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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 Chapters

제1251화

아이의 말투로, 그러나 누구보다도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을 꺼냈다.봉한설은 몇 번이나 몰래 등을 돌리고 눈물을 삼켰다.어느 날은, 그 몰래 흐르던 눈물을 꼬막이에게 들키고 말았다.꼬막이는 마차의 휘장을 걷어 올리고, 바깥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봉한설을 바라보았다.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직 어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한설 누님, 이제 저 때문에 울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지금 잠들어 계시니까, 이제 제가 어머니의 버팀목이 될 겁니다. 제가 어머니를 지킬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봉한설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마차 안에 있던 서인경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비로소, 연기준이 전에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아이는 결코 평범한 집 아이들처럼 가볍게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다만, 그날이 이렇게나 빨리 닥쳐올 줄은 그녀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넓은 마차는 흔들림 없이 달렸고 점점 더 속도를 올렸다.그들은 거의 쉬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린 끝에, 아홉째 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마침내 설산에 도착했다.그때 이미, 설산 안쪽에는 많은 이들이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서회윤, 온가 자매인 온조와 온난, 설장로, 팔대 장로, 호롱이, 조빈, 지하흑시에서 이미 옮겨온 봉 대장로, 그리고 막수한과 그의 가족까지.서인경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보내는 시선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서인경은 그들의 미래였고 마차 안의 부자는 서인경의 미래였다.이번 구원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서회윤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유적 가동 의식은 이미 전부 준비를 마쳤다. 일불락 각 부족도 모두 모였으니 어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거라.”군더더기 없는 말.그녀의 할아버지는 언제나 가장 정확하게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다.서인경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겨우 눌러 삼켰다.“고맙습니다, 할아버지.”연기준이 들것에 실려 나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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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2화

봉 대장로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이 팔괘진은, 백 년 전 눈사태가 일어나기 전, 수령께서 어족, 여족, 금족, 목족, 화족 다섯 부족의 장로들과 함께 피로 제사를 올려 봉인한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설산이 무너진다 해도, 일불락에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있다면 이 유적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었거든요. 지금은 여섯 부족의 혈맥을 모으기만 하면, 봉인을 열 수 있습니다.”이 이야기는 이미 길 위에서 촌장 부인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서인경은 누구보다도 서둘러 유적을 열고 선주초를 손에 넣고 싶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줄곧 생각해 온 끝에,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만약 선조들의 뜻이 그렇다면, 이 팔괘진은 여섯 부족의 피를 모두 모아야 하는 방식이어선 안 됩니다. 어느 한 부족의 피만으로도 열 수 있어야 맞습니다.”그 말을 들은 봉 대장로는 순간 말을 잃었다.“수령님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헌데 당시 제가 들었던 것은 분명 여섯 부족의 피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옆에 있던 설장로가 입을 열었다.“당시 이곳을 봉인한 사람은 제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해주신 말과 똑같아요.”모두가 여섯 부족의 피를 말하고 있었다.하지만 그것은 처음 이곳을 봉인했던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서인경은 몸을 돌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오늘은 돌아갑시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죠!”그 말을 듣자마자 촌장 부인이 다급히 말했다.“오늘이 벌써 아홉째 날입니다!”“아직 하루 남아 있잖아요?”서인경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저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 않습니다. 연풍, 먼저 폐하를 모시고 돌아가거라.”연풍은 곧바로 암위들과 함께 연기준을 들것에 실어 자리를 떴다.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머뭇거렸지만, 서인경의 뜻이 완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결국 하나둘 뒤따라 돌아섰다.막수한은 지하흑시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과 보물들을 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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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3화

서회윤은 꼬막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아이야, 고생이 많았구나.”오는 내내 벌어졌던 일들을 방금 봉한설에게서 들은 터였다.그는 가슴 깊이, 이 아이가 안쓰러웠다.하지만 꼬막이는 고개를 저었다.“증조할아버지, 저는 괜찮습니다. 꼬막이는 아버지만 깨어나시면 돼요.”서회윤은 더욱 마음이 저려, 아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그때 서인경이 고개를 숙인 채 약을 빻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연기준의 몸에는 아직 남아 있는 외상이 있었고, 서인경은 매일같이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서회윤은 꼬막이를 안은 채 서인경 곁에 앉았다.“일불락 유적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냐?”서인경은 잠시 손을 멈추고, 확신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저도 확실하진 않아요. 다만… 여섯 부족의 피를 모으는 일이 정말 유적을 여는 데 쓰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그게 걱정됩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요.”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선주초를 손에 넣는 것뿐이었다.괜히 다른 변수가 생겨 연기준을 구하는 일이 늦어지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서회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옳은 판단이다. 설령 다른 문제가 있다 해도, 먼저 폐하를 깨우고 난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다. 이 할아비도 이 설산에 머문 지 꽤 되었으니, 지형과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해 두었다.”서인경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서회윤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마주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럴 때, 할아버지가 쓸데없는 말을 할 리 없다는 것을.서회윤의 시선이 바깥으로 스치자 서인경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녀는 약을 내려놓고 문 앞으로 나가, 연풍과 암위를 불러들였다.“네가 직접 사람을 이끌고 주변을 지켜라.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목조 오두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설장로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어렸다.“저건 지나치게 신중한 거 아닙니까? 앞뒤만 재고 우유부단해서야, 어떻게 일불락을 제대로 이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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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4화

꼬막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서인경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싫어요. 저는 아버지랑 어머니랑 같이 있을 거예요. 절대 떨어지지 않을래요!”서인경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맑고 작은 눈동자 속에는 흔들림 없는 결심이 담겨 있었다.“어머니, 저를 믿어 주세요! 제가 아버지를 구할 거예요.”그 한마디가 서인경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를 믿는다.”잠시 뒤, 서인경은 연기준을 약왕곡에 옮겨 둔 후, 꼬막이를 안고 밖으로 나섰다.목조 오두막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었고, 일불락 유적과도 가까웠다.모자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낮에 파헤쳐졌던 작은 팔괘진은 다시 바람에 휘몰린 눈에 덮여 있었다.서인경은 대략적인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것을 찾아냈다.작은 팔괘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위에 남아 있던 얼룩도 그대로였다.서인경은 몸에 지니고 있던 작은 칼로 손가락을 베어 한 방울의 피를 팔괘진 위에 떨어뜨렸다.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녀는 일불락 수령 일족의 순수한 혈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적을 열 수 없었다.떨어진 피는 팔괘진의 기울기를 따라 흘러내려 이내 아래 쌓인 눈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서인경은 그 위의 얼룩이 피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지금 보니 피는 이곳에 머무를 수조차 없었다.“이게 피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까? 설마, 유적을 여는 열쇠가 애초에 피가 아닌 건가…?”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그날 밤, 바람은 유난히 거셌다. 하늘의 구름을 모두 쓸어내듯 날려버려, 밤하늘에는 한 점의 구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초승달이 높이 떠올라 있었으나 설산과 가까워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느껴졌다.꼬막이는 작은 팔괘진에 시선을 빼앗겼다.그 작은 손으로 얼룩을 살며시 만져보더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니, 저 이거 본 적 있어요.”서인경은 몸을 낮추고 물었다.“어디서 본 것이냐?”꼬막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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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5화

그리고 다른 이들 가운데 만약 마음속에 반심을 품은 자가 있다면 그들이 일불락에 끼칠 해는 백 년 전의 그것에 못지않을 터였다.유적이 열리는 순간, 수많은 보물이 숨겨진 이 땅은 적의 침입을 허용하게 되고, 결국 타인의 손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 뒤 외적까지 끌어들이게 된다면 후환은 끝이 없을 것이다.예전의 서인경은 일불락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믿었다. 그러나 금족과 화족에서 배신자가 나온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다른 이들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문득 낮의 일을 떠올리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여섯 부족의 피를 썼다면 결과는 어땠을까?도대체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 것일까?꼬막이는 자신의 피가 유적에 들어갈 수 있고,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손을 내밀었다.“어머니, 베세요. 꼬막이는 안 아파요.”서인경은 가슴이 저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머니의 보물… 아주 조금만 쓸게.”꼬막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저 정말 하나도 안 아파요.”서인경은 꼬막이의 피를 조금 받아내고, 곧바로 지혈약을 뿌려 상처를 눌러주었다.작은 팔괘진은 꼬막이의 피가 닿는 순간, 즉시 반응했다. 강렬한 금빛이 번쩍이며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마치 부처가 강림해 중생을 구제하는 듯, 주변의 눈밭까지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다음 순간, 눈앞의 설산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마치 거대한 양문이 정면에서 쪼개지듯 펼쳐졌다. 그 안쪽은 여전히 설역이었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집과 궁전이 서 있었고, 푸른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그 풍경은 마치 만화 거장의 손에서 그려낸 동화 속 세계 같았으나 현실의 자연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겨울에 어찌 푸른 버드나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분명했다.서인경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푸른 버드나무였다.“어머니, 너무 예뻐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꼬막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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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6화

“소인이 어찌 감히 장로님을 속이겠습니까? 저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습니다만, 이 혹한에 한밤중이라 사람을 내보내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우리 쪽에만 영향이 없다면, 내일 밝아진 뒤에 확인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설장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막수한은 자연스럽게 선택을 설장로에게 넘겼다.설장로는 막수한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상대해 온 사람이었지만, 그가 잔꾀를 부리거나 속임수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결국 그녀는 일단 믿기로 했다.“그럼 돌아가자. 모두들 돌아가거라. 밤이 되면 만수림의 짐승들이 나온다. 살고 싶으면 괜히 돌아다니지 말거라.”설장로의 말이 떨어지자,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마지막으로 막수한은 연풍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순간 연풍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혹시라도 막수한이 자신을 추궁하거나, 직접 따라가 보겠다고 나설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렇게 되면 모든 게 드러나 버릴지도 몰랐다.다행히 막수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거두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갔다.그날 밤, 어떤 이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고, 어떤 이는 끝내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그리고 동이 막 트려는 순간, 밖에서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큰일입니다! 진국 황제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금족 족장이 사라졌단 말입니다!”문들이 하나둘 열리며, 사람들이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왔다.설장로는 맨 앞에 서서, 소식을 전하러 온 하인을 붙잡았다.“누가 죽었다고? ‘없어졌다’는 건 또 무슨 뜻이냐!”하인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이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금… 금족 족장, 연기준 황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수령께서 지금 산 위에서… 직접 장례를 치르고 계십니다!”순간, 모든 이의 머릿속이 하얗게 울렸다. 마치 벼락이 정수리를 내리친 것 같았다.봉한설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 가장 먼저 산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곧 뒤따랐다.*설산 중앙, 일불락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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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7화

꼬막이는 작은 손으로 눈을 한 움큼씩 퍼서, 연기준의 몸 위에 덮어 올렸다.작은 얼굴은 울다가, 다시 찬바람에 말라붙기를 반복했고, 여린 피부는 이미 갈라져 터져 있었다.그는 울부짖듯 외쳤다.“아버지! 아버지 돌아오세요! 콜록… 콜록…!”목소리는 이미 쉰 지 오래였고, 한 번 외칠 때마다 격하게 기침이 터져 나왔으며, 온몸이 떨렸다.그는 겨우 한 살짜리였다.봉한설의 심장이 죄여들었다. 그녀는 달려가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연풍은 이미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자신의 망토를 벗어 꼬막이의 몸에 감싸 주었다.그러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연기준 곁으로 기어갔다.“주군… 소인이 마지막 길을 모시겠습니다!”뒤에 있던 암위들 또한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주군을 배웅하겠습니다!”우렁차면서도 비장한 목소리 속에는, 억누르지 못한 울음이 스며 있었다.그 장면 위로, 슬픔이 한 겹 더 내려앉았다.사람들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설장로만은 끝내 믿지 못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눈으로 직접, 눈구덩이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이렇게 죽었다고? 목족의 유일한 혈맥이… 이렇게 사라졌다고?“언제 죽은 겁니까?”설장로가 서인경에게 물었지만, 서인경은 묵묵히 눈을 덮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반응하지 않자, 설장로는 성큼 다가가 서인경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흔들었다.“제가 묻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죽었냐고!”서인경은 초췌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언제 죽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당연히 중요하지요!”설장로의 목소리가 조급하게 떨렸다.“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한 시진 안이라면 몸속의 피는 아직 따뜻합니다. 말하십시오. 언제 죽은 겁니까?”서인경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젯밤 오시에 죽었습니다. 설장로, 실망하셨겠네요.”“아닙니다!”설장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며 무너져 내리듯 외쳤다.“그럴 리 없습니다! 그는 목족의 마지막 혈맥인데 어떻게 죽을 수가 있습니까!”서인경이 굳이 더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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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8화

설장로는 싸늘한 눈으로 막효연을 노려보았다.“애송이가 감히 어른에게 이 따위로 말하는 것이냐? 봉은노, 당신 손녀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요!”그 말에 봉 대장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 손녀를 어떻게 가르칠지는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다만, 방금 효연이 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답을 해 주어야 할 것 같군요.”그 한마디로, 봉 대장로는 분명히 설장로의 반대편에 섰다.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자신을 향해 쏠리자 설장로의 얼굴이 마침내 일그러졌다.그녀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냉소를 흘렸다.“이 혹한의 설산을 백 년이나 지켜왔습니다. 헌데 당신들은 제가 이대로 남의 밑에 들어가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까?”그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역심을 품었군요.”“역심?”설장로는 하늘을 향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수령에게 복종하지 않겠다고 하면 곧 역심인 겁니까? 우리 여족은 천 년을 수령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 이 설산을 지켜온 유일한 부족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도 스스로 문을 세우고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숨결에 기대어 사는 건, 당신 같은 종이나 하는 짓이예요!”봉은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았다.“여족이 재난을 당해 거의 멸족 직전까지 갔을 때, 살아남은 건 단 한 명의 족장뿐이었습니다. 그때 수령께서 자신의 수명 오십 년을 깎아 그 족장을 살려냈고, 그 덕에 여족의 혈맥이 이어진 겁니다. 누구도 여족에게 복종을 강요한 적은 없어요. 그때 무릎 꿇고 스스로 귀순을 택한 건, 당신 족장이었습니다. 설산을 지켜온 백 년 동안, 당신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왕이 될 수 있었겠지요. 헌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수령의 보호 아래 안정을 누리면서, 남에게 짐을 떠넘기고, 뒤에서는 왕이 되려는 속셈이나 꾸미다니… 수령을 당신 사병쯤으로 여긴 겁니까? 세상에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그 말을 듣자 설장로의 얼굴은 점점 더 음침하게 가라앉았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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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9화

설장로는 과연 오랜 세월 설산에서 수행해 온 자다웠다.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는 공기를 뒤흔들었고, 그 위력에 사람들은 일제히 팔을 들어 막아야 했으며, 더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곧이어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며 서인경을 향해 덮쳐들었다.“조심하십시오!”“어머니!”서인경이 손을 들어 막아냈지만, 설장로의 장력에 밀려 몸이 연달아 뒤로 밀려났다.설장로는 땅에 내려서며 핏기 어린 눈으로 서인경을 몰아붙였다.“왜냐고요? 말해 보십시오. 어째서 이 세상에서 사라진 무공 비급을 당신 손으로 부숴 버린 겁니까? 당신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서인경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규화비급을 익히려면 만인의 피를 마시고, 만인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그 안의 고충술 또한, 우리 일불락 사람들의 피로 길러야 하지요. 일불락은 그런 해악을 남길 수 없습니다. 남을 해치고 스스로를 망치는 그런 것 따위, 저는 원하지 않아요.”“하!”설장로는 비웃음을 터뜨렸고,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당신 조상과 다를 바 없군요. 일불락 수령 일족은 하나같이 겁 많고 나약하며 어리석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니 일불락이 천하를 통일할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지요!”서인경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이제야 알겠군요. 여와께서 처음 일불락을 세우실 때, 왜 수령 일족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주셨는지. 당신 같은 사람이야말로, 일불락의 재앙이자 치욕입니다. 그리고 수령 일족은 바로 당신 같은 자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요.”“정녕 죽고 싶습니까!”설장로는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온 힘을 끌어모아 서인경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예상했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다.어느새 나타난 흰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공격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예상치 못한 반격에 설장로는 기운을 거두지 못한 채, 그대로 역류를 맞고 피를 토해냈다.연기준은 하얀 옷자락에 눈송이가 몇 점 내려앉은 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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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0화

연풍이 아래로 내려가 살펴보고 돌아왔다.생사를 숱하게 겪어 온 그조차, 눈빛에 어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능지국 백성들 같습니다. 몸에 채찍질 당한 자국과 고된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설장로가 끌고 와서… 유적을 짓게 한 듯합니다.”“참으로 천인공노할 짓이로군! 겉으로도 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할 줄이야…”서인경은 눈앞의 아름답게 지어진 이곳을 바라보았다.그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탐낼 만한 것이었다.옛날에도 바로 이곳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쟁탈전을 벌였고, 그로 인해 일불락 수십만의 백성이 설산에 묻혔다.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또 하나의 죄가 더해졌다.능지국의 수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백성들이 이곳에 묻혀 버린 것이다.“묻어주자.”서인경이 조용히 말했다.“일불락의 부흥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 바깥 사람들처럼 새로운 터전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되살려야 할 것은 사람이지 재앙이 아니거든.”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끝없이 이어진 만인갱을 바라보며, 얼굴마다 깊은 비통과 참혹함이 서려 있었다.*반 달이 흐른 뒤, 설산에는 다시 한 번 눈사태가 일어났다.그러나 백 년 전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고, 어떤 생명도 희생되지 않았다.다만 설산의 용맥이 끊어지며 모든 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만수림의 모든 생명체는 막북 변방의 원시림으로 옮겨졌다.그 숲 근처에는 새로운 성이 하나 세워졌다.설성.그날 이후, 일불락은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일불락에 대한 모든 것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그러나 그 혈맥만은 설성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살아 숨 쉬었다.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이들이 알게 되었다.그 성의 주인이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진국의 황제와 황후라는 사실을.*성루의 가장 높은 곳, 서인경은 연기준의 품에 안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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