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281 - Chapter 290

448 Chapters

제281화 이제 돌려줘야 하는 거 아냐?

“흠, 이건 스스로 안겨 들어온거 아닌가요?”익숙한 목소리와 얼굴에 시아가 들고 있던 서류를 꽉 쥐었다.‘주영식?’정말 우연도 기막히다. 입사 첫날부터 마주치다니.아니, 이건 우연이 아니라 일부러 시아를 찾아온 것이다. 예전에 시아가 감옥에 갔다 온 일을 빌미 삼아, 또 지호 손에 처참히 당한 일을 앙갚음하려고 쫓아온 게 분명했다.시아는 먼저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곧게 허리를 세우며 말했다.“주영식 씨, 여기는 회사예요. 필요하다면 대표님을 모셔서 사내 규정부터 알려드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죠?”이에 영식은 불온한 웃음을 지었다.“장난 좀 친 거죠.”그러면서 손을 내밀어 과장된 친근함을 드러냈다.“주한그룹에 온 걸 환영해요.”그러나 시아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런 부류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기에, 대신 얼굴에는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고마워요.”그러자 영식은 무안한 듯 손을 거두며 말했다.“앞으로 잘해봐요.”시아는 담담한 눈빛으로 대꾸하지 않고 영식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영식이 갑자기 몸을 기울여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강시아 씨, 당신이 대표님 손 붙잡았다고 안전할 것 같아요?”영식은 비웃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잊지 마요. 여긴 우리 주씨 가문의 영역이라는 걸요.”시아는 고개를 들어 눈길을 마주하고 싸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래요? 그럼 제가 좀 조심해야겠네요.”정오 열두 시, 주한그룹 구내식당시아는 쟁반을 들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막 젓가락을 드는 순간, 주위에서 은근한 시선이 스쳐 지나가는 걸 감지했다.옆자리의 여직원 몇 명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시아를 힐끗거리기 바빴다.이에 시아는 고개를 숙여 식판을 바라보자, 음식의 색이 평소보다 어둡고, 기름이 이상하게 번들거렸다.뭔가 섞인 걸 발견하자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더니, 결국 시아의 시선이 곧장 멀찍이 앉아 있는 영식을 겨눴다.영식은 다리를 꼰 채 뻔뻔스러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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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7년 전?

‘협박인가?’역시 지호가 수단과 방법을 가지 않자 시아가 미간을 좁혔다.“뭐라고요?”지호가 낮게 웃으며 손끝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여기.”시아가 냉소를 띠었다.“당신...”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호는 시아의 몸을 돌려세워 현관 도어락에 손을 대자,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순간, 시아는 이 집의 도어락을 반드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안이라는 게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이러한 생각이 스친 그 틈에 지호는 시아를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자 시아는 잽싸게 거리를 두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뭐 하려는 거예요?”그러나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곧장 거실 술장을 열어 위스키와 잔 두 개를 꺼냈는데 마치 제 집인 듯 익숙한 손놀림이었다.“한 잔 따라줄래?”일부러 느릿하게 말하며 잔을 내밀자 시아는 고개를 돌렸다.“쓸데없는 짓 마요.”“왜 그렇게 매정해?”지호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시아가 방심한 틈에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턱을 어깨에 비비며 낮게 속삭였다.“여보...”“놔요.” 시아는 팔꿈치로 지호를 밀쳐냈지만 남자는 가볍게 피했다.지호는 큰 강아지처럼 달라붙어 입술이 스치듯 귓불에 닿았다.“하루 종일 집에 안 들어오니까, 당신 샴푸 향도 잊을 지경이야.”“지호 씨!”시아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고 손아귀에 힘을 주며 지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우린 이미 이혼...”“아직 아니지.” 지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나 도장 아직 안 찍었잖아.”지호는 시아를 돌려세우며 코끝을 맞댔다.“아니면 지금 나한테 키스 한 번 하면, 그 자리에서 찍어줄 수도?”시아는 화가 치밀어 발로 밟으려 했으나 지호는 이미 예견한 듯 피했다.그 틈에 시아를 끌어안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너무하네. 물건만 챙기더니 이제는 폭력까지 쓰려고 하고.”시아는 지호의 뻔뻔한 태도에 관자놀이가 뛰었다.“당신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요. 당신 마음이 언제 나에게 있었는데 지금 와서 이래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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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무슨 얘기?

지호는 대답 대신 지갑 속 깊은 칸에서 살진 한 장을 꺼냈다.사진 속 시아는 시상대 위에 서 있었다. 느슨하게 묶은 포니테일에서 곰돌이 머리끈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내가 주웠어.”지호의 엄지가 사진 속 시아의 웃는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그리고 계속 간직했지.”그 말에 시아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고 그제야 깨달았다. 지호가 자신을 생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알았고 더 일찍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왜요?” 시아의 목소리가 떨리자 지호가 깊이 눈을 맞췄다. 그 눈빛에 담긴 진심이 시아를 덮칠 것만 같았다.“당신 생각은 어때?”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스치자 온몸이 굳어졌다.“당신! 누군가가 질문을 했으면 역질문이 아니라 말해요. 손은 치우고요!”“안 놔.” 지호는 오히려 더 끌어안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밤새 굶었어. 나랑 같이 야식 먹자. 응?”바로 그때, 시아의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바닥에 쏟아졌다.둘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고, 지갑 안에서 굴러 나온 건 그들의 결혼반지였다. 차가운 빛이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지호가 허리를 굽혀 반지를 집어 들었는데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시아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는 차갑게 말했다.“그날 급히 나오느라 못 줬을 뿐이에요. 지금 도로 가져가요.”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지호가 손목을 붙잡았다.그러고는 시아를 반쯤 끌어안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고 등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혔다.어둠 속, 지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7년이 지났어, 여보.”지호의 입술이 귓불을 스쳤다.“언제까지 모른 척할 거야?”시아는 문고리를 움켜쥐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고, 손톱은 손바닥을 파고들고 있었다.눈앞 가까이에 놓인 지호의 얼굴에 시선이 묶인 채 숨결은 점점 가빠졌다.“머리끈은 돌려줄게요.” 시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라앉혔다.“그러니까 이제 나가요.”시아는 지호의 가슴팍을 밀쳤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에 가둔 채 시선을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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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바보

지호의 몸이 순간 굳었고 시아는 곧바로 알았다. 자신이 짐작한 대로 지호는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숨겼다.“세상 모든 일이 미안하단 말 한마디로 끝나는 건 아니에요.”시아는 지호를 세게 밀어내자 이번엔 지호도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벽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커튼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지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시아는 이런 얼굴을 처음 봤다. 언제나 여유롭고 흔들림 없던 지호가, 지금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난...”지호의 입술이 열렸지만 끝내 말은 나오지 않았다.‘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늘 몰래 지켜봤다고? 하원하를 일찌감치 감시하고 있었다고?’그 모든 건 변명일 뿐 집착을 정당화하는 구실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시아는 그런 지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왠지 모를 답답함에 가슴이 조여왔다.더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시아는 몸을 돌려 침실로 향했다.“그만 가요. 머리끈은 며칠 뒤에 돌려줄 테니까.”‘아니? 왜 돌려줘야 하지? 애초에 본인 것도 아닌데.’“그 머리끈은 내 거예요.”시아는 이내 말을 마치며 문 손잡이를 잡았다.“여보!”지호가 갑자기 달려와 시아를 뒤에서 끌어안는데 팔 힘은 너무 세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날 내쫓지 마, 제발.”지호의 몸이 떨리고 있었고 뜨거운 무언가가 목덜미에 떨어졌다.밖에서는 언제나 군림하는 남자가 지금은 버려진 아이처럼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갈라진 목소리가 귀에 스며들었다.“하원하가 네 집에 들어가는 CCTV를 봤을 때, 미칠 것 같았어. 정말이야.”그 말에 시아의 몸이 굳었다.지호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걱정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그럼, 왜 말 안 했어요?” 시아의 목소리는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었다.지호는 씁쓸하게 웃더니 숨결이 귀 옆을 스쳤다.“네가 불안해할까 봐. 또, 내가 널 감시한다고 생각할까 봐.”지호의 품은 마치 시아를 더 단단히 끌어안고 싶다는 듯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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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겁주려는 건가요?

새벽 3시 15분, 구영시 외곽의 버려진 공장.달빛이 깨진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바닥에 흩어졌다. 공기에는 녹슨 쇠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퍼져 있었고, 갑작스러운 조명에 쥐 몇 마리가 허겁지겁 달아났다.하원하는 세 번째 양동이의 얼음물에 젖으며 비틀거리듯 의식을 되찾았다.그리고 속눈썹에는 서리가 엉겨 붙어 있었다.간신히 눈을 뜬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반짝이는 구두 끝이었는데. 달빛을 받아 싸늘하게 빛났다.“깼나요?”머리 위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자 하원하는 고개를 힘겹게 들었다. 반듯한 바지선 따라 시선을 올리니 지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각진 얼굴은 빛과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있었고 눈빛은 얼음처럼 서늘했다.안에 있어도 지호는 하원하를 끌어낼 수 있는 걸로 보아, 이 남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하 대표께서 한밤중에 이렇게 초대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하원하는 터져 나온 입술을 핥으며 피 맛을 삼켰다.비죽 웃자 드러난 송곳니가 달빛에 번뜩였다.하원하의 두 손은 나일론 끈에 뒤로 묶인 채 철제 의자에 고정돼 있었다. 관자놀이에 난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내려, 젖은 셔츠를 타고 뚝뚝 떨어졌다.지호는 도발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곧장 발길질을 해댔다.쿵!철제 의자가 통째로 바닥에 나뒹굴며 후두부가 시멘트에 부딪히자, 치아가 저려올 만큼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순간 시야가 흔들렸고 귓속은 웅웅거렸다.“이 발길질은 내 아내 몫이에요.”지호의 목소리는 멀리서 울려오는 것처럼 싸늘했다.하원하는 기침을 터뜨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하원하의 말소리는 공장 안에 메아리처럼 퍼졌다.“이게 다예요? 힘은 여자보다도 못하시네요.”하원하는 얼굴을 옆으로 틀어 비죽 웃으며 말했다.“차라리 얼굴을 때리시지. 그래야 내가 고소할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지호는 몸을 낮추더니 하원하의 젖은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고 고개를 억지로 들게 했다.얼굴이 눈앞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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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결국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지호는 손수건을 던져 하원하의 얼굴에 내던졌다.“당신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 거거든요.”하원하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불시에 화제를 돌렸다.“하 대표님, 내가 시아한테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뭔지 알아요?”남자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그 말에 지호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하원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바로 그 뼛속까지 고집스러운 성깔이죠. 겁에 질려도 끝내 버티려 드는 모습...”하원하는 입꼬리를 찢어 웃으며 피로 붉어진 이빨을 드러냈다.“그날 내가 그렇게 위협했는데도, 죽을 만큼 무서워하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태연한 척하더라고요.”지호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었으나 마지막 한 치를 앞두고 멈췄다.휘몰아친 바람에 하원하의 머리카락이 날렸다.“하! 이제는 나의 화를 돋우시네요? 이런 식으로 유도할 줄은 몰랐네요.” 지호는 천천히 손을 거두며 소매를 고쳐 입었다.“유치하네요.”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진오에게 말했다.“조강혁한테 넘겨. 예전 방식대로 처리해. 얼굴은 흠집 나지 않게. 그래도 이름 있는 인간이니까.”진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디가드 둘이 다가와 밧줄을 풀고 하원하를 끌어냈다.마치 죽은 개를 끌듯 질질 끌었다.하원하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고 그 메아리가 공장 안을 울렸다.“하 대표! 당신이 이렇게 해서 끝날 거라 생각해요?”하원하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섬뜩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지호에게 던졌다. “내가 죽든 살든, 앞으로 당신들의 삶은 절대 평온하지 않을 거예요!”지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차갑게 굳은 옆얼굴이 달빛에 드러나 날카로운 선을 그렸다.공장 밖 새벽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피비린내를 조금씩 흩날렸다.지호가 휴대폰을 꺼내자 화면에는 시아가 깊이 잠든 사진이 있었다.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습은 마치 경계심 없는 고양이 같았다. 귓불의 작은 점이 새벽빛에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지호는 무심코 엄지를 들어 화면을 어루만지자 눈빛은 서서히 풀리고 부드러워졌다.“본가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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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장난 좀 친 거예요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했다.“너 정말 못된 버릇만 키워놨구나.”지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섬뜩할 만큼 싸늘했다.이에 민아는 대놓고 눈을 굴렸다.“그 말투 좀 그만해. 어릴 때부터 내가 갖고 싶다 하면 안 해준 적 있었어? 그런데 이제 와서, 겨우 여자 하나 때문에...”차가 급정거하자 민아의 이마가 앞좌석에 부딪힐 뻔했다.보르주 클럽의 금빛 대문이 바로 앞에 다가왔고, 문가에서는 진오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매가 내리는 걸 보고 진오는 순간 멈칫했다.“하지호? 동생까지 데려왔어?”진오가 급히 다가왔다.지호는 여동생 같은 아이가 이런 곳에 오는 걸 원치 않았다. 그것이 아무리 자신이 운영하는 클럽이라도 문제없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호는 대꾸하지 않았고 민아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며 안으로 향했다.“진오 오빠!” 민아는 몸부림치며 외쳤다.“우리 오빠 미쳤어요! 빨리 좀 도와줘요!”진오는 난감한 듯 코를 문질렀으나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엘리베이터는 곧장 최상층 VIP 구역으로 올라갔다. 복도 끝, 외부에는 절대 개방하지 않는 전용 룸 앞에 건장한 경호원 둘이 서 있었다.남자들은 남매가 다가오는 걸 보고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무표정으로 돌아갔다.“열어요.” 지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이에 경호원 하나가 즉시 카드를 스캔했고, 묵직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짙은 시가 향과 위스키 향이 뒤섞인 냄새가 확 퍼지자 민아는 무심결에 코끝을 찡그렸다.안쪽, 소파 중앙에 진영이 앉아 있었는데, 손끝에는 아직 불붙이지 않은 시가가 끼워져 있었다.검은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진영은, 은근히 드러나는 팔의 문신과 함께 고요하게 고개를 들었다.빛 아래 드러난 눈동자는 맑고 옅은 갈색이었으나 그 고요함은 죽은 호수 같아 보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부진영.” 지호는 민아를 앞으로 내던졌다.“사람 데려왔어.”민아는 10센티 힐에 비틀거리며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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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완전히 넘어갔군

VIP 룸 안은 숨소리조차 가라앉은 듯 고요했다.진오가 숨을 들이켰고 본능적으로 진영을 바라봤다.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진영의 손끝이 살짝 움직였고, 손에 쥔 시가에는 미세한 금이 갔다.“민아야!” 진오가 다급하게 나섰다.“어서 진영 오빠한테 사과해! 그리고 진서한테도 미안하다 하고. 그럼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말이 끝나자, 진영과 지호가 동시에 진오를 바라봤다.그 눈빛에 진오의 등줄기가 싸늘해졌고 괜히 끼어들었다는 걸 깨달았다.“내, 내가 주책이지.”진오는 허둥지둥 자기 뺨을 한 대 때리고는 구석으로 물러앉았다.그제야 진영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네 오빠 체면 봐서야.”진영은 시가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진서한테 사과해. 그리고 네가 어떻게 때렸으면 똑같이 맞아.”“내가 왜요?” 민아의 눈이 커지고는 홱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그 순간 지호의 발이 무릎 뒤를 강타했다.“아악!” 민아는 비명을 지르며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자 곧장 진영이 눈앞에 있었다.민아는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돌려 오빠를 노려봤다.“오빠! 나는 오빠 여동생이야!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들의 편을 들어?”“사과해.” 지호가 내려다봤는데 목소리는 차갑고 낯설었다.“같은 말 세번 하게 만들지 마.”곧 민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아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오빠들이 나 괴롭혔다고!”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민아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선을 맞추자 오히려 더 숨 막히는 위압이 흘렀다.“너 그거 알아?”진영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손끝이 민아의 머리칼을 스쳤다.“진서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큰소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 손찌검은 더더욱. 네 오빠가 아니었다면...”진영의 마지막 말은 거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것만 같았다.“넌 지금 이렇게 무릎 꿇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거야.”민아는 온몸이 떨렸다. 구원의 눈길로 자신의 오빠를 봤지만, 지호는 그저 냉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진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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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따로 지내고 있어요

민아가 보르주 클럽을 뛰쳐나오다 대리석 계단에서 발목을 삐끗했다. 그대로 굴러 떨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눈물이 시야를 흐렸고, 바람은 정성스레 손질한 웨이브 머리를 흩날렸다. 얼굴의 화장은 이미 눈물에 번져 엉망이었다.“하지호! 평생 널 미워할 거야!”민아는 클럽 정문을 향해 목이 쉬어라 소리쳤다.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리자 민아는 이를 악물고 노려보며 외쳤다.“뭘 봐! 예쁜 여자 우는 건 처음 봐!”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민아는 앞을 보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어떤 사람과 세게 부딪쳤다.“앗!”순간 몸이 무너져 내렸고 민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에 화끈한 통증이 퍼졌다.“눈은 어디에 달고...” 민아는 욕설을 내뱉으려다 시선을 마주쳤다.“괜찮으세요?”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내민 손, 민아는 그제야 눈앞의 여인을 똑똑히 보았다.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젊은 여인이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차림새, 우아한 몸짓이었다.“당신 도움 필요 없어요!” 민아는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일어서려 했으나 아까 삐끗한 발목 때문에 다시 주저앉았다.그러나 여자는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낮추며 말했다.“다치셨어요.”여자는 민아의 무릎을 가리켰는데 스타킹은 찢어져 있고, 피부는 심하게 까져 피가 배어 나왔다.통증과 억울함이 겹쳐지자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혹시 강시아 씨가 새언니시죠?” 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하씨 가문의 아가씨?”민아는 눈을 크게 떴다.“나를 알아요?”민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상대를 살피더니 이내 뭔가가 떠올랐다. “당신은 구 대표님 아내 진은채 씨?”은채는 미소 지으며 눈가에 은은한 주름을 만들었다.“기억해 줘서 영광이네요. 아가씨.”은채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여기 바닥 차가우니 얼른 일어나세요.”이번엔 민아가 거절하지 않았다.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무릎의 통증에 숨이 새어 나왔다.“제가 묵는 호텔이 가까워요.” 은채가 불빛이 켜진 건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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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남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오빠는 원래 동생 편 아닌가요? 소문날 만큼 여동생을 아끼는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민아 씨를 울게 놔두겠어요?”은채가 슬쩍 화제를 돌리며 떠봤다.지호 이야기가 나오자 하민아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오빠는 미쳤어요! 강시아 비위 맞추겠다고, 나더러 그 멍청한 부진서한테 사과하라잖아요!”민아는 울컥하며 물었다.“담배 있어요?”은채가 눈썹을 치켜세웠다.“아직 어리지 않나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아는 이미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그러고는 능숙하게 연기를 뿜으며 투덜거렸다.“부진서가 뭔데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새언니랑 좀 친하다고 잘난 척인가?”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채의 눈빛에 순간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그러나 곧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가앉았다.“사실 나도 강시아 별로 안 좋아해요.”그 말에 민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왜요?”그러고는 금세 이해한 듯 코웃음을 쳤다.“새언니 같은 사람이 우리 오빠한테 어울릴 리 없죠.”“맞아요. 사람들 눈엔 잘못한 게 없어 보여도 은근히 밉살스럽잖아요.”은채의 한마디는 민아의 마음속을 정확히 파고들었다.두 여자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고 공기에 기묘한 동조가 피어올랐다.“도대체 뭐가 잘났다고!” 민아는 이를 악물었다.“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죽은 고아 주제에! 그 얼굴 하나로 오빠를 꼬시더니, 대차게 버려진 오빠는 아직도 그 여자를 감싸고 돌아요! 우리 가문의 얼굴을 발밑에 짓밟게 했다고요!”은채는 물 한 잔을 내밀었다.“남자란 원래 그래요. 손에 쥘 수 없는 걸 더 원하거든요.”그러고는 고개를 기울이며 낮게 말했다.“아 얼마전에 들었는데 요즘 강시아가 주시우랑 자주 만난다던데요?”이에 민아는 눈을 치켜떴다.“주시우? 주씨 가문의 그 얼음 같은 놈이요?”곧 무언가 떠오른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맞네요! 우리 오빠랑 그 남자는 원수지간인데. 일부러 오빠 약 올리려고 그러는 거예요!”은채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며 나직하게 덧붙였다.“그 여자는, 사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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