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448 챕터

제291화 우리 회사로 와

은채의 얼굴에 억지 미소가 굳어졌다.안영의 말은 겉으로는 공손했으나, 사실상 내쫓는 뜻이 분명했다.이는 은채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자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도 이런 대접을 받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사모님 말씀이 맞아요.” 은채는 금세 표정을 가다듬고 몸을 숙였다.“그럼 저는 더 방해하지 않겠어요.”은채가 돌아설 때 눈빛에 잠시 불만이 스쳤다.‘대체 왜, 시아는 이렇게 많은 사람의 편을 얻는 걸까?’안영은 대문이 닫히는 걸 끝까지 지켜본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품 안에서 흐느끼는 딸을 내려다보는 눈길에는 깊은 피곤과 체념이 담겨 있었다.“엄마, 강시아 그 여자가, 그 여자가...” 민아는 계속 흐느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그만해.” 안영이 말을 끊고는 계단 쪽으로 손짓했다.“얘 방에 데리고 올라가요. 해장국도 끓여서 먹이도록 하고요.”도우미가 다가와 부축했지만 민아는 고집을 부렸다.“싫어, 나 둘째 오빠 기다릴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 거야.”“너희 오빠 오늘은 안 들어와.” 안영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고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그리고, ‘그 여자’ 혹은‘강시아 그 여자’ 따위로 부르지 마. 시아는 네 새언니야.”그 말에 민아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무슨 새언니예요! 벌써 이혼 선언까지 했는데요! 이제 우리 오빠랑 끝났잖아요!”안영은 더 이상 딸의 고집을 상대하지 않고, 그저 눈짓으로 도우미에게 빨리 데려가라 지시했다.민아의 울음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안영은 지쳐 소파에 몸을 기대앉고는 전화를 걸었다.[엄마?]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지호의 목소리에는 피곤이 가득 배어 있었다.“네 동생, 술에 취해 진은채가 데려왔어.” 그러고는 안영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그 진은채라는 사람 보통사람 아니니까 너도 조심해.”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알았어요. 지금 바빠서, 돌아가서 얘기 드릴게요.]그때 뚝하고 통화가 끊겼고, 안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들은 분명 시아에게 휘어잡혀 있었지만 그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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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당신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게

시아는 비웃듯 웃었다.“난 일할 때 돈만 보는 게 아니라 상사를 봐요.”그 말은 가슴을 찌르는 칼날 같았다.지호의 눈빛에 일부러 상처 입은 듯한 기색이 스쳤다.“당신 눈엔, 내가 그렇게 형편없어? 주시우보다도 못해?”시아는 지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스스로 알잖아요. 비교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잠시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히자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그러다 지호가 피식 웃었는데 그 웃음에는 자조가 묻어 있었다.“맞아. 난 좋은 상사는 아니지.”지호는 한발 물러서며 출입문을 비켜섰다.“들어가. 푹 쉬어.”시아는 지호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줄은 몰랐다. 그래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문이 닫히기 직전, 문틈 사이로 보인 건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지호의 그림자였다.불빛에 길게 늘어진 그 그림자는 왠지 쓸쓸해 보였다.문에 등을 기댄 시아의 마음이 괜히 복잡해졌다.방금 자기 말이 너무 가혹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하며 시아의 생각을 끊었다.바로 낯선 번호에서 온 사진이었다.화면을 열자 시아의 온몸이 순간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사진 속에는 민아와 은채가 잔을 맞대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건 사진 한쪽에 찍힌 날짜였는데 바로 오늘이었다.‘저 둘이 언제 그렇게 가까워진 거지?’시아는 곧장 지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곧 익숙한 벨 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문을 벌컥 열자 지호가 서 있었다. 그 역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무슨 일이야?” 지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분명 같은 메시지를 받은 듯했다.“당신 동생이랑 진은채가...” 시아는 말을 잇다 멈췄고 지호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내가 처리할게.”지호는 잠시 멈췄다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요즘 그 여자 조심해. 구승준과 얽힌 게 단순하지 않아.”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호의 소매 끝에 비친 희미한 혈흔을 발견했다.“다쳤어요?”그러자 지호는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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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이걸로 만족하죠?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라는 말은 지호를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시아는 지호의 수작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구급상자를 정리해 놓고 내려다보듯 지호를 보았다.“지금 이거 완전히 억지 부리는 거잖아요?”“억지라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억울하지.” 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소파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이건 합리적으로 부상자 신분을 활용하는 거지.”지호는 불현듯 시아의 손목을 붙잡아 살짝 끌어당겼다.시아는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지호의 무릎 위로 안착했다.“지호 씨!” 시아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지호의 팔이 허리를 단단히 감아 놓았다.“쉿.” 지호가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는데 따뜻한 숨결이 민감한 귓불을 간질였다.“얌전히 있어. 잠깐만 안고만 있게.”이에 시아의 온몸이 굳어졌다.지호의 단단한 허벅지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서서히 깨어나는 다른 무언가도 느껴졌다.“당신...” 시아의 귓불까지 붉게 달아올랐다.“당신 정말 뻔뻔하네요!”지호의 낮은 웃음이 가슴에서 울리며 시아의 등을 타고 전해졌다.“여보, 난 오직 당신한테만 뻔뻔해.”지호는 일부러 시아를 더 껴안으며 장난스레 움직였다. 그리고 시아의 목까지 붉게 물드는 걸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당장 나가요!” 시아는 결국 폭발해 가까운 곳에 있던 쿠션을 집어 지호의 얼굴로 힘껏 던졌다.지호는 몸을 재빨리 비틀어 첫 번째는 피했으나, 두 번째 쿠션은 정통으로 머리를 때렸다.“아악!” 지호는 과장되게 신음하며 이마를 감쌌다.“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려 드네!”이에 시아는 벌떡 일어나 문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마저 덜덜 떨고 있었다.“지금! 당장! 나가요!”지호는 천천히 일어나 어지럽힌 셔츠를 정리했다. 문 앞에 다다르자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졌다.“참, 내일 내가 올 때...”지호는 시선을 소파로 흘리며 입꼬리를 올렸다.“오늘 밤 못 끝낸 일, 그때마저 할 수 있겠지?”시아는 더는 말도 못 하고 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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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이건 진짜 내가 한 게 아니야

지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는데, 마치 큰 임무를 완수한 듯한 홀가분한 기색이었다.시아는 지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지호 씨, 오해하지 마요. 그냥 더는 쓸데없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먹은 거니까.”시아는 새우 딤섬 하나를 집어넣자 터져 나온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맛은 확실히 훌륭했다.저녁을 거의 먹지 않는 시아에게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끼니였다.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시아가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하자 지호는 두 걸음 떨어져 마치 충직한 보디가드처럼 여자의 뒤를 따라붙었다. “언제까지 따라올 거예요?” 시아가 돌아보며 눈을 흘겼다.“나도 출근해야지. 그냥 길이 같을 뿐이야.” 지호는 어깨를 으쓱였다.이에 시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차를 향해 갔지만 차량까지 5미터쯤 남았을 때 걸음을 멈췄다.앞바퀴가 완전히 찌그러져 림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지호 씨!” 시아는 화가 치밀어 외쳤다.“심심해서 이런 장난쳐요?”그러나 지호는 억울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아니야, 이건 진짜 내가 한 게 아니야.”시아의 눈길이 의심스러웠다.“정말 당신 짓 아니라고요?”“내가 당신을 막을 거라면 그냥 집으로 납치했겠지.” 지호는 몸을 일으켜 눈빛을 굳혔다.“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야.”잠시 후, 관리사무소 CCTV실.시아는 화면을 세 번이나 돌려봤다. 어젯밤 주차한 뒤로 아무도 차에 가까이 간 흔적은 없었다.“이상하네.” 시아가 중얼거리자, 지호는 뒷벽에 기대 한 마리 억울한 강아지처럼 표정을 지었다.“이제 내 억울함 풀린 거 맞지? 진짜 내가 한 게 아니야. 근데 당신은 날 못 믿고 너무 서운해. 날 좀 달래 줘야 하지 않겠어?”시아는 화면을 꺼버리고 돌아섰다.“농담은 집어치워요. 타이어가 그냥 터질 리 없잖아요.”“맞아”지호의 얼굴은 다시 진지해졌다.“게다가 솜씨가 상당히 프로야. 모든 카메라 각도를 피했어.”관리소장은 식은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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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시험이 아니라 선택이죠

공항은 사람들로 붐볐으나 지호는 멀리서도 바로 알아보았다. 체크인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주시우는 짙은 회색 슈트 차림에, 사람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단정하고 날카로웠다.지호의 눈빛이 깊어지던 그때 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수고하셨어요. 여기까지 하시고 돌아가세요.”시아의 말은 정중했지만 단단한 벽을 세우듯 차갑고 멀리 있었다. 하 대표님 같은 존칭으로 철저히 선을 긋고 있었다.‘혼자 출장 가는 줄 알았는데, 주시우가 동행이라니.’지호는 입꼬리를 비틀며 낮게 말했다.‘다리 부러뜨린 말도 숨은 여물은 먹여야지. 아직 주 대표에게 인사도 못 했는데.’그 시각, 시우도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사이를 훑어보다가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곧장 발걸음을 옮겨 다가왔다.“수고 많으시네요, 하 대표님.”시우의 인사는, 조금 전 강시아가 건넨 ‘수고 많았어요’와 다를 바 없었다.이에 지호는 비죽 웃었다.“과찬이세요. 제 아내를 바래다주는 건 당연한 일이죠.”시우의 눈썹이 가볍게 올라가더니 말없이 강시아를 보았다.“출장이 조금 갑작스러웠네요.”“괜찮아요.” 시아는 조용히 그러나 정확히 비서의 자세로 대답했다.“우린 곧 탑승해야죠.”시우는 지호에게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시아와 함께 체크인을 마쳤다.시우의 키와 하지호는 비슷했다. 나란히 서 있는 시아는 적당한 높이로 둘 사이에 섰고, 어쩐지 두 사람은 묘하게 잘 어울렸다.이에 지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휴대폰을 꺼내 단호히 명령했다.“고 비서, S시 가는 비행기, 가장 빠른 걸로 예약해.”비행기가 안정하게 날시자, 시우는 서류 가방을 열고 한 묶음을 꺼내 시아에게 건넸다.“만성 관련 자료예요. 미리 숙지해 두세요.”시아는 받아 들고 첫 장을 넘겼다. 프로젝트 기본 소개, 일정표 그저 흔한 자료였다.그런데 일곱 번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붉은 글씨로 ‘주한그룹 기밀’이라 적혀 있었는데, 이는 해외 고객과의 최근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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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다시는 따라오지 마요

지호는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밟으며 똑바로 걸어왔다.“주 대표님, 유 대표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지호의 말투는 뻔뻔하기 그지없었다.“우연 맞네요.” 시우도 의미심장하게 받아쳤다.“강 비서, 또 만났네요.”지호의 시선이 곧장 시아에게 향했다.이에 시아는 속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 대 갈겨버리고 싶을 만큼, 이 상황이 답답하고 숨 막혔다.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으나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짧게 대답했다.“네.”“하 대표님, 아직 식사 전이시죠? 같이 하시죠.” 유 대표는 노련한 인물이었다. 시우가 든든한 버팀목이라면 지호는 더 큰 줄기 같은 존재였다.“괜찮을까요?” 지호는 일부러 난처한 듯 굴며 시우를 보았다. “주 대표님께서 불편해하지 않으실지.”속으로 시아는 이를 갈았다. ‘정말 교활한 남자야. 이득은 챙기면서 저런 척을 하다니.’시우와 지호의 시선이 잠시 공중에서 부딪쳤다.“괜찮아요.” 시우가 담담히 대답했다.상대방 대표가 직접 초대하고, 본인 회사 대표도 괜찮다는데, 시아 같은 작은 비서가 반대할 권한은 없었다.일행은 VIP 룸으로 들어가자 시아는 일부러 지호와 가장 먼 자리, 시우의 오른편에 앉았다.지호의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곧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자리에서는 유 대표가 열정적으로 프로젝트 계획을 설명했고, 시우가 틈틈이 응수했다. 그러나 지호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내내 강시아만 바라보고 있었다.식사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지호의 휴대폰이 울리자 남자는 화면을 확인하고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실례할게요, 전화 좀 받도록 할게요.”“엄마. 네, 알았어요.” 지호는 통화 내내 시선을 시아에게서 떼지 않았다.‘엄마?’시아의 젓가락이 허공에 멈췄다.‘안영의 전화라고?’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아직 무슨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지호는 벌써 휴대폰을 내밀었다.“엄마가, 목소리 듣고 싶다는데요?”이에 시아는 숨이 막혔다.이건 명백한 소유권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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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정말 눈치 못 챘어?

호텔 복도의 불빛은 부드럽고 황금빛으로 번졌다.시아는 객실 앞에 서서 카드키를 손가락으로 꼭 쥐었고,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너무 익숙했다.바로 지호였다.결국 또 따라온 것이라 생각한 시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카드를 찍어 문을 열어 들어가려 했다.“난 2807호야. 당신 바로 맞은편. 필요하면 언제든...”쾅!자호의 말은 시아가 힘껏 닫아버린 문소리에 묻혔지만 두꺼운 문을 사이에 두고도 지호의 목소리가 따라왔다.“아까 거의 못 먹었잖아. 내가 룸서비스 시켜놨으니까 곧 올 거야.”그러나 시아는 대꾸하지 않았다.구두를 벗어 던지고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둔 뒤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따뜻한 물줄기가 얼굴의 파운데이션을 씻어내릴 즈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룸서비스입니다.” 밖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아는 손을 닦고, 고개를 숙여 도어 뷰어로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주문하신 저녁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푸시카에는 정갈한 딤섬과 김이 오르는 완탕면이 놓여 있었다. 그 유명한 집 메뉴였고 다 시아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필요 없어요. 제가 시킨 게 아니에요.” 시아는 맞은편 문을 흘깃 보며 딱 잘라 거절했다.시아는 정말로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기에 속은 이미 텅 빈 상태였다.그러나 직원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2807호 하지호 님께서 주문하셨습니다. 결제도 완료하셨습니다.”시아는 또 거절하려 했지만, 배가 먼저 ‘꾸르륵’ 하고 항의했다.이에 직원은 못 들은 척,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들여놓으세요.”푸시카가 막 안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문이 닫히기 직전 한 손이 문을 붙잡았다.지호가 고개를 내밀며, 손에는 포장 박스 두 개를 들고 있었다.“혼자 먹으면 쓸쓸하잖아. 내가 밥친구 해줄게!”시아는 황당해 웃음까지 났다.“당신 진짜 한가하나 보네요?”“아니야, 엄청 바쁘지.” 지호는 태연하게 들어오며 포장 박스를 열기 시작했다.“아내 밥 챙기느라 바쁘거든.”“누가 당신 아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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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친절한 충고

시아는 냉소를 터뜨렸다.“내가 정말 ‘하지호의 아내'라는 명패가 필요했다면, 애초에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겠죠.”그 말은 칼날처럼 지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당신은 그렇게까지, 나랑 얽히는 게 싫어?”“싫은 게 아니라...” 시아는 말을 멈추고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이해할 리 없죠. 내일부턴 제발 내 일에 끼어들지 마요.”잠시 침묵하던 지호는 갑자기 일어나 식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좋아.”너무 단호한 대답에 시아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하지만 조건 하나 있어.”지호는 역시나 덧붙였다.“여긴 구영시랑 달라. 항상 조심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시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지호의 얼굴에 오늘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지호가 말끔히 식사를 치우고 문을 나서려던 찰나, 다시 돌아보며 물었다.“나, 주시우 대표랑 술 마시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뭐라고요?” 시아는 물잔을 놓칠 뻔했다.“당신이 주 대표를 만난다고요?”“남자끼리 대화 좀 하려는 거야. 안심해, 주먹질은 안 할 테니까.”시아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이내 급히 외쳤다.“당신 제발 사고 치지 마요!”하지만 시아의 말은 문 닫히는 소리에 묻혔다.2809호, 막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닦던 시우가 문을 열자, 지호가 와인을 들고 서 있었다.“하 대표님?”“얘기 좀 할까요?” 지호가 들어 보인 건 호텔에서 방금 배달된 82년산 라피였다.시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몸을 옆으로 비켰다.“이런 영광이.”넓은 스위트룸. 창 너머로는 S시의 화려한 야경이 반짝였다.지호는 바에 다가가 유리잔 두 개를 꺼냈다.“하 대표님, 의외로 여유가 있네요. 이 밤에 자기 라이벌하고 술자리를 하다니.”시우는 소파에 앉으며 비아냥거렸다.“라이벌이요?” 지호의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저 와인을 따르며 가볍게 웃었다.“주 대표님, 스스로를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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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강 비서답네요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맞부딪혔는데 공기 중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듯했다.결국 지호가 먼저 시선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정리했다.“술도 마셨고, 할 말도 다 했으니 주 대표님, 좋은 밤 보내시죠.”문이 닫히자 지호의 뒷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시우의 얼굴에서 서늘한 미소가 천천히 지워졌다.남자는 창가로 걸어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하지호가 이 지역에서 어떤 인맥을 가졌는지 조사해. 그래, 전부 다.”한편, 지호 역시 방으로 돌아와 곧장 고성민에게 전화를 걸었다.“내일 아침 일곱 시까지, 만성그룹의 모든 내역을 보고해. 특히 유 대표와 거래한 고객 명단은 빠짐없이.”전화를 끊은 지호는 창가에 서서 시선을 돌렸는데 멀리서도 시우 방의 불빛이 보였다.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맞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도가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아침 일곱 시, 시아는 막 세안을 마치고 나왔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도어 뷰어로 확인해 보니 성민이 서 있었고, 남자의 손에는 정갈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사모님, 좋은 아침이에요.” 성민이 미소 지으며 상자를 내밀었다.“저희 대표님께서 보내신 거예요.”이에 시아는 상자를 받아 들며 묻는다.“이게 뭐예요?”“직접 확인해 보시라네요. 그리고 오늘 하루 일 잘되시길 바란다고 전해달라고 하셨고요.”문을 닫고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고급 브랜드의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방수와 통기성이 뛰어나 공사 현장에 제격인 제품이었다.게다가 상자 안에는 반창고와 땀 흡수 양말까지 곱게 챙겨져 있었다.시아의 손끝이 천천히 신발 위를 쓰다듬었다.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피어올랐다.정작 마음은 없으면서도, 지호의 이런 세심한 배려는 사람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이때 휴대폰이 진동했다.주시우의 메시지였다.[아침 여덟 시, 로비 집합. 만성 공장 현장 점검.]시아는 시간을 확인한 뒤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출발하기 전 잠시 망설이다가 새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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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못 놔줘

만성그룹의 공사 현장은 상상보다 훨씬 컸다. 수십 대의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가르며 움직이고, 인부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굉음은 쉼 없이 울려 퍼졌고, 공기는 쇳내와 먼지로 가득했다.유 대표는 안전모를 직접 챙겨주며 웃었다.“주 대표님, 강 비서님, 이쪽으로 오시죠. 안전 장비는 다 준비해 두었어요.”시아는 안전모를 눌러쓰고 시우 뒤를 따라다니며, 유 대표의 설명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문제점도 빠짐없이 메모했다.공사장은 바닥이 울퉁불퉁했고, 철근과 자재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몇 번이나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조심해요!”비탈길을 내려오던 순간, 시아의 몸이 휘청이자 시우가 재빨리 손을 뻗어 붙잡았다.겨우 중심을 잡은 시아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을 뺐다.“감사드려요.”그러나 시아는 눈치채지 못했다.멀리 굴착기 뒤편, 누군가가 카메라 셔터를 은밀히 눌렀다는 것을.오전 내내 이어진 현장 점검이 끝났을 때, 시아의 노트는 빽빽한 글씨로 가득했고, 발목은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욱신거렸다.“강 비서는 참 성실하네요.” 유 대표가 생수병을 건네며 웃었다.“주 대표님, 좋은 조력자를 두셨네요.”시우는 물을 받으며 시아의 발목을 흘끗 보았는데 붉게 부어오른 것이 눈에 띄었다.“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요?”“괜찮아요.” 시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돌아서려는 순간, 자재를 나르던 인부가 갑자기 옆에서 달려 나와 그대로 부딪힐 뻔했다.“위험해요!”시우가 시아의 허리를 감싸며 재빨리 끌어당겼다.시아는 불쑥 품에 안겼고, 안전모가 삐뚤어졌다.놀라 몸을 곧추세운 순간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셔터 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고개를 돌린 시우의 시선이 즉시 소리가 나는 곳을 보자,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카메라를 든 채 달아나고 있었다.“기자일지도 모르죠.” 유 대표가 당황한 듯 이마의 땀을 훔쳤다.“최근 프로젝트가 이목을 끌다 보니 종종 언론인이 몰래 들어와요.”시아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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