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apítulo 871 - Capítulo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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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1화

하준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목소리에도 한 점의 온기 없이 서늘함만 배어 있었다.“그럼 네 옆에 있는 친구한테 물어봐. 아이들을 내 손에서 빼갈 수 있는지.”그 한마디가 지닌 무게와 압박감은 분명했다. 성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서씨 가문의 장남이라는 이 작자는 정말 제대로 미친 사람 같았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종류의 광기였다.칼이나 총 같은 협박도 통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퍼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대를 흔들었다는 감각조차 남지 않았다. 남는 건 깊은 무력감과 답답함뿐이었다. 진짜 손쓸 도리가 없는 상대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약점이 없는 사람은 무서운 존재다.성빈은 진심으로 이 일은 이미 승산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그 생각 끝에 성빈은 제헌을 돌아봤다. 제헌이 그래도 끝까지 밀어붙일 생각인지 궁금했다.‘사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 아닌가?’제헌의 일그러진 낯빛만 봐도 제헌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정말 방법이 없다는 걸 제헌도 느끼고 있었다.그런데 그때, 제헌이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전송했다.메시지를 보낸 뒤, 제헌은 핸드폰을 옆에 늘어뜨린 손에 세게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제헌의 얼굴에는 집착과 광기가 뒤섞인 기색이 선명했다.“서하준, 네가 이 모든 짓을 하는 이유가 결국 이람을 도로 빼앗기 위해서라는 거, 나도 알아.”“내가 이람을 내 구역에 가둬 두면, 너는 과연 내 손에서 이람을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아?”고요하기만 하던 하준의 눈에 드디어 감춰지지 않는 위험이 스쳤다. 이람이 자신의 감시에 몹시 거부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된 뒤, 하준은 붙여 두었던 사람들을 이미 뒤로 물렸다. 이람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들에 관한 일도 전부 직접 털어놓을 생각이었다.제헌이 정말로 이람의 마음을 원한다면, 이람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짓까지는 하지 않을 거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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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2화

이람은 지후에게서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날, 곧바로 관련 정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이람에게는 기술력이 있었다. 최고 수준의 해커였고, 충분한 연산 성능만 갖춰진 장비가 있다면 방대한 정보 속에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흔적을 감추려 해도 다른 감시 기록과 맞물려 들어가면 결국 흐름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이람이 S시에 와서 출장 중 움직였던 동선을 기준으로 이람은 거의 대부분 겹치는 감시 기록을 찾아냈다. 거기에 복잡한 프로그램을 짜 넣어 시스템이 자동으로 분석하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람은 몇 가지 이상한 지점을 포착했다.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자 이람은 마침내 상대를 특정했다.하준이었다.이람이 하준에게 이별을 말한 뒤로 몇 달 동안, 하준은 계속 이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어쩐지 이람은 혼자 길을 걸을 때마다 늘 어딘가에서 시선이 따라붙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상해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그건 착각이 아니었다.이람을 따라다닌 사람은 하준이었다.정말 하준이었던 건가.상대를 확인하고 나자, 그날 하루 내내 이람의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민서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민리에게도 그 가라앉은 상태를 들키고 말았다. 오히려 도민리가 이람을 달래 주기까지 했다. 마지막에는 아이들 영상이 그나마 이람의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하지만 이 일은 거기서 끝날 수가 없었다.이람이 가장 바라지 않았던 건, 자신을 지켜본 사람이 하준인 경우였다.이람에게 하준은 원래 따뜻한 산 같은 사람이었다. 곁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뒤에 숨어 자신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렇게 몇 달이나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준은 이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람으로서는 하준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래서 이람은 크게 흔들렸고,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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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3화

지후가 재원의 핸드폰을 빼앗아 이람과 통화했을 때, 사실 그 둘은 이미 말속에 신호를 섞어 보내고 있었다.어쩌면 지후는 이람이 머지않아 하준의 존재를 알아차릴 거라고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람 역시 지후가 눈치가 빠르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람이 조금만 이상한 말을 던져도 지후는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상할 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이람은 그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현장에서 바로 재원의 IP 주소를 추적했다. 위치는 J시였다. 그래서 이람은 차라리 직접 그쪽으로 넘어가 지후를 만나고, 겸사겸사 하준에게도 연락해서 감시 문제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지 분명히 따져 볼 생각이었다.그런데 떠나기 직전, 이람은 또 다른 무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하준 일 이후로 이람은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이상 신호도 놓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또 하준 쪽 사람들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아니었다.제헌이었다.이람은 제헌을 이해할 수 없었다.같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 와중에 왜 또 사람을 붙여 자신을 지켜보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강제헌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두 아이만으로도 충분히 신경 쓸 일이 많을 텐데, 왜 그렇게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쓰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이람은 바로 제헌에게 전화해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제헌이 솔직하게 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컸다.그래서 이람은 차라리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제헌이 붙인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 보고 판단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결국 이람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몰래 움직였다. 도민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인 것처럼 계속 일하는 척해 달라고까지 부탁해 두었다.밤 비행기를 타고 움직인 끝에, 이람은 이른 새벽 재원의 구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이람은 재원 쪽 정보망으로 촘촘하게 깔려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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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4화

재원은 이람이 아이들 일까지 이미 알아버렸다는 걸 보자, 더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하준이 출장 끝나면 직접 말할 거라고 했어요. 근데 이미 다 아신 거면, 저도 더 숨길 건 없네요.”그러고는 곧바로 하준에 대한 불만을 쏟아 냈다.“이람 씨, 제가 미리 알았으면 무조건 막았을 거예요. 물론 진짜 막을 수 있었을지는 장담 못 하지만요.”재원은 원치 않게 남의 악행을 거든 사람처럼 잔뜩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진지한 얼굴로 사과했다.“이람 씨, 저한테 화났으면 저를 때려도 되고 욕해도 돼요. 근데 저도 진짜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저도 하준이한테 물어봤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재원이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동안, 이람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 갔다.지후는 결국 재원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했다.재원은 잘못한 입장이라 함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이 일은 재원 인생에서도 꽤 큰 오점이었다. 원래 재원은 친구한테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예전에는 이람에게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부르라고, 꼭 달려오겠다고까지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람의 등 뒤에서 찌른 꼴이 됐다. 자기 체면으로도 꽤 쓰린 일이었다.이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헌의 무능함과 은폐에 화가 나 있었다.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을 데려간 사람이 하준이라는 사실까지 드러났다.‘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거야?’‘아이들을 데려가는 과정에서 다치지는 않았을까?’‘갑자기 환경이 바뀌었는데 기후가 안 맞아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열이 나거나 폐렴이라도 왔으면 어쩌지?’‘겨우 익숙해진 돌보미의 체취가 있는데,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아이들은 어떻게 적응하나?’‘한밤중에 얼마나 울었을까?’이람은 화가 나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하준은 거의 넉 달 가까이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러다가 뒤에서는 오랫동안 이람을 감시해 왔다. 그런데 끝내 한다는 게, 이람의 아이들을 빼돌린 뒤 나중에 그 사실을 직접 말해 주겠다는 거였다.‘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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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5화

이제 와서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방식으로 이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려 했다.분명 더 나은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이람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식으로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다.이람은 몹시 지쳤다. 이제는 더 이상 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람이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아이들을 다시 보는 것. 하준이든 제헌이든, 지금의 이람에게는 둘 다 중요하지 않았다.반면 지후는 늘 솔직했다. 숨기거나 돌려 말하지 않았고, 이람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이람이 무엇을 원하든 지후는 맞춰 주려 했다.이람은 그런 관계가 좋았다. 마음이 편했고, 번거롭지 않았고, 괜한 고민이 많아지지도 않았다.이제 곧 하준을 직접 만나 아이들을 돌려달라고 따져야 했다. 그때 옆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이람도 조금은 덜 흔들릴 수 있었다.“그래요.”이람은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속도를 끌어올렸다. 이쪽 도로는 속도 단속 카메라도 없었다. 이람은 망설임 없이 차를 몰아붙였다.지후는 처음에는 이람이 아이들 걱정에 정신없이 차를 모는 줄 알았다. 그래서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런데 그렇게 높은 속도에서도 이람의 조작은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었다. 흔들림도 없었고, 정신이 흐트러진 기색도 없었다.그제야 지후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람은 아마도 수준급, 아니 어쩌면 최상급 레이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지후는 그 사실을 알아차린 뒤로 이람에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지금 이렇게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게다가 이람의 실행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가장 빠른 속도로 하준의 흔적을 찾아냈고, 야간 비행기를 타고 곧장 여기까지 날아왔다. 재원의 감시망까지 직접 뚫어 버렸다. 지후가 사람을 시켜 이런 일을 처리하게 했다 해도 이람만큼 빠르고, 과감하고, 집요하게 해낼 수 있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이람은 정말 보물 같은 사람이었다.예전의 지후는 제헌을 바라볼 때 이람의 눈빛이 유난히 환하다는 이유로 이람에게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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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6화

제헌과 성빈은 서태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성빈은 누구를 상대하든 감정이나 취향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상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늘 필요한 만큼만 예의를 갖췄다. 굳이 적을 만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비위를 맞추지도 않았다.하지만 제헌은 서태인을 보자마자 첫인상부터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서태인과 하준은 외삼촌과 조카 사이였지만, 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서태인은 능력은 별로 없으면서 집안 배경만 믿고 허세나 부리는 한심한 재벌 2세처럼 보였다. 제헌 집안의 사촌 형제들 가운데서도 변변치 못한 축에 드는 인간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그래도 제헌은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자기와 기운이 너무 맞지 않는 서태인을 일단 참고 상대했다.서태인은 제헌을 보자 무척 반가워했다. 말속에는 형제가 얼른 제대로 맞붙기를 바라는 기색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하준이 망가지는 꼴을 몹시 보고 싶어 하는 게 뻔했다.하지만 제헌은 그런 수작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칼이 되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제헌은 서태인에게 먼저 성의를 보이라고 했다. 하준의 약점을 원한다고는 했지만, 설령 그런 걸 손에 넣는다 해도 당장 제헌에게 쓸모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제헌의 태도는 끝까지 냉담했고, 서태인에게 어떤 약속도 해 줄 가치가 없다는 듯 굴었다.서태인은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하준이 동생답네.’이 형제는 둘 다 하나같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형제 사이가 틀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서태인은 둘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을지 끝까지 보고 싶었다.서태인과 하준은 평생 풀리지 않을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지금의 하준을 상대로 서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그런 점에서 제헌 정도의 권세와 능력이라면 하준과 제대로 힘겨루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제 입으로 꺼내기엔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서태인은 결국 자기가 칼에 찔렸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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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7화

이람은 거의 이성을 잃기 직전인 제헌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나를 감시했어?”격하게 치닫던 제헌의 감정은 이람의 얼음처럼 차가운 추궁 앞에서 갑자기 턱 걸린 듯 멈췄다.제헌이 왜 감시했냐고?당연히 이람을 자기 곁에 붙잡아 두고 싶어서였다. 이람이 영영 자기 손바닥 밖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사실 제헌은 진작 가장 단순하고 거친 방식을 택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변수가 줄줄이 생기지도 않았을 테고,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손에 쥔 주도권을 다 잃어 가는 일도 없었을 텐데...이람이 다시 말했다.“대답 못 하겠지? 그럼 일단 말하지 마.”이람의 말이 떨어진 뒤에야, 이람은 마침내 하준을 바라봤다.아이들 백일잔치가 끝난 지 겨우 3주였다. 3주 전에도 이람은 하준을 봤다. 그때만 해도 어딘가 낯선 기색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고작 20일 남짓 보지 않았을 뿐인데, 이제 하준은 이람의 눈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하준 씨,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은 지금 취소할게요. 내 아이들을 데려간 뒤로 이제 하준 씨는 내 마음속의 푸른 산일 자격이 없어요.”이람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차가웠다.제헌은 문득 놀랐다. ‘이람은 아이들 때문에 다시 서하준에게 돌아간 게 아니었나?’그런데 분위기는 오히려 완전히 등을 돌리는 쪽에 가까웠다.그때 제헌의 머릿속을 아주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제헌은 자신이 여러 가지를 잘못 짚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시험관으로 아이들을 만들면 이람을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아이들이라는 패가 하준 손으로 넘어가면, 이람도 결국 하준 쪽으로 갈 거라고 막연히 여겼다.하지만 이람은 애초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이람은 늘 이성적이고 단단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받아들이고,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짚은 뒤에 용서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었다.그제야 제헌은 아주 끔찍한 결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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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8화

지후가 그 말을 끝내자마자, 제헌의 안색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물론 지후도 제헌이 얼마나 충격받을지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두 사람은 진짜 어릴 때부터 같이 어울려 다닌, 말 그대로 오래된 친구였으니까.제헌의 인생 속 중요한 장면마다 지후는 늘 곁에 있었다. 하지만 하준도, 제헌도 성격에 분명 결함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로는 이람에게 안정된 행복이나 편안함을 줄 수 없었다.형제 둘이 서로 물어뜯듯 싸우는 틈에 지후는 적당한 타이밍에 자기 쪽 입장을 분명히 해 두는 편이 낫다고 봤다. 그래야 둘 다 잠깐이라도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가능성도 있었다.그래도 지후는 두렵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이람도 곁에 있었다. 이 형제가 더 추한 짓을 벌이며 자기 체면을 더 망치지는 못할 거라고 지후는 생각했다.겸사겸사 이람 대신 한 번쯤 속을 긁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제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너무 황당해서 오히려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하준과는 여기까지 와서 처절하게 부딪치고 있었는데, 정작 이람은 그런 싸움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제헌 눈앞에서 이람은 지후와 함께 있었다.‘지후가 대체 언제부터 내 뒤를 노린 거지?’지후와 이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제헌에게 준 충격은 단순히 분노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제헌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완전히 광대처럼 느껴졌다. 하준에게 진 게 아니라 현실에게 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람에게 진 것 같았다.어쩌면 제헌은 애초에 상대를 잘못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하준은 제헌에게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숙적이었다. 하지만 이람과 함께하고 싶고, 이람의 사랑을 얻고 싶다면, 제헌이 진짜로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은 하준이 아니라 이람 하나였어야 했다.하준이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제헌은 바로 흔들렸다. 머릿속에는 하준과 맞부딪치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준을 찾아가 따지고, 아이들을 몰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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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9화

제헌은 애초에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제대로 꾸려 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인정, 함께 버텨 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제헌은 그런 자질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형, 설령 내가 아니었어도 다른 누군가는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실망하고 놀랄 필요는 없어요.”“형이 정말 이람 씨를 좋아했다면, 결국은 이람 씨가 행복한 걸 보고 싶었겠죠. 지금 이람 씨는 저랑 함께 있고, 나는 이람 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지후의 논리는 기가 막힐 정도로 아전인수격이었다.“제가 형 여자를 뺏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형을 도와드리는 거죠. 그러니까 형은 우리 축하해 줘야 맞는 거예요.”예전에 연훈은 지후가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데 유난히 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하준도 제3자의 입장이라면, 방금 자기 말이 얼마나 지독한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헌이 저 말을 듣고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할지, 하준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하지만 하준은 정작 완전한 제3자가 아니었다.‘이람이가 정말 고지후를 좋아하게 된 걸까?’‘이제 이람이는 지후처럼 따뜻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남자에게 마음이 가는 걸까?’하준의 눈앞이 잠시 검게 물드는 듯했다.하준은 다쳤다. 피도 꽤 많이 흘렸다. 몸 전체가 점점 식어 가는 감각이 들었다.그럼에도 하준은 차라리 상처가 있는 게 낫다고 느꼈다. 다리의 통증이, 가슴을 찢는 고통을 잠깐이나마 눌러 주고 있었으니까.지후는 제헌이 완전히 미련을 끊고 더는 이람을 붙잡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한마디를 더 얹었다.“제헌 형,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내가 이람 씨 잘 챙길게요.”제헌의 얼굴에서는 이제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이람의 선택, 지후의 배신, 그리고 아직도 하준 손에 있는 아이들.아마 오늘은 제헌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가장 처참한 날일 것이다.제헌은 자기 인생에 이런 모욕적인 시간이 닥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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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0화

이람은 스포츠카를 몰아 하준의 차량 행렬을 따라 하늘정원 안으로 들어갔다.대문을 지나자 운치 있게 다듬어진 대숲 길이 펼쳐졌다. 차를 탄 채로도 꼬박 5분은 더 달려야 했다. 길은 어느새 정문이 있던 방향의 반대편 산자락까지 돌아 나갔고, 그제야 본채가 모습을 드러냈다.지후가 혀를 찼다.“서 대표님 집안... 진짜 재산 규모가 장난 아니네요.”이람도 이런 식으로 과장될 만큼 거대한 사유 저택은 본 적이 없었다.낯설었다. 꼭 이람이 한 번도 하준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처럼.이람이 하준과 함께 있을 때, 하준은 늘 흠잡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거의 결점이 없었다. 쓸데없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없었고, 조용히 곁을 챙겨 주기만 했다. 무언가를 과하게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서하준이라는 사람은 거의 완전무결해 보였다.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정말 완벽할 수 있겠는가?이람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예전의 이람은 사랑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고,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은 잊은 채 끝내 온몸에 상처만 가득 남겼다.지난 결혼에서 빠져나오며 이람은 분명 조금 성장했다. 그런데도 지금은 또 예전의 감정적이던 자신이 남긴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점점 더 복잡한 일 속으로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차를 세우기도 전에 이람은 멀리 본채 앞에 서 있는 연훈을 발견했다.재원은 몰랐을지 몰라도 연훈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연훈은 하준에게 이람을 감시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데려가지 말라고 말린 적이 있었을까? 하준이 이람을 찾고 싶어 할 때, 차라리 직접 연락하라고 설득한 적은 있었을까?본채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앞서가던 하준의 차가 옆으로 비켜섰다.이람은 차를 세우고 내렸다. 지후도 함께 내렸다.곧바로 검은 제복을 입은 가사도우미가 다가와 직접 주차를 맡았다. 나중에 이곳을 떠날 때도 이람이 있는 위치를 먼저 파악해 그 자리까지 차를 끌고 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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