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주든 말든 상관없었다. 본래부터 바라지도 않았고 제 피를 내주어 검사 따위를 할 생각도 없었다.집사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마지원은 고개를 저어 그를 막았다.문을 나서자마자 시아는 은채와 마주쳤다. 회색빛으로 질린 얼굴에 아까 강시아에게 뺨을 맞아 붉게 남은 자국이 선명했다.한껏 불쌍해 보였지만 그 불쌍함은 금세 눈에 가득한 독기로 바뀌어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었다.마지원이 모든 재산을 시아에게 준다고 했던걸, 은채도 들었던 것이다.‘왜? 도대체 왜?’은채의 몸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는데,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시아가 얼마나주제 파악을 못 했는지 은채는 전부 들어버렸지만, 마지원은 그럼에도 봐주었다.승준도, 지호도 시아를 감쌌고, 이제는 처음 본 노인까지 시아를 두둔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아아악!’이에 은채는 멘붕이 와 마치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친부를 찾아냈고 그것도 남부럽지 않은 권세와 재산을 지닌 마지원이라는 인물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씨 가문에서 벗어나고, 승준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그런데, 그 자리마저 시아가 가로챈 것이다.‘아니, 가로챈 게 아니지. 아예 빼앗아 간 거야.’은채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폭발했다.‘그래, 시아가 있는 한 나는 영원히 짓눌릴 거야. 그녀가 사라져야만 내가 빛을 볼 수 있어.’증오가 눈빛에서 흘러나오자, 시아는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은채야, 날 증오하지? 사실 나도 내가 꽤 미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쩌겠어. 아까 다 들었으니 알잖아. 이건 내가 만든 일이 아니란 거.”그건 자랑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었다.은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와 억울함, 그럼에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초라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시아는 은채의 평평한 아랫배를 힐끗 보았다.“너무 흥분하지 마. 아이한테 안 좋을 테니까.”말을 마친 순간, 마당 밖에 차 한 대가 들어섰고 의료 상자를 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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