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1011 - Chapter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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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1화

이건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미간에 힘을 준 채 싸늘한 목소리로 했다. 그래도 사실을 말하는 것은 피하지 않았다.“역겹진 않아.”이건은 제은처럼 성격이 모난 사람도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터지는 불꽃놀이는 꽤 볼만했고, 이건은 제은이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조금 시끄럽다고 느낀 것 말고는 딱히 견디기 힘든 건 없었다.무엇보다 제은은 이건을 악의적으로 긁으려는 게 아니었다.이번에는 제은이 멈칫했다. 2초쯤 그대로 굳어 있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무척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진짜 내가 안 역겨워? 네 표정 보면 하나도 좋아 보이진 않는데.”“딱히 좋아할 이유도 없으니까.”이건은 또 한 번 제은의 말문을 막았다.고속도로 출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은은 귀찮아서 더는 이건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이 말한 ‘안 역겹다’라는 말이 혹시 자신이 그 어린 매니저를 혼내 준 일을 두고도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뜻인지 곱씹어 보게 됐다.그렇게 생각한 제은은 바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차는 제은의 집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해 전야라, 카운트다운 행사가 있는 동네 카페들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상태였다.다시 소란스러워진 거리를 바라보던 제은이 말했다.“앞에 세워.”“뭐 하게?”“커피 마시고 싶어.”예상했던 대로 이건의 미간이 바로 구겨졌다.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생기는 추가 일정이 영 못마땅한 기색이었다.“밤에 잠 안 올까 봐 걱정 안 되냐?”“걱정은 무슨. 너도 밤새 본 적 있잖아? 새해 첫날인데, 난 아예 밤을 새울 거야.”이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제은을 향한 인내심이 거의 한계까지 닿은 듯했지만, 다음 순간 차 속도는 서서히 줄었고, 카페 앞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이건은 시동을 끄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뭐 마실 건데?”그 말에 제은은 갑자기 ‘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은 늘 팔자 사나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시키는 일은 다 제대로 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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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화

이건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자신은 제은과 몇 시간을 붙어 있었는데, 아직도 안 끝났지 싶었다.그는 제은을 바라보며 이건이 차갑게 말했다.“진짜 날 기사로 부려 먹는 거야?”제은은 뻔뻔하게 받아쳤다.“네 누나가 오늘 밤 나 집까지 데려다주고, 안전하게 챙기라고 했잖아. 난 아직도 네 차 안에 있고, 집에도 안 들어갔어. 그럼 넌 네 누나한테 한 약속 아직 못 지킨 거지. 그러니까 내 말 들어야 해.”이건은 싸늘한 표정으로 잘라 말했다.“내려.”제은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기대앉아 눈썹을 치켜올렸다.“안 내려.”이건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너... 체면도 좀 봐 주면 안 돼?”제은은 눈을 깜빡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친구들이 다 나오라고 했는데 내가 바람맞히면 그건 내 잘못이지. 넌 가는 길에 나를 데려다만 주면 돼.”“그게 뭐가 그렇게 면목 없는 일이야? 오히려 너야말로 왜 이런 사소한 부탁도 못 들어주는지 한번 잘 생각해 봐.”이건은 비웃듯 짧게 코웃음을 쳤다.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뒤였다.“강제은, 너랑 말이 안 통해. 지금 당장 내려.”제은은 더 신이 났다.“오는 길 내내 내가 말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게 말이 안 통하는 거야? 잘 생각해 봐. 말 안 통하는 게 나야, 너야?”“난 분명히 말했어. 지금 건민이네로 갈 거라고. 네가 데려다주든가, 아니면...”제은이 말을 끊었다.이건이 물었다.“아니면 뭐.”제은은 입꼬리를 올렸다.“말해 봤자 너는 어차피 못 할걸.”이건은 미간을 꽉 좁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말해.”제은은 이건을 바라보다가 새삼 또 한 번 느꼈다. 세상에 어떻게 이건 같은 타입이 있나 싶었다. 제은 주변에는 하나같이 놀기 좋아하고 적당히 맞춰 주는 애들뿐이었다. 서림 정도만 예외였고, 그래서인지 이건 같은 성격은 더 낯설었다.‘진짜 놀리기 딱 좋은데.’제은은 정말 이건을 놀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절대 안 내릴 거야. 넌 네 누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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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3화

제은은 부딪혀 얼얼해진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미쳤어? 브레이크 밟을 거면 말해야지.”제은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는 걸 본 이건은 거의 비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한마디만 더 해 봐. 지금 여기서 바로 내려 버릴 거니까.”“네가? 겁도 없이?”이건의 표정은 장난기라고는 없었다.“농담 아니야.”“너...!”이건은 바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제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제은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건의 그 눈을 마주 보는 게 싫었다.서로 미워하는 감정을 앞세워 맞부딪칠 때나, 아무렇지 않게 말을 주고받을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처럼 눈을 맞추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피하고 싶어졌다.그렇다고 제은이 밀릴 사람은 아니었다. 제은도 이건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뭘 봐?”이건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제은의 입가에 멈췄다.그 시선을 알아챈 제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였다. 제은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러자 입술 끝에 닿는 희미한 단맛이 느껴졌다.제은은 바로 알아차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됐다.그제야 이건이 차갑게 비웃었다.“입가에 크림 다 묻었어. 계속 쫑알쫑알 떠드는데, 진짜 보기 거슬린다.”매정한 말을 툭 던진 뒤, 이건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차를 몰았다.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고, 손으로 핸들을 가볍게 두드렸지만 제은에게는 들키지 않았다.제은은 자기가 예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디를 가든 예쁘다는 말을 들었고, 학교에서도 늘 눈에 띄는 존재였다. 외모 때문에 불안해한 적은 없었지만, 창피한 꼴을 당하고 그냥 넘길 성격도 아니었다.제은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셀카 화면을 켰다. 화면 속 자기 입가에는 블루베리 케이크 크림이 푸르게 번져 있었다. 꼴이 말도 못 하게 우스웠다.이건은 그걸 진작 보고 있었으면서도 한마디도 안 해 줬다. 그러고는 내내 그 상태로 제은을 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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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4화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탓에 진혁도 이건을 바로 알아보았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어떤 게임을 즐긴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게임을 제작한 대표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진혁은 당시 이건의 인터뷰 영상을 봤을 때, 막연히 자기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완전히 달랐다. 연예인으로 오래 살아온 진혁의 눈에도, 이건은 좀처럼 보기 드문 잘생긴 얼굴이었다.저런 타입이 데뷔했으면 이건의 부인을 자처하는 팬들이 엄청 붙었겠지 싶었다. 분위기나 눈빛이 사람을 단번에 누르는 힘이 있었다. 기세 자체가 강했다.‘그런데 왜 강제은이 저 사람 차에서 내리는 거지?’진혁은 미간을 아주 살짝 좁혔다가, 곧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표정을 풀었다. 대신 더 유심히 살폈다.이건의 표정은 몹시 좋지 않았다. 설마 제은한테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건가 싶어서 진혁은 이건과 제은을 몇 번 돌아보았다. 다시 봐도 분명했다. 정말로 이건은 제은에게 냉랭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걸 알아챈 진혁은 잠깐 멍해졌다.진혁이 아는 제은이라면 분명 바로 화를 냈을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쪽이 크게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았다.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은이 폭발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그런데 진혁의 예상과 달리, 이건은 진혁을 본 뒤 곧장 차를 뒤로 뺐다. 핸들을 돌려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떠나 버렸다.진혁은 어이가 없었다.‘진짜 저렇게까지 싫은 티를 낸다고?’이제 제은이 바로 경호원들에게 전화로 움직이라고 지시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제은은 그러지 않았다. 제은은 이건의 차 뒷모습만 싸늘하게 바라봤다.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시선을 거둔 뒤, 굳은 표정 그대로 건민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진혁은 놀라서 마스크를 한 번 고쳐 썼다. 그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제은의 뒤를 따라갔다.‘이상한데...’제은의 반응이 너무 평소답지 않았다.진혁은 제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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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5화

이건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더는 깊이 따지지 않았다.‘강제은이 어떻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수범은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이건은 비웃듯 헛웃음을 두어 번 흘렸다.“믿든가 말든가.”그 말을 끝으로 이건은 컵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수범은 말없이 이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차라리 수범의 착각이었으면 싶었다. 그래도 수범은 이건을 잘 알았다.아무리 생각해도 이건의 반응이 이상했다. 원래 이건은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짓는 표정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건이 순순히 운전기사 노릇까지 했다니.수범은 그 장면을 직접 보고도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묘했다.수범은 잠깐 곱씹어 봤다.‘설마 강제은이 예뻐서 그런 건가?’대부분 남자들이 미인한테 약하긴 하니까. 그런 쪽일 수도 있었다.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건은 예쁜 여자라고 해서 특별히 친절하게 군 적도 없었고, 시선을 더 두는 일조차 없었다. 이람의 압박 때문일 수도 있다.‘쟤도 참 팔자가 사납다. 아니, 체면 차리고 사는 사람이 더 피곤한 건가?’아니면 이건이 철이 든 걸 수도 있었다. 예전처럼 감정부터 앞세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그냥 군말 없이 따르기로 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1월 1일이 지나자마자 새해 업무가 몰아쳤다.이건은 설 연휴를 앞두고서 겨우 쉴 틈을 얻었다.새해 첫날 있었던 일 이후로, 이건은 제은과 따로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설 당일, 이람의 집으로 가족 식사하러 온 제은을 보고 나서야 이건은 제은을 꽤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이건은 제은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 안 보면, 이건의 세계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제은은 늘 그렇듯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굴었다. 점심을 먹고도 돌아가지 않고, 오후 내내 모진과 모연의 곁에 남아 시간을 보냈다.이건은 모처럼 맞은 휴일을 보내는 중이었다. 제은이 이 자리에 있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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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6화

함께 부딪친 아이는 선물을 사러 왔다는 들뜬 기분에 잔뜩 휩싸여 있었는지, 앞도 제대로 못 보고 뛰다가 제은을 들이받았다. 재수 없게도 출입문 앞에는 낮은 단차까지 있었다.제은의 발목이 그대로 꺾였다. 곧바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고, 넘어지고 난 뒤에는 도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그래도 뼈를 다친 것처럼 속까지 파고드는 아픔은 아니었다. 한동안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아팠지만, 조금만 지나면 가라앉을 것 같기도 했다. 제은은 그대로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발목을 붙잡았다.아이의 부모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급히 아이를 붙들어 세운 뒤, 연달아 제은에게 사과했다.제은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당장이라도 욕부터 쏟아내고 싶었다. 애 하나 제대로 못 볼 거면 뭐 하러 데리고 나왔냐고, 한마디도 아니고 열 마디는 퍼붓고 싶었다.하지만 제은은 그럴 기분조차 들지 않고 귀찮았다. 그녀는 그저 연신 사과하는 꼬마를 차갑게 한 번 노려봤다. 그 시선 한 번에 아이는 그대로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제은은 짜증이 더 올라왔지만 몸을 일으켜 보려 했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다가와 부축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제은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사람이 가까이 오는 걸 질색했다. 그녀는 곧장 시선을 들었다. 눈에 ‘건드리지 마’라는 뜻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아이 엄마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제은은 한쪽 다리에 힘을 실을 수가 없어서 혼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 제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뒤이어 제법 큰 힘이 실렸고, 다음 순간 제은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그대로 끌려 올라갔다.제은이 고개를 들었다.곧장 이건과 눈이 마주쳤다.눈발이 마침 이건의 앞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길게 뻗은 속눈썹 끝에도 하얗게 붙어 있었다.이건은 생김새부터 서늘한 쪽이었다. 눈매는 차갑고, 시선도 매정했다.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얼어붙게 했다. 피부까지 희어서 지금 내리는 눈과도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렸다. 그래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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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7화

제은이 여기서 ‘엎어진 김에 쉬어가기’를 시전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바보였다.“괜찮아. 뼈 다친 건 아니니까 그냥 집으로 데려다줘.”제은은 조금 전 이건의 반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건은 분위기만 차가울 뿐이지, 막상 닿아 보면 커다란 난로처럼 따뜻했다. 아니면 제은이 너무 차가운 탓에 온도 차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었다.“먼저 병원으로 가.”이건은 단호했다.제은의 미간이 또 꿈틀했다. 최대한 부딪치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저렇게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태도는 제은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였다. 제은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병원 안 간다고 했어.”이건은 더는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대로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제은은 어이가 없었다.‘진짜 귀먹었나?’병원 앞에 도착했는데도 제은은 일부러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끝까지 버텨 보겠다는 심산이었다.그러자 이건은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제은의 안전벨트를 풀더니, 아무 말 없이 제은을 번쩍 안아 들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제은은 말문이 막혔다.제은은 여태 이건이 꽤 낯을 가리고, 남 시선을 의식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은을 안은 채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사람들 시선이 쏠려도, 이건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옆도 돌아보지 않았고, 누가 쳐다보든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이건은 제은을 내려놓은 뒤 접수부터 했다. 의사를 만나게 하고, 엑스레이도 찍게 하고,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발목에 바를 약까지 챙겼다.이건이 위아래로 뛰어다니는 동안, 제은은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급하게 나온 탓에 차에서 내릴 때 외투도 입지 못했는데, 지금 제은의 어깨에는 이건의 패딩이 덮여 있었다.이건은 패딩 안에 검은색 슬림핏 터틀넥 하나만 입고 있었다. 옷을 얇게 입은 탓에 몸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딱 보기에도 느낌이 있었다.제은은 원래 이건이 말은 적고 행동이 빠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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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8화

이건은 결국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제은이 말했다.“요즘 이사해서 다른 단지에서 살아. 내가 길 알려줄게.”제은은 원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했고, 뭔가 일을 벌이고 움직이는 것도 좋아했다. 한곳에 오래 붙박여 살면 금세 싫증이 났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몇몇 친구들만 예외였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금방 흥미를 잃는 편이었다.제은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건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결국 제 말도 고분고분 듣게 만들 수만 있다면, 진혁이 자기한테 구는 태도처럼 바뀌었을 때는 아마 오래 안 가 흥미가 식을 것이다. 별일 없으면 한 달이면 제은의 마음이 식기 충분할 것이다.이건은 제은이 말한 새 주소까지 차를 몰았다.발목을 다쳤다는 건, 결국 이건이 제은을 집 안까지 데려다줘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이건은 선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남의 집에 들어가는 건 단순히 문턱 하나 넘는 일이 아니었다. 거리감이 허물어지는 일이었다. 아주 가까운 사이여야 가능한 일인지라, 이건은 제은의 집 안까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 자체가 불편했다.이건은 무의식중에 핸들을 한 번 톡 쳤다.“혼자 들어가.”제은은 원래도 거리를 먼저 좁히려는 쪽이었다. 밀어붙였을 때 이건이 싫어하고 거부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제은은 그 거절조차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나보고 깡충깡충 뛰어서 들어가라고? 내가 토끼도 아니고.”“경비 불러.”제은이 차갑게 웃었다.“상관없는 사람이 나 건드리는 건 싫어.”이건은 방금 전 제은을 안고 병원으로 들어갔던 일이 떠올렸다. 그 생각이 스치자, 이건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제은도 막 말을 뱉고 나서야 조금 애매하게 들릴 수 있겠다고 느꼈다. 일부러 그런 뜻을 담은 건 아니었다. 마치 이건은 가까이 와도 된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묘했다.이미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상하게 흘러가 버렸다.그래도 이건의 반응은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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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화

제은이 말했다.“그렇게 차가운 성격에 지수범 말고는 친구도 없을 거 아냐. 나 지 대표 톡도 있거든. 지 대표는 지금 친구들이랑 있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랑 있을 거고, 너도 돌아가 봐야 혼자일 텐데. 새해인데 얼마나 썰렁해.”제은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어차피 가도 혼자 있을 거잖아. 그냥 여기 남아서 나랑 야식 먹어. 너도 이미 우리 집 안까지 들어왔고, 네가 가 버리면 나 진짜 혼자 심심해. 나랑 야식 먹으면서 시간이나 좀 때우자. 응?”이건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오늘 오후 내내 제은과 같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중간에 사고가 나서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제은도 아까처럼 사람 짜증 나게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제은은 이건이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견디기 힘든 상대는 아니었다.이건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그때 제은이 못을 박듯 말했다.“그냥 가 버리면 안 돼. 네가 가면 나 발목도 그냥 방치할 거야. 생각해 봐. 네가 아까 병원에서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쓴 시간, 다 헛수고 되는 거잖아.”이건은 제은의 말투에 담긴 위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도 사람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타입을 싫어하는 편이었다.“내가 그런 협박에 넘어갈 것 같아? 고생하는 건 내가 아니고 너야.”제은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그 협박, 너한테는 먹혀. 내가 봤거든. 너 은근히 물러터진 사람이야.”제은은 이건이 지나치게 반듯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고, 한번 손댄 일은 대충 넘기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 사람일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약했다. 그래서 이건은 제은을 싫어하는 감정이 남아 있어도, 발목을 다친 걸 보자마자 병원으로 데려갔다.‘그러니까 진짜 일이 생기면, 결국 날 내버려두진 못할걸.’제은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 편하게 이건에게 들이댈 수 있었다.이건은 제은의 짓궂은 시선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대신 낮게 말했다.“그럼 지금 약부터 발라.”차 안에서부터 제은은 설명서만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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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0화

이건의 시선이 스쳐 오는 걸 제은은 바로 알아챘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이건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제은은 그게 꽤 뜻밖이었다.이건은 사람을 대하는 데 익숙한 쪽은 아니었지만, 같이 야식을 먹고 가겠다고 한 뒤로는 금방 받아들였다. 한번 받아들인 뒤에는 괜히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태도도 의외로 자연스럽고 담백했다.‘왜 갑자기 저렇게 빤히 보는 거지?’제은은 이건의 시선을 찬찬히 따라갔다. 이건은 제은의 눈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제은이 시선 끝을 좇아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가 곧바로 이유를 알아챘다.쇄골에 남은 잇자국이었다.그걸 보자마자 제은은 또 짜증이 치밀었다.그때 워낙 세게 물려서, 제은은 아직도 흉터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제은이 알아챈 걸 이건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건은 그제야 시선을 옮겼다.제은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발목 다친 걸 깜빡한 채 힘을 줘 버렸고, 바로 통증이 올라왔다.“쓰...”제은은 이를 악물고 이건을 노려봤다.“진짜 약 안 발라 줄 거야?”이건은 시선을 거둔 뒤 다시 휴대폰만 봤다.“네가 해.”이건은 제은을 병원에 데려갔고, 집까지 바래다줬다.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다만 그 잇자국은 아직도 흉처럼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내가 그때 그렇게 세게 물었나?’이건은 미간을 좁혔다. 그때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다. 제은을 향한 분노만 가득했다. 정말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기회만 생기면 물어뜯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래서 그대로 해 버렸다.이건도 그 일 뒤에 제은의 경호원들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회복은 빨랐다. 지금은 몸에 별다른 흉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제은의 몸에는 아직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게 묘하게 걸렸다.불쾌했던 기억까지 되살아나자, 이건은 괜히 여기 남겠다고 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실은 애초에 남겠다고 대답한 자기 자신이 더 이상했다.병원에 데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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