가 깃들기 시작했다. 지금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나른한 자세로 팔꿈치를 괴고 앉아 책을 읽고 있을까, 아니면 다음 번 그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 조용히 바둑판 앞에서 수를 연구하고 있을까?“전하…?”숙 귀인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강규빈은 정신을 차렸다.“왕자든 공주든 상관없다. 내 자식이니 다 귀한 것이지.”숙 귀인은 입술을 다물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살짝 자리를 옮겨 강규빈 곁에 앉았다.그는 요즘 국정으로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다. 속을 풀 곳을 찾던 찰나, 창밖으로 녹아내리는 눈을 보고 문득 쓸쓸한 감상이 올라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잔등 명멸에 비스듬한 베개... 외로이 잠 못 드는 밤 익숙하도다.”숙 귀인은 눈을 깜빡이며 멈칫했다. 그녀의 눈에는 어리둥절한 빛이 번졌다.비록 명문가에서 자랐지만 그녀가 배워온 것은 책이 아닌 여성스러움과 궁중 예법이었다. 어릴 때부터 궁중 여인의 도리만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던 숙 귀인은 전하가 내뱉은 시구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그렇게 강규빈의 깊고 조용한 시름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다시금 완 귀인이 그리워졌다.“전하… 오늘따라 뱃속 아이의 존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한 번… 만져보시겠습니까?”강규빈은 벌써 마음이 식어가고 있었지만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손을 뻗어 그녀의 아랫배에 살짝 얹었다.“한 달도 안 됐는데 무슨... 느낌이 있을 리가 있나.”“그래도… 아이가 점점 자라면 저의 허리도 굵어질 테고… 그때 제가 너무 못나 보이면 전하께서 싫어지시진 않을지… 괜히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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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녀가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건 냉담한 군주의 눈에 자신을 단순한 후궁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평범한 궁인으로는 도무지 하늘 위로 치솟을 수 없기에 오직 돋보여야만 살아남는다.“아까 부탁한 일 잘 마무리 되었겠지?”온소운이 묻자 운양은 그녀의 외투를 벗기며 대답했다.“모두 준비됐습니다. 마마, 염려 마세요.”그녀는 잔잔히 입꼬리를 올렸다. 곧, 진짜 연극이 시작될 것이다.다음 날 아침, 강규빈이 목단원으로 와 그녀와 함께 조반을 들었다. 밤새도록 그녀를 떠올렸던 그는 다시 마주한 이 여인을 보며 마음 깊은 곳까지 매혹되었다. 마치 옥처럼 희고 투명한 얼굴과 마주치니 서늘한 공기마저 향기로워지는 듯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향했다.“날이 이렇게 추운데 어찌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느냐.”온소운은 미소를 머금고 눈빛에 투명한 물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살며시 말했다.“전하, 다음에 오실 때는… 좀 더 일찍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강규빈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러느냐?”온소운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순수하면서도 깊은 진심이 서려 있었다.“전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미리 알게 되면 그 기다리는 시간조차 기쁨이 되니까요.”달콤한 그녀의 고백에 강규빈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참, 어리석구나.”“그럼 전하, 방금 약속하신 겁니까?”온소운은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봤다. 어느 사내라 해도 이런 눈빛 앞에서는 마음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찾지 않던 날들 그녀는 늘 이토록 순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래. 그럼 지금 미리 말해두지. 오늘 밤에는 너와 함께할 것이다.”온소운은 수줍게 웃었다.“그럼 저는… 지금부터 행복하겠네요.”강규빈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강규빈이 조정으로 나서려던 찰나, 운양이 사람들을 이끌고 급히 돌아왔다. 그들이 들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찹쌀회장((糯米灰漿))’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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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이 계책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이 궁궐의 판도는 단숨에 뒤집히게 된다. 이처럼 노련하고 과감한 수를 낼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옥 귀인일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영리하고 교활한 여인이었다. 언제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뒤끝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녀의 흔적을 쥐는 것은 바람을 움켜쥐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을 따져보니 머지않아 후궁에는 또 한 번 격랑에 휘말릴 것이다.밤이 깊어지자 강규빈은 다시 목단원을 찾았다. 이는 후궁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숙 귀인이 이미 태중에 아이를 품고 있어 그 총애가 당연히 그녀에게 쏠릴 것이라 여겼는데 놀랍게도 전하의 발걸음은 또다시 온소운에게 향한 것이었다.그 소식을 들었을 때 온하연은 마침 연희궁에서 서 귀비에게 온갖 아첨을 떨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분이 치밀어 이를 갈았다.“도대체 온소운 그 계집이 뭐가 좋다고 전하께서 저리도 마음을 두시는 건지...”서 귀비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권세나 지위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강규빈 마음 하나뿐이었는데 요즘 들어 전하가 그녀의 궁에 머무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어쩌면 진심으로 온소운을 사랑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그녀의 속을 갉아먹고 있었다.그때, 옥 귀인이 울먹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마마… 첩의 동생이...”이미 예민해져 있던 서 귀비는 그녀의 울먹이는 음성에 더없이 불쾌해졌다.“그 얘기,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것이냐? 궁 안에서 그렇게 울고불고... 보기 흉하지도 않느냐?”옥 귀인은 입술을 앙다물고 손수건을 꼭 쥐었다.“마마, 첩이 은혜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여동생은 이미 마음을 정한 이가 있는지라... 어찌 감히 마마의 아우께 시집갈 수 있겠습니까? 부디 한 번만 더 살펴주십시오.”그녀는 오늘에서야 집에서 온 서찰을 받아보았다. 그 편지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담겨 있었다. 서 귀비의 아우가 강제로 자신의 여동생을 첩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분명 귀첩이라지만 첩은 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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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옥 귀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온하연을 훑어보았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비아냥을 결코 흘려듣지 않았다. 이렇게 남의 불행 위에 올라서려는 저열한 계집이라니... 때가 되면 그 웃는 입꼬리를 그대로 찢어주마.그때, 서 귀비가 짜증에 찬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그만.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할 일을 하거라. 본궁에게 걸리적거리는 것들부터 깔끔히 치우는 게 네 몫일 테니.”순빈은 곁에서 그 분위기를 슬쩍 누그러뜨리려는 듯 입가에 억지웃음을 걸며 나섰다.“마마, 너무 상심 마세요. 온소운이야, 예쁘긴 하지만 전하께서는 단지 그 얼굴에 잠시 혹한 것일 뿐, 진심은 아닙니다. 오늘 아침이었나? 목단원이 눈 녹은 물에 스며들어 벽까지 상했다지 뭐예요. 온소운은 어쩔 줄 몰라 사람을 불렀다는데 제가 일부러 그 아이의 체면을 구기게 하려고 사람을 보내 구경시켰더니 어찌나 멍청한지 정말로 그들을 데려가더군요. 그런 여자가 뭐 대수라고... 전하도 그냥 한때의 심심풀이일 겁니다.”하지만 순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 귀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완 귀인과 여러 번 맞붙었기에 옥 귀인은 누구보다 그녀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여자는 사람을 함부로 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 어떤 움직임에도 신중하고 항상 뒤를 생각하는 여인인데 순빈이 보낸 사람을 허락했다고?하지만 이 기시감은 말끝을 삼켜야 하는 궁중의 예법 속에 묻혔고 옥 귀인은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조용히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계책이 오가는 숨 막히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새벽이 밝아오기 직전. 궁 전체를 뒤흔드는 한 줄기 날카로운 비명이 어둠을 찢었다.“큰일 났습니다! 숙 귀인… 숙 귀인마마께서 유산하셨습니다!”강규빈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막 목단원을 나서던 참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곧장 상운궁으로 달려갔다. 그 뒤로는 어금군과 내시들이 일제히 따라붙어 순식간에 상운궁 안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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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어금군의 손놀림은 번개 같았다. 상운궁 안팎을 샅샅이 뒤졌지만 의심스러운 물건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노 내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강규빈 앞으로 나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전하, 현재까지는 별다른 수상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그때, 숙 귀인 곁에 있던 궁녀 단향이 돌연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전하! 소첩,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강규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말해보거라.”단향은 곧장 입을 열었다.“전하, 마마께서 아이를 가지신 후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태의께서도 태가 건강하다는 말씀만 하셨거든요. 하지만 이틀 전부터, 마마께서 직금운화부광금이라 불리는 비단으로 새 옷을 지으신 뒤부터 입을 때마다 배가 서늘하고 아픈 증세를 호소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다시 그 옷을 입으신 직후 그대로 실신하셨고 태의가 달려올 때는 이미 피를 흘리고 계셨습니다.”강규빈의 얼굴은 먹구름처럼 짙게 가라앉았다.“그 옷은 지금 어디 있느냐.”단향은 서둘러 일어나 옷을 가져왔다. 숙 귀인은 창백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고통 속에서도 기억을 더듬었다.그랬다. 생각해 보면 그 옷을 입고 난 뒤부터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강규빈의 소매를 붙잡고 눈물 그렁한 눈으로 간청했다.“전하… 이 옷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 옷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발, 부디… 신첩을 위해 억울함을 밝혀 주세요.”하지만 강규빈의 붉은 눈매에는 차가운 무정함만이 스쳤다. 그는 울부짖는 숙 귀인을 바라보며 단 하나의 생각을 품었다.이토록 어리석다니.한쪽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온소운은 강규빈의 눈에 스쳐 지나간 실망을 포착했다. 그 눈빛은 냉정했고 실망은 참으로 깊었다. 숙 귀인은 강규빈만을 의지하며 울부짖었고 그 품에 매달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초라하게 보였다.서 귀비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며 웃었다. 들킬까 봐 감추려 한 미소는 도리어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잠시 후 강규빈은 낮고 단호하게 명했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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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숙 귀인께서 입고 있던 비단옷이 목단원에서 회수해 간 것이었다 합니다. 혹시… 완 귀인의 짓이 아닐까요?”“망언을!”강규빈의 음성은 노기 어린 칼날 같았다.“이게 너희가 일하는 방식이더냐!”그러자 중전의 눈동자가 급격히 일렁이기 시작했다.“전하, 신첩은 완 귀인에게 비단을 하사한 적이 없습니다.”전하의 분노가 궁 안을 꿰뚫듯 퍼져나갔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던 중전조차 이 순간만큼은 마음 깊숙이 소름이 돋았다.그때, 온소운이 조용히 나서며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은 그 비단을 목단원으로 보낸 내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첩이 인솔하여 노 내관과 함께 사람을 보낼 테니 곧 실상이 드러날 것입니다.”강규빈은 고개를 끄덕였고 노 내관은 즉시 인솔하여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 명 영감도 이에 질세라 황급히 그 뒤를 따라나섰다. 그들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의 어린 내시가 질질 끌려왔다.그는 벌벌 떨며 땅에 머리를 박았다.“전하, 용서해 주십시오. 전하… 전하…”서 귀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분명 깔끔하게 처리하라 명했는데 아직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 강규빈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말해라. 누가 시켜서 비단을 목다원으로 보낸 것이냐?”어린 내시는 겁에 질린 나머지 입술을 달달 떨었고 강규빈은 참지 않았다.“형형사로 끌고 가라. 지독한 고문을 받으면 입이 풀릴 것이다.”“아… 아닙니다! 전하! 말하겠습니다!”내시는 엎드려 울먹이며 외쳤다.“순빈마마… 순빈마마께서 시키신 일입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순빈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전하, 신첩은… 그 비단을 오래도록 아껴두었던 것입니다. 완 동생이 늘 좋아 보였기에 규율을 어기는 것이 두려워 중전마마의 명이라 칭하며 전한 것뿐입니다. 신첩이 경솔했습니다.”“감히!”중전는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분노했다.“네가 감히 본궁의 이름을 팔아 숙 귀인을 해하고 그 죄를 완 귀인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단 말이냐?”순빈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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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얼마 지나지 않아 노 내관이 사람들을 이끌고 빠르게 돌아왔다.“전하, 태의가 이미 확인한 바로는 목단원의 벽면은 최근에 덧칠한 흔적이 있었고 그 회벽에 사용된 찹쌀회장 속에는 모두 백라가 섞여 있었다 합니다.”“망극하도다!”강규빈의 차가운 분노가 방 안 가득 번졌다. 말끝이 닿는 자리마다 얼어붙듯 온 전각이 숨죽였다. 그때 예소형이 급히 나서며 말했다.“전하, 만일 백라가 처음부터 벽 속에 있었던 것이라면 본래 아이를 가지기 어려운 체질인 완 귀인마마는 이번 일로 몸이 더 크게 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 말에 온소운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굵은 눈물이 뺨을 따라 뚝뚝 흘렀다. 그 모습을 본 서 귀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순빈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계책을 짜낸 건 옥 귀인이었지만 실질적인 실행은 순빈이 맡았다.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온소운의 처소에 백라가 숨겨져 있기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피해자가 되다니?이 어리석은 계집!순빈은 이를 꽉 물었다. 정말이지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그때, 운양이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전하… 며칠 전 목단원의 벽이 일부 무너져 내렸을 때 고친 것입니다. 허나 손을 댄 이들은 모두 저희 목단원의 하인들입니다. 아무도 마마를 해치려 하진 않았어요.”이 이야기를 듣자 강규빈도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날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났고 그의 시선은 곧바로 불안에 떨고 있는 순빈에게로 옮겨졌다.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곧바로 그날 자신이 운양을 따라 사람을 목단원에 보낸 일이 떠올랐다. 숨이 막힐 듯한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을 조였다.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옥 귀인은 얕게 입꼬리를 올렸다. 예상했던 대로다.그녀는 정적 속에서 반격을 짜내는 이 여인의 조용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기막힌 한 수였다. 궁중에서 이토록 조용히 치밀하게 덫을 짜서 되려 반격해낼 수 있다니... 이토록 영리한 여인은 실로 경이로웠다.강규빈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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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정말로 무언가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단숨에 재상부와 중전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비록 그녀와 현비는 모두 제 씨 집안사람이긴 하지만 엄연히 같은 위치는 아니었다. 그녀의 집안은 재상부를 상대로 맞설 힘 따위는 없었다.“전하, 자수공을 데려왔습니다.”어금군 대장이 급히 전각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따라 청초한 얼굴에 나이 어린 자수공 하나가 따라왔다.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전하를 뵙습니다.”강규빈은 높은 자리에 올라앉더니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연금에 놓인 수비단, 네 손으로 만든 것이냐?”그 말에 자수공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네, 전하. 그 비단은 분명 제 손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그 비단에 백라를 묻힌 자도 너란 말이냐?”전하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말끝마다 살기가 배어 있었다. 그 말에 자수공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전하, 백라라니요… 저는 그런 약물은 모릅니다.”그때, 조금 늦게 돌아온 어금군이 무언가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전하, 태액지 주변에서 수거한 향낭입니다. 상의국 사람들 모두가 증언하기를 이 물건은 바로 이 진 자수공의 수작이라 합니다.”그러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그녀가 잃어버린 그 향낭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것이 태액지에 떨어져 있단 말인가?강규빈이 손짓하자 노 내관은 즉시 향낭을 예소형에게 건넸다. 그는 그 향낭을 자세히 살펴본 뒤 무릎을 꿇으며 아뢰었다.“전하, 이 안에는 백라 가루가 다량 남아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강규빈의 눈빛은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전하… 저는 억울합니다. 제발 살펴주세요.”그 순간, 중전이 앞으로 나서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이쯤 되었으면 너도 더는 거짓을 고하지 말거라.”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고 마침내 공포에 무너져 내린 듯 울며 진실을 토해냈다.“전하… 제발 용서해 주세요. 이 모든 일은 순빈마마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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