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극 로맨스 / 시간을 거슬러 / Chapter 1101 - Chapter 1110

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1101 - Chapter 1110

1260 Chapters

제1101화

봉한설은 못마땅하다는 듯, 탁자 위를 흘끗 내려다보았다.찻잔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짙은 차 향 사이로 묘하게 다른 기운이 섞여 있었다.“그리고 이 차도 우리 폐하께 드릴 필요 없다. 우리 폐하께서는 싸구려를 좋아하지 않거든.”그렇게 말하며 봉한설은 찻잔을 들어 내용물을 그대로 목제 협상 탁자 위에 쏟아버렸다.순간,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색의 탁자에서 연기가 치솟더니 곧장 막사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사람들은 놀라 뒤로 물러섰고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연기준은 재빨리 꼬막이의 얼굴을 감싸 막았다. 하지만 꼬막이는 호기심에 그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밖을 들여다보았다.연풍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연기준과 꼬막이 앞에 서서 둘을 지켰다.하얀 옷의 여인은 다리가 풀린 채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제가 아닙니다! 저는 독을 넣지 않았습니다! 만 개의 담력을 빌린다 해도 감히 진국 황제를 해치고 두 나라의 화담을 망칠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금수 대장공주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본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 여자를 끌어내려라! 엄하게 문초해서 누가 시켰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요동 병사들이 곧장 다가와 여인을 끌고 가려 했다.하지만 봉한설이 한발 먼저 움직여 그녀를 눌러 제압했다.“이 사람은 진국 폐하를 노린 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진국에서 처리해야지요.”그 말을 듣자, 하얀 옷의 여인은 온몸을 더 세차게 떨었다.연기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 봉한설이 유난히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그녀는 서인경과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전혀 나서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금수 대장공주는 궁녀 하나의 생사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 궁녀 하나 때문에 두 나라의 협상이 망가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특히 그 여인이 요동 출신인 이상, 진국 황제 암살이라는 죄명이 성립되면 이번 협상에서 요동은 단번에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금수 대장공주는 손을 들어 올려 호위병들에게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
Read more

제1102화

다시 자리에 앉자 금수 대장공주는 더 이상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연기준, 지난 십오 년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본궁도 일이 이토록 커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우리 요동도 대가를 치르지 않았느냐. 동욱촌 하나가 통째로 도륙당하고 수만 명이 함께 묻혔다. 그것으로도 십오 년의 일을 속죄하기에 부족하단 말이냐? 네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두 나라 백성들은 다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금수 대장공주가 이렇게 흑백을 뒤집는 말을 흘리자 평소 정사에 관심 없던 봉한설조차 눈을 굴렸다.연기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시는 평안하지 못할 쪽은 진국이 아니지요. 우리 진국에는 국토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요동이 우리 백성을 해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예요. 헌데 우리는 언제든 요동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짐이 조금만 더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면, 몇 년 안에 요동 전토를 수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진국은 이미 남쪽의 여국과 북방의 능지국을 정복한 경험도 있으니까요.”금수 대장공주는 연기준이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며 광기 어린 기색이 드러났다.“너는 핑계를 삼아 일을 키우려는 것이다. 진국 백성의 원통함을 풀어주려는 게 아니야. 이 기회에 요동을 네 손아귀에 넣으려는 거지! 연기준, 인정하거라. 너도 그리 고결하고 위대한 존재는 아니잖느냐!”연기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황고모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황고모께서 제시하신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자’는 제안에서는 짐은 어떤 성의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금수 대장공주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병사들이 마을을 도륙한 일은 천하 열국이 모두 꺼리는 금기다.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진국이 열국의 공적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연기준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도륙의 주범은 이미 찾았습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그들을 공개 처형해 민심을 달랠 것입니다. 그
Read more

제1103화

봉한설은 칭찬이라도 들은 듯한 얼굴로 신이 나서 꼬막이의 볼을 꾹꾹 눌렀다.“그럭저럭입니다. 다 대황자의 어머니께서 잘 가르친 덕이지요.”연기준은 말문이 막혔다. 이 일에 서인경까지 엮여 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곁에 없는데도 이쪽 상황까지 휘어잡고 있으니 말이다.하얀 옷의 여인은 봉한설이 스스로 인정하는 말을 듣고 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외쳤다.“저는 독을 넣지 않았어요! 억울합니다! 왜 저를 잡는 거죠? 놓아주세요! 이렇게 억울하게 몰아붙이면 두 나라 사이에 더 큰 갈등이 생길 거예요! 우리 황후 마마께서 절대 가만두지 않으실 겁니다!”봉한설은 뜻밖이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어머, 국가 일도 제법 잘 아는구나. 어디서 배운 거야, 이런 말은?”여인은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빛이 흔들렸다.“누, 누가 가르친 게 아니라… 제가 그냥 아는 거예요.”봉한설은 턱을 만지며 혀를 찼다.“대사는 제대로 외웠는데 반응이 영 별로네. 방금 네 반응이 다 말해줬어.”여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어디서 틀렸는지조차 몰랐고 혹시라도 또 들킬까 두려워 숨도 죽였다.연기준은 그제야 알아챘다. 봉한설이 일부러 떠보는 중이라는 것을.그는 부장들과 다음 작전을 논의해야 했기에 끝까지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연풍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게 하고 나중에 자세히 보고하라고 일러둔 뒤 돌아서려 했다.하지만 꼬막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준의 품에서 몸을 비틀며 내려왔다.“저는 한설 누님이랑 있을 겁니다.”봉한설은 그의 손을 잡고 두 걸음쯤 떨어진 계단 위에 앉혀 주었다.“여기서 얌전히 구경하십시오. 이 누님이 어떻게 저 뒤에 있는 놈을, 속이고 겁줘서 끌어내는지.”노골적인 계략이었다.하얀 옷의 여인은 깊이 모욕당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제 뒤에 누가 있다는 건 다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해도 전 속지 않을 거예요!”봉한설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언가를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내가 점을
Read more

제1104화

그래서 그녀는 그 향에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네가 폐하를 해치려 한 독은 차에 있는 게 아니야. 네 몸에 밴 그 향기지. 이건 일종의 독이야. 단독으로 쓰면 유혹 효과를 내는 향이 돼서 웬만한 색욕에 약한 인간은 쉽게 홀려버려. 헌데 정신력이 강한 사람, 이를테면 우리 다정하고도 한 사람만 바라보는 폐하 같은 경우에는 네가 가져온 그 싸구려 차까지 곁들여야 효과가 생기지. 내 말이 틀려?”봉한설이 굳이 차에 한 번 더 독을 탄 건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해 이 여자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막사 안에 있는 연기준은, 자신이 뜻밖에 한 번 칭찬을 받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막사 밖에서는 하얀 옷의 여인이 충격에 말을 잃고 있었다.이 어린 소녀는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걸까? 몸에 밴 향을 알아차린 것도 모자라 그 사용법까지 꿰뚫고 있다니.하지만 단은설이 겪은 일을 떠올리자 그녀의 분노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헛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그냥 평범한 연지일 뿐입니다. 괜히 애쓰지 마시죠. 제가 단은설을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그 애는 저한테 아무것도 시킨 적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 당신이 그 애를 끌어들이게 두지 않을 겁니다.”봉한설은 오히려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와, 완전히 홀렸네. 너 좀 바보냐? 이렇게 오랫동안 진국 군영에 붙잡혀 있었는데 단은설이 널 구하러 온 적 있어?”그 말에 여인의 얼굴에 금이 간 듯 흔들림이 스쳤다.“그 애 잘못 아닙니다! 제가 편지를 남겼어요. 무슨 일이 생겨도 절 구하러 오지 말라고요. 저는 자발적으로 그 애를 도와준 겁니다. 세상 모든 배신한 남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말입니다!”멀리서 듣고 있던 꼬막이가 그 말에 푹 빠져 있다가 갑자기 길게 감탄사를 내뱉었다.“아... 한설 누님. 저 사람은 단은설을 도와 우리 아버지를 공격하려고 했답니다. 헌데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만 좋아합니다.
Read more

제1105화

봉한설은 정말로 더 이상 그 하얀 옷의 여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이 돼지 같은 머리를 햇볕에 잘 말려 머릿속에 고인 물이나 다 증발시키라는 듯 내버려두었다.여인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마지막에는 정신이 몽롱해졌고 배고픔과 피로, 두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창과 칼을 멘 병사들이 끊임없이 그녀 곁을 지나갔다.처음에는 두려웠다. 봉한설이 사람을 보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굳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두려움마저 마모되어 결국 아무 감각도 남지 않게 되었다.그녀의 이름은 부생. 성을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그녀를 버리고 떠나버렸다.그녀는 친부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그녀는 혼자 남았다.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구걸하며 살아왔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내다가 겨우 마음을 준 사람 하나를 만났다.이제야 떠돌이 같은 삶이 끝날 거라 믿었는데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그 남자는 순결만 빼앗고는 그대로 기루에 팔아넘겼다.기루에서 보낸 그 한 달 동안,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의 민낯을 보았다.밖에서는 권력을 쥔 고관대작이었고 명망 높은 가문의 선비였으며 부인과 자식을 사랑하는 모범적인 가장이었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군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얼굴들이 기루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전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색욕에 찌들고, 비열하고, 배신하는 자들부터 기괴한 취향을 가진 자들까지.그들은 하룻밤 사이 그녀를 죽음보다 못한 상태로 몰아넣었다.그녀는 여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것들을 모두 겪었다.그러다 반 년 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기루를 탈출했다.그리고 가장 먼저 자신을 그곳에 팔아넘긴 원흉을 찾아갔다.그 남자는 그녀를 팔아 얻은 돈으로 큰 집을 사고 처와
Read more

제1106화

부생은 믿지 않았다.단은설이 직접 입으로 말해주지 않는 이상 절대 믿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가 그동안 단은설과 함께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을 때, 막사 안에서는 이미 봉한설이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두 손에 넣고 있었다.암위의 보고를 들으며 봉한설은 턱을 괴고 연기준의 책상에 엎드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편 꼬막이는 잘 익은 복숭아를 들고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베어 물고 있었다.과즙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려 연기준의 책상 위를 여기저기 적셨다.연기준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지만 꼬막이의 얼굴에서 서인경을 닮은 흔적이 보이자 그 불쾌함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그때, 봉한설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단은설은 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겁니까? 연강호랑 짜고 두 번쯤 연기만 해도 저렇게 목숨 걸고 따라주는 사람을 얻다니요.”연기준은 서류를 넘기며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답했다.“연강호는 쉽게 단은설과 손잡을 사람이 아니다. 둘 사이에 분명 이익 거래가 있을 거다.”그 말에 봉한설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단은설 그 반 죽은 몸으로 연강호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요?”연기준의 손이 잠시 멈췄다.“연강호가 가장 원하는 건, 일불락의 모든 재물과 장생불사다. 그리고 그건 전부 인경이와 관련이 있다.”봉한설은 번뜩이며 몸을 일으켰다.“무슨 뜻입니까? 단은설이 황후 마마를 노린다는 겁니까?”단은설이 무슨 근거로 서인경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연강호는 또 무엇을 믿고 그녀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걸까?연기준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봉한설은 이마를 찌푸린 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갔다.“황후 마마께서 여기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마라면 분명 무언가 알아냈을 텐데요. 단은설이랑 연강호가 손잡을 것도 미리 맞히셨잖아요. 지금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도 분명 알아내셨을 겁니다!”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거친 말에 복숭아를 베어 물던 꼬막이가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몇 안 되는 하얀 이를 드
Read more

제1107화

“아버지 싫어하지 않아요! 꼬막이는 아버지를 제일 좋아합니다!”막사를 나서자마자 꼬막이는 연기준의 얼굴을 끌어안고 쪽 하고 입을 맞췄다.그 한 번의 입맞춤으로 연기준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손에는 아직 복숭아 즙과 털이 그대로였으니까.막사로 돌아온 그는 곧장 꼬막이를 붙잡아 씻겨버렸다.하루 종일 놀아 지친 아이는 욕조 안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연기준이 꼬막이를 안아 침상에 눕히려던 순간, 막사 밖에서 연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하얀 옷의 여자가 입을 열겠다고 합니다! 봉한설이 심문 중이고 폐하를 모셔오라 했습니다.”봉한설이… 정말 뭔가 알아낸 건가.연기준은 꼬막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등불을 끈 뒤 막사를 나섰다.“여기서 직접 지키거라. 아무도 접근 못 하게 해.”연풍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예!”그 안에는 진국의 대황자이자 폐하와 황후의 유일한 약점이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두 군이 나뉘기 전, 평이가 몇 번이나 당부하며 반드시 곁에서 지켜달라 했던 아이였다.연기준이 없는 동안, 연풍은 한 치의 방심도 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어둠 속의 막사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한편 봉한설 쪽.부생은 하루 종일 햇볕에 시달린 탓에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만큼 지쳐 있었다.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이미 갈라져 있었다.“물… 물 한 모금만 주세요. 그러면 단은설이랑 제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 말해줄게요.”봉한설은 근처 돌 위에 털썩 앉아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그건 안 궁금한데. 단은설이 너 시켜서 독 놓은 거 말고, 또 뭘 하려고 했는지만 말해.”부생은 순간 멍해졌다.자신이 하려던 말이 상대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어차피 말해도 상관없는 내용이니 그걸로 물 한 모금쯤은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최소한 단은설이 자신을 구하러 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 거라고.하지만 봉한설이 단칼에 거절하자 부생은 마른 목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마치 칼로 긁히는 듯, 타들어 가듯
Read more

제1108화

부생은 충격에 휩싸인 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말도 안 됩니다! 저를 속이고 있어요!”봉한설은 담담하게 말했다.“못 믿겠으면 가서 직접 알아봐. 진국 백성들도 다 알아, 우리 폐하와 황후 마마의 사랑 이야기는.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고 폐하의 생모께서 직접 혼인을 맺어주셨어. 정식으로 혼인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야. 단은설은 그저 헛된 욕심으로 끼어든 파괴자일 뿐이고. 걘 나중엔 얻지 못하니까 아예 망가뜨리려 했지.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아버지뻘 되는 선황제에게 시집간 것도 그 때문이야. 황비의 지위를 이용해서 우리 폐하와 황후 마마를 끊임없이 괴롭히려고. 정말로 자기가 말한 것처럼 고결하고 억울한 사람이었다면 폐하와 혼인하지 못했다고 그런 짓까지 할 필요 없었겠지. 그냥 자기와 어울리는 집안의 사람을 찾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우리 폐하는 애초에 그녀와 평생을 약속한 적도 없고 손끝 하나 건드린 적도 없어. 그저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게 무슨 배신이야? 나도 나름 의협심 있는 사람이거든. 진짜 배신자였다면 제일 먼저 죽이러 갔을 사람은 나였어.”봉한설의 말은 차분했지만 부생이 알고 있던 이야기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이 세상에 정말 한 여자만을 끝까지 사랑하는 남자가 존재할까?봉한설의 단호한 태도에 부생의 확신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정말 당신 말이 다 진실이라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봉한설은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가리켰다.“나 봉한설, 맹세해. 방금 한 말에 단 한 마디라도 거짓이 있다면, 칠공에서 피를 쏟고 비참하게 죽어도 좋아.”그 모습은 지나치게 진지했다.지칠 대로 지친 부생의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와 함께 마음속 방어선도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비를 맞아본 사람은 남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어지는 법이다.그녀는 지금까지 배신당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분노해왔다.그런데 이 일을 두고 거짓을 말하는 여자
Read more

제1109화

그리고 그의 차례가 됐을 때 맹세는 또 왜 이렇게 길어진 걸까.부생은 숨을 죽인 채 기다렸고, 봉한설은 조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연기준은 결국 한숨을 삼키며 손을 들어 올렸다.“나 연기준, 맹세한다. 단은설에게 한 번이라도 마음을 둔 적이 있다면 이 생에서 손발이 썩어 문드러지고,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다음 생에는 돼지나 개로 태어나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만큼 비참하게 살겠다.”말을 마친 그는 손을 내리고 봉한설을 바라봤다.“이제 됐느냐?”봉한설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됐습니다. 이 말, 제가 황후 마마께 꼭 전해드릴게요. 이 맹세, 헛되이 한 건 아니네요.”연기준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흘겨봤다.전해줘? 입은 본인에게 달려 있는데.부생은 그제야 믿은 듯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아까 그 아이... 당신 아들이죠? 정말 귀엽고 영리합니다. 당신과 황후는 분명 그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하겠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을 만큼요. 알것 같습니다. 만약 저에게도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었다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을 거예요.”연기준은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시선이 부생의 창백한 얼굴 위에 꽂혔다.부생은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눈동자는 고요했으나 이유 없이 연기준의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다음 순간, 그의 발끝에 바람이 일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봉한설도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곧장 연기준의 막사를 향해 달려갔다.부생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슴 깊숙이 눌려 있던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부디, 아직 늦지 않았기를.연기준이 막사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공기 속에는 짙은 혈향이 번져 있었다.그의 심장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그는 망설임 없이 휘장을 젖히고 안으로 뛰어들었다.어둑한 막사 안, 침상 위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연기준은 숨을 멈춘 채, 온몸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그때, 어둠 속에서 연풍의
Read more

제1110화

말을 마치자마자 봉한설은 즉시 몸을 날리며 한 줄기 바람처럼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뒷산.이미 연기준과 암위들이 검은 옷의 사내를 따라잡은 상태였다.그때쯤 꼬막이도 깨어났지만 사내의 어깨에 들려 있으면서도 조금도 겁을 먹은 기색이 없었다.까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연기준이 따라붙은 것을 보자마자 양팔을 흔들며 외쳤다.“아버지! 저 여기 있습니다!”그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연기준도 이렇게 빠르게 위치를 특정하진 못했을 것이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어깨에 멘 채 연기준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생각보다 빠르게 따라붙었군. 진국의 황제라더니, 듣던 것보다 훨씬 영리하네. 일불락 수령 일족의 후예라던데 사람 보는 눈은 그 조상보다 훨씬 낫군.”연기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동자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넌 일불락의 후손이구나.”물음이 아니라 단정이었다.“어느 부족 출신인지 밝혀라.”검은 옷의 사내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나를 이기면 그때 알려주지.”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순간, 공기 속에 수없이 많은 빙능이 맺혀들었다.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일제히 연기준을 향해 쏟아졌다. 연기준은 가까이 있던 암위의 검을 뽑아 들고 내력을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앞뒤에서 부딪히는 힘에 의해 빙능은 공중에서 산산이 부서졌다.그 반동으로 검은 옷의 사내는 내력이 역류하여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너... 목족 무공을 쓸 줄 아는 것이냐?”그 말에, 연기준 역시 순간 멈칫했다.방금 그가 사용한 내력은 어릴 적 연도현이 가르쳐준 것이었다.그때는 그저 일반적인 내공보다 깊고 강하다고만 여겼을 뿐이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연도현은 이미 그의 출생을 알고 일찍이 일족과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연기준은 낮게 말했다.“아이를 놓거라. 같은 일불락의 후손이라면 서로 죽일 필요는 없을 텐데.”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
Read more
PREV
1
...
109110111112113
...
12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