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은 평소에 냉담하고 과묵했다. 주변 분위기를 압도했고, 매사에 침착하며, 또래에게서 흔히 보이는 조급함이나 동요, 흥분 같은 감정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숨이 약간 가쁜 듯했다.급하게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경호원조차 대동하지 않고, 초조함과 불안을 그대로 끌어안고 이람을 찾아온 모습이었다.이람은 하준을 보는 순간, 말없이 입술만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하준은 마침내 사람을 막아 세웠고,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이람의 창백하게 식은 얼굴과 피로 엉망이 된 무릎을 보았다. 하준의 얼굴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의 동시에 제헌을 향해 몸을 던졌다.제헌은 하준이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막 이람을 데리고 떠나려던 참에 정면에서 막힌 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하준이 오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반응은 차분했다.물론 하준의 겉모습에서는 드러나는 게 없었지만, 제헌은 하준의 눈에서 분명한 동요를 읽어냈다. ‘서하준은 조이람이 내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잖아.’‘그런데도 저 당황과 걱정을 드러낸다고? 애초에 네가 가질 자격 따위 없는 감정이야.’‘서하준, 감히 너에게 내 여자를 마음에 담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한 번 자기 사람이라고 정한 이상, 제헌은 타인이 자기 사람에게 보이는 사소한 관심조차 모욕으로 여겼다. 그런데 하준은 여기까지 넘보고 있었다.이혼하던 날, 제헌은 이미 하준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하준이가 마음에 둔다고 해서 이람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왜냐하면 하준이 사모하고 있는 대상은 제헌을 3년이나 사랑해 온 이람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제헌은 백 퍼센트 확신했다. 하준이 반드시 질 거라고. 마음에 두는 것과 손에 넣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고, 제헌은 애초에 그걸 위협으로도 여기지 않았다.그런데 하준이 이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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