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301 - Chapter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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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가서 준비해

지호의 눈빛에 흥미 어린 장난기가 번지자, 성민도 덩달아 신이 난 듯 평소보다 말이 훨씬 가벼워졌다.“사모님이 지금 반감을 가지는 건 대표님의 과도한 통제욕 때문입니다. 조금 더 대범하게 보이시면, 어쩌면...”지호가 눈을 들어 성민을 바라봤다.“그래서? 구체적인 제안이라도 있나?”성민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미소를 지었다.“내일 사모님이 만성그룹의 모델하우스를 보러 간다던데, 거기엔 로맨틱한 옥상 정원이 있답니다.”“요점만 말해.”“우연 아닌 ‘우연한 만남’을 연출하시면 됩니다. 다만 절대로 질투하는 모습은 보이지 마셔야 합니다.” 성민은 점점 흥분해 목소리가 높아졌다.“오히려 일에 적극적으로 조언을 하시고, 사모님의 일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시죠. 그렇게 하면 성숙하고 여유로운 이미지를 주실 수 있을 겁니다.”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가서 준비해. 잘하면 상을 줄 테고, 망치면 다리 온전할 생각은 접어.”그 말을 들은 성민의 얼굴빛이 굳었다.“그, 그건 대표님, 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실 수 없습니까?”“늦었어.” 지호가 손가락을 두드렸다.“가서 준비해.”성민은 울상을 지으며 방을 빠져나갔고, 속으로 이미 자기 입방정을 수십 번도 넘게 욕하고 있었다.방 안에 남은 지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확대했다.시아의 놀란 얼굴과 시우가 본능적으로 감싸는 보호적인 자세가 눈에 거슬렸다.이에 지호는 번호 하나를 눌렀다.“주시우의 최근 통화 기록을 조사해. 특히 진은채와의 통화 내역을 중심으로.”전화를 끊은 지호는 창가로 걸어가 구영시의 전경을 내려다봤다.햇살이 지호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추었지만 눈속의 먹구름을 거두지는 못했다.시아가 말했던 대로였다. 사람은 언제나 남이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그러나 지호의 여자가 된다면 평생 비 한 방울조차도 맞지 못하게 할 것이었다.천해만 1호의 꼭대기 레스토랑.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천해만의 야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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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진심이에요

“하 대표님?”하연이 피같이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가락을 지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이 트러플 푸아그라는 특별히 주문하신 거잖아요. 안 드시면 식겠는데요.”지호가 시선을 거두었다.“식으면 안 먹으면 되죠.”하연이 낮게 웃었는데 붉은 입술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렸다.“이제 알겠네요. 왜 여자를 먼저 불러내지 않는 대표님이 오늘은 갑자기 저를 저녁 자리에 초대했는지.”하연은 천천히 스테이크를 썰며 말을 이었다.“저를 총알받이로 삼으려는 거였군요.”그 말에 지호가 미간을 올렸다.“역시 소 대표는 똑똑하군요.”“아내 쫓아다니는 중인가요?” 하연이 슬쩍 시아 쪽을 보았다.“음, 밀당 전략이라고 하죠?”“너무 티 났나요?”“제 드레스의 깊은 V라인만큼 뻔했죠.” 하연은 와인을 들이켜고는 덤덤히 말했다.“하지만 대표님, 이런 수는 사람 따라 달라요.”하연은 의도적으로 등을 곧게 편 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게 시아 씨한테는 통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지호가 처음으로 하연을 똑바로 보았다.“제 아내를 아시나요?”“물론이죠. 구승준 인생 최대의 실패가 바로 시아 씨를 잃은 거니까요.” 하연이 잔을 내려놓았다.“대표님은 눈이 좋으시네요. 진짜 보물을 건진 거예요.”지호의 시선이 부드러워지며 낮게 말했다.“맞아요, 이 보물 내가 십 년을 지켜왔죠.”한편, 시아와 시우의 저녁 식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오늘 조사에서 꽤 건진 게 많았어요.” 시우가 서류를 덮었다.“강 비서, 생각보다 훨씬 전문적이더라고요.”“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시아가 자료를 챙기며 시계를 보았다.“내일 여덟 시에 모델하우스 가는 거죠?”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깊은 눈빛으로 시아를 보더니 불쑥 말했다.“내가 투자한 프로젝트가 수없이 많지만 가장 성공한 투자는 바로 강 비서죠.”이에 시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어버렸다.“대표님, 그런 말은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진심이에요.”시우가 계산을 요청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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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꽤 유명하죠

시아와 시우가 막 레스토랑 출구에 다다랐을 때, 붉은 실루엣이 길을 가로막았다.“시아 씨, 오랜만이네요.”하연이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저 기억하시죠?”시아는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소 대표님, 좋은 저녁이에요.”하연은 이번에는 주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주 대표님, 이름만 익히 들었는데 이렇게 뵙네요.”시우가 짧게 손을 맞잡았는데 눈빛에는 경계가 스쳤다.“소 대표님.”“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하연은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같이 한잔 어때요?”그러나 시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죄송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그러면 다음에 하죠.”하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곧장 시선을 시아로 돌리며 물었다.“시아 씨, 솔직히 말해볼게요. 우리 회사로 올 생각 없어요?”하연은 의미심장하게 시우를 흘끗 보며 덧붙였다.“남자 밑에서 일하는 게 불편할 때도 있잖아요. 차라리 우리 회사 쪽으로 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시아는 예상치 못한 대놓고 된 도발에 순간 놀랐다. 그것도 상사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그러나 시아는 잔잔히 미소 지었다.“소 대표님, 일은 순서가 중요한 법이죠. 지금 저는 주 대표님의 비서라서요.”“그러면 제가 늦었단 얘기군요?” 하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늦으셨어요.”시아는 단호하게 잘라 말하자, 하연은 붉은 입술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비켜섰다.“좋아요, 두 분 모두 일 잘하시길 바랄게요.”레스토랑을 나선 뒤 시우가 불쑥 물었다.“소 대표랑 아는 사이였어요?”“몇 번 뵌 적 있어요.” 시아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재계에서 워낙 유명하신 분이죠.”“꽤 유명하죠.”시우의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아가 먼저 걸어 들어갔다.“대표님도 그 소문들을 믿으세요?”시우는 시아를 잠시 바라보았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호텔 방으로 돌아온 시아가 가방을 내려놓자 휴대폰이 울렸다.낯선 번호인지라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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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잘 자요

하연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사람들은 다 내가 남자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하죠.”“하지만 나는 알아요. 소 대표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선 거라는 걸.”시아가 말을 끊었다.“굳이 하 대표와 손잡은 건 아마 그 어려움을 내가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일 거예요.”하연의 손가락이 순간 움켜쥐듯 굳어져 하얗게 질리더니 고개를 젖히며 잔을 단숨에 비웠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림 없었다.“시아 씨, 생각보다 절 아주 잘 이해하시네요.”시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이해가 아니라 공감일 뿐이에요. 이 바닥에서 여자가 자기 자리를 증명하려면, 남자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해야 하잖아요.”하연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하 대표 말이 맞았네요. 당신은 정말 보물 같은 여자예요.”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시아 앞에서 흔들며 말했다.“연락처 추가해도 될까요?”시아가 카톡에 친구를 등록하자, 하연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거베라 꽃 한 송이가 있자 시아는 뜻밖이라고 생각했다.자신만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꽃이었으니까.하지만 곧 스스로 웃음을 지었는데 이 세상엔 비슷한 취향이 수없이 많았다. 얼굴이 닮은 연예인조차 널렸는데, 취향이 같다고 이상할 게 없었다.“소 대표님도 거베라를 좋아하세요?”“추위에 강하고 끈질기죠. 시아 씨 같아요.”하연은 그렇게 답했다.역시 ‘재계의 여왕’이라 불릴 만했다. 시아가 거베라를 좋아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으니까.“소 대표님도 마찬가지예요.”시아 역시 진심 어린 존중을 표현했다.이에 하연은 옅게 미소 지으며 일어나서 겉옷을 챙겨 입고는 돌아서며 말했다.“벌써 늦었네요. 이만 가야겠어요.”떠나기 전 하연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하게 말을 남겼다.“시아 씨, 가장 진짜인 건 때로 가장 가짜 같은 모습 속에 숨어 있기도 해요.”시아는 그것이 지호를 두둔하는 말인지, 혹은 은근한 조언인지 알 수 없었고,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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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그걸 왜 저한테 묻죠?

아침 햇살이 커튼 틈새로 스며들며 방 안에 번졌고, 시아는 휴대폰 진동에 눈을 떴다.화면에 떠 있는 건 진은채가 보낸 메시지였다.‘DNA 감정 보고서’라는 제목과 함께, 은채와 마지원 사이의 친자 관계 증명서가 첨부돼 있었고 일치율 99.99%였다.이에 시아의 졸음은 단숨에 사라졌다.시아는 상체를 일으켜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었고 내용을 대충 확인한 뒤,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그렸다.[축하해.]그렇게 짧게 답장을 남기고 휴대폰을 옆으로 던졌다.그러나 문자를 보낸 지 3초도 안 돼 전화가 걸려 왔다.[강시아, 보고서 봤지? 이제 그 재산은 네가 혼자 가질 수 없어.]은채의 목소리는 숨길 수 없는 기세등등함으로 가득했다.그리고 시아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활짝 열자 쏟아지는 햇살이 온몸을 덮었다.“그래서?”[결과가 말해주잖아. 마지원에게는 아들이 둘 더 있어. 상속법대로라면 네 몫은 고작 4분의 1이야.]“그래? 그럼 먼저 나눠. 다 나누고 남은 거 나한테 줘.”시아의 목소리는 오히려 잔잔했으나, 이어지는 말은 더욱 날카로웠다.“아니면 내가 다 양보해도 돼. 하지만 그럴 가치는 없어. 너희 같은 사람들한테는 어울리지 않거든. 그러니 내 몫은 받아서 기부라도 해야겠지. 그게 너희 가족이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덕일 테니까.”전화 너머는 잠시 정적에 잠겼고, 곧 은채의 날 선 목소리가 터졌다.[강시아!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네가 뭐 대단하다고! 하씨 집안 믿고 설치는 거야?]“넌 아직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시나 보네. 나랑 하지호는 이미 이혼했어. 뉴스에도 다 났는데?”시아는 단칼에 잘라냈다.“더 할 말 있어? 난 이제 아침 먹으러 가야 해.”뚝, 통화음이 꺼지는 동시에, 깨지는 도자기 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날카롭게 스쳤다.시아는 눈앞에 그 장면이 그려지는 듯했다. ‘주위의 값비싼 장식품들이 모조리 산산조각 났겠네.’창가에 선 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이십 년 넘게 연락 한번 없던 아버지, 갑자기 나타난 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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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솔직히 말해봐요

만성그룹과의 계약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유 대표가 열정적으로 프로젝트 계획을 설명했고, 시우는 전날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어냈다.상대 측은 바로 수정을 약속하고는 양측은 시원하게 서명을 마쳤다.시아는 끝까지 조용히 곁에 서서 기록을 남겼다.계약식이 끝난 뒤 유 대표가 점심 식사를 제안했으나 시우는 단호히 거절했다.“회사에 일이 있어 공항으로 바로 갈게요.”차가 공항으로 향하던 중, 시아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발신자는 하연이었다.[오늘 구영시로 돌아간다고 들었어요. 무사히 가길 바랄게요.]시아는 하연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에 굳이 보낼 필요 없는 메시지였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다.[고마워요.]그렇게 짧게 답한 뒤 잠시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붙였다.[어젯밤 술 좋았어요.]곧 답장이 왔다.[다음엔 더 좋은 술로 대접할게요. 아니면 내가 그쪽으로 갈 때 시아 씨가 사줄래요?]그 말에 시아의 입가가 미묘하게 휘어졌다.‘이 소하연, 정은산과 참 닮았네. 처음 봐도 거리낌 없고, 성격도 제멋대로야.’[좋아요.]시아는 세 글자만 남기고 화면을 잠갔다.공항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이게 누구야? 이렇게 우연할 수가 있나?”정은산이었다.C사 수트에 H시 리미티드 백을 든 채,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정은산 씨.”시우가 먼저 인사하자 시아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형님, 정말 우연이네요.”“오해하지 마요. 난 그냥 마음에 드는 주얼리 보러 온 거니까요.”은산은 손에 든 쇼핑백을 흔들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근데 두 사람은 출장을 같이 온 거예요?”은산의 시선은 두 사람을 오가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출장 맞아요.”시아가 설명했다.“출장이 원만히 끝난 거네요?”은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시우가 답했다.“오늘 아침에 계약 마쳤죠.”“좋네요!”은산은 갑자기 시아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며칠 나랑 같이 놀아요. 요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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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뭐 잊은 거 없어요?

시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 속에 스친 건 복잡한 빛이었다.“그냥 업무 관계일 뿐이에요. 남자라고 다 좋아하는 바보는 아니니까.”“그건 맞죠. 그래도 주 대표는 지호보다 한 끗은 부족하니까요.”은산이 어깨를 으쓱하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요즘 진은채가 하민아랑 자주 어울리더라고요. 뭘 꾸미는지 모르겠어요.”이에 시아가 눈썹을 올렸다.“형님도 은채가 일을 꾸민다는 걸 알아요?”“당연하죠, 구영시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요.”은산은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수정 화장을 하며 웃었다.“게다가 진은채 씨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잖아요. 자기가 마씨 집안 친딸이라고요.”시아는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며 무심하게 말했다.“원하면 떠들게 두죠.”“참 침착하네요.”은산이 립스틱을 정리해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지호는 달라요. 오늘 아침에 어머님한테 전화 받고, 은채가 민아를 찾아갔다고 해서 불같이 화냈다더라고요.”시아의 심장이 순간 움찔했다.“은채가 또 하씨 집에 간 거예요? 왜요?”“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그때 마침 시우가 이쪽으로 다가오자, 은산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솔직히 말해봐요. 지호에 대해 아직 무슨 감정이 있는 거예요?”시아는 시선을 곧게 정면으로 향한 채 대답했다.“아무 생각 없어요.”“그런 거짓말에 퍽이나 속겠어요.”은산이 코웃음을 쳤다.“근데 왜 아직도 하씨 집안 일에 그렇게 신경을 써요?”“그냥요. 그 여자가 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궁금해서 그러죠.”은산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알았어요. 그 말이 맞다고 치죠.”곧 공항 방송이 울려 퍼지자 시아는 트렁크 손잡이를 잡았다.“저 이제 탑승해야 해요.”“잠깐만요!”은산이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시아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렸다.“난 아직 좀 더 돌아다녀야 하거든요. 곧 돌아가니까...”은산은 길게 말을 늘리며 눈을 찡긋했다.“너무 보고 싶어 하지는 마요.”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울리며 은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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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내 물건을 찾으러 왔어

전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여보.] 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열두날 만에 다시 연락해서 첫마디가 이거야?]“그럼 뭐라고 할까요?”시아가 곧장 되물었다.“왜 갑자기 사라졌냐고 묻는 게 나았을까요?”말이 떨어지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이런 식으로 물으면, 지호가 분명 엉뚱한 쪽으로 받아들일 터였다.과연 그 말이 나오자마자, 지호의 낮은 웃음이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아, 알고 보니 당신이 날 보고 싶어 했던 거구나.]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즐거움이 배어 있었다.시아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맞아요, 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얼른 가정법원에 가서 도장 찍는 모습 말이죠.”지호가 낮게 웃었다.[그러면 방금 전화는 못 받은 걸로 할게.]“지호 씨!”시아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했다.“이렇게 질질 끄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요?”[재미없지.]이번엔 지호의 말투가 진지해졌다.[이미아가 말을 할 수 있게 됐어.]이에 시아가 잠시 굳었다.“그렇게 빨리요?”전에 노수한에게서 들었을 땐, 아무리 빨라도 몇 달은 걸린다고 했었다.‘이제 겨우 얼마가 지났다고.’[노 교수님의 치료가 효과적이었어.]지호의 음성엔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궁금하다면 이제 직접 가서 물어볼 수도 있지.]시아의 가슴이 묘하게 죄어왔다.“축하해요.”잠시 뜸을 두곤, 덤덤하게 덧붙였다.“그럼 이제야말로 도장 찍을 때네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미래를 그리려면, 더 지체하지 말고요.”마지막 단어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고, 귀가 멍하리만치 바쁜 신호음만 이어졌다.시아는 입가를 살짝 당기며 웃어 보였다.‘내가 무슨 잘못된 말을 한 걸까?’지호가 사라졌던 시간 동안 그 곁에는 미아가 있었다.알고도 있었던 사실이었다.‘하지호의 집착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나를 신경 쓸 이유가 없겠지.’그게 오히려 더 나았다.하지만 곧 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걸어온 사람은 여전히 지호였다.“또 뭐예요?”[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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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무죄가 되는 건 아니거든

미아의 표정이 순간 굳었고 손끝은 힘이 잔뜩 들어가 하얗게 질렸다.지난번보다 혈색은 한결 나아 있었다. 볼에는 붉은 기운이 돌고 입술도 더는 메마르지 않았다.하지만 두 눈 속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건 두려움과 불안이었다.겉모습은 남을 쉽게 속였다.예전 함께 훈련하고 어울릴 땐 이런 연기력은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야 자신이 그때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깨달았다. “회복이 빠르네.”시아가 불쑥 말했다.“결국 너도 새로운 삶을 원한다는 얘기잖아.”미아는 고개를 숙이자 긴 머리카락이 반쯤 얼굴을 가려, 하얀 목덜미만 드러났다.마치 당장이라도 울 듯한 이 모습은 예전 수많은 사람들의 연민을 샀지만 시아에겐 이제 우스울 뿐이었다.“대답해.”시아가 다시 묻자 미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네 게 아닌데 왜 가졌어?”시아가 한발 다가섰다.“아니면, 그게 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안 내주고 싶었던 거야?”미아의 눈동자엔 공포가 흘러넘쳤다.시아가 바로 앞에 서자, 서로의 눈 속에 상대가 뚜렷이 비쳤다.“미아야, 넌 그렇게도 날 미워해? 질투해?”“난, 그런 거 아냐...”미아의 목소리는 떨렸다.“불상에 내 생일과 악담을 새긴 게 네 짓 아니야?”시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사진이 유출된 순간, 퍼즐이 맞춰졌는데 그토록 자신을 증오한 이는 미아였다.미아는 침묵했지만 그 눈빛이 곧 답이 되었다.이내 시아는 냉소를 띠었다.“했으면 했다고 인정해. 이보다 더 악랄한 짓도 했잖아. 이런 건 오히려 사소한 계략에 불과해.”미아의 눈빛이 확 바뀌며 분노가 터져 나왔다.“그래! 내가 했어! 난 널 미워해! 넌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걸 빼앗아 갔어!챔피언, 영광,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하지호까지!”미아의 창백한 얼굴은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네가 없었다면, 시상대 위에 선 건 나였어! 하지호가 원하던 사람도 나였을 거라고!”시아는 잠자코 기다렸다가 그 기세가 꺾이자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네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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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할 말이 없나요?

연구소를 나온 시아는 계단 위에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이때 휴대폰이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바로 은산이었다.[내일 저녁 7시, 보르주 클럽 주얼리 경매회. 꼭 와야 해요!]시아는 은산이 주얼리계 큰손이라는 건 알았지만, 직접 경매까지 여는 줄은 몰랐다.이에 물음표 몇 개를 보내자 은산이 바로 답을 보냈다.[너무 많이 모아서 그래요. 같은 디자인이나 맘에 안 드는 건 정리해야죠.]시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난 살 능력이 안 되는데.’이에 은산이 곧장 메시지를 띄웠다.[누가 사래요? 그냥 와서 자리 채워주라고요! 게다가 특별한 전시품도 있으니까 분명 관심 있을 거예요.]‘특별한 전시품?’시아는 속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세 글자를 보냈다.[좋아요.]보르주 클럽의 경매장은 금빛 장식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시아는 짙은 초록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귀밑에 살짝 드러난 작은 검은 점이 조명에 반짝였다.시아는 웨이터가 내민 샴페인을 거절하고 홀 가득 모인 재계 거물들과 상류층 인사들을 둘러봤다.“드디어 왔네요!”은산이 10센티 힐을 또각거리며 다가왔는데 붉은 드레스가 사람들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은산은 친근하게 시아의 팔을 끼며 말했다.“자리는 내가 제일 좋은 데로 잡아놨어요.”시아는 끌려가듯 자리를 옮겼고 시선은 여전히 주변의 인물들을 훑었다.앞줄엔 이미 은산의 전시대가 준비돼 있었고, 유리 진열장 속 보석들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그 특별한 전시품이 뭐예요?”시아가 묻자 은산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경매 시작 전, 칵테일파티가 열렸고 시아는 구석에 서 있었다.시아는 특히 이런 자리에서 술은 더더욱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홀 안엔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재계의 거물들, 재벌가의 딸들, 인기 스타들까지.사람들은 시아를 볼 때마다 눈빛을 미묘하게 바꾸었다.“들었어? 하지호랑 요즘 소하연이 꽤 가까이 지낸다던데.”“강시아는 이제 버려진 거지. 얼굴 말고 뭐가 있나?”“근데 요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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