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는 하준이 이람을 대면하지 못한 이유를 짚어냈다. 그건 하준이 생각해 온 것처럼 익숙한 인내가 아니라, 결국 용기가 없어서였다.하준은 원래부터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렀다. 늘 그래 왔기에 그런 사람으로 살았다. 너무 오래 그래 왔기 때문에, 어느새 그 방식 자체가 당연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 곁에 있는 누구도 하준에게 그 점을 정면에서 말한 적은 없었다.그런데 지금 지후가 던진 말은, 그대로 머리 위에서 떨어진 몽둥이 같았다. 그 한마디에 하준은 정신이 아득해졌다.늘 그래 왔다고 해서 그게 옳은 건 아니다.무의식처럼 반복해 온 습관 역시 원래부터 그래야만 하는 운명은 아니다.그때 하준은 문득 오래전부터 들었던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끝까지 피하려는 일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값을 치르게 만들면서 돌아오고, 결국에는 어떻게든 마주하게 된다.하준은 이람과 만나기 시작한 뒤부터, 이 관계를 정말 조심스럽게 지켜 왔다. 그러다 서태인이 나타나면서, 하준이 붙잡고 있던 아름다운 상상은 한 번에 깨져 버렸다. 하준은 자기 안에 남아 있던 옛날의 광기와 억눌림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지도 다시 보게 됐다.그래서 두려웠다.이람이 그런 하준을 알게 되는 게.하준 역시 제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둘 다 파괴적인 면을 가졌고, 둘 다 원하는 걸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을 수 있었고, 둘 다 극단적이고 다루기 어려운 성질을 품고 있었다.제헌은 엉망인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하준은 그걸 감춘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정말 누군가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면, 가면을 쓴 채 평생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다.이람이 하준과 함께 미래의 어려움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결국 하준의 감춤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이람은 끝내 하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바닥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처음 하준이 이람을 만났던 일부터 그랬다. 의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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